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14
215.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12)
***
켄티우스는 실존할 턱이 없는 신을 저주하고 싶었다.
다른 쪽 정체성이라면 몰라도, 드래곤이라는 종족적 정체성을 의심해 본적은 없기에 그는 당연히 무신론자였다.
다만 이 상황의 책임을 묻고 비난을 퍼부을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눈 앞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있다. 레어 외벽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탓에 차가운 공기가 거침없이 드나들었다. 켄티우스는 원래 보여서는 안 될 밤하늘을 응시했다. 대기 오염이 사라진 청명한 공기 속 별빛이 흐드러지게 쏟아졌다.
‘내 레어··· 그토록 공을 들인 안식처가!’
이제 켄티우스의 새집은 이사할 때와는 다른 의미로 중요했다
‘내 몸을 가려줄 굴이 무너졌다. 고스란히 밖에 드러나는 기분이야. 숨고 싶다. 사라지고 싶어!’
누구의 잘못인가?
엉뚱한 소리만 지껄이다가 레어를 부수고 도주한 남녀를 탓하는 것은 쉬웠다. 상황을 유발해 놓고는 그들을 추적하여 사라진 젠킨슨을 비난하는 일 역시 쉬웠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사건의 기저에 깔린 섭리를 욕하고 싶었다. 신을 믿었다면 악담을 퍼부었을 터다. 뒤틀린 운명에 치를 떨면서.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위화감을 못 느낀 그가 이제서 괴로워하는 건 세뇌의 힘이 느슨하게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시간 맞춰 특별한 음식을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아시프-1은 지구에서 꽤나 먼 차원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떠나기 전 켄티우스에게 남긴 대량의 ‘사료’는 지금보다 능력이 약할 때 만들었다. 당장 조리해서 먹이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세뇌의 영향력은 약해지는 중이다.
이 상황은 세뇌를 한 장본인도 예측한 바였다. 그래도 예언에서 본 12월 31일, 민준이 지구로 돌아올 날까지 치명적인 비밀을 함구할 정도 영향력은 유지할 터다. 민준의 생각에 그거면 충분했다. 다만 미처 신경 못 쓴 부분에서 부작용이 생긴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몸이 싫다!’
켄티우스는 고뇌한다. 의식과 육신의 이 괴리는 대체 무엇인가?
완벽하게 세뇌되었을 때는 무시했던 질문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요즘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굴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은둔하던 레어가 무너지니 더욱 큰 상실감을 느꼈다.
숨을 곳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
드래곤의 두 눈이 우울한 어둠에 잠겨들었다.
그때.
“······!”
공기를 때리는 피막 날개 소리.
구멍 너머로 젠킨슨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입으로는 카이엔의 목덜미를 물고 앞발로 아시스파엘을 든 채다. 야무지게 두들겨 맞았는지 둘은 엉망진창으로 찌그러져 기절해 있었다. 레어에 내려 앉은 젠킨슨은 마법으로 꽁꽁 묶인 그들을 내팽개치며 말했다.
“복귀하기 전 사과를 하러 왔네.”
레어가 망가진 이유에 자신도 엮여 있기에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참으로 드래곤 답지 않은 행동이다.
켄티우스는 감히 화를 내지 못했지만, 집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저들이 아공간에 숨긴 것이 대체 뭐길래 그렇습니까?”
젠킨슨이 말을 망설인다. 그걸 본 켄티우스는 빠르게 포기했다.
“젊은이들에겐 공유할 수 없는 고룡들만의 비밀, 뭐 그런 것이겠지요. 한두번도 아니고.”
젠킨슨은 둘을 족쳐서 내막을 캐기 전까지 이야기가 새는 걸 원치 않았다.
실로 심각한 안건이기는 했다. 저 천둥벌거숭이들이 로드의 드래곤 하트를 훔쳐내다니! 괘씸한 건 둘째치고, 대체 어떻게?
일단 카이엔의 아공간을 강제로 열고 하트를 회수하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엔델리온의 공주가 만든 결계를 다시 열고 거기 보관하는 게 가능할까?
생각에 잠긴 그에게 켄티우스가 말했다.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고룡들은 아공간에 있는 물건도 감지할 수 있는 거군요.”
