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
2. 번아웃 증후군 (2)
민준은 은행 안에서 경찰에게 소리지르고 있는 남자의 간단한 신상명세 정도는 전달받았다.
노경구, 21세, 무직. 작년에 특성을 개화하여 이능력자로 등록되었고, 그걸 무기로 사설보안업체에 취업하려 이력서를 돌려 보았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항은 그의 능력이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 민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체크 포인트였다.
그 이상은 알 필요도 없었다.
스윽!
자동문이 열리자 인질을 붙잡은 남자가 보였다. 복면 같은 것으로 가리지도 않아 여드름투성이 앳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금고에서 얼마 안 되는 현금을 챙긴 그는 시동을 건 차 한 대를 건물 앞에 갖다 놓으라고 경찰에게 윽박지르며 버티던 중이었다.
“야이 개새끼야! 누가 들어오랬어!”
흥분한 강도의 고성과 함께.
휘익!
엎어져 있던 수십 킬로그램 무게의 여인초 화분이 공중에 떠서 민준에게 날아들었다.
‘염동력 특성 보유자.’
민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턱!
침착하게 한 손을 들어 화분을 막고는 그대로 힘을 주어 방향을 틀어버린다.
쾅!
민준의 머리를 으깨려던 강도의 의도는 실패했다. 그의 손에서 튕기듯 다시 날아간 화분은 빈 책상과 충돌하여 산산조각났다. 깨진 도기 조각과 흙더미가 먼지 속에서 흩뿌려졌다.
“?!”
강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너!”
하지만 꿀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큰소리를 내며 협박했다.
“이미 경고했을 텐데! 이 할망구 마빡 깨지는 꼴 보기 싫으면 얼른 꺼져!”
놈의 손에는 총 한 자루 들려 있지 않았다. 왼쪽 팔뚝으로 왜소한 노파의 목을 감고 조르듯 힘주고 있었고, 오른손은 살짝 벌린 채 그녀의 관자놀이를 겨냥했다. 허튼 수작 부리면 염동력으로 두개골을 부숴버리겠다는 협박.
방금 전 화분 던지던 수준을 보아하니 역시나 변변찮은 능력이었지만 사람 하나 골로 보내기에는 충분하다는 걸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곳에서 노경구가 저 노파의 머리를 깨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끄읍! 끄으읍!”
팔뚝에 목이 눌린 노파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끅끅거렸다. 그녀와 노경구를 제외한 사람들은 전부 쓰러져서 실신 상태였다.
“씨발, 내 말 안 들려?!”
민준은 둘을 향해 차분히 눈길을 한 번씩 던지고는 입을 열었다.
“인질은 놓아주지?”
“지랄하지 마!”
발작하듯 외친다.
노경구는 민준이 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챘다. 기이한 안개를 보고 사달난 것을 직감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살 방법은 인질을 잡고 늘어지는 것 외엔 없었다. 정체 모를 안개 속에 발을 딛는 것 보다 이쪽이 현명한 선택으로 여겨진 것이다.
마법사가 그 혓바닥으로 주문을 외는 대신 자신을 달래고 있는 지금 상황은 노경구의 확신이 더욱 굳어지게 했다.
“일을 수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약속하지. 이대로 항복하면 죽이지 않겠다. 하지만, 인질에게 이 이상 손을 대는 순간 그때부터는···.”
“그러니까, 이 할망구 살리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
“······그때부터는 나도 어쩔 수 없다. 살아서는 고향 땅을 못 밟게 될 거야.”
“헛수작부리지 마!”
민준은 노경구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자기 할 말만 이어 나갔다.
사실은, 제대로 귀기울여 듣고 있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인질은 놔줘.”
“씨발 이 새끼가 진짜···!”
노경구는 마법사에 대한 경계심과 공포도 잊은 채 다시 한번 염동력으로 물건을 집어 던지려고 했다.
그러자 민준은 시선을 전면으로 유지한 채 소맷자락 아래에서 단검을 꺼내 쥐었다.
그 순간 얕은 한숨과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민국의 개였나?”
은행 안을 무겁게 감도는 침묵.
갑작스러운 정적을 유도한 한 마디는 노경구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노파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한 그는 당황하며 그녀를 보았다.
