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35
35. Princess Run (10)
쾅!
“큐뤡!”
민준은 절규하는 공주를 안은 채 몸을 날린다. 그대로 차체 천장을 찢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림자 괴물이 현신하여 몸에 반쯤 융화된 상태였다.
시야가 순식간에 전환. 사방이 뚫린 허공에서 상황을 파악한다. 들끓는 그림자 너머로 아래를 보았다.
“!”
그들이 타고 있던 의전차량은 발사체 같은 말벌들이 무자비하게 관통했다. 1초 남짓한 시간에 수천 개의 구멍이 뚫렸고, 또 뚫리고 있었다.
쇠와 유리가 찢기고 저며지는 광경도 잠시였다.
콰쾅!
공기가 터지는 굉음. 차량이 폭발하며 묵직한 울림이 닿았다. 민준은 타오르는 잔해 속에 생명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미처 구하지 못한 운전사와 올가는 즉사했다.
‘젠장!’
그 사실에 안타까워할 여유도 없었다.
위이이잉!
무수한 벌레 떼는 서로 뭉치며 한 덩어리처럼 솟구쳤다. 잠시 날개 짓을 하나 싶더니 다시 그것을 접고 동그랗게 몸을 만다. 그리고.
피슝!
파파팟!
또 한 번 무자비한 포탄이 쏟아졌다. 민준은 그림자를 얇게 펴서 구체를 만들며 몸을 보호했다. 품 안의 악어는 굳어 꼼짝도 못했다.
‘이게 대체 몇 마리야!’
말벌은 얼핏 봐도 수만 마리 정도 되었다. 이 정도면 대비 없이 마주칠 경우 용도 하나 잡을 수 있는 재해다.
퉁! 퉁! 투투퉁!
그림자를 연타하는 충돌음이 귀를 때리고, 흑마력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적군의 집중 포화 앞에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 민준은 빠르게 머릿속에서 패를 넘겼다.
육탄전을 펼치는 말벌에게 힘으로 대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쏟아지는 산탄을 향해 주먹질하는 꼴.
‘아니면, 저주?’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저주를 걸 상황이 아니다. 허공에 거대 마법진을 그리면서 광역 저주를 발동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민준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콰직!
그의 이빨이 날카롭게 변하면서 자신의 혀를 씹고 조각냈다. 며칠 전 인권연대 마법사가 팔뚝살을 물어 뜯으며 만든 주문과 원리는 같았으나,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이 끓어올랐다. 절단된 혀는 즉시 회복되었지만 마력은 그대로 남았다.
핏덩이와 혓바닥이 입 안에서 녹아내리더니 불꽃으로 화한다. 민준은 그림자를 기울여 틈을 만든 뒤 그 사이로 힘껏 핏빛의 불을 뿜었다.
화르르륵!
리튬의 불꽃 반응 같은 색상의 화염폭풍이 벌레 떼를 덮었다. 일반적인 불길과 다른 점은 색상에서 그치지 않았다. 불은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짐승처럼 벌레에서 다른 벌레로, 그 벌레에서 또 다른 벌레로 옮겨붙었다.
그림자 너머까지 숨 막히는 열기가 전해지자 공주가 경악했다. 그나마 민준이 보호하고 있어서 버티는 것이지, 밖의 상황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열기가 열기를 잡아먹고 불꽃이 불꽃을 불살랐다.
통제령 때문에 도심 지상은 텅 비었지만, 더욱 아무것도 없어야 할 하늘을 난폭한 불의 강이 자욱하게 덮었다.
‘이 정도면 내장이 익어버리기에 충분하지!’
외피가 강력한 금속이라고 해서 안의 살점과 체액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순간적인 가속 비행 때문에 생긴 마찰열은 이겨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가열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곧, 놈들 내장은 주물 냄비 속 고기국처럼 끓어오를 것이다.
민준은 그렇게 의심치 않았다.
“!”
피슝!
간헐적인 ‘총알 비행’을 하는 벌레 떼가, 몸에 불을 붙인 채 계속 공격하는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이 새끼들?!’
민준은 감각을 확장시키며 말벌들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개체 하나 하나를 보면 너무 작은 생명체라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분을 뒤늦게 인지했다.
엄지손가락 만한 생명체라고 해도 미세하게 깃들어야 할 그것이 없었다.
생명력.
민준은 이를 갈았다.
‘이것들, 언데드다!’
언데드가 된 포유류는 시간이 지나면 피부와 살점이 녹고 내골격만 남는다. 걸어 다니는 해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데드가 된 곤충은?
당연히 외골격보다 안에 든 것이 먼저 썩는다. 그대로 시간이 흐르면 포유류와 반대로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외피가 쉽게 손상되지 않는 단단한 물질일수록 온전히 남는 것은 당연.