“그래, 사실 자네 또래가 만든 아공간은 나 정도 나이 먹은 용에겐 투명 서랍장이나 마찬가지지. 닫아 봤자 마나는 물론이고 냄새 같은 것도 흘러 나온다네. 자네의 그 아공간처럼 말일세.”
“······!”
그 순간 켄티우스의 표정이 살짝 흔들린 것을 젠킨슨은 보지 못했다.
고룡은 경색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부드럽게 농담을 건넸다. 농을 친 뒤에는 부서진 레어를 보상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려는 참이었다. 도의적인 차원에서.
“그나저나, 자넨 거기에 대체 뭘 넣어 두었기에 이리도 맛있는 냄새가 나나? 처음부터 느꼈지만 다른 데 정신이 팔려 말할 기회를 놓쳤네. 계속 맡으니 나까지 배가 고프군. 내 감각으로는 곡물 종류인 것 같···.”
그 순간.
“······!”
젠킨슨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의 침묵 후.
새삼스레 깨달은 듯 중얼거린다.
“···그래, 이건 곡물 냄새야.”
젠킨슨은 지금 드래곤의 몸으로 돌아간 상태다.
그리고 용은 본래 곡류를 먹지 않는다.
드래곤이 와인을 즐길 때 굳이 인간으로 폴리모프 하는 이유는, 사이즈도 문제지만 본체로는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아무리 맛있게 조리한 곡물 요리라고 해도, 드래곤에겐 삶은 나무 냄새나 다를 바 없이 느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젠킨슨은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본다.
“이게 왜 이토록 매혹적인 냄새로 느껴지는 거지?”
켄티우스가 무언가 설명하려 한 순간.
“······!”
어린 용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
화르르륵!
밤이 내린 이계의 도시에 지옥불이 타오른다.
목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하은성은 예전에 캐시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사실, 민준씨 주특기는 저주야.
– 저주요? 요원님 필살기는 그 까만 괴물 뒤집어쓰고 나쁜 놈들 머리통 다 터뜨리면서 다니는 거 아니였어요?
– ···그림자 괴물도 위협적이긴 한데, 이민국에서 의뢰한 잡범 잡으러 다닐 때는 거의 안 써. 그거까지 꺼낼 상황이 좀처럼 없거든. 그래서 민준씨는 저주로 더 유명해.
그녀가 그렇게 장담한 이유를 하은성은 독일에서 알게 되었다. 민준을 아는 사람들이 왜 그를 그리 두려워하는지도.
몸의 모든 구멍에서 독버섯이 자라나고, 배에 복수가 차오르고, 전신을 경련하며 거품을 물던 추적자들.
캐시는 덧붙여서 이렇게 말했다.
– 소환수의 공격은 그나마 눈으로 볼 수라도 있잖아. 저주는 그렇지 않아. 민준씨가 지금 누굴 공격하려는지, 어떤 식으로 저주가 발동될 건지 알 수 없어.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일수록 더 무섭지. 게다가 저주는 한 번 걸리면 끝이야. 스쳐 맞거나 아슬아슬하게 튕겨내는 개념이 없어. 걸리거나, 걸리지 않거나. 둘 중 하나야.
그것이 큰 공포를 유도한다고 캐시는 설명했다.
– 그리고 민준씨는··· 다양한 저주에 특화되어 있거든.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방법을 고안해서 괴롭히지. 나도 흑마법은 잘 모르는데, 그게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고. 마법저항력을 뚫고 인체에 개입하는 게 말이야.
그래, 분명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당하는 사람들이 깊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본 하은성은 캐시의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화··· 화신이시여!”
“신이시여, 저희를 용서하소서!”
별은 이미 먼 옛날에 빛을 잃은 세계. 그것을 대신하던 인공 조명까지 기능을 잃은 밤거리.
잔혹한 불꽃이 일렁이며 시야를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매캐한 매연 속에 사람이 산채로 타는 역한 내가 섞인다.
불길의 벽에 갇힌 사제들. 살아남은 이들은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들이 고개를 조아린 방향에 선 남자, 민준은 방금 저주를 내렸다. 하은성이 인식하기로 그것은 흑마법사의 특기였다. 몸이 산 채로 소금으로 변하는 저주. 살과 피가 연소되며 꺼지지 않는 불꽃을 피우는 저주.
