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90
191. Prisoner of Love (10)
***
엔델리온은 먼 옛날 이미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허나 공주를 포함한 ‘젊은’ 세대는 선조들이 그렇게 결론을 내린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 교육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독실한 신자였던 촉수 생물들의 회의와 의심은 과거의 어떤 사건에 기인했다.
신과의 교신이 단절된 것이다
-신께서··· 더 이상 응답하지 않으신다!
절묘하게도 당시는 엔델리온이 신의 도덕을 구시대적 관념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들 사회에는 종교 규율을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 싹트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가치를 엔델리온 중심으로 해석하며, 그들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
그렇기에 확인해야 했다.
-신은 정녕 우리 곁을 떠났는가?
신의 부재가, 신의 죽음이 입증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신의 계시에 구속되지 않아도 될 것이며 현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윤리를 정의할 수 있을 터다.
더군다나 그들 주변 환경에도 이변이 발생했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범위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무한하다고 알려졌던 우주에 한계가,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던 별의 바다가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공간을 가로막는 벽이 한번 생기고 나면, 지금 우리 기술로는 그것을 돌파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은 우주의 파편화가 중심에서 먼 곳부터 발생하고 있음을 관측했다.
엔델리온은 결단을 내린다.
-더 늦기 전에 신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자.
신이 존재하는 곳, ‘천국’ 혹은 ‘낙원’이라고 불릴 만한 행성의 위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우주의 중심부.
지금까지 감히 그곳을 향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상황이 바뀌었고, 신에게 허락을 구하려고 해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촉수 달린 겁쟁이들은 기나긴 토의를 시작한다.
-누가 남고 누가 갈 것인가?
-우주의 파편화 때문에 한번 떠난 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할 터다.
결론은 모든 종족이 함께 떠나는 것이었다. 그토록 멀리 가는 일은 공포스러웠지만, 그 여정에서 낙오되는 것은 더욱 두려웠다.
또한 그들은 더 이상 눈으로 별의 위치를 가늠하고 맨몸으로 성운(星雲)을 헤엄치던 원시인이 아니었다. 신에게 닿기 위해 탑 따위를 세울 필요는 없었다. 엔델리온은 전원이 탈 수 있는 우주선을 건조한다. 편집증에 가까운 안전제일주의 때문에 종족적 역량이 총동원되었다. 막혀 있는 벽에 충돌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뚫려 있는 우주를 가로지르는 일이었음에도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량의 약물이 동원되었다.
마침내 긴 준비가 끝났다. 은하의 순례자들은 고향을 떠나 우주의 중심을 향해 항해를 시작한다.
***
우주선이 통과한 궤적을 따라 공간이 조각나는 현상은 계속되었다. 그들은 파편화된 각각의 공간을 ‘차원’이라 부르기로 한다.
긴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낙원 같은 행성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생명체가 살기 최적의 조건으로 기온은 따스했으며, 물이 풍부하고, 산소 농도가 매우 높아 종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행성에는 예외 없이 비늘 덮인 짐승들이 발견되었다. 날개가 달렸거나, 땅을 파거나, 바다를 헤엄치거나, 불을 뿜거나, 전기를 토하거나, 독을 뿌리는 등 각각 특성이 달랐음에도 비슷한 유전 형질을 보유한 생물들.
수명이 몹시 길지만 기이할 정도로 지능이 낮은 그들은 엔델리온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순례자들은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성지에 도달한 엔델리온은 전율한다.
신이 거하리라 기대한 그곳에는 이미 신이 없었다. 대신에 보잘것없는 문명을 보유한 지성체 두 종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나는 신생아의 촉수 가닥같이 가느다란 환형동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등에 두꺼운 껍질을 짊어진 파충류였다.
이미 엔델리온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 행성을 중심으로 한 단절된 우주 파편에 갇힌 것이다. 촉수 생물들은 앞으로 저들과 이 ‘차원’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행성에 남은 흔적을 조사하던 그들은 확신하게 되었다. 잠정적이고도 1차적인 결론이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이 시대, 이 장소에는.
***
-우리가 저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문명의 격차가 상당하다. 원한다면 우리는··· 저들의 신이 될 수도 있을 터다. 노예로 부리거나.
-아니요, 그러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건 어떻습니까?
-······.
-······.
-그렇군. 그편이 더 ‘안전’하겠어.
***
델은 그런 과거의 내막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전 우주에 흘러넘치는 이 지독한 악의를 용인할 리 없다. 신을 긍정하기에는, 그녀는 지금까지 추악한 장면들을 지나치게 많이 보아 왔다.
그렇기에 윰투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신이시여! 긴 악몽에서 깨어나 우리를 기억하실, 모든 것의 근원이여!”
툭! 투둑!
