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13
214.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11)
***
드래곤의 비늘 덮인 뺨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하은성은 명확하게 분간할 수 없었다. 이 눈물이 배 속의 모든 걸 게워 낸 여파인지, 아니면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이 행성의 오염된 대기에 자극받았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방금 본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자신이 울고 있는 것인지.
더군다나.
찌릿!
목덜미의 통증이 다시 쿡, 쿡, 신경을 찔러 대기 시작했다. 모른 척하기도 계속 무시하기도 힘든 통증이었다. 그는 민준이 손에 든 걸 보았다.
저 칼이 트라우마를 건드린 건가?
채권자는 엘라후-프라가의 성물 형태로 후라이팬을 변신시켰다. 함께 여행한 윰투스도 저걸 가지고 다녔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꺼내지는 않았다. 따라서 하은성은 참으로 오랜만에 저 물건을 보는 것이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살인범의 흉기. 그것과 완벽하게 같은 모양의 단검이다.
‘보지 말자. 저건··· 보지 말자.’
애써 시선을 돌린다. 이곳 언어로 ‘부활의 성당’이라고 불리는 건물이 가까워질수록 목덜미의 아픔이 강해졌다.
거기에 다가갈수록 어떤 변화를 느끼는 것은 민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영이 품은 달란트가 저 성당과 공명하며 꿈틀대고 있었다.
감각에 집중하던 그의 귓가에 전처의 목소리가 스쳤다.
“왜 세뇌시키지 않은 거야?”
민준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델이 한 번 더 물었다.
“애초에 교단 전부를 세뇌시켰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 텐데.”
후라이팬과 같은 질문이었다.
곁에서 듣던 하은성은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방금 전 사제가 넝마가 되어 죽은 뒤 그 몸에서 절규하는 망령이 분리되어 나왔다. 즉시 성불하지 못하고 미친 귀신이 되기에 충분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민준은 그 망령을 잡아챈 뒤 성당 쪽으로 보냈다.
그곳에는 이미 소식을 들은 펠릭스파 사제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망령은 그들에게 다가올 재앙을 알리는 기수(旗手)였다. 임박한 벌을 암시하는 전조였다.
그리 설명하리라는 하은성의 예상과 달리, 민준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아.”
이제 총대주교들만 세뇌한다고 될 단계를 넘어섰다.
다수결로는 자신들이 패배할 것을 직감한 펠릭스는 이틀 사이 교인들을 선동하여 오늘 일을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민준을 의심하는 자들, 그러니까 교단의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사제들을 모조리 세뇌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할뿐더러 지나친 에너지 낭비다. 민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걸 기다리는 거지?”
그들의 목적지, 부활의 성당에.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델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 품은 의문은 얼마 전 악어들 차원에서 사제와 대화할 때 떠올린 것과 비슷했다.
애초에 왜, 저들에게 죄지을 기회를 주는가?
민준이 델에게 답했다. 옆에서 들은 하은성은 그의 음성에서 지독한 피로와 고독을 느꼈다.
“너희도 알겠지만 우린 오래전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어. 사람들이 서로에게 죄를 짓지 않는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것이었지. 우린 사람이 사람에게 미움을 표현하지 못하게 강제하기로 했어.”
하은성은 예전에 민준이 해 준 설명을 떠올렸다.
먼 옛날에 살았다는 사람들 이야기.
더 이상 늙어 죽지 않게 된 덕분에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게 된 지옥도가 펼쳐졌고, 그들은 결국 자유 의지를 통제하는 도구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 설명과 지금 이야기의 차이는 민준이 ‘우리’라는 단어를 고른 점이었다. 하은성은 거기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방법은 자유 의지를 제한적으로 허락하는 거였지. 소수의 통제자, 관리자, 관찰자들을 제외한 모두의 의식 속에 금기가 새겨졌어. 비유하자면 이런 거야. 마음속에 크고 굵은 선 하나를 그려 놓는 거지. 거기 안에서 뭘 해도 좋으니까 그 선만 넘지 말라고 강제했어.”
“규율의 선?”
“그래. 그 선의 기준을 설정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
선(線)의 기준.
혹은, 선(善)의 경계.
“논의한 결과, 우린 최소한의 도덕을 기준으로 삼았어. 그러니까··· 당시의 우리 법률 말이야.”
누구도 법을 어기지 못하도록 암시를 걸었다.
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성공했어?”
민준은 마른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히, 실패했지.”
괴로운 감정이 얼굴에 순간 스쳤다 사라졌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어. 마침내 모두 악에서 해방되고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처럼 보였지. 계획은 성공한 것 같았어.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지.”