민준은 내장이 끓고 있을 곤충들이 왜 계속 움직이는지 이해했다. 애초에 그것들은 제 기능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내부 유기물이 망가진 상태로, 감각기관 및 운동기관의 역할은 그 안에 차오른 마력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 결과 자신들을 추적해 오는 움직임은 살아 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퉁! 퉁! 투투퉁!
민준은 통하지 않는 불꽃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금속 언데드들은 쉴 새 없이 육탄박치기를 날리며 그림자 위에 충돌했다.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불티가 연달아 튀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능력자들은 손쓸 엄두도 못 낸 채로 위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함부로 끼어들었다간 단번에 다진 고기가 될 판이었기 때문. 벌레 떼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다른 슈탄인도 많은데 오로지 공주만 노리고 있다.
‘여기서 계속 버틸 수 없어.’
살아있어도 골치 아픈 재해 생물인데 심지어 언데드다.
민준 혼자라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겠지만 공주까지 보호하면서 잡아 없앨 상황이 아닌 것.
‘당장은 결계가 필요하다.’
이 공세에서 몸을 빼내고 숨을 돌릴 만한 거대한 보호막이. 시간을 들여 구축해야 하는 마법진으로 발동하는 결계가.
=······!=
민준은 지상에 있는 브래들리의 뇌리에 사념파를 박아 넣었다. 약속한 것의 네 배나 되는 보수가 예정되어 있으니 밥값을 할 차례였다.
답을 기다리지 않고, 민준은 마력을 한 뭉텅이 끌어모으며 주문을 만들었다.
초고속의 비행술.
피슝!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일렁이는 그림자에 덮인 요원이, 자기보다 큰 악어를 껴안고 하늘을 가로지른다.
그 뒤는···.
우우우웅!
검은 모래 해일 같은 말벌 떼가 쫓았다. 놈들은 계속 총알처럼 날 수는 없었다. 날개를 접고 육탄 박치기를 한 뒤에는 다시 얼마간 날개를 펴고 정상적으로 비행해야 했고, 그 순수한 속도는 민준의 이동속도 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
서울 하늘 위에서 벌어진 일 대 수만의 추격전.
두르르릉!
강철 모래처럼 그림자를 두드릴 때마다 진동이 전해졌다. 흑마력이 일그러지며 몸 곳곳을 진탕시켰다. 공주 역시 그때마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차라리 혼자였으면 수월했을 텐데!’
악어를 보호하려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꼴이 된 것이다. 그는 잘 넣어둔 백지 수표의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느꼈다. 젠킨슨은 지구에 복귀한 뒤, 이계 은행 쪽에 대출 상담을 받아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퉁! 투퉁!
질주, 충돌, 뿌리치고 달리는 도주가 이어진다.
그 아슬아슬한 추격전 끝에.
‘보인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민준이 판단하기로 고룡의 레어 보다도 철저한 방어체계를 갖춘 건물이 그곳에 있었다.
바로, 그가 소유한 2층짜리 상가다.
사념파가 닿을 거리를 확보한 뒤 급하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사장님! 동철이 데리고 가게 안에서 움직이지 마요!’
민준은 힘을 쥐어짜며 아래로 급하강했다.
탓!
드디어, 익숙한 걸 넘어 반가운 건물 옥상 위에 발을 딛었다.
쿵!
거칠게 손을 뿌리자 공주가 콘크리트 바닥 위를 뒹굴었다.
“크퉤에!”
내팽개친 공주가 내지르는 소음을 무시한 채 민준은 옥상 바닥에 손을 댔다.
그리고, 이 상가에 배치된 결계 중 가장 강력한 종류를 끌어낼 수 있는 트리거를 작동시킨다.
민준 자신의 마력이었다.
위이이잉!
본래 푸른 빛과 흰색 외 색상이 없어야 할 맑은 하늘을, 먹구름처럼 빽빽하게 덮으며 곤충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윤곽. 괴수가 아가리를 벌리듯 한 점을 향해 집중하여 쏟아진다. 민준이 서 있는 옥상을 향해.
하지만 간발의 차였다.
화앗!
에델리네스를 쫓아냈던 ‘축객의 결계’ 때 보다 훨씬 눈부시고 강렬한 섬광이 건물 주변을 덮었다.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마법진에 민준이 직접 접촉하며 마력을 주입한 결계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두터운 황금색 배리어가 상가를 감싸고.
퉁! 투투퉁!
투투투투퉁!
방공호 벽에 미사일 포격을 퍼붓듯 금속이 충돌하는 소음이 이어졌다. 닫힌 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리는 광인의 몸부림과 같았다.
소리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멈추지 않았다.
***
“퉽타아튑퀩퓃텍퀙!”
휠체어에 탄 늙은 엘프가, 괴성을 지르는 악어를 보며 중얼거린다.
“이보게, 이 여성분··· 혹시 비명을 너무 질러서 성대가 상한 것 아닌가? 아까부터 계속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시는데.”
