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45
246. 사람의 자격 (11)
***
아시프-1은 지하로 도망친 자들을 금방 발견했다.
비행체를 타고 이동한 그들을 맨몸으로 따라잡은 것이다.
“막아라!”
대위원이 관리인에게 붙여준 호위병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를 보내기 전에 늙은 카바이트는 당부했다. 살 생각을 버리고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 그래야 동족이 승리하고, 존속하며, 영원토록 번영할 수 있다.
전사들은 악을 쓰며 길을 가로막았다. 그런 그들 앞에서 장발을 늘어뜨린 남자가 춤을 추었다. 쏟아지는 전격과 화염을 피하며 달려든다.
“이 악마!”
동귀어진을 각오한 전사가 온몸을 오러로 태우며 공격했다. 유선형의 칼날이 돋아난 갑옷 차림으로, 미사일처럼 육탄박치기를 노렸다.
아시프-1의 대응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그는 가장 적합한 순간에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에게, 다시 아들에게 전해진 오리할콘 팬이 번뜩였다.
‘위험하다!’
저 악마의 무기가 지닌 위력을 전사들은 익히 체험한 뒤였다.
그는 저것과 충돌하는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쉬익!
카바이트는 극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대로 경로를 이탈하여 아시프-1의 옆구리를 노렸다. 성공을 실감한 전사의 눈이 빛났다. 투구 끝 칼날이 적의 몸에 박힌 순간.
캉!
“······?!”
금속과 살점이 맞닿아서는 낼 수 없는 충돌음이었다.
카바이트는 망연히 눈동자를 돌렸다. 칼날은 아시프-1의 옆구리 살에 작은 흠집 한 줄을 남긴 채 멈췄다.
“괴물···!”
그가 알 턱이 없었다. 오리할콘 팬처럼 아시프-1의 몸 역시 델의 선물이었음을.
여러모로 상식의 궤를 아득히 넘어선다는 걸 말이다.
깡!
아시프-1은 단호하게 후라이팬을 내려쳤다.
콰직!
옆구리에 매달린 카바이트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갔다. 두부를 상실한 몸뚱아리가 바닥에 떨어져서 꿈틀거린다.
그의 희생을 기회로 삼아 다른 전사들이 달려들었다. 빠져나갈 구석 없이 모든 방향에서 공격을 퍼붓는다.
그때 아시프-1의 눈이 번뜩였다.
=“복종해라!”=
한순간에 굴복시킬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시도했다.
애초에 그가 지금 노린 것은 완벽한 세뇌가 아니었다.
“크으윽!”
머릿속을 파고드는 목소리는 그들에게 빈틈을 주었다. 찰나의 여유를 만든 아시프-1은 공기를 찢으며 움직였다. 그는 주변을 자신의 잔상과 카바이트들의 육편, 체액으로 가득 채워 나갔다.
쐐액!
검을 휘두르면 지렁이들이 동강나고.
쾅!
팬을 내려치면 살점과 체액이 증발한다.
“꿰에에에엑!”
한 손에는 종교예물, 다른 손에는 조리도구라는 우주에 전례가 없···지는 않고 단 한 명 존재하는 기괴한 이도류였지만 아시프-1은 이 유파의 종사라도 되는 듯한 숙련된 움직임을 보였다. 각각 영혼과 육신을 살찌우는 데 기여할 것처럼 생긴 도구들은 덕분에 지금 영육을 분리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는 간격과 속도감을 희롱하며 전사들을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새 몸을 받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걸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움직임은 창조주를 보고 습득한 것만은 아니었다. 쪼개졌던 시절 그의 파편 상당수는 지구의 ‘블레이드’처럼 에고 소드 따위에 깃들어 있었다. 다양한 무기로서 경험한 살육의 기억은 영혼에 고스란히 남았다.
객관적 시간은 800여 년에 불과하나, 각각의 파편이 비슷한 시간을 견뎌냈으므로 주관적 시간의 총합은 수천 년, 혹은 만년 단위를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캬아아악!”
또 한 명의 대가리를 날려버린 뒤, 아시프-1은 후라이팬을 역수로 쥐고 칼날을 앞으로 내세웠다. 혀로 입술을 적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으으으!”
그를 바라보는 카바이트들 사이에는, 진한 비린내와 함께 공포의 향기가 떠돌았다.
***
깽! 쾅! 콰직!
용릉의 관리인은 몸을 떨었다.
쩌억! 피슉!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안 돼, 막아라··· 으아아악!”
등 뒤의 호위병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때마다 그의 몸이 움찔거리며 굳었다.
“그르르··· 관리자님··· 빨리!”
