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60
261. 사람의 자격 (26)
***
우주 모함이 줄줄이 한 척씩 행성 지표면 가까이 접근했다.
조합장, 라흐강퀴아가 미리 지시를 내려둔 덕분에 출발지 터미널의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민준은 오래 머물 것 없이 다음 차원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휴, 감사합니다.”
생기 넘치는 얼굴로 아시프-1이 웃는다.
폭발하는 별에서 긴급 탈출하고 예정에 없던 용 사냥까지 하느라 소모했던 힘이 다시 전신에 꿈틀거렸다.
창조주가 붙잡은 용들 피를 흡수한 뒤 생명력으로 치환해 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고블린으로 변신해 있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채혈실’로 이동해서 폴리모프를 풀고 피를 뽑힐 것이다. 방금 본 장면을 복기하며 아시프-1은 슬그머니 묻는다.
“···혹시, 결정하셨습니까?”
민준은 오늘 작은 축사 하나를 우주선 안에 구축했다.
아시프-1은 그가 용의 처분을 고민하던 걸 기억한다.
“대충은.”
용을 사람으로 인정할 것인가?
민준이 답했다.
“그들은 앞으로 끊임없이 자격을 증명해야 할 거야.”
아시프-1은 그 말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짐승으로 솎아낸다는 뜻일까?
그렇게 분류된 자들은 용혈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왔을 때, 경제적 효용을 잃은 가축의 말로를 걸을 테고 말이다.
“음···.”
아시프-1은 목구멍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문장을 삼켰다.
‘용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에게 그런 권리를 준 적 없다고 항변할만한 이야기군요. 자신들이 자유 의지로 행동한 결과를, 그 누구에게도 평가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걸 입 밖에 내는 대신 말꼬리를 돌린다.
“다음 경유지 좌표가 이것, 맞지요? 제가 먼저 넘어가서 정리를···.”
“잠깐만. 그 전에.”
아시프-1에게 확인을 맡길 부분이 있었다
모처럼 힘이 넘칠 때 말이다.
“이걸 좀 살펴봐.”
“어라?”
그가 내민 것은 금속 큐브 형태의 아티팩트였다.
아시프-1은 순간 로드의 유품, 즉 드래곤 하트가 봉인된 그것이 아닌가 착각했다. 외형이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은 창조주가 따로 제작한 것이었다.
“발상이 꽤 재밌기에, 비슷하게 만들어 봤지.”
파손된 순간 실존성을 얻는다거나, 존재와 부재 간 경계를 흩트리는 등의 필요 없는 기능을 빼고, 그는 원하는 능력만 여기에 재현했다.
“외부에서 관찰하는 행위가 내용물 성질에 영향을 끼친다고요?”
“그래. 이 안에는 죽은 채로 지휘선에 침입한 고블린의 영혼을 봉인해 놨어. 이름이 ‘하얀 눈깔’이라고 했던가?”
분열을 계속하는 영혼의 기억을 읽는 것은 아시프-1의 힘으로도 불가능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영혼에 계속 신경이 쓰인 민준은, 여기에 약간의 조치를 해 두었다.
“그 영혼은 지금 독립성을 지닌 존재라기보다, 끊임없이 분열하며 변화하는 현상에 가까워졌지. 하지만 이 안에서 관찰당하는 순간은 잠시나마 존재로 고정될 거다. 자, 이대로 들여다봐.”
아시프-1은 시킨 대로 했고.
“···아, 될 것 같습니다.”
가까스로 기억의 편린을 읽어냈다.
***
광산 행성이 폭발하기 직전.
갱도 내 고블린 노예 거주구역.
쉬이이! 쉬이!
쉬쉿! 쉬이이잇!
그곳은 노예들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쿠르르릉!
대지가 뒤틀리며 내는 굉음이 빠르게 절규를 덮는다. 사방에 낙석이 떨어지고 지하 호수의 물은 파도치듯 출렁였다. 땅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더니 쪼개지며 급속히 벌어졌다.
