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28
229.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26)
***
“화신이시여. 전(前) 교황 대리가··· 알렉스트 주교가 깨어나질 않습니다.”
부활의 성당으로 들어와 그렇게 보고한 이는 윰투스였다.
민준은 골치아프다는 듯 눈매를 살짝 찡그렸다.
그는 향후 교인들과 거리를 두려 했으나 이미 한참 동행한 윰투스는 예외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신과 사람을 잇는 다리, 아시프-1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윰투스는 다음 꺼낼 안건 때문에라도 신에게 직접 보고를 해야 했다.
“그리고 신수(神獸) 역시 의식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드래곤, 하은성의 상태가 널리 알려진 것은, 신이 위원회의 군대에 벌을 내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몇몇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교단 공의회는 이번 전투를 성전(聖戰)으로 명명하기를 거부했다. 오늘의 목격한 기적은 심판이자 신벌에 가깝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랬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신께서 죄인들을 징벌하셨다. 소금기둥이 되어 불 속에 구워진 배교자들처럼 말이다.
위원회의 교만한 불신자들이 파견한 전투함이 무력화된 뒤, 환희 속에서 열광하던 교인들은 뒤늦게 이상 현상을 보이는 이들을 발견했다.
‘이 녀석.’
민준은 하은성의 혼이 빠져나간 몸을 본다.
본래 주인, 드래곤의 영혼은 남아 있음에도 여태 그랬듯 몸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다행히 교단은 이런 상황을 대비한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창천이 보유했던 것과 비슷한 생명유지장치였다. 엘라후-프라가로 갔다가 귀환이 늦어지는 일은 종종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둘의 몸을 이대로 방치하면 숨이 끊어질 수도 있기에, 그들은 민준의 허락을 받고 모처로 이동되었다.
“목격자들 말에 의하면, 신수의 영혼 역시 알렉스트와 함께 엘라후-프라가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윰투스가 아는 한, 그곳은 사제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성역이다.
그런 곳에 하은성이 진입했음에도 윰투스는 더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애초에 신이 기르는 짐승이니 당연히 신성을 득하였으며 성역에 거할 자격 역시 부여받았다고 이해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종교란 참 편리하다. 기존의 상식이 논파당해도, 신의 뜻으로 해석하면 무엇이든 품을 수 있다.
한편, 민준 역시 이 현상을 설명할 가설을 가지고 있었다. 윰투스의 이해와는 좀 다르지만.
‘그래서, 하은성 역시 어찌 보면 이미 세례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지.’
그의 영체에 꽂힌 단검.
그것에 찔린 자의 혼에는 동족들이 잠든 장소로 출입할 수 있는 코드가 입력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대체 누가 찔렀냐는 거야.’
기억을 되찾기 전에도, 완전히 회복한 지금도 그 수수께끼는 해소되지 못했다.
민준이 처음부터 안배한 계획에는 하은성이라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시프-1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지.’
그의 파편은 거의 완성에 가깝게 조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단언했다. 회수된 그 어떤 조각에도, 하은성을 찌른 기억 같은 건 없다고.
‘지구에서 암살자 노릇을 하던 블레이드의 소행도 아니란 말이야.’
민준의 생각이 깊어진다.
‘이건, 의도치 않은 변수다.’
완벽해야 할 민준의 계획과 융합되지 못하고 겉도는 요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민준은 그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
민준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교단 본부에서 떨어진 외곽지의 평야.
167쌍의 시선이 델에게 쏟아졌다.
동공을 떠는 그들만큼이나 델 역시 당황한 상태였다.
‘···할머니?’
사실 아이가 고른 호칭은, 엔델리온의 언어로 나이 많은 여성에게 존경을 표하는 말이었다. 그들 나름의 지식으로 예의를 차린 것이다.
델은 저들이 자신과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랐음을 상기했다.
그녀는 몸갈이 개념이 없던 시절 기준으로는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으나, 현대 기준으로는 젊은이로 분류된다. 저 애들이 그런 차이를 알 턱이 없다.
또한 델은 아직 진정한 의미의 신체 이식을 받은 적이 없다. 수형자 시절 잠시 인간 몸에 갇혀 있었지만 지금은 본래 육신으로 돌아온 상태. 지금 델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몸갈이 시기를 한참 전에 놓쳤다고만 생각하지 진짜 나이를 추측하지는 못할 것이다. 반면 아이들은 눈에 비친 모습을 보고 그대로 판단한 것이다.