그녀는 등에 돋아난 촉수에 떨어지는 뜨거운 핏방울을 느꼈다. 윰투스는 환희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졌다.
방금 전 사제와 공주는 동시에 ‘신’을 외쳤지만 그 의미는 상반된 것이었다. 공주는 경악하여 욕을 했고, 윰투스는 이곳에 거한 신의 기적에 몸을 떨었다.
‘신?’
델은 의혹을 느낀다.
“설사 신이 존재하더라도··· 저런 형태로 온다고?”
그녀는 고전 문학 취급을 받는 경전의 한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여 그 모습으로 왔노라.
“그리고··· 저런 식으로 필멸자를 벌한다고?”
눈앞에는 상상할 수 없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자가 엉켜 만든 회오리. 그것은 인간종 여성을 닮은 형태로 변했다. 크기는 엔델리온 본체에 비견할 만하다. 괴물이 들어 올린 손의 방향을 따라, 밤하늘 속에 붉은 꽃이 쉴 새 없이 피어난다.
그녀가 터뜨리고 있는 건 토드였다.
‘어머니가 보낸 거야!’
모왕은 토드와 손을 잡은 것이다. 공주를 무사히 구출해 오는 대가로 무언가 주고받기로 약조했으리라. 그 과정에서 아시프-666의 체포 역시 놓칠 수 없으므로 토드는 철저한 준비를 해 온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괴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괴물의 몸은, 과연 그것을 과연 육신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를 구성한 검은 일렁임은 고대 종족에게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드는 보이지 않는 망치에 두드려 맞은 듯 뒤틀리고 으깨졌다.
그리고 그녀는 토드를 쉽게 죽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 먼 거리를 뚫고, 비명이 이어진다. 등껍질 사이, 뱃가죽 아래, 눈코입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괴물이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즉시, 대기가 요동치는 것이 델의 눈에 보였다. 제일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사냥감들이 토해 낸 체액이었다. 속절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핏줄기들이, 손을 뻗듯이 괴물을 향해 쭉 늘어진다. 그렇게 액체부터 빨아들이던 흡입력은 그다음에는 토드의 몸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검은 폭풍은 계속 대기를 휘감아 올린다. 그 힘에 엮인 토드 역시 괴물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회전하며 거리를 좁히다가, 마침내 부글거리는 그림자의 표면에 닿았다.
콰직!
그림자 괴물의 피부에 반쯤 묻힌 그들은 더 강한 압력에 으스러졌다. 그 각각의 모습은 곪아 터진 종기처럼 보였다. 토드는 피와 체액을 끊임없이 토해 냈다. 등껍질이 갈라진 틈을 타고, 깨진 과일처럼 안에 든 것이 폭발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고름을 짜내는 듯한 광경.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 숨을 붙여 놓은 상태에서 채혈과 착즙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작업이 이어졌다.
저런 일을 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괴롭히려는 거야··· 더 끔찍한 고통을 주려는 거야.”
악의.
무언가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저 목적으로 존재하는 순수한 적의.
신의 의도를 추측하는 공주에게 윰투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달큰한 흥분에 젖어있었다.
“무한한 존재의 의도를 우리 식으로 해석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지요! 신을 유한한 피조물 수준으로 끌어내려서는 안 됩니다.”
사제는 이 현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감격과 열의가 넘치는 어조로 떠들었다.
“많은 종교에서, 죄인과 불신자가 영원토록 고통받는 지옥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필멸자를 영겁의 시간 동안 괴롭히는 신의 의도는 악이며, 그 행위는 죄입니까? 아니요, 그리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신은 도덕적일 필요가 없으며 우리를 향해 그걸 행할 의무를 지니지도 않습니다. 그의 사랑을 객관적 윤리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그는 우리에게 규율을 내렸으나, 정작 자신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오직 그만이 대속할 수 있습니다!”
델은 종교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
고개를 저으며 그녀는 단언한다.
“저건, 복수야.”
애초에, 신이 왜 피조물에게 복수해야 하는가?
더 거슬러 올라가, 서로가 서로에게 증오를 쌓으며 그 죄를 번갈아 돌려주는 형식으로 우주를 설계할 이유가 무엇인가?
복수의 당위성은 이해한다. 하지만 애초에, 그 원인이 될 악행을 방치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 의문에 답하는 윰투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저것이,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
검은 폭풍 속에서, 민준은 드디어 토드의 숨이 하나씩 끊어지는 것을 감지했다.
그림자 괴물의 외피에 반쯤 파묻힌 그들 육신에서, 서서히 영혼이 빠져나온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영혼은···.
