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99
200. 막내가 너무 강함 (6)
***
“축하해요!”
“와, 박 의원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승승장구하시겠군요!”
“아이고, 의원님! 감축드립니다. 괜찮으시면 여기서 저랑 사진 한 장만···.”
서울 시내의 한 호텔 행사장.
연신 쏟아지는 사람들의 인사 속에서, 박정팔은 정신없이 인사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한 부분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자신이 ‘정말 국회의원이 된 게 맞는지 실감이 안 난다’는 식으로 묘사될 비현실감은 아니었다. 그런 나약한 태도를 품는 것마저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V 개표 방송에서 당선 확정을 외친 그 순간, 정팔이 느낀 것은 확고한 기쁨과 사명감이었다.
새로운 미래를 제대로, 충실하게 직면할 준비는 당선 전부터 되어 있었다. 이제부터는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나갈 뿐이다.
강철 같은 마음을 품은 채
헌데, 그런 각오와는 상관없이 경험이 부족한 초선 의원으로서 느끼는 당혹은 존재했다.
‘당내 의원들이 전부 모이는 자리도 아니고, 오크 의원들이 주최한 축하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니.’
최판석 의원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그 뒤로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다. 평소에 안면을 충분히 익혀 놓은 사람부터, TV나 사진으로만 봤던 사람, 혹은 생면부지의 사람까지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하는 통에 기억력은 포화 상태에 가까워졌다.
“어?”
가벼운 흥분 상태에서 사람들을 끊임없이 응대하던 그의 얼굴에, 비로소 진심 어린 미소가 서린다.
“아저씨!”
오크는 큼직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서린이 왔냐?”
“당연히 와야죠. 축하드려요!”
캐시는 큼직한 꽃다발을 내밀었고 정팔은 활짝 웃으며 받았다. 곁에서 대기하던 정팔의 비서가 조용한 손짓으로 재차 건네어 받는다. 그 모습을 이채 섞인 시선으로 보던 캐시 뒤에 동철이 다가왔다.
“경위님··· 아! 아니지··· 의원님···. 축하··· 드려요···.”
오기 전에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실수를 했다. 정팔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껄껄 웃으며 악수했다. 다음은 레이크필드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저번에 통화할 때도 바쁜 것 같아서 길게 이야기도 못 했지. 이젠 정말 박 의원이라고 불러야 겠군.”
“어휴,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평소처럼 편하게 불러 주세요. 그런데··· 헤어 스타일이 많이 바뀌셨습니다?”
치렁치렁 대충 길게 늘어뜨렸던 백발이 군인처럼 짧게 변한 것을 지적하자, 레이크필드는 겸연쩍은 티도 없이 담담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이게 편할 것 같아서.”
정팔은 비서에게 눈짓을 한다. 그가 물러서자 캐시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야기가 나가지 않을 것을 확신한 뒤에 정팔은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서 곁눈질로 일행들 주변 경호원들을 보았다. 정팔에게 붙은 인원처럼 젠킨슨이 안배해 준 사람들이었다.
“초청장 보내 드릴 때까지만 해도 확신이 안 섰습니다. 회장님이 이제는 괜찮다고 합니까?”
그가 말하는 회장은 물론, 고룡 젠킨슨이었다.
선거를 앞둔 정팔은 숙고 끝에 정중히 사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드래곤의 권고에 따라 안전 가옥에 한참 머무르고 외출을 삼갔다.
“민준, 그 친구를 쫓던 세력이 지구에서 철수한 모양이야. 그리고 애초에··· 그 고룡이 우리를 ‘사유 재산’으로 선언한 순간부터 위원회에서 대놓고 해코지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네. 만약을 대비한 조치였던 거지.”
이민을 직접 겪어 본 그는 정팔 같은 세대보다는 위원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고룡의 선언마저 무시하고 손을 쓸 경우는··· 애초에 안전 가옥 같은 것도 의미가 없어지는 거고.”
