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94
195. 막내가 너무 강함 (1)
탕!
타탕!
실내 사격장에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 손에 권총을 든 이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엘프였다. 레이크필드는 책방을 운영할 당시 숲속에 은둔한 마법사처럼 대충 길게 흘러내리게 뒀던 백발을 짧게 친 상태다. 그는 투명한 보호경을 쓰고 방탄조끼를 입은 채 예리한 시선으로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상록수 서점 사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모습이었다.
탕! 탕!
탕탕! 탕!
뛰어난 정령술사인 그는 한때 큰 부상을 입었고 후유증으로 휠체어 신세를 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뛰어난 이능력이 한몫을 했다.
짧게 설명하자면, 업무상의 재해였다.
많은 이민 1세대 엘프들처럼 그도 미국 시민으로 지구 생활을 시작했으며, 능력에 눈독 들인 정부 덕에 노령에도 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은 해체된 전략사무국을 대체할 새 기구 설립에 일조할 인재를 찾던 중이었고, 레이크필드의 능력은 첩보 활동에 최적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의 합류 후 2년 만에 정식으로 간판을 단 그 부서는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으로 명명됐다.
현역 시절에도 레이크필드는 명사수로 이름을 떨쳤다. 그때 감각이 여전한지 엘프 앞에 놓인 사람 모양 표적에는 머리에 다섯 발, 심장 부근에 다섯 발 정교한 탄흔이 남았다. 탄착군은 놀랄 만큼 조밀했다.
‘아직 쓸 만하군.’
몸이 불편해진 뒤 한참 동안 총을 잡지 않았다. 그랬던 자신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이유를, 명확한 설명이 없었음에도 레이크필드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대충 어림잡아··· 그래, 민준이 독일로 출장을 다녀온 그쯤부터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날, 그가 소리쳤던 말을 기억한다.
-이제 걸을 수 있잖아요, 레이크필드!
표적에서 시선을 떼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친구는 전부 알고 있었어. 아마도··· 이것 역시 그가 남겨 준 선물이겠지.’
레이크필드는 이번에는 두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총을 들어 올린다. 팔은 정확하게 직각을 그렸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이상 무의미한 자세로 보였다.
하지만, 무의미하지 않았다.
꺄르! 꺄르륵!
그의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투명한 형체가 모여들며 춤을 춘다.
레이크필드는 정신과 이어진 정령들에게 청했다.
‘부탁해도 되겠니?’
대꾸는 질문과 동시에 돌아왔다.
탕! 타타탕!
눈을 뜨지 않은 채 레이크필드는 사격을 재개했다. 이번에도 정확하게 열 발이었다.
총성이 멎은 뒤에 눈을 뜬다.
‘고맙구나.’
교체된 표적에 남은 탄흔은 단 두 발뿐이었다. 머리에 하나, 가슴에 하나. 하지만 방금 전 정령과 시야를 공유한 그는 총알이 머리와 가슴의 동일 지점을 각각 다섯 번씩 관통한 사실을 알았다.
앞선 탄환이 타격한 자리를 그대로 뚫고 지나갔기에 탄착군이라고 할 게 남지 않은 것이다.
“와아···.”
청력 보호용 헤드셋을 벗자 넋 나간 감탄이 들렸다. 레이크필드는 속으로 아차 했다.
‘이런, 내가 사기를 꺾어 버렸나?’
시선을 돌린 곳엔 레이크필드와 비슷한 차림을 한 고블린이 있었다. 엘프는 동철이 막 사격을 마친 표적을 보았다. 그래도 열 발 중 하나는 맞췄군. 발전했어. 레이크필드는 그를 칭찬했지만, 동철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장님··· 죄송해요··· 저··· 너무 못해요···.”
엘프는 고개를 저었다.
“자책하지 말아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하지만 누님은··· 저랑 똑같이 시작했는데··· 경호원 아저씨들이··· 구경하다가 기립 박수를··· 같이 일 안 해 보겠냐고···.”
“······.”
첩보 현장에 배치될 다종족을 교육해 본 경험이 있는 레이크필드는 이 정도면 고블린치고 천재에 가까운 습득력이라고 대답하려다가 참았다. 종족 차별적 발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엘프는 묵묵히 벽에 달린 모니터를 보았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엘더 드래곤 젠킨슨이 보유한 경호 회사, 고용주 본인보다는 그의 자산을 보호하는 데 기능이 집중된 그 기업의 트레이닝 센터다.