죽음과 공포의 향기가 다가온다.
상대는 단호하고도 확실하게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반면 관리인이 기기를 조작하는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인공지능에게 지시하는 목소리에도 확신이 사라졌다.
‘내가 이렇게 죽어야 한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관리인이 하려는 행위는 ‘아시프-1’이라는 형태로 접근하는 죽음보다도 더 빠르고 확실한 죽음을 부르는 것이었다.
드래곤 하트를 자폭시켜서 행성을 통째로 소멸시킨다. 자신을 포함한 누구도 살아날 수 없도록.
‘영원토록 살 기회가 코 앞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자기가 묻힐 땅을 파는 포로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도 그들이 순응하는 이유를 관리인은 알 것 같았다. 반항하면 죽음은 바로 찾아온다. 반면 잔혹한 노역에 임하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다.
그도 마찬가지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었다.
상상 속의 포로와 자신을 겹치며 관리인은 속으로 울부짖었다.
‘동족들이 승리한다 한들 내가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지?’
내가 사라진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죽은 뒤 존재하는 가치가 나와 연결되고 상관지어질 수 있는가?
‘자폭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까? 차라리 항복하면 혹시라도 아시프-1이···.’
몇 번이나 머릿속에 파고든 정신파 덕분에 상대의 정체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시프-1이 나를 살려줄 수도 있잖아.’
자폭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자신이 죽지 않을 가능성을 셈한다.
관리인은 사람의 연민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의 효용과 쓸모를 재는 냉혹한 계산은 믿었다.
‘나 같은 고급 인력은 살려 두는 게 이득이야! 혹시 배신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면··· 그냥 세뇌시키면 되잖아!’
그는 머릿속의 정신방어구가 완벽하지 않은 걸 알았다. 아시프-1이 시간과 정성, 노력을 기울이면 결국 세뇌할 수 있을 터다.
‘그럼 최소한 살아남기는 할 거다.’
다만, 그리 상정해도 문제가 하나 남는다.
세뇌당한 나를 나로 간주할 수 있는가? 조작된 자유의지에 진정 ‘자유’와 ‘의지’가 존재하는가? 자유로운 의식과 통제된 의식 간의 연속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젠장!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카바이트는 살고 싶었다.
존재의 가장 큰 욕망은 결국 삶에 묶일 수밖에 없다.
그는 그렇기에 영생을 갈망했다.
“······!”
기기를 조작하던 융모의 움직임이 더욱 느려지다가 마침내 멎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뭔가 천천히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두드러지는 소음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흐윽!”
두려움에 떨며, 관리인은 천천히 등을 돌렸다.
최후까지 버텼던 전사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목이 떨어진 절단면의 결이 매우 거칠었다. 관리인은 구토를 억누른 채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허물어지듯 몸을 숙였다.
“음?”
힘겹게, 하지만 절박하게 목소리를 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아시프-1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창조주의 명령은 이놈들이 허튼 수작 못 부리게 막으라는 것이었다. 다 죽이라거나 포로를 남기라는 등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다. 자신에게 일임한 것이다. 그의 판단과 의지를 존중한 것 같아서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죽일까? 살릴까?
바로 결정을 내리는 대신 조용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카바이트는 다급하게 말했다.
“저는 용릉을 관리하는 총책임자입니다! 당신과 아시프-666은 드래곤 하트 때문에 온 것이지요?”
아시프-1은 침묵하며 고개를 더욱 깊이 기울인다.
“전 분명 쓸모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제 목숨만은···.”
“너도 영생을 원하나?”
그의 말을 끊은 주인공은 아시프-1이 아니었다.
아들은 몸을 비켜서 길을 텄다. 그리고는 뒤에서 접근하는 상대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시프-1은 상대가 위쪽 볼일을 끝내고 다가오는 걸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을 유보하고 지껄이는 말을 듣고만 있었던 것이다.
창조주는 그의 의지를 존중했고 아시프-1은 스스로 선택했다.
선택권을 더 위대한 존재에게 양보한다는 결정을.
“으으··· 으으으!”
카바이트는 간신히 눈동자를 돌렸다. 그를 위협하던 악마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통로 너머로, 그림자와 빛의 경계를 스치며 민준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가 다시 질문했다.
“너도 영생을 원하냐고 물었다.”
카바이트가 머뭇거리던 순간.
구르륵!
관리인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민준 뒤에 누군가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침입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포로인가?! 죽이지 않고 살려둔 카바이트가 있는가?!’
아주 잠깐 희망의 빛이 번뜩였던 그의 두 눈은.
“······아아!”
민준의 뒷편에서 나타난 존재를 보고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한때 카바이트였으나 더 이상 무어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생명체였다.