정팔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묻는다.
“은성이는요?”
민준이 실종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서 모습을 감춘 유령.
그가 깃든 몸이 드래곤이기에, 젠킨슨은 용족의 마법으로 그 행방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며, 레이크필드는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한때 하은성의 도주를 의심했던 캐시는, 그것이 오판이었던 것 같다며 말을 얹었다.
“민준 씨가 데리고 간 것 같아요.”
그들은 아직 위원회가 하은성에게도 거액의 현상금을 건 것을 몰랐다. 그렇기에 아직 추측만 하는 중이다.
한편, 그렇게 말하는 캐시의 표정 역시 편치 않았다. 그녀가 몇 마디를 더 하려는 순간.
“음?”
정팔의 비서가 거리를 둔 채 손짓을 해 보였다. 축하연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릴 연설 시간이 온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있다가 하자.”
일행을 뒤로한 채 정팔은 연단에 올랐다. 참석자들은 홀을 가득 채운 둥근 테이블에 나눠 앉는다. 숙련된 서버들이 그들 앞에 샴페인 잔을 놓았다.
정팔은 감회가 새로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최판석을 필두로 하여, 정팔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오크 의원들의 이름을 나열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당의 중진들과 후원자들 이름까지 읊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표를 던져 준 지역구 유권자들에게도 감사를 올린 후에 본격적인 연설이 시작되었다.
“과분한 환영에 감동받았습니다. 축하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만, 저는 오늘 밤을 감사한 분들께 인사 올리는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잠깐의 숨 돌리기.
그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현직 의원들을 비롯하여, 대다수는 오크다.
이어지는 정팔의 목소리가 묵직해졌다.
“저는 이민자 3세대 오크입니다. 이런 제게 표를 던져 주신 분들이 어떤 일꾼을 기대하셨는지 짐작합니다. 종족 갈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이며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입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가 지향하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몇몇 주장처럼 상황이 오히려 퇴행하며 역행하고 있는가? 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겪어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오크가 처음 지구 땅을 밟은 시기만 해도 지금과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말합니다. 1965년, 공장에서 무보수 연장 근무를 끝내고 밤 늦게 어두컴컴한 골목을 걸으며 귀가 중이던 오크 가장이 인간 청년들에게 맞아 죽었을 때,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했습니다. 늦은 시간 어두운 곳에서 등 뒤로 접근하는 오크가 그 자체로 위협적인 존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모든 오크는 잠재적인 범죄자였습니다.”
“또한 40년 전까지, 한국에서 임차인 종족에 따라 월세와 보증금을 차등하여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임대인들은 화재 보험을 핑계로 댔습니다. 동네에 오크 비중이 높아지면 보험료가 상승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오크들이 모이면 물건을 부수고, 불을 지르고, 서로 칼부림을 한다고요.”
“명백한 통계 없이, 언론에서는 다른 종족보다 오크의 범죄를 훨씬 자극적으로 묘사했고, 우리는 동일한 예산을 가지고도 덜 선호되는 지역으로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우리가 사는 동네 자체가 비선호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곳은 오크 커뮤니티라고 불리며, 이 단어는 사실상 빈민가와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취업한 시절만 하더라도, 사기업에서 종족에 따라 초임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제가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짧은 생각이었지만,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서 연설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테니까요.”
잠시 말을 끊고, 정팔은 다시 한번 청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품은 생각을 차곡차곡, 단어에 담아 전달한다.
“60년 전에 법원이 편을 들어준 폭력 행위는, 오늘날에는 천인공노할 범죄로 간주됩니다. 40년 전에는 항변할 방법이 없었던 비난은, 오늘날 통계와 토론을 통해 반박됩니다. 20년 전 당연하게 자행되었던 관행은, 이제는 부도덕한 행위로 비난받습니다.”