여기에서는 사격 말고도 다양한 전투 기술의 훈련이 가능했다. 지금 엘프가 보는 화면에는 마법사를 위한 훈련장이 비쳤는데, 그 속에서 캐시가 전생에 원한이라도 진 사람처럼 집요하게 더미 인형을 향해 주문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훈련보다는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으로 보인다.
그녀의 옛 고용주가 변변치 못하다고 평한 마법이었지만, 사격 실력에 이어 이능력까지 목격한 이곳 경호원들은 캐시를 몹시 탐내고 있었다. ‘라리사’라는 이름의, 몸에서 달달한 설탕 냄새를 잔뜩 풍기던 요정이 고용 계약서까지 들고 와서 유혹했으나 캐시는 이직 생각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동철은 다른 둘과 자신을 비교하며 침울해졌다. 이 셋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제일 느리다.
돌이켜 보면 그의 삶은 항상 이랬다.
“전 항상 느리고··· 못해요.”
동철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0.2명’ 정도의 사람으로 인식했다. 고블린들끼리 있을 때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문제는 항상 타종족과 섞였을 때 발생했다. 다른 종족 한 명분의 5분의 1도 채 해내지 못하는, 덜떨어진 사람.
그런 동철을 위로하는 대신 레이크필드는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격을 가르치면서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네, 언젠가는··· 제가 저를··· 보호해야 할 날이 올 거라고.”
많은 엘프가 그러한 것처럼, 레이크필드는 기본적으로 울타리 밖 사람을 믿지 않는다. 드래곤이라는 종자는 더더욱.
“젠킨슨 회장이 지금은 우릴 거둬들여 돌봐 주고 있지만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이 엘프는 외계인들이 민준을 ‘아시프-666’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드래곤 역시 그걸 아는지는 불분명하다. 혹시라도 이 비밀 때문에 상황이 안 좋아지면 민준의 사람들을 보살피는 노력 또한 거두어들일지도 모른다.
레이크필드가 생각하는 용이란 이익에 상충되는 일이 생기면 뭐든 버리고, 뒤통수치고, 입을 쓱 닦는 데 거리낌 없는 종족이었다.
오죽하면 용언이라는 언령 마법까지 만들어 냈겠는가? 그만큼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족속들이니 계약을 보완할 도구가 필요했던 거다.
그리 생각하며 레이크필드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마 너보다 오래 살지 못할 거야.”
“사장님···.”
그는 종족을 감안해도 엄청난 고령이다.
레이크필드는 민준이 실종되고 자신마저 죽은 뒤 동철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했다. 정팔과 캐시가 있다고는 해도, 동철 스스로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 수단 역시 필요할 터다.
이능력 때문에 개인 간 무력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이 세계이지만, 그런 아웃라이어들만 염두에 둔 채 모든 노력을 포기해 버릴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레이크필드는 민준을 노리는 위원회의 위협을 염두에 두고 동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큰 위협은 애초에 자연재해에 가깝고, 그들 같은 평범한 이들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세상에는 여전히 이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며, 나중에 동철에게 실질적 위협이 될 이들도 그런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총 한 자루라도 제대로 다루면 그나마 몸을 건사할 확률이 높아질 터다.
그런 엘프의 조언을 들으며, 동철은 불안감 속에서 자문했다. 방금 전 봤던 깨끗하기 짝이 없는 사격 표적이 떠올랐다.
과연 내가··· 온전한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
젠킨슨은 주의 깊은 시선으로 지시했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보게.”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금발의 하프 엘프 청년··· 처럼 보이는 아이가 앉아 있었다. 고룡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제는 에드워드 미첨과 육안으로는 구분 안 될 정도군. 나조차도.’
거미용이 낳은 네 쌍둥이.
이 아이들은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20대 초반의 외모로 성장했다. 유전자를 강탈당한 부친, 얼마 전 한국 6대 재벌 수장으로 등극한 하프 엘프의 완벽한 외적 복제품이 된 것이다.