쉬잇! 쉬이이!
휘청거리던 한 명이 갈라진 틈 사이로 발을 헛디뎠다. 쉬이익!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그의 양손이 공기를 긁는다.
– 사, 살려줘!
턱!
그는 간신히 벼랑 끝을 두 손으로 잡고 버텼다. 그러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내가 달려들었다. 손을 뻗어서 매달린 고블린의 팔뚝을 붙잡는다.
하지만.
쿠르릉!
다시 이어진 뒤틀림. 구출을 시도하던 남자의 몸까지 함께 흔들렸다. 결국 상체가 고꾸라지고 다리가 위로 들린다. 허망한 비명이 공기를 찢었다.
– 안 돼!
둘은 동시에 균열 안으로 추락했다.
– 아아아악!
귀를 막고픈 비명이 이어지다가.
멎었다.
‘맙소사!’
아내와 아들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은 하얀 눈깔은,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진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졌다. 보이지 않는 거인이 그들을 손바닥 안에 넣고 주사위 섞듯 흔드는 것 같다.
땅이 경련하는 방향으로 노예들은 거칠게 튕기고 굴렀다. 뇌가 코 밖으로 빠져나갈 것 같고, 뱃속의 모든 걸 게워내고픈 격렬한 요동이 계속된다.
콰르릉!
그럴수록 세상이 조금씩 좁아졌다. 벽이었던 것이 허물어지고 천장이었던 것이 추락해서 발 딛을 곳을 메운다. 그들의 ‘집’이 잘게 쪼개지며 파편의 해일이 되어 밀려들었다.
하얀 눈깔이 알던 세상이 붕괴한다.
이대로면 그의 가족이, 그리고 그가 아는 모든 이웃들이 함께 휘말려 사라질 것이다.
콰직!
– 으아아아악!
또 비명.
울부짖는 여인 곁에는 낙석에 직격당한 고블린이 머리가 터진 채 쓰러져 있었다. 시신의 어깨 언저리에는 뼛조각과 뇌수가 뿌려졌다. 그 너머의 누군가는 땅을 구르다 호수에 빠졌다. 그는 조금 허우적대다가 결국 물길 속으로 사라져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또 누군가는 공포에 질려 발작을 일으키다가 벽에 너무 가까이 붙었다. 붕괴하는 암석의 파편이 그를 삼켰다.
눈이 멀쩡한 이들도 주변을 관찰하기 힘든 환경이지만, 하얀 눈깔은 그들 전부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죽어 없어진다.
이토록 허무하게.
‘우리는···.’
과거에 흐릿하게 머릿속을 떠돌던 감정과 의념이.
그 순간 날카롭게 형태를 갖춘다.
‘우리는 대체, 뭘 위해 지금까지 버텨온 거지?’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살아왔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광석을 캐는 것 외의 삶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자각할 수 있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평생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다가 스러지는 것이었다.
이런 삶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쿠르르릉!
세상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하얀 눈깔은 여전히 품 속의 가족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격렬한 지진 속에서도 그의 시야는 요동치지 않는다.
간절한 기도문 비슷한 노래를 읊조리는 아내와, 악쓰며 우는 아들의 얼굴.
하얀 눈깔은 몇 분 전만 해도 그녀의 왼팔을 보며 슬퍼했다. 그리고 아이가 장차 견뎌야 할 노예의 삶을 상상하며 절망했다.
머릿속에 짧은 의문이 스쳐 지나간다. 그가 아닌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했다.
‘차라리 이렇게 죽는 게 나을지도···?’
그 체념 섞인 목소리는.
‘아니야!’
울분 섞인 내면의 절규로 부정당한다.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비록 고통과 좌절이 가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삶이라도.
앞으로 손에 쥘지 모를 가능성마저 빼앗아버려서는 안 된다.
비록, 삶이 나아질 희망이 터무니없이 희박하더라도. 그 확률이 지독하게 낮을지라도.