매우, 자연스러운 기준으로 말이다.
“음, 나는 말이지.”
델은 손쉽게 호칭을 정리할 방법을 찾아냈다.
엔델리온의 왕위계승자.
아이들은 왕정의 개념을 배웠지만, 왕족들의 생김새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들의 외모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몸갈이의 개념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어··· 공주님이요?”
“진짜요?”
“공주님이 할머니였어.”
겁먹은 와중에도 아이다운 웅성거림이 곳곳에 번진다.
그렇게 자기 소개를 마친 뒤 델은 물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게 뭐니?”
아이들은 다시금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런 망설임은 잠시였다. 외딴 곳에서 자기들끼리 정신을 차린 지금, 눈앞의 어른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솔직하게 전부 털어 놓는다.
그들은 이런 꼴을 당한 연유에 동족이 얽혀 있다고는 상상도 못하는 것 같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집이 아니었어요.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밖에 없었어요. 캄캄하고 좁은 곳에, 내 몸이 아닌 이상한 모습으로 갇혀 있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니까 엄청나게 추웠어요. 정말 많이 추웠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추운 데는 처음 가 봤어요.”
“그리고 갑자기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그러자마자 이상한 게 날아와서 몸에 붙었어요. 그러고 나니 촉수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어요.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면··· 엄청나게 아팠어요.”
“그래서 계속 엄마 아빠를 불렀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몸이 또 아팠어요.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아도 그랬어요. 엄청 큰 바늘 같은 게 나를 찔렀어요. 그런 바늘이 너무 많았어요.”
“우린 제발 그만하라고 울었어요. 안 움직일 테니까 찌르지 말라구요. 그런데 계속 찔렀어요. 그러고 나서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불길이 일렁거렸다. 그걸 본 아이들은 주눅이 들며 말을 멈췄다. 혹시나 자신들이 공주를 분노케 한 것이 아닌가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까스로 감정을 감추며 자문했다.
‘저 애들에게 모든 진실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이 지금 애타게 찾는 부모는 사실 진짜 혈육이 아니다.
‘아니, 그렇게 꼭 단정할 수는 없나? 양육자 중 차후 저 애들 몸으로 갈아타려는 자가 있었을지도···.’
생각만 해도 혐오스럽고 토악질을 하고 싶었다.
어찌 되었건, 저 애들이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부모가 사실 그들을 가축처럼 키우고 있었으며, 향후 출하되는 날 영혼 채 몸에서 뜯어내려는 작정이었음을··· 저 애들이 지금 알 필요가 있는가?
‘아니, 그건 너무 잔인해. 진실을 감당하기에는 다들 너무 어려.’
델은 자신을 향한 167쌍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들 눈빛에는 두려움과 함께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고픈 절실함이 보였다.
이런 막막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 나타난 동족의 어른. 왕가의 후계자.
델이 자기들을 구원해 줄 ‘신’처럼 보일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델이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선택했다.
“너희는 나쁜 사람들에게 납치당했어.”
아이들의 피부에 붙은 빨판이 오그라든다.
“···유괴당했다고요?!”
델은 긍정했다.
“그래.”
양육자가 일조한 차원간 배송을 유괴로 판단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델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했다. 배에 타고 있던 자들, 카바이트와 토드가 음모를 꾸미고 그들을 여기까지 납치했음을.
하지만 그 사악한 시도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분쇄되었고 지금 전부 감옥에 끌려가 갇힌 상태라고.
“그럼 저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델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말에는 확신과 결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 너희는 전부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내가 데려가 줄게. 약속해.”
그녀는 정말 그리 다짐했다.
현재 상황에서 몸갈이를 위해 키워진 엔델리온들이 사육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금 같은 비윤리적인 시스템이 유지된 상태에서는 말이다. 저들은 이미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뇌와 신경계가 손상되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성인들에게 간택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남은 미래는, 용도 폐기뿐이다.
델은 짐작했다. 고대 종족은 이곳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도, 어차피 저 아이들을 없애버릴 계획이었으리라.
‘그렇게 둘 수는 없어.’
델은 강한 의지를 담아 되뇐다.
‘너희가 고향에서 평범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게. 뒤틀린 사회를 정상으로 되돌린 뒤에.’
그 다짐은 비단 눈앞의 167명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델은 한 명의 고대 종족 수명을 늘리기 위해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의 불완전한 영생이 길어질수록 희생자는 늘 터다.