지금 여기 와 있는 것은 네 형제 중 막내였다. 그리 안배되기라도 한 듯 각자 이능력을 하나씩 각성하던 아이들 중 유일하게 무엇도 얻지 못했던 아이.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블레어가 긴장된 표정으로 다가가서 막내에게 몇 마디 건넸다. 젠킨슨이 고의로 이름을 주지 않았기에 그저 ‘막내’라고 불리던, 청년의 껍질을 뒤집어쓴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니?!’
젠킨슨은 당황했다.
예민한 감각이 변화를 포착한 것이다. 막내를 중심으로 마나가 크게 요동친다. 다만, 마법과는 다른 계통의 힘이었기에 젠킨슨은 이게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젠킨슨은 이번엔 당황을 넘어 경악했다.
파아앗!
“아, 아니. 블레어. 자네 그거···!”
막내가 이능력을 발동하자, 블레어가 끼고 있던 반지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비서가 저 아티팩트를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용은 기억했다. 레어의 보물을 외계로 밀반출하려던 슈탄 공주가 체포된 날이었다. 현장에 갑자기 난입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엔델리온이, ‘범인으로 오해하고 거칠게 굴어서 미안하다’라며 선물한 물건.
그들 종족 특유의 보호구로 추정되는데, 블레어가 멋도 모르고 책 몇 권 분량의 외계어 이용 약관에 동의해 버린 탓에 손가락에 딱 달라붙어 무슨 수를 써도 분리할 수가 없었다. 정 궁리해 보자면 손가락을 반지째 잘라낸 다음 성직자를 불러 재생시키는 방도가 있었지만, 그런 위협을 가했다간 반지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기에 방치했다.
파파팟!
반지에서 폭력적인 섬광이 뿜어 나오던 그때, 모두에게 날카로운 정신파가 꽂혔다.
=경고! 경고! ‘에반쥴’급 위험 개체 포착. 피보호자는 해당 개체로부터 신속하게 멀어질 것을 강력 권고!=
미리 심어 둔 메시지가 분명한 의념.
그 내용 때문에 젠킨슨의 두 눈이 커졌다.
‘에반쥴급?!’
그것은 고대 종족이 일의 경중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다. 에반쥴이면, 위원회로 치면 대위원이 직접 의사 결정을 할 정도로 중요하고 예민한 등급.
젠킨슨의 고개가 돌아간다. 거미 괴물의 막내는 이 장면을 본 적 있는 듯 놀라지는 않았지만 몹시 불안한 표정이었다.
블레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좀 더 가까이 가 보겠습니다.”
아티팩트의 경고를 무시한 채 엘프 비서가 또 한 걸음, 막내를 향해 디뎠다.
그 순간.
팟!
“뭐, 뭐야!”
고룡은 눈을 의심했다.
비서가 서 있던 자리는 휑하게 비어 있었다. 블레어가 사라졌다!
“미치겠군.”
젠킨슨은 그 찰나의 순간 주변에 퍼져 나간 마나의 파동을 분석했다.
“텔레포트?!”
띠리리리!
그때 누군가 그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젠킨슨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자는 방금 사라진 블레어였다.
그런데··· 번호가 좀 이상하다.
‘국제전화?!’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블레어. 자네 지금 대체 어딘가?”
수화기 너머, 파리하게 질린 목소리.
이어진 말을 들은 고룡은 땀을 흘렸다.
“뉴욕?!”
어처구니가 없는 소식이었다.
“그 아티팩트가··· 자네를 뉴욕까지··· 지구 반대편으로 강제로 텔레포트 시켰다고?!”
-네, 경고를 무시할 때 이 아티팩트가 반응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보호구로 설계된 아티팩트는 착용자를 어떻게 보호하는가?
위험 개체와 조우했을 때 방어막을 만들거나, 반대로 위험 요소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엔델리온의 사고방식에 따라 제작된 그 반지는 1차적 대응으로 일단 사용자를 위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도 위험 요소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 다른 수단을 강구할 테지만, 일단 첫 단계는 그랬다.
‘그래··· 이 행성에서 제일 안전한 곳을 파악한 건가. 뉴욕이면 멀기도 멀지만··· 원래 위원회의 대표소가 있던 곳이지.’