=아아! 아아아!=
=놓아줘. 제발, 날 보내줘!=
=괴로워··· 너무 괴로워···!=
하지만 그들을 이대로 놓아줄 생각은, 괴물에게도 소환자에게도 없었다. 망령이 된 토드의 영혼과 내팽개친 육신은 천천히 그림자 속으로 잠식된다.
망령과 시체는 깊숙이, 더 깊숙이 추락하다가 마침내 그 중심에서 기다리던 민준 가까이로 왔다.
폭풍 치는 그림자 속에서 민준은 그것들을 본다.
=이것들로··· 무얼 하실 생각입니까?=
아시프-1이 정신을 두드리며 물었지만,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사이 으깨진 시신과 체액, 망령들은 회오리 속에서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대체, 어쩌실 생각입니까?=
잠시 후.
창조주가 드디어 답했다.
그의 시선은 폭풍 속에 흩날리는 토드의 핏방울에 닿는다.
“피는 물질, 즉 생명의 정수이고.”
그다음은, 보이지 않는 힘에 포획되어 붙잡힌 망령을 보았다. 끊임없이 영체를 뒤틀며 고통스러워하는 영혼들.
“영혼은 정신, 즉 실존의 정수지.”
=······.=
무심한 어투로 그리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빙글빙글, 더욱 잘게 으깨진 육신은 피와 섞여 완전한 액체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검은 회오리의 결 속에서 육과 영이 소용돌이를 만들며 회전한다.
“삶은 육과 영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야.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라 여정이자 방향성이다.”
아시프-1은 창조주가 왜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정신은 무한한 반면 육신은 유한하기에, 이 둘이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삶 또한 유한할 수밖에 없어.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
짐승들은 오해하고 있다. 영혼은 소거할 수 없다. 그저 더 작은 조각으로, 좀 더 무질서한 방향으로 분산될 뿐. 아시프-1의 영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헌데도 그들은 영혼이 관측할 수 없을 만큼 잘게 부서지면 소멸했다고 착각한다.
불멸의 영혼과 필멸의 육신.
태초의 종족은 툭, 잊었던 것을 다시 건드리듯 물었다.
“그렇다면 둘을 완전히 섞어 버리면 어떨까?”
=네?=
“영육이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대신 완전하고도 영구적으로 융합한다면··· 육신이 정신을 닮고, 그것의 영원성을 획득하여 우리의 삶 역시 영원해지지 않을까?”
아시프-1은 자신이 옳게 들은 것이 맞는가 의심했다.
=···육과 영의 완전한 융합이요?=
“난 그걸 시도해 보았지. 죽은 은사를 되살리기 위해.”
목소리에서 뼈저린 감정이 배어 나온다.
“하지만 실패했고.”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균형.”
=······?=
“그녀의 몸은 이미 죽은 뒤였고 생전 흡수한 용혈의 질도 후대와 비교하면 그다지 정순하지 않았으니. 육신은 영혼에게 압도당했어.”
그는 먼 과거를 떠올린다.
민준이 역사상 최초로 시도한 마법은 불완전했다. 스승의 영을 죽은 몸과 결합하기 위해, 술사인 그가 생명력을 시신에 끝없이 쏟아부었음에도 여전히 모자랐다.
그 결과 스승의 영과 육은 결합하며 기괴한 형태로 뒤틀렸다.
“기형적으로 융합한 영육은 물체도 영체도 아닌 것이 되었지.”
=영체도 물체도 아닌 것···!=
영체와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것.
아시프-1는 이미 그런 개념을 알고 있다.
“그래. 다시 말하지만··· 잠든 동족들은 달란트로 가득 채웠음에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
민준은 텅 빈 목소리로 말한다.
“아드키엘이 나의 달란트야.”
아시프-1은 소용돌이치는 토드의 육신과 망령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서로 섞이며, 억지로 융합되고 있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시도였다.
=그럼 지금 당신은!=
“다시 한번 실패할 작정이야. 이번엔 고의로. 실패는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거든.”
경악한 아시프-1이 바라보는 가운데 토드의 영과 육이 으스러지며 검은 먼지로 화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민준의 유도에 따라 검은 불꽃이 타오른다.
새로이 태어난 그림자 괴물이었다.
캬아아!
그림자는 처절하게 발버둥 치며 일렁인다. 민준은 방금 태어난 그 괴물들을 아드키엘의 품에 보내 주었다.
그녀는 토드를 재료로 만든 그림자, 영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을 그들을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흡수하여 가둔다. 먼 옛날 민준이 그녀를 가뒀던 것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지옥.
찰나, 아시프-1은 주변의 어둠이 더욱 짙어진 것을 느꼈다.
—!
그리고 마도구에 깃든 영혼은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들었다.
영혼이 얼어붙을 듯한 선명한 비명을.
캬아아아아!
그것은, 자신을 사랑했던 죄인을 향해 토하는 증오 서린 절규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