허리부터 이어지는 상반신은 정상적인 동족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아래는···.
구르르! 구르르륵!
그것이 바닥을 스치고 기어올 때마다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그의 하반신은 마구잡이로 뻗어 나간 나무 뿌리같기도 했고 집착적으로 잡아당긴 핏줄 같기도 했다.
근육과 장기, 핏덩어리가 뒤섞인 덩굴이 본래 카바이트에게 없는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엮일듯 다시 풀리고, 꼬일듯 다시 펼치면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관리인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대위원이다.
늙은 카바이트와 관리인의 눈이 마주친다. 상대는 말할 자유도 눈을 깜박일 힘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눈물 범벅의 충혈된 눈동자에 관리인이 비춰졌다. 대위원의 안구 점막 아래에는 쌀알 같은 무언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벌레···?
그 가능성을 깨달은 순간 관리인은 울고 싶었다. 그러고 싶지 않은 충동과 싸우며 다시 그의 ‘다리’를 보았다.
충격 때문에 지나친 광경이 이제는 보였다. 거기 있는 것은 살과 점막, 핏덩이만이 아니었다. 거죽 아래에는 눈동자에서 본 것처럼 작은 알갱이들이 수도 없이 부글거리며 움직였다.
민준이 무심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묻지. 영생을 원하나?”
관리인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대위원을 보았다. 늙은 카바이트가 눈빛으로 무언가를 애타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 찰나.
“······!”
대위원이 간신히 한 줄기의 정신파를 빚어냈다. 그 파동이 관리인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염려이자 간곡한 권고였다.
관리인은 조용히 염동력을 움직였다. 그의 앞에서 공기가 진동하며 날카로운 형태를 만들었다. 아시프-1이 막으려는 듯 움직이자 민준이 저지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손짓이었다.
관리인이 만든 진동파가 점점 더 격렬해졌다.
파악!
관리인이 등지고 있던 기기판에 보라색 체액이 비산하며 뿌려졌다.
머리를 잃은 카바이트의 시체가 천천히 쓰러졌다.
쿵!
언어와 감정 사이를 배회하는 대위원의 정신파가 진득하게 주변을 잠식한다. 민준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저 너머에 쌓인 드래곤 하트를 노려보았다.
차가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
“제것도 아닌 것을 그동안 멋대로 탕진했군.”
민준이 먼저 움직였다.
관리인의 시체를 응시하던 아시프-1는 반응이 조금 늦었다.
“저것도 용혈처럼 몸속에 흡수하실 겁니까?”
민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허공에 고정된 드래곤 하트를 분리하여 아공간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저건 애초에 ‘우리’의 생명력이나 마력으로 바로 변하도록 설계된 게 아니거든. 그게 가능했다면 여기 따로 보관하지 않고 내가 흡수한 채 잠들었겠지.”
용혈은 식량이고 드래곤 하트는 배터리다.
아시프-1은 붉은 결정을 보며 중얼거렸다.
“드래곤은 정말 아낌없이 주는 동물이었군요.”
“아낌없이 주도록 개량한 거지. 우리가.”
그를 도와 작업을 진행하던 아시프-1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나중에 모두가 깨어난 뒤 용을 가축으로 삼지 않고도 모든 것이 수월히 진행될 수 있을까요?”
민준은 찰나의 침묵 후 답했다.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 고민을 유발한 최초의 질문을 떠올린다.
우리는 드래곤에게 사람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
기이하게도 자아의 거대한 강물에 비교하여 한 점 먼지에 불과한 아시프-666, 수형자의 그것이 지금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었다.
방대한 기억의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이 펼쳐진다. 수형자의 기억이 호응하여 내보인 인명부에는 두 드래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례로 읽는다.
‘······로드.’
민준은 첫 만남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보냈던 드래곤을 기억한다.
그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그 이름 아래에는, 로드보다도 더 오래 알고 지낸 용의 이름이 있었다.
‘젠킨슨.’
델에 대한 기억을 뒤적거렸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이어졌다. 태초의 종족으로서의 민준은 그녀를 전략적 가치를 지닌 엔델리온으로 여겼지만, 수형자로서의 그는 델에게 무척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겉으로 표현된 언행은 전자에 치우쳤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민준은 젠킨슨이라는 이름에도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지구에 서식하는 어느 드래곤의 이름이다.
동시에, 참으로 오랜만에 떠올린 벗의 이름이기도 했다.
미미한 티끌처럼 부유하던 수형자의 자아가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관심이었다.
‘젠킨슨은 별탈없이 지내고 있으려나?’
***
젠킨슨은 죽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