하지만 당한 자들의 입장에서는 달리 해석되는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에게 벌을 내리셨다!”
그들이 판단하기로 이 현상은 신벌(神罰)이었다.
또한 눈치 빠른 자들은 알아차렸다. 여태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대부분 화신을 향한 공격을 망설이던 자들이었다. 민준에게 섬광을 뿜어낸 사제들은 이미 소금 기둥이 되었거나 불꽃에 파 먹혔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신께서는 당신을 향한 불신과 적의를 심판으로 돌려주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증오에는 증오로.
“부디, 우둔한 미물들의 죄를 사하소서!”
생존자들은 신의 사랑으로 용서받는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렸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이건··· 아니야. 이럴 수는 없다!”
주교들을 선동하여 사태를 이끈 장본인, 펠릭스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무릎을 꿇었으나 복종의 선언이 아니었다. 상상할 수 없던 충격적 장면 앞에 다리가 풀려버린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펠릭스는 머리를 조아리는 대신 두 눈을 부릅뜬 채 민준을 노려보았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태초의 종족은 불가사의한 표정으로 마주했다.
아슬아슬한 목소리가 흘렀다.
“당신은··· 진정 신이였는가?”
다른 사제들은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새지 못하게 민준이 막았기 때문이다.
두눈박이 화신을 가장 격렬하게 부정했던 총대주교는, 이를 으스러질 것처럼 악 문다. 이어진 음성에는 울분이 진하게 섞였다.
“정말로 신이였다면, 애초에 왜 우리의 신앙을 실험하였는가?!”
그 어조는 순종하고 복종하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펠릭스는 한 손을 팽팽하게 치켜들어 민준을 가리켰다. 그는 화신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찰나, 불꽃이 이글거리며 치솟아 둘을 가렸기에 사제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즐거운가? 필멸자들이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가, 뒤늦게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만족스러운가?”
격하게 말을 쏟아낸다.
“그리고 왜 그 모습으로 왔는가? 어째서 우리, 선택받은 특별한 종족에게 이런 모욕을 주는가!”
그 반응에 무신론자인 델조차 혼란을 느낄 정도였다. 신을 향해 분노하며 따지고 드는 성직자라니.
반면 민준의 표정은 처음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그는 안다. 지성체들의 성향은 상당 부분 태어날 때 정해지며 잘 바뀌지 않는다. 저 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누구나 믿고 싶은 것을 믿으나 펠릭스는 그 경향이 남들보다 강한 자였다. 그리고 동일한 문화와 가치, 외모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절실히 집착하는 자였다. 흔히 보이는 유형이며, 그것이 죄는 아니다.
다만 그 성향이 민준에게 방해가 되었을 뿐이다.
“내가 섬기는 초월자가 이런 신이였다면, 나는 차라리···.”
거짓된 행복의 꿈에 잠긴 자들
태초의 종족.
그들이 이런 존재였다면, 차라리.
“그래, 차라리.”
펠릭스는 손을 들어올려 심장에 가져다 댄다. 여기를 관통하는 혈관에 작은 종양 하나만 만들어도 해도 사람은 죽는다. 너무도 손쉽게 죽는다. 펠릭스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
주교는 두 눈을 부릅떴다.
손에서 빛이 나오지 않았다. 생명력을 극도로 자극하여 세포 분열을 가속화한 끝에 종양을 빚어내는 힘이 발동되지 않았다.
펠릭스는 자신이 신앙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화르르르!
핏빛의 화염이 맹렬하게 춤춘다. 민준이 단검을 든 채 다가갔다. 펠릭스는 울 듯이 웃었다. 눈동자를 돌려 화신이 이룬 기적을 본다.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 생각이 틀렸다. 당신은 진정 신이 맞았다.”
입가에 웃음이 지워진다. 눈동자에는 단호한 빛이 서리고.
죽음을 각오한 채 선언한다.
“하지만, 당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상대가 신임을 인정했으나, 숭배하지는 않겠다는 맹세.
그를 향해 민준이 부드럽게 답했다.
“글쎄, 그건 두고 보자고.”
“······?!”
펠릭스의 얼굴이 의혹으로 물든 순간.