‘살아야 해.’
그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안전한 곳,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해.’
과연 그런 장소가 존재하기는 하는지, 있다면 어떻게 갈 수 있는지. 그의 상식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염원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곳으로.
그런 곳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었다면.
— !
그리 염원한 순간.
화아앗!
하얀 눈깔은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강렬한 무언가를 느꼈다.
머릿속이 타들어가는 느낌.
‘아아···?’
둑이 무너졌다.
그의 안에 존재하던 단단한 것, 두터운 벽이 갈기갈기 찢어발겨진다.
그것은 극단적인 감각의 확장이었다. 폭발적이고 경이로운. 감당하기 힘든 정보가 뇌 속에 밀물치듯 쏟아졌다. 육신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홍수처럼 범람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인지는 오감을 초월하여 뻗어나간다.
하얀 눈깔은 그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굳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이성과 감정의 경계에서 폭주하며 외쳤다.
‘안전한 곳! 제일 안전한 곳을!’
백태로 뒤덮인 눈은 진작에 쓸모를 잃었고, 시신경은 거의 기능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보는 풍경이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바뀐다.
‘아?!’
급격한 장면 전환.
고블린의 몸은 여전히 요동치는 지하에 갇혀 있었지만, 시선은 캄캄한 밤하늘 비슷한 곳에 고정되었다.
‘저건?’
거기에는 이상한 모양의 상자들이 매우 빠르게 날고 있었다. 그 각각의 크기가 광산을 삼킬 정도로 크다는 걸 하얀 눈깔은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곧, 그중 특별한 상자 한 개가 그의 주의를 사로잡았다.
무리의 중심에 위치한 그것.
하얀 눈깔은 알 수 있었다.
‘저기로! 저기로 가야 해!’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가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순간.
하얀 눈깔의 핏속에 숨은 무언가 그에게 묻는다.
정말 괜찮겠어?
분명 처음임에도 처음이 아닌 것 같다.
질문에 담긴 의미를 고블린은 알 듯 모를 것 같았다.
하지만 결정은 빨랐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
그러자, 고블린의 안에 남아있던 것이 마저 깨지고 쓸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물가물한 시야를 강렬한 광선이 채운다. 어디에선가 나타난 빛이 주변을 휩쓸었다.
춤추는 빛줄기 사이로 고블린은 자신의 인생을 본다.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숨을 쉬는 매 순간이 힘들었지만, 그 간극을 채우는 짧은 기쁨이 있었다. 방금전 저 빛이 삼켜버린 이들 덕분이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상념과 생각의 이랑을 넘어, 누군가 질문을 반복한다.
정말 괜찮겠어?
그는 생각한다.
후회는 없어.
의식이 끊기기 직전, 고블린은 빛의 회오리가 마지막으로 자신까지 집어삼키는 것을 느꼈다. 예상외로 아프지 않았다. 파동은 부드럽고도 온화했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
아시프-1은 잠시 굳어 있다가.
“···음.”
천천히 자신이 목격한 바를 설명했다.
“아무래도 그 무단침입자들을 화물칸으로 옮겨 놓은 장본인은, 그 하얀 눈깔이라는 고블린이 맞는 것 같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고블린의 기억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은 민준은 감정을 읽기 힘든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랬군.”
아시프-1이 말했다.
“‘그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준은 상념을 털어냈다.
“맞지 않을까?”
고블린은 본래 이능력자가 태어나지 않기로 유명한 종족이다.
“그런데도 엄청난 이능을 발휘했다고 하면···.”
데모닉 고블린.
민준이 그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은 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정보밖에 없었다.
“다른 종족처럼 일정 비율로 꾸준히 이능력자가 태어나는 대신, 특별한 조건에 매우 희귀한 확률로 각성하도록 진화했을지도 몰라. 그 대가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금까지 탄생할 수도 있었던 동족의 이능력자들 능력을, 그 기회비용을 한꺼번에 몰아서 보상 받는다고 하면··· 대충 저울추가 맞다고 해야 할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유전자에 특이점이 없었냐는 부분이다.