치명적인 문제는 종종 예기치 못한 형태로 찾아온다.
민준은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
“우린 분명 명했어. 경계만 넘지 말고 그 선 안에서는 하고 싶은 걸 뭐든 해도 좋다고.”
그 경계선은 훗날 가축들이 만드는 드래고닉 코드(Dragonic code)와 비슷한, 동족을 존중하기 위한 규율이었다.
헌데 분명, 그렇게 코딩(Coding)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점차 스스로의 의지로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기 시작했어.”
“······.”
소름 끼치는 과거를 회상하며 민준은 이를 악문다.
“감정이 메마른 로봇 군단을 보는 것 같았지. 변화는 서서히 시작되었지만 멈추지 않았어. 사회가 정체되고, 발전이 멈췄고, 사람들은 모든 의욕을 잃었어.”
그들은 사람들을 악에서 해방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생각의 자유를 거세해 버렸다.
“우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어. 사람을 로봇으로 만드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었으니까. 고민 끝에 방향을 바꿨지. 모두가 자율적으로 선을 행할 방법을 찾았어. 강제하는 도구가 없어도.”
“그런 게 가능하다고?”
“죄는 관계에서 탄생하지. 오롯이 홀로 존재하며 완성되는 자는 죄를 지을 수 없어. 그곳에는 선도 악도 없으니까. 죄는 타인을 부정하고 차이를 없애려는 저항에서 시작해.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순간 세상에는 악이 없어질 거야. 우리는 다양한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가 되어 보기로 했어.”
마지막 말은 얼핏 비문으로 들렸다. ‘서로가 서로가.’ 주어가 두 번 반복된 것 같은.
“불행히도 우리는 그 과정을 도중에 멈추고 곧 깰 거야. 난 그 뒤를 고민하고 있어.”
“······!”
델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그녀는 민준의 도망자로서의 미래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기약이 없는 도주만 이어질 게 아닌가 절망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동족들이 모두 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지어 그걸 넘어, 이미 다음 단계를 고민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동족들의 재림은 확정된 미래라는 것처럼.
“이건 심각한 문제야. 잠들 때는 이런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거든. 프로세스를 완전하게 마치기 전에 각성한 동족들은 목도하게 될 거야. 옛날보다 훨씬 수가 많아진 지성체들을 말이지. 물론, 드래곤을 포함해서.”
마지막 말에 강세를 준 뒤 덧붙인다.
“옛날 우리는 다른 종족에게 최대한 관여치 않으려고 했어. ···몇몇 죄인을 빼면 말이지. 그땐 그게 가능했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는 우릴 절대 찾을 수 없었어.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너희 중 일부는 이미 충분한 기술을 보유했어. 심지어 우리 목에서 피를 쥐어짤 힘까지 손에 넣었어. ···죄인 덕분에 말이지. 우리가 깨도 더 이상 너희들과 완벽하게 분리되어 살아갈 수 없어. 그렇다면 이 세상에 돌아온 우리는, 너희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까?”
민준을 괴롭히는 고민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다시 잠에 들게 될 거야. 하지만 과연, 옛날처럼 안심하고 수마에 빠질 수 있을까?”
델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미 너무 발전해 버린 다른 종족들이 남아있는 한, 안심하고 잠들 수 없단 말이야?”
“그래. 우리는 이미 아픔을 겪었어.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하지? 그들을 자유롭게 살게 놔둔 채로 잠에 들면 말이야.”
“······!”
곁에서 걷던 하은성은 둘 사이 오가는 대화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준이 말하고, 고민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개념이 훗날 이 우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선명한 예감을 느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에게.
그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민준이 지독한 피로감과 함께 중얼거렸다.
“난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
이것이 델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왜 그들 모두를 세뇌하지 않았는가?
오늘 이 장소는 훗날 그가 결정을 내릴 재료를 공급하는 실험장과 같았다. 다시 말해 일종의 테스트 베드(Test bed)였다.
“너희 모두에게 이미 실패가 검증된 도구를 쓰는 게 맞을까?”
아시프-1의 원형이 된 도구. 도덕을 강제하는 족쇄.
그것을 장착한 이들이 모든 자율적 선택을 거부하게 되는 건 분명 실패다.
하지만 평가 기준을 바꾸면?
생각하는 힘을 상실하는 건 지성체 기준으로는 부작용이나, 가축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질 터.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너희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게 맞을까?”
민준은 찬 바람처럼 읊조렸다.
“나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
그다음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삼켰다.
어떤 일을 하기 전 고민이 길어지는 까닭은 여러 가지이나, 대표적인 이유를 꼽자면 회피 기제가 있다.