“그럼 엄마 아빠한테 돌아가는 거예요? 둘 다 엄청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100명도 넘는 애들이 갑자기 사라졌으니까요.”
“맞아요. 우리가 울었던 것처럼 엄마 아빠도 울고 있을 거예요. 빨리 돌아가야 해요.”
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그것만큼은 불가능하리라는 걸 안다. 사육장이 기능을 정지한 뒤,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저들을 돌 볼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걸 알면서도 공주는 거짓말을 한다.
행복한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그래, 너희는 부모님께 돌아갈 거야.”
구세주의 약속.
아이들은 그제서야 마음 한 켠의 마지막 불안감마저 눈처럼 녹아내린 것 같았다.
“이제 날 따라오겠니? 돌아갈 때까지 너희가 머물 곳을 준비해 놓았어.”
엔델리온의 공주는 그들을 이끌 준비를 한다. 그때, 지상에서 아시프-1이 외쳤다.
“저 상태로는 너무 큽니다! 제일 건장한 녀석은 신장이 몇 킬로미터 정도 될 것 같은데··· 저런 애들이 167명이나 떼를 지어 본부 위를 덮었다가는 교인들이 또 기겁할 겁니다. 그리고 저 상태로 지낼 공간도 없구요!”
교황으로서 복귀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시프-1은 벌써 자신의 종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쨌든, 델은 그 우려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형태로 몸을 바꾸라고 말해 주십시오! 주입식이라고는 해도 차원 도약이 가능하면 변신도 가능하겠죠.”
아시프-1이 공용어로 외친 그 말은 아이들도 알아들었다.
그들은 저 벌레만큼 작고 징그러운 동물이 왜 자신들의 공주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공주가 같은 내용을 지시하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빛으로 몸을 덮는다. 구속구로 묶여 있을 때와는 달리 저항감이 없다. 허락받지 않은 주문을 외우고 신체를 변형시키려고 시도해도 고통이 엄습하지 않았다.
파앗!
“······잉?”
하늘을 차례로 섬광이 덮더니, 거대한 촉수 생물들이 순식간에 쪼그라든다.
얼핏 보면 아예 사라진 것 같았다. 그만큼 급격하게 사이즈를 줄였기 때문이다.
고개를 위로 젖힌 채 아시프-1은 뺨을 긁적였다.
“저렇게까지 작게 변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뭐, 상관없나?”
아이들은 굳이 인간 따위의 종족으로 변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얼마만큼 작게 변하라는 구체적 지시가 없었기에, 그 말을 처음 꺼낸 인간보다 작으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래서 엔델리온의 외형을 바꾸지 않은 채 크기만 줄이는 폴리모프를 감행한다.
잠시 후, 델 주변에는 인간 손바닥 만한 크기의 촉수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며 부유했다.
그걸 확인한 뒤 델도 인간 형태로 돌아갔다.
“······헉?!”
아이들은 공주가 징그러운 동물로 변신하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지만, 복잡한 어른의 사정이 있다는 설명에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항상 미지의 영역이, 어른이 되기 전에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존재하는 법이다.
준비를 끝낸 델은 교단 본부 쪽으로 날아올랐다. 긴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낮에 백 척이 넘는 우주 모함이 도약한 여파로 주변의 스모그는 저 멀리 씻겨져 나갔다. 오랜만에 깨끗해진 공기 속에서 만물이 서서히 색채를 바꾼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며 거친 주홍색을 사방에 풀었다. 촉수 끝으로 찍으면 진한 물감이 묻어 나올 듯한 공기였다.
선명한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델이 출발한다. 그녀의 꽁무니를 따라 작은 촉수 덩어리들이 떼를 지어 비행했다. 스물여섯 가닥의 말단을 꿈틀거리며.
그 장면을 뒤에서 지켜본 아시프-1은 조류의 양육 방식을 떠올렸다. 부모가 비행을 가르칠 때 먼저 날아오르면 그 뒤에 옹기종기 모여 날아가는 작은 생명체들의 무리를.
물론 어떤 새도 한꺼번에 167마리나 되는 새끼를 까지는 않지만 말이다.
“···장관이긴 하군.”
요 며칠 사이 갑자기 아들이 생긴 것을 넘어, 이제는 167명의 아이들 양육자 역할까지 맡게 된 어머니를 보며 아시프-1은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