“한때 윤리의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도 지금은 선악의 잣대로 판단됩니다. 종족 차별은 몇십 년 전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상적 진보의 혜택을 받아왔습니다. 끊임없이 투쟁하고 고민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사회는 아직 평등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유권자들이 기대하시는 소명에 따라,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워 나가고자 합니다.”
정팔은 몇몇 오크 원로들의 눈빛이 회상에 젖어 드는 것을 보았다.
이 순간, 그는 갈등한다. 이대로 저들이 원하는 말만 들려줄 수도 있었다. 그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본래 생각했던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런 제 고민의 대상을, 종국적으로는 종족이라는 배타적 영역을 넘어 이 사회를 구성한 모든 이에게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 순간.
공기가 살짝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과거에 옳았던 것이 지금은 옳지 않듯이,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일들조차 미래에는 끔찍한 도덕적 재앙으로 여겨질지 모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또한 다른 종족에게, 다른 집단에, 타인에게 크게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고민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고민을 법에 담는 일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오크가 겪는 불이익 또한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상했지만 청중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오크의 권리에 대한 부분까지였을 것이다. 정팔이 마지막에 한 말은 지나치게 모호하고 회색의 영역에 걸쳐 있는 것처럼 들렸다.
정팔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펑! 펑펑!
예민한 엘프의 귀가 움찔거렸다.
레이크필드는 캐시에게 넌지시 묻는다. 속삭이며.
“혹시, 오늘 불꽃놀이 같은 것도 계획되어 있었나?”
“아니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그러자 레이크필드는 잠시 눈을 감는다. 소환자 외에는 인지할 수 없는 형태의 정령이 주변을 염탐하고는 본 것을 속삭였다.
“······!”
레이크필드의 얼굴이 굳는다. 그때, 행사장 곳곳에 배치된 경호원들이 급박히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장내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고.
펑! 펑!
이번에는 엘프 외의 사람들도 똑똑히 들을 정도로 또렷한 충격음이었다.
레이크필드는 젠킨슨 덕분에 반입이 가능했던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침착한 손길로 꺼낸 것은 두 자루의 권총이었다. 캐시는 자기 것을 미리 챙긴 것을 알기에, 엘프는 조용히 하나를 동철에게 넘긴다. 고블린은 화들짝 놀랐다.
“···사장님?”
레이크필드는 고요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일단 가지고 있어라. 우리가 곁에 있으니 괜찮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그리고 한층 더 어두운 시선으로, 벽 너머를 쏘아보았다.
비명 소리와 폭발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
민준을 둘러싼 핏빛의 안개가 넘실거린다.
몸 전체를 활용한 게걸스러운 탐식은 긴 시간 계속되었다. 민준의 손에 들린 마도구는 경악스러운 마음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까지 보였던 ‘식사 방법’과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림잡아 계산해도, 민준의 체중 이상의 용혈을 흡수했다는 판단을 내린 순간, ‘아시프-1’은 주저하면서 질문했다.
=원래는···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드시지 않았잖습니까?=
탐식에 심취한 민준은, 약간 고조된 정신파로 답했다.
‘방법을 잊었던 거지. 원시적으로 용의 비늘에 이빨을 박고 정신없이 들이켰던 거야. 미개하기 짝이 없고. 한 번에 흡수하는 생명력도 보잘것없고.’
=지금은 얼핏 봐도 체중의 몇 배나 빨아들인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그대로시구요. 아공간에 흡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모든 건 효율의 문제야. 기억해 낸 이상 굳이 야금야금 먹을 이유는 없지. 잠들기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의 몸은 생명력 저장에 있어서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도록 개조되었어. 완벽한 영생, 영구히 지속되는 행복을 위한 시행착오 중 하나였지.’
아시프-1은 민준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비록 잠을 자는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용혈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버텼던 그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력을 미리 비축해 둔 것일까?
같은 맥락에서 고려하면, 민준이 수형자로 깨고 나서 8백 년 동안 용혈 한 방울 못 먹고 살아남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잡히기 전에 미리 먹어 놓은 것으로 버틴 것이겠지? 대신 큰 힘은 쓰지 못했을 터고.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의혹이 남은 듯, 후라이팬이 질문했다.
