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87
288. 나의 가장 소중한 (23)
***
엔델리온의 행성과 충돌한 직경 3천 킬로미터짜리 구체.
양측 크기 차이를 따지면, 지구에 지름 3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행성이 부딪친 것과 같았다.
인공 행성은 촉수별 지표면에 충돌한 찰나 운동 에너지를 열과 빛으로 바꾸며 폭발했다.
음속을 돌파한 충격파가 먼저 터졌다.
콰아아아!
민준은 채굴 기지의 낙하 위치를 의도적으로 조정했다. 엔델리온들이 골렘을 쏘아 올리고 처형탑에서 파동을 방출하던 부근으로.
따라서 인공 행성은 지표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를 피해 육지로 떨어졌고, 즉각적인 해수(海水)의 쓰나미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에 껍질이 벗겨지듯 솟아오른 대지가 출렁이며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충격파의 뒤를 따라 땅이 원을 그리며 부풀고 젖혀졌다. 그것은 행성을 대상으로 한 능지처참이었다. 살덩어리를 포뜨듯 지각판이 통째로 들어올려진다. 그 상태로 주변을 뭉개며 퍼졌다.
말 그대로, 지각(地殼)의 쓰나미.
쿠르르르르!
두께 50km의 암석층이 종이조각처럼 말리고 분쇄되어 사방으로 덩어리를 쏘아 보낸다.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크레이터는 지상과 지하의 모든 것을 공격하며 불태웠다.
크레이터의 둥근 테두리를 따라 세상이 부서졌다. 파도의 물거품처럼 불티가 튄다. 지각층의 해일 속에서 암석이 융해되다가 종국에는 증기로 변했다.
“으아아아악!”
“살려, 살려 줘!”
“탈출, 탈출해야··· 으아아악!”
기존의 대기를 구성하던 물질은 진작에 분해되어 차가운 우주로 빨려 나가고 있었다. 그 흐름과 함께 킬로미터 단위의 지각 파편들이 대기권 밖까지 튀어올랐다.
대지가 하늘을 향해 유성우(流星雨)를 쏘아 보낸다. 상식이 거꾸로 뒤집힌 광경.
그 사이에도 적갈색의 해일은 경이로운 속도로 질주했다. 증발하는 돌과 불꽃의 파도. 암석 증기에 이끌린 모든 것이 끓어올랐다.
크레이터는 그렇게 행성 표면의 오분지 일을 덮은 후에야 확장을 멈췄다. 지각판의 거친 이동이 끝났다는 뜻.
하지만 별이 겪어야 할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연히도.
모처의 지하 벙커에서, 촉수 달린 오퍼레이터가 외쳤다.
“화염 폭풍이 옵니다!”
암석층이 증발하며 만든 가스는 수만 도의 열기를 퍼뜨렸다.
땅의 해일은 멈췄으나 화염 폭풍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진군한다.
그 열기가 드디어 바다에 닿았다.
콰르르르르!
끔찍한 열과 닿은 바다는 증발이라기보다는 폭발에 가까운 속도로 해수(海水)를 잃었다. 산소와 분해된 수소층은 대기권 밖으로 날려가 허무하게 흩어졌다. 해수면은 초당 10센티미터의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대지가 하늘로 쏘아 보낸 살점과 뼛조각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 그쯤이었다.
“대기권 밖에서 파편이 떨어집니다!”
불덩어리로 변해가는 모성은 기체를 빠른 속도로 우주에 빼앗겼으나, 육중한 돌덩어리들마저 모조리 강탈당하는 것은 면했다.
공허한 묵빛의 우주는 그것들을 친절하게 별에게 돌려주었다.
정확히는, 별의 중력이 파편들을 다시 잡아당겼다.
하늘로 쏘아 보냈던 유성우의 역류(逆流)가 이치에 따라 다시 땅으로 쏟아진다. 대지의 파편이 행성 전역을 잔혹하게 타격한다. 처참하게 드러난 붉은 환부에 자잘한 상처를 더했다. 마그마가 덮은 곳에는 파편이 낙하할 때마다 광열(光熱)의 분수가 솟구쳤다.
그 사이에도 지옥의 증기는 착실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초록 대지와 파란 바다가 빠르게 붉은 불꽃으로 대체된다.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는 촉수별을 둘러싸던 각종 결계를 무효화하거나, 그것과 반발하거나, 아예 그것을 구성하던 마력을 미립자 단위로 분해하며 제2차 폭풍을 준비하고 있었다.
***
채굴 기지에 망령이 출현했을 때 왕은 이미 경계령을 내렸고 많은 국민들이 지하 벙커로 대피했다.
하지만 충돌면 부근의 촉수들은 벙커 안에서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열기와 충격파가 지하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그마의 호수로 변한 그곳에 있던 자들은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주 공간도 맨몸으로 헤엄칠 수 있는 강인한 육신이지만, 행성 충돌의 여파는 그 괴물 같은 몸덩어리를 순식간에 분자 단위로 분해해버렸으니까.