“?!”
새파랗게 질렸던 얼굴은 어느새 평온한 낯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노경구는 그제서야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긴장과 흥분 속에서 얼마나 세게 조르고 있었는지 팔이 저릴 정도였다. 노파가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기도가 짓눌리고 경정맥이 막힐 정도로 힘을 가하는 중인데도 노파의 목소리는 멀쩡하다. 노경구는 그 광경에서 지독한 비현실감을 느꼈다.
“믿기지 않는군. 어떻게 날 한 번에 알아봤지?”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인질을 놓아줘.”
노경구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쏘아내던 민준의 시선이 묘하게 빗겨갔던 이유를. 처음 들어올 때 흘깃 그를 본 후로 민준은 두 번 다시 노경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신에 지금까지 계속, 인질로 잡혀 있던 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크큭!”
노파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급박한 태세 전환.
노경구는 멍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어, 잠깐만. 그러고 보니···.’
지독한 현기증과 멀미가 골 속을 뒤흔들었다.
내가 애초에 은행을 왜 왔었지? 그래, 취업지원급여를 타러 왔었지. 그런데 이 할머니가 내 옷에 뭐가 묻었다고 다가왔고··· 몸이 따끔했다.
직후에는 갑자기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6만 5천원 가지고 이번 달을 어떻게 살라는 거지? 자경단이라도 가입해야 하나? 아니, 내 인생이 그 정도로 막장은···.
그리고 생각의 단절.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청원경찰의 총기를 으스러뜨리고 그를 제압한 뒤, 은행 직원들에게 금고를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이미 팔뚝은 노파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어?”
처음으로 손에 힘을 푼 그의 눈이 커졌다.
목을 조르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팔뚝 안쪽 연한 살. 그 피부를 뚫고 파고든 몇 가닥의 촉수가 보였다. 길쭉한 살덩어리는 노파의 목에서 뻗어 나와 통통한 거머리처럼 꿈틀대며 노경구 몸 속에서 뭔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뭐··· 이게 뭐!”
그제서야 잊고 있었던 지독한 통증이 뼈를 타고 달렸다.
“으, 으아··· 으아아아악!”
노파를 뿌리치고 엉덩방아를 찍었지만 촉수 가닥은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났다. 그는 당장 뜯어내려고 잡아당겼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파가 한숨을 쉬었다.
“예쁘게 잘 세뇌해 놓았더니, 다 깨버렸군. 어쩐지, 자꾸 쓸데없는 말을 궁시렁댄다 싶더니.”
민준이 이곳에 들어선 뒤 말한 몇 마디의 문장이 평범한 설득이 아니라 힘을 내포한 주문이었음을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 덕분에 노경구가 제정신을 차린 것이다.
쉬이이이익!
노파의 목에서 수십여 가닥의 촉수가 새로 뻗어 나왔다. 그것은 노경구의 몸 곳곳에 구멍을 내며 파고든다.
“끄으으으읍···! 살려··· 줘!”
순식간에 인질과 인질범이 뒤바뀌었다.
아니, 이것이 애초부터 민준이 인식하고 있던 상황이다.
인간으로 위장한 상대의 본명은 에트렐라 데피니. 위원회가 현상금을 건 저 오덴스 출신 수배자는 차원을 몇 개나 거쳐 도피를 거듭하다 이 변방까지 숨어들었다.
‘죄목은 3건의 살인교사 및 12건의 살인, 49건의 절도, 불온서적 소지 및 원시차원 무단 체류. 지구에 온 다음 벌인 짓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
위원회의 협조 요청을 입수한 한국 이민국에서도 정식으로 수사를 시작한 상황.
“끄으으읍!”
에트렐라는 낭패라는 생각에 얼굴을 굳혔다.
‘저 놈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 너무 빨리 풀렸다!’
모기가 살갗을 찌를 때 투입하는 마취 성분처럼, 마인드 컨트롤은 상대가 에너지를 흡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작용을 했다. 그것이 무용지물이 된 지금 상황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좀 앞당기기로 했다.
“크으으!”
몸 곳곳에 꽂힌 촉수를 통해 자신의 영력을 거의 다 흡수당한 노경구는 눈깔을 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민준이 기다려 왔던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윽!