2층 사무실에서 결계의 핵을 손보고 있던 민준이 담담하게 답했다.
“원래 그런 목소리입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2층으로 내려온 뒤부터 공주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난데없이 습격을 당하고, 사람이 죽고, 여기까지 쫓겨온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도 했지만 듣고 있으니 귀가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으··· 으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엘프와 함께 올라온 동철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공주의 생김새 때문에 마찬가지로 비늘이 달린 어떤 종족이 생각난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천성적인 ‘피어’가 없기에 그때보다는 훨씬 견딜 만한 것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저런 고약한 것들을 여기까지 끌고 와서.”
상가에 레이크필드와 동철이 있는 건 예상했지만 미리 대피하라고 알려줄 시간도 없었다. 충분히 접근하고 나서는 섣불리 도망치게 유도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냥 안에 남아있으라고 사념파를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준 옆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레이크필드는 괘념치 말라는 듯 말했다.
“신경쓰지 말게. 어련히 자네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랬겠지.”
실제로도 그랬다.
“지금 이민국과 통화했습니다. 저 벌레 떼는 곧 처리될 겁니다.”
수만 마리 말벌을 언데드로 만든 술자는 저들을 모두 통제할 만한 능력까지는 없는 듯했다. 그래서 공주의 몸에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살아있을 때와 동일한 본능에 맡긴 채 풀어놓아도 목적에 맞는 움직임을 보이도록.
그 증거로 지금도 벌레 떼는 포기하지 않고 결계에 충돌하며 헛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다.
“이민국의 다른 이들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겠는가?”
민준이 최고의 요원임을 아는 레이크필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원군이 온다고 뭔가 달라질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저것들, 언데드입니다.”
“······아! 그렇군. 이해했네.”
그 말은 언데드의 약점을 찌를 수 있는 능력자가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민준은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업계의 종사자 말이다.
“그건 그렇고.”
소음 발생기가 된 공주를 보면서 물었다. 사념파와 음성으로 동시에.
“=제 말 이해되지요? 이제 조금만 진정하십시오.=”
하지만 공주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계속 뭐라뭐라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말이 한 방향으로만 통하니 이건 뭐···.”
그는 혀를 찼다. 통역사인 올가는 죽어버렸고 민준은 슈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위원회에 구속당하기 전에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 번 배운 언어 같은 것은 기억소거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까.
공주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철제 구조물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공명하여 창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 사이 민준의 신경까지 점점 더 곤두서고 있었다.
“=차분하게, 제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우리 둘이 공통으로 아는 문자가 있을 겁니다. 필답으로 알려주시겠습니까? 오늘 하룻동안 다른 누군가와 ‘접촉’한 적이 있는지요.=”
그는 공주의 몸 속에 끓어오르는 화학물질이 어디에서 옮아온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했다.
‘공주가 먹고 마신 모든 것은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그 쪽은 아니야.’
또한, 말벌이 습격한 현장에서 그는 곤충 떼가 다른 슈탄인은 습격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했다. 공기 속에 퍼진 물질을 흡입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랬다면 함께 움직인 자들도 모두 중독되었을 것이고 슈탄 체내 물질에 반응하는 그것이 수행원에게도 똑같이 반응해야 했다.
결국 공주만 무언가를 만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레이크필드가 손벽을 쳤다.
“아, 그렇지! 자네도 참··· 지금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겐가?”
“네?”
“동철아. 저기 창고 가서 그것 좀 가져오너라.”
고블린은 냉큼 옆 방 창고로 가서 엘프가 언급한 것을 들고 왔다. 자기 집처럼 익숙한 반응이었다. 민준은 동철이 손에 쥔 에고 후라이팬을 보고 옅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레이크필드에게 말했다.
“저걸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엘프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정말로?”
“이 외계인이 시끄럽긴 하지요? 하지만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후드려까서 기절시키는 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아직 확인할 사항이 하나 남아서···.”
“아니 지금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저 안의 인공지능이 매번 자기를 홍보하면서 떠드는 소리 벌써 잊어버렸나?”
사실은 저기 처박아 놓은 뒤 한 번도 손에 쥐지 않았다. 반면 레이크필드는 고향의 요리가 그립다면서 몇 번 빌려간 경험이 있었다. 민준은 그걸 캐시에게는 절대로 빌려주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종종 대여해 주곤 했으니까.
“이 후라이팬, 불 위에 올릴 때 이상한 소리 내는 게 흠이라서 그렇지 실은 꽤나 고급 기능이 장착된 명품이라네.”
“그건 저도 알고 있지만···.”
“자네, 이 제품에 정신교감 기능이 있는 거 잊었나?”
“?!”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저 상변태가 그에게 했던 말이.
=······또한, 비접촉 정신 교감을 통해 그 어떤 언어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니 의사소통은 걱정 마세요! 아흐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