다시 말해, 그들은 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끄으··· 크으으!=
반면, 그런 운을 누리지 못한 국민들도 있었다.
=살려, 살려 줘!=
크레이터 밖.
지각판 해일이 휩쓴 경계선 너머.
열기와 화염 폭풍이 덮친 곳의 생존자들은 얼마나 빨리, 더 깊은 지하로 대피했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도 달라졌다.
=으아아··· 싫어···. 안 돼···!=
여기, 지옥 같은 열기 속에서 몸부림치는 촉수는 한때 자신이 매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아시프-1이 촉수별에 테러를 가했을 때, 군사연구시설은 주요 타깃 중 하나였고 많은 연구원들이 폭발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헌데 이 남자가 근무하던 시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드래곤 하트 폭탄을 다 소모한 아시프-1은 결국 그 콜로니까지는 건드리지 못한 채 귀환했다.
연구원은 그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운에 감사해했다. 기도를 올릴 신은 없었지만 순수한 기쁨으로 우주의 섭리를 경배했다.
그리고, 지금.
=으아··· 으아···. 으아아!=
그는 그때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저주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날 죽었다면.
그랬다면 지금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쿠르르··· 쿠르!
폭풍과 충격파는 벙커의 결계마저 날려버렸다. 그들을 완벽하게 보호해 줄 것 같던 천장과 벽은 증발되어 사라진 지 오래.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벙커를 흔들던 끔찍한 진동과 충격이었다. 정신을 잃은 것은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다. 연구원은 곧 엄청난 고통 속에서 다시 깼다.
차라리 깨지 않았다면 좋았을 터.
=누구··· 아무도 없어?=
그는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여기가 어딘지, 생존자가 더 있는지 알지 못한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눈꺼풀이 녹아 엉겨 붙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가 눈을 떠도 헛수고였을 테다. 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안구는 진작 증발되어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수정체는 말린 과일처럼 쪼그라든 채 안와(眼窩) 밑바닥에 붙어 있었다.
쿠르··· 쿠르르!
달궈진 철판 같은 대지 위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촉수를 움직였다.
그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한 자리에 계속 몸을 대고 있으면 표피가 더 빨리 타서 살점이 바닥에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2번과 18번, 21번 촉수 끝을 잃었다. 살과 땅이 서로에게 접착되어 떨어지지 않다가, 결국 그가 앞으로 움직이는 힘을 못 이기고 가닥이 끊어진 것이다.
연구원은 또한 자신의 11번 촉수와 12번 촉수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불에 태운 고무처럼 서로 엉겨 한 가닥으로 접합된 상태.
=싫어··· 이런 건··· 싫어···!=
그들의 행성이 갑자기 지옥으로 변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시프-666이 어떤 수단을 써서 공격을 해 온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일이 왜 시작된 것인지는 잘 알고 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연구원은 왕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어리석고··· 무능한··· 왕 때문에!=
그녀는 애초부터 이 전쟁을 왜 시작했는가?
싸움을 걸려면, 확실하게 이길 준비를 하고 국민들을 100% 보호할 방도를 갖고 시작했어야 할 것 아닌가?
=왕··· 내가 죽어서도··· 저주를···!=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연구원은 꿈틀거림을 멈췄다. 걸레처럼 변한 수십 가닥의 촉수가 뜨거운 바닥 위에 그대로 익혀졌다.
치이이익! 열기의 공격은 아래에서만 올라오지 않았다. 들끓는 대기 역시 몸을 천천히 망가뜨린다.
그는 계속 단말마의 비명 같은 정신파를 발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악독한 적군보다 무능력한 아군이 더 큰 저주와 증오를 받았다.
=왕! 너는··· 이것보다 더 끔찍한 고통 속에서··· 필히···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엔델리온은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촉수를 들어올린다.
=더는, 안 돼. 싫어!=
그리고 단단하게 굳힌 그것을 몸의 중앙에 가져다 댔다.
몇 번 더듬으며 촉감으로 정확한 위치를 가늠한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힘을 주어 밀어 넣었다.
푹!
열기 때문에 흐물거리는 껍데기가 뚫리는 느낌이 났다.
그는 녹아내린 눈꺼풀 자리를 관통하여 촉수를 힘껏 쑤셔 넣었다.
꾸르르르!
한 개로는 부족하다. 그는 세 가닥의 촉수를 더 눈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자 상반된 감각이 동시에 그를 찾아왔다. 바깥에서는 살이 닿는 모든 곳이 뜨거웠지만 몸 속에 넣은 촉수는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면 달궈진 촉수가 관통하는 눈꺼풀 안쪽은 미칠 듯이 쓰리고 아팠다.
꾸르륵!