=여기서 용 사냥을 하는 건, 스스로의 회복뿐만 아니라 엔델리온의 공주 역시 회복시키기 위해서잖습니까?=
‘기억하고 있었군.’
=그런데 촉수가 용혈을 마셨다가는 죽어 버릴 텐데요.=
‘그대로 먹이는 대신, 용혈의 생명력을 여과해서 델에게 주입할 거야. 제물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흑마법의 원리를 역으로 적용하면 돼.’
흡수하여 흑마력으로 치환하는 대신, 다른 대상에게 전이한다.
그 개념을 들은 아시프-1은 의아해했다.
=어? 그런 게 가능하다면 카바이트도 용혈을 먹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대로 섭취하는 대신 정수만 뽑아내서요.=
‘헌데 놈들은 이것과 다른 완전히 잘못된 방법을 골랐지. 지금도 계속 삽질을 하는 중이고.’
아시프-1은 기억을 더듬는다.
카바이트가 생각하는 ‘완벽한 영생’의 당면 과제는 두 가지.
일단 한 가지, 용혈 확보는 드래곤 재가축화 계획으로 준비 중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 용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카바이트의 체질 개선은 어떻게 해결하려는 생각일까?
‘용혈의 거부 반응을 극복하기 위해, 놈들은 처음엔 내 유전자를 분석하려 했어. 용혈을 마셔도 멀쩡한 태초의 종족을 말이야. 하지만 카바이트 기술로는 해석이 불가능했기에, 놈들은 ’덜 고등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어. 우리를 제외한 다른 종족 중 오직 인간만이 용혈을 견디는 사실에 주목했지.’
=아, 그렇지요. 인간.=
아시프-1은 레이먼드 웡의 저택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비처럼 쏟아지던 용의 피.
각 종족들이 크고 작은 거부 반응을 보이던 중, 유일하게 아무런 이상이 없이 버티던 이들.
=인간은 멀쩡했지요.=
‘카바이트 입장에서는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 카바이트가 인간을 닮게 변하거나, 카바이트가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거나.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 전자였어. 그래서 놈들은 인간의 유전자를 깊게 연구했지.’
=합리적이군요.=
‘그들이 사는 사회에 다양한 종족을 유입해서 대규모 혼종 발생을 유발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샘플을 확보했어. 그럼으로써 인간을 구성하는 것 중에 어떤 부분이 용혈을 포용하는 열쇠가 되는지 찾았어. 그 연구는 다소의 성공을 거뒀지.’
=다소의 성공이요?=
‘용혈의 수용체 기능을 하는 유전자를 발견한 거야. 메커니즘을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기능을 한다는 건 알았지. 그래서 카바이트는 고대 종족 중 유일하게, 자신들의 육신을 개조하기 시작했어. 외형이나 다른 기능의 변화는 전혀 없으면서 용혈 거부 반응만 억누르는 게 목표였지. 인간의 유전자 중에 그 부분만 흉내 내 이식한 거야. 100%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로. 그랬더니 실제로도 아주 조금이지만, 정말 미세하게 거부 반응이 줄긴 했어. 그래서 더욱 포기할 수 없었지.’
=그렇군요. 미세한 성과라도 봤으니 더 집착했겠군요.=
그때, 아시프-1은 문뜩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아, 잠시만요. 그들이 그렇게 집착하는 건, 결국!=
‘그래. 태초의 종족이 직접 증언했으니까. 용혈이 ‘완벽한 영생’의 열쇠라고. 용혈을 거부하는 신체적 한계만 극복하면, 그들 역시 막대한 생명력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순간, 아시프-1은 후라이팬의 몸에 깃든 이후 두 번째로··· 그의 창조주가 웃는 얼굴을 보았다.
민준은 즐거이 말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믿도록 유도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