그는 즉시,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자신의 왼쪽 손바닥 위에 그었다.
촤악!
번들거리는 검은 돌칼은 놀라운 예기를 품고 있었다. 주먹을 쥐며 피를 쥐어짜자 공기가 불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익!”
에트렐라는 노경구에게서 흡수한 영력으로 저항을 시도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한에서 능력을 쓰던 그와 달리, 이종족은 거리낌 없이 그의 바닥까지 긁어서 힘을 뿌렸다.
몰아치는 염력 폭풍!
휘이이이잉!
하지만 그 와중에도 민준의 주변은 평온했다. 모든 물리적, 영적 에너지가 주변으로 다가올수록 속도를 잃고 느려지다가 결국은 멈춰버렸다. 머리카락 한 올 휘날리지 않는 정적인 공간 속에서 민준은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린 이종족이 몸을 굳혔다.
“!”
화르르르르!
검은 그림자가 들끓으며 민준의 몸을 감싸더니 허공에서 엉키고 부풀며 거대한 형체를 만들었다.
“······!”
민준을 덮은 그것은 상반신만 소환된 검은 괴물이었다. 찢어진 눈은 적의로 번뜩이고, 입에서는 뜨거운 피안개가 쏟아져 나왔다. 피부를 덮은 칠흑 그림자는 괴이한 모양을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고 흐트러지기를 반복했다.
스으으!
민준의 머리 위에서, 트롤보다 굵은 검은 팔뚝이 대칭으로 뻗어 나간다. 그 끝에 달린 날카로운 손톱.
“자, 잠깐···! 너 미친 거 아니야?!”
흑마법의 동력은 제물에게 고통을 주고 그 생명력을 흡수하여 응집한 날것의 힘.
따라서 대부분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예외는 있었다. 공익적, 자기방어적 사유로 술사가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의 수명과 생명력을 깎아 마법을 발하는 경우다.
일렁이는 그림자 너머에 축 늘어진 민준의 왼손은, 몇 천년 전에 죽은 미이라처럼 변해 있었다.
에트렐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조무래기 범죄자 하나 잡자고 자기 수명 수십 년을 날려버리는 인간이라니!
콰아아아!
민준은 단 한걸음을 내딛었을 뿐이지만.
그의 머리 위에 서린 그림자는 검은 섬광이 되어 전면에 쇄도했다.
촤악!
에트렐라 목에서 뻗은 수십여 가닥 촉수가 단번에 잘려 나가는 데 1초.
“꺄아아악!”
그림자 괴물이 에트렐라의 양 팔을 뽑아 던지는 사이 또 1초가 흘렀고.
콰지직!
괴물이 입을 크게 벌려 그녀의 허리를 한 입에 물어 뜯는 데에 걸린 시간 1초까지, 도합 3초면 충분했다.
“허억··· 허억···!”
크르르르르!
양 팔과 허리 아래가 소실된 에트렐라는 본래의 외계인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온 몸이 경련하듯 떨며 오그라들었다. 그녀는 목 아래까지 올라온 죽음의 향기를 느꼈다.
“자, 자··· 잠깐만!”
경고를 무시했기에, 상대는 이곳에서 자신을 즉결 처형할 수 있다.
이민국과 계약한 요원들은 그럴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만만하게 봤다가 한 번 물려보니까, 꽤 쓰리지?”
예민준의 지구인으로서 공식 신분은 대한민국 정부 이민국과 전속 계약을 맺은 독립요원이다.
주된 임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구시민권을 획득하지 않은 지성체 관련 범죄 수사 및 진압. 즉, 눈앞의 에트렐라처럼 다른 세계에서 숨어들어온 범죄자를 때려잡는 것도 그의 일에 속한다.
크르르르르르!
몸에서 뻗어 나간 그림자는 절반만 남은 외계인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민준은 차분하게 걸음을 옮기며 그림자와 자신 사이 거리를 좁힌다.
그 사이 에트렐라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살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뇌 속에서 폭주하는 호르몬은 평소 같으면 떠올리지 못할 묵힌 기억을 끄집어냈다.
“잠깐! 날 살려주면 보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