그는 중얼거린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굳이 뉴욕까지···.”
과해.
아무튼, 과하다.
그리 속으로 되뇌며 고룡은 비서에게 지시했다. 곧 데리러 갈 테니 수고스럽게 비행기 탈 생각 하지 말고 거기 있으라고. 전화를 끊은 뒤에는 막내를 지긋이 바라본다. 아이는 살짝 기가 죽은 낌새였다.
고룡이 묻는다.
‘방금··· 어떻게 한 거냐?”
막내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사건의 발단은 열등감과 소외감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제각기 하나씩 이능을 각성하는 가운데 자신만 변화가 없기에 초조해졌다.
처음엔 성장기가 끝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자위했지만, 이제 그들 몸과 생김새는 완전한 하프 엘프 성인이었다. 성장이 끝난 걸 깨닫는 건 쉬웠다. TV에 나오는 ‘에드워드 미첨’과 완벽하게 동일한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프 엘프의 발달 과정이 그러한 것처럼 그 상태로 오래 고정되었다.
‘난 이대로 아무 능력 없이 멈춰 버리는 건가?’
드래곤의 피를 이었으니 마법을 가르치면 습득할 가능성이 높지만, 1년의 짧은 기대 수명 때문에 젠킨슨은 따로 마법 교사를 붙이지 않았다. 마법은 수식화, 규격화, 공식화된 이능력이며 1년이면 기초를 훑기에도 모자란 시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각성한 이능력이 전무한 막내는 결국 자기 자신을 ‘무능력자’로 인식한다. 그 결과 좌절과 모멸감 속에, 평소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대상에도 눈길을 주게 된 것 같다.
‘기도?’
형제들이 이능력을 훈련하러 간 사이 혼자 남아 TV를 보던 참이었다. 목적 없이 채널을 계속 돌리다 보니 200번대의 전문 방송 채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처음엔 집중해서 볼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채널을 끝까지 돌려 다시 1번부터 시작할 작정이었다. 평소처럼.
‘여러분, 기도의 힘을 믿으십시오!’
방송에 나온 연사는 사람의 기도와 위대한 존재의 기적 사이 상응 관계에 대해 강론하고 있었다.
막내는 귀가 솔깃해지는 걸 느꼈다.
‘정말로?’
강사는 ‘그’가 사람의 주인이며 사람은 ‘그’를 복종하는 자세로 섬겨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막내 입장에서는 강사가 묘사하는 ‘그’를 머릿속에 그리기 어려웠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상상력을 동원했다. 막내가 내면에 색칠한 회화(繪畵)는 순수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과연 그런 존재가 있을까?
내가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주인이?
지시에 따르는 일에는 익숙했다. 젠킨슨의 지시에, 블레어의 지시에,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의 지시에 네 형제들은 지금껏 따라왔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존재였고 그럴 이유가 있어서 따르는 지시였다.
무조건적인 복종과 숭배를 마땅히 얻어야 할 존재란?
어떤 드래곤도 상상할 시도를 해 본 적 없는 대상을 그리며, 막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한다.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내게 특별한 능력을 주세요.
그러자, 놀랍게도 막내는 상상할 수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 안에 그런 것이 있었던 것처럼, 혹은 핏속에 그런 지식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처럼, 막내는 복종하여 마땅한 주인의 개념을 이해했다.
“맙소사···.”
고백을 듣던 젠킨슨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경악했다.
저것은 평범한 고백을 넘어선, 일종의 간증이었다.
“지금 네 말은···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젠킨슨은 단호하게 손가락을 들어 왼쪽 손등 위에 내리그었다. 그러자 인간을 흉내 낸 살가죽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폴리모프를 한 상태라는 해도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 자체가 드래곤답지 않은 짓이었지만 젠킨슨은 거리낌이 없었다.
피 흘리는 손을 아이에게 내밀면서 젠킨슨은 한 가지를 요구했다.
그러자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젠킨슨은 상처가 깨끗하게 사라진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동요가 가득한 그 눈빛을 다시금 아이에게 던진다.
지금 이 고룡 앞에는, 드래곤의 피가 섞인 차원계 최초의 신성력 발현자가 있었다.
***
민준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뭐야, 지금 누가 나 불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