‘이래서 난 처음부터, 이 일을 하기 싫었어.’
그 순간 누군가 외쳤다.
“저기다!”
민준 일행은 부활의 성당 앞 광장에 도달했다.
“왔다! 가짜 화신이다!”
이미 소식이 전해진 듯, 펠릭스파 사제들이 모여 우글거리고 있었다. 민준이 달란트에 손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찌릿!
하은성의 목덜미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 통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드래곤은 사제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이 멍청이들아, 그만해!
다시 말하지만 이 오크 커뮤니티 토박이는 결별한 부부의 대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직관과 예감 차원에서 민준의 의도를 파악했다.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은, 훗날 민준이 내릴 선택을 뒷받침할 근거가 될 것 같았다.
아주 무시무시한 선택을.
“화신을 사칭한 죄인은 걸음을 멈추라!”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들 중 유일하게 위기감 대신 고뇌에 빠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몹시 권태로운 눈빛으로.
“길을 비켜.”
민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그들 중심에 버티고 선 남자, 펠릭스가 이를 갈았다.
“이 뻔뻔한 사기꾼이!”
민준이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순간.
화아아앗!
경악한 목소리가 군중에서 터져 나온다.
“아, 아니!”
“저건···!”
“신혈! 신혈이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광이 민준의 몸에서 흘러왔다.
하은성은 목덜미에서 불꽃이 튀는 통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휘릭! 델의 등줄기에서 촉수 한 줄기가 터져 나와 그의 몸을 감싸며 지탱했다.
용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던 그녀는 눈길을 전남편 쪽으로 돌렸다. 그녀가 아는 가장 영롱한 빛이 민준을 성스럽게 감싸고 있다.
‘달란트!’
주변 공간을 잠식하는 압도적인 서광.
델은 민준이 이미 몇백만 달란트를 영혼에 품은 걸 알았다. 그것은 고대 종족들이 심은 기억 소거의 암시를 태우고 녹여 버린 후였다. 그러고 나서도 다 소모되지 않은 위압적인 광채가 파장을 퍼뜨린다.
사제들 역시 달란트를 모를 리는 없었다. 일생의 긴 시간을 들여 엘라후-프라가를 오가며 달란트를 조금씩 훔쳐온 그들이 말이다.
한 번에 소량씩 훔친 이유가 있었다. 지나치게 많이 영혼에 품으면 폭주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했다.
영혼에 저토록 많은 신혈을 적신 자를!
“저건, 기적이다!”
“어떻게 한 명이 저리도 많은 신혈을!”
“평범한 필멸자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뛰어난 성직자 역시 할 수 없는 일이야!”
“아니, 그렇다면 저자는 분명···!”
회의론자들도 믿음이 흔들리는 듯 여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걸 들은 펠릭스는 심장이 조이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저 사악한 존재가 주교들의 이성을 흐리고 있다. 이대로면 다들 사기꾼을 진짜 신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펠릭스는 소리쳤다.
“이 괘씸한 마귀가 어찌 함부로 신혈에 손을 댔느냐!”
민준은 고요한 시선을 던지더니 말했다.
“너희의 공로는 인정한다.”
“뭐라?!”
오만하고도 뻔뻔한 태도.
펠릭스는 분노 때문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오랜 시간 짐승들 몰래 피를 모아 왔지.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너희의 노고가 정당한 요구를 거부할 권리까지 주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주인으로서, 우리 것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사제들 표정이 흔들렸다.
어마어마한 달란트가 타오르는 불꽃 속에 서서 고고하게 선언하는 자.
그는 진정으로 현신한 신격 같았다.
펠릭스의 마음이 급해졌다.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닫으시오!”
그가 소리 질렀다.
“공격! 공격하라!”
파앗!
파파팟!
결국 사제들 일부는 공격을 쏟아 냈다. 대기를 가로지르는 황금 광선.
그 순간, 델의 등에서 촉수가 몇 가닥 더 폭발하듯 터졌다. 그녀는 전남편과 드래곤을 감싸며 외쳤다.
“카인!”
굵직한 촉수 가닥이 사제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자 펠릭스는 총대주교 한 명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루에트라는 이름의 그는 고위 사제 중에서도 펠릭스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자였다.
그루에트가 외쳤다.
“가짜 화신, 네 죄를 벌하겠다!”
다시 한번 혀끝에서 죄가 완성되었다.
그루에트는 아직도 저 악마를 공격하지 않는 소극적인 사제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뭣 하는 거냐? 펠릭스 주교 말대로 저 간악하 사이으에에 오어으···.”
단어가 붕괴되고 문장이 부서진다.
총대주교는 입 안에서 강렬하고도 자극적인 맛을 느꼈다.