연구원은 눈구멍 안으로 촉수 네 가닥을 깊숙이 쑤셨다.
자신의 몸속으로 스스로의 살점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입과 눈의 위치를 착각한다면 엔델리온이 자기 촉수를 잡아먹는 모습 같기도 했다.
=으으, 으으으!=
어느 순간부터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왜. 내가 왜! 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해!=
자기 굴을 찾아가는 뱀처럼, 촉수는 계속 눈구멍 안쪽으로 들어간다.
꾸역꾸역, 갈 수 있는 곳까지 계속.
그러자 곧, 기다리던 감각이 찾아왔다.
엔델리온에겐 뇌를 보호하는 골격이 없다. 하지만 두개골을 대신하여 중요 장기를 보호하는 질긴 막이 존재했다.
우주를 헤엄치는 상태에서도 안의 것을 보호할 수 있는 두꺼운 보호막.
=아아!=
날카롭게 굳힌 네 줄기의 촉수 끝이 막에 닿았다. 연구원은 안도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어쩌면 전자의 감정이 더 컸을 지도 모른다.
뜨겁다. 아프다.
더 버티기에는 너무도 뜨거웠다.
연구원은 남은 힘을 동원하여 촉수를 힘껏 밀어 넣었다. 그러자 단단한 막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항하던 벽에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촉수가 더 깊이 들어간 걸 느낀 순간.
푹!
그는 비로소 달콤한 어둠을 맞이했다.
***
엔델리온의 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몸에서 힘이 쫙 빠지는 것을 느꼈다. 대륙 심저에 위치한 왕실 전용 벙커에서, 눈 앞에 펼쳐진 스크린을 응시한다.
“나의···.”
단어가 허공에 뒹굴었다.
“나의 별이···!”
그녀는 가슴 속에서 치밀고 올라오는 감정과 싸웠다.
엔델리온이라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그것은, 공포였다.
그들 종족을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동인(動因).
공포는 그들을 위대한 단계까지 끌어올린 필수불가결한 감정이다.
“아아.”
엔델리온이 ‘태초의 종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들은 위원회를 구성하고 전 차원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온 초인들이 이 세상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것조차 무서웠기에.
그런 미래를 원천봉쇄하는 계획을 세웠다.
엔델리온의 창조한 모든 것이 그러하듯,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장면 역시 그 근원을 되짚으면 공포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야···!”
그녀는 중얼거린다.
나는 그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을 뿐인데.
그 결과, 그들 동족을 더 큰 위험으로 밀어 넣은 결과가 되었다. 공포에서 시작된 시도가, 더 큰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왜?
콰르르르르!
지상의 풍경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화염 폭풍이 행성 표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계속 넓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신하가 절규하듯 외쳤다.
“행성 전역에서 결계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이미 통제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엔델리온들은 구조 신호를 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영계 통신의 장애는 그런 외침을 가로막았다.
물질계에서는 어떤 파동도 빛의 속도를 초월할 수 없기에, 위원회는 초장거리 통신에 영계를 활용한다.
영계에는 공간을 분리한 벽이 없으며 한 지점에서 생겨난 입자의 상태 변화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동일한, 혹은 대칭되는 상태 변화를 즉시 유발하는 특성을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수단마저 먹통이었다.
“우리 행성은 물론이고, 근방 전역의 영계가 완전히 뒤집혀진 상태입니다!”
어떤 종류의 마법이든 영계에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지금은 충돌 여파로 행성급 결계가 붕괴하며 폭주하는 상황.
그리고 마력의 폭주는 영계에도 상응하는 아수라장을 만들어 냈다.
전통적 통신 수단에 비유하면, 현재 이 근방의 우주에 전자기파가 폭주하여 모든 전파 통신이 무용지물이 된 상태인 것처럼. 영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
위이이이잉!
왕은 몸이 차갑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심리적인 동요 때문만은 아니었다. 벙커를 관리하는 인공 지능이 냉방을 가동하고 있었다.
행성 충돌면 반대편, 가장 깊숙한 지하의 벙커임에도 지상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실내 온도가 급속히 상승하자 인공 지능은 최대 출력으로 냉풍을 순환시켰다.
왕은 애가 끓는 목소리로 외쳤다.
“···지원군은 온다!”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영계 통신이 무력화되었다고는 하나, 위원회 본부에서는 이 상황을 똑똑히 목격했을 터다. 본부 행성은 여기에서 고작 몇십 광초 떨어져 있으니!”
위원회는 엔델리온 없이 존속할 수 없다.
그러니 토드와 카바이트는 지원 병력을 보낼 것이다.
냉방에도 불구하고 점차 뜨거워지는 공기를 느끼며, 왕은 다시 한 번 뇌까렸다.
본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
윰투스는 교황에게 보고했다.
“함내 시간으로 10분 뒤, 위원회 본부 행성이 사정거리 내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