어쩌면 위원회가 처음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접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찾고 있던 고블린의 변이 유전자는 사실, 데모닉 고블린과는 별 상관이 없었을지도.
아시프-1이 눈썹을 찌푸렸다.
“하필 그런 최후를 맞이한 것은 왜일까요? 영육이 함께 무너져 내리다니요.”
“저울추 눈금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과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 모든 데모닉 고블린이 그런 운명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허용된 힘의 테두리가 존재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시프-1은 기억에서 본 고블린들의 전승을 곱씹었다.
“그런데, 말이 안 맞는군요. 그 노래와 견주어 생각해도 말입니다.”
“어떤 부분이?”
“그들은 동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태어난다고 했잖습니까. 일단, 그 멸망의 범위가 차원계 전체가 아니라 행성 하나 정도의 수준이라고 쳐도, 타이밍이 좀···.”
“전승에서 묘사하는 탄생이 생물학적 출산이 아니라, 각성을 통한 재탄생으로 해석한다면?”
“그래도 미묘하게 안 맞습니다. 하얀 눈깔은 이미 오래전에 이능력을 각성한 것처럼 보였어요. 그의 눈, 기억하시죠?”
“아아, 그렇지.”
중증의 백내장 환자가 선명하게 사물을 분간한 것은 이능의 영역이다.
하지만 왜 그리도 빨리 각성했는가?
“그때는 아직 본인이 멸망을 인지하기 전이었어요. 그런데도 이능이 개화되었습니다.”
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도 자신할 수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야 그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얀 눈깔이 백내장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가족이 다치는 걸 넘어 본인도 살처분 당했을 거야.”
오로지 하얀 눈깔만이 각성 가능한 개체였다고 가정할 시.
“그가 그때 폐기당했으면, 고블린들은 별이 폭발할 때 전멸했겠지.”
“잠시만요. 설마?!”
“하얀 눈깔이 실명하면 그는 죽어. 그런데 그가 살아야 무리의 핏줄이 이어져. 이에 따른 연역적 결론은, 하얀 눈깔이 ‘멀쩡하게 사물을 볼 수 있어야’ 무리의 멸종을 피할 수 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제가 이해한 내용이 맞습니까?”
“그래. 가능성은 낮지만···.”
민준은 가설을 말한다.
“데모닉 고블린의 능력이 시간에 따른 인과마저 뒤틀어버린 게 아닐까?”
그게 맞다면.
“하얀 눈깔의 영육이 끔찍하게 분해되어 버린 것은 지휘선 위치를 포착하고, 결계를 뚫고, 집단으로 이주한 반동이 아닐지도 몰라. 사실은 시계열적 연쇄와 인과를 뒤튼 반동을 뒤집어쓴 것일 수도 있지.”
심지어 그 반동조차 뒤틀린 인과 속에서 발현되었다는 가설.
“에이, 설마 그 정도겠습니까? 노래 해석이 잘못된 거겠지요. 어쩌면 노예로 부림받는 상황 자체를 멸종 위기로 판단했을 수도 있고요. 더군다나, 고정된 미래라는 건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예언 능력자조차 가장 발생 확률이 높은 경우의 수를 읽는 것이구요.”
아시프-1은 창조주의 말에 어지간하면 찬동할 준비가 되어있다. 민준이 사실 본인은 용을 애호하는 편이라고 주장해도 일단 믿는 척은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만큼은 신뢰하기 힘들었다.
민준이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린다.
“뭐, 아직까지는 확실한 게 없으니까.”
***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고, 아시프-1은 다음 도약할 차원을 정리하기 위해 넘어갔다.
홀로 남은 민준은 잠시 고블린에 대한 관심을 거둔다.
또 하나 확인할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볼까?’
민준은 눈을 감고 내면의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깊이 가라앉은 그가 도달한 곳에는.
=······꺄아아악!=
아드키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