그다음으로 이변을 감지한 사람은 혼란에 빠져 있던 드래곤이었다. 용 특유의 감각은 입을 다문 채로도 공기의 맛을 알아차렸다.
하은성의 눈이 커졌다.
‘···짠맛?’
자신에게 동조하던 총대주교가 몸을 떨자 펠릭스가 당황하여 묻는다.
“그루에트 주교! 갑자기 왜 그러···.”
스르르!
그루에트의 입이 열리고 하얀색 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으으읍!”
그가 토해 낸 것은 침의 수분과 섞인 알갱이가 군데군데 섞인 분말이었다. 발치에 흘러내린 그것의 정체를 드래곤은 알 수 있었다.
‘소금이야!’
혀가 통째로 소금으로 변해 버린 그루에트 주교는, 곧 자신의 왼손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으··· 으··· 아아아!”
비명은 매우 뭉툭했다. 염화(鹽化)된 혀는 이미 입 안에서 부서져 내렸기에.
그는 핏발선 눈으로 손가락을 응시했다. 의복 소매 밖의 손은 평소보다 훨씬 창백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손가락 끝부터 천천히 흰색 얼룩이 번지더니 서로 이어지며 단단한 결정이 되었다.
“아아아!”
그는 다급하게 멀쩡한 오른손으로 왼손을 움켜잡는다.
푸석!
손가락 크기로 가느다랗게 돋아 있던 다섯 개의 소금 기둥. 그것들이 허무하게 꺾이며 무너져 내렸다. 주교의 팔을 타고 굵은 가루가 흘러내렸다. 곧이어 그의 오른손조차 흰 결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옷으로 가린 부분까지 빠른 속도로 결정화가 진행된다.
잠시 후, 사제들 시선이 꽂힌 그곳에는 주교복을 입은 사람 모형의 소금 기둥이 서 있었다.
그루에트는 산 채로 소금이 되었다.
“으, 으아아!”
빠른 속도로, 사제들 사이에 비슷한 비명이 이어졌다. 하나같이 뭉툭한 절규였다.
“아, 아애··· 아애애애애!”
그들은 재앙이 민준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직감했다.
신체 말단부터 소금 결정으로 변하기 시작한 사제들은 조금이라도 민준과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성당 앞 광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누군가 도망치다가 완전히 소금으로 변한 그루에트 사제를 밀쳤다. 옷을 입은 동상은 그대로 쓰러져서 바닥에 충돌. 쿵! 와르르! 허무한 백색 가루가 되어 무너졌다.
“이··· 이게!”
펠릭스는 눈앞 풍경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악몽인가?
신들이 꾸는 악몽이 아니라, 그 꿈속에서 내가 또 한 자락의 꿈에 휘감긴 것인가?
“저, 악마!”
그때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으, 읍! 뜨거워··· 뜨거워!”
악마의 뒤편을 포위하던 사제 한 명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비틀거리더니.
화르르르!
곧, 그의 전신에서 핏빛 불꽃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섬뜩한 절규.
펠릭스는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불꽃이 사제를 덮더니 피와 장기를 연료로 거세게 타올랐다. 불길은 마른 들판을 달리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번지기 시작했다. 불꽃은 뜨거운 혀를 날름거리며 생물처럼 움직여 성당을 원형으로 감쌌다. 누구도 도망갈 수 없도록.
펠릭스는 자신들이 갇혀 버린 것을 깨달았다.
그는 벌벌 떨며 민준을 보았다. 성검과 똑같은 칼을 든 그를.
=이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알아듣지 못할 대화가 아시프-1과 민준 간에 오간다.
=형벌에는 전시와 예방 효과가 있지요. 저들에게 벌을 내림으로써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이군요. 모두를 세뇌하지 않아도 이 무리가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의 선택으로 죄로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후라이팬은 저들의 죽음이 지닌 상징성을 이해했다.
=그렇군요. 저들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쓸모가 있겠습니다.=
불이 소금 기둥이 된 사제들 사이로 번졌다. 도망치거나 몸부림치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동상들이 불에 닿아 더욱 견고한 형태로 구워진다.
살아남은 자들은 저항할 의지를 잃었다. 이제 형벌은 방향과 순서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곁에 있던 이가 갑자기 소금이 되어 굳거나 난데없이 불길에 휘말려 타올랐다. 자신들 중 누가 먼저 소금이 될지, 누가 불이 되어 타오를지 예상할 수 없었다. 재앙은 눈먼 칼날처럼 춤을 췄다.
털썩!
도자기처럼 단단하게 구워진 소금 인형들 사이에서, 사제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