푹!
민준이 든 단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여 주교의 목젖에 꽂힌다.
“꺼··· 꺼어억!”
인간이면 즉사할 상처였으나 펠릭스는 레파탐 족이었다.
민준이 그를 찌른 동시에 둘을 감싼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덕분에 다른 사제들 모두 그 장면을 보았다.
“헉, 저것은!”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성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화신이 직접 손에 성검을 들고 배교자들의 우두머리에게 세례를 내리고 있었다. 이미 한 번 교황 대리로부터 세례를 받은 자임에도 당신의 손으로 한 번 더 은총을 내린다.
사제들은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불꽃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신과 필멸자, 단둘만 남은 공간에서 펠릭스는 죄를 고백한 것이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한 것이다.
그 결과, 화신께서 죄인을 대표하는 그의 죄를 사하셨다!
“꺽! 꺼어··· 꺼어어억!”
펠릭스의 헐떡이는 소리는 복된 울림처럼 들렸다.
그가 대표로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이미 죽은 사제들 역시 구원받았다는 걸 그들은 깨달았다.
머리 위에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망령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녔지만 생존자들은 유념치 않았다. 어차피 이 세계는 곧 붕괴한다. 신들이 잠에서 깬 순간 무너져 내린다. 그러고 나면 산 자든 죽은 자든, 신들의 기억에 기록되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진정한 영생을 얻을 터다.
“······.”
한편 그 장면을 함께 보는 델은, 사제들과 상반된 해석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 펠릭스가 저대로 순교하는 걸 막으려는 거야!’
이 자리에 없는 자들 중에서도 인간으로 온 화신을 부정하는 교인들이 존재할 터다.
이대로 펠릭스가 죽어버리면, 그는 배교자들 사이에서 신성시되며 불순응의 상징이자 구심점이 될 것이다.
민준은 그걸 예방하려는 것이다.
슥!
주르륵!
민준은 칼날을 빼 낸다. 목덜미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렸으나 펠릭스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배교자의 대표는 방금 전과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적의와 배신감, 분노는 온데간데없다. 상당량의 피를 흘리는 중에도 얼굴은 평온했다. 그 모습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은총과 은혜에 심취한 상태로 여겨졌다.
천천히, 펠릭스가 고개를 숙인다. 화신 앞에 자신의 몸을 바짝 낮췄다. 엉금엉금 기어서 화신의 발에 입을 맞춘 후 그가 말했다. 이번엔 모든 사제들 귓가에 또렷하게 박혔다.
“신이시여. 태초의 종족이여. 당신을 섬기는 미천한 종이, 이곳에 내린 당신의 증거를 찬미하나이다.”
얼마 전 지구에서 행했던 이단 재판관들의 신앙고백이 여기에 재현되었다.
펠릭스의 선창에 따라 다른 사제들 역시 따라 읊는다. 목소리가 겹치고 겹쳐 찬송처럼 울렸다.
“신이시여. 태초의 종족이여. 당신을 섬기는 미천한 종이, 이곳에 내린 당신의 증거를 찬미하나이다.”
목덜미와 얼굴에 피범벅을 한 주교는 벅찬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식도로 역류한 피가 희고 고른 치열을 따라 번들거렸다.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속에, 펠릭스는 기도문을 읊기 시작한다. 더이상 화신의 형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의문은 사라지고 모든 기억이 새로이 의미를 입었다. 그래,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지는 중요치 않다. 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그것이 전부다.
펠릭스는 신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답하여 섬길 각오를 마쳤다.
기도문으로 표현되는 신앙고백에 화신이 답했다.
“문을 열어라. 오랫동안 멀리 두었던 내 것을 돌려받겠다.”
민준의 두 눈에는 차갑고도 깊은 감정이 일렁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그래, 길었다.
너무 길었어.
“카인···.”
델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사제들은 그저 기쁘게, 명령에 답할 뿐이었다.
회개한 배교자가 선창하고.
“비로소 당신의 꿈 속에서 우리는 당신을 꿈꾸나이다.”
사제들이 제창했다.
“비로소 당신의 꿈 속에서 우리는 당신을 꿈꾸나이다.”
그들은 실존이 입증된 신을 온 힘을 다해 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