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38
38. Princess Run (13)
***
드래곤의 성격적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많은 이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탐욕.
금은보화를 향한 그들의 집요한 욕망은 잘 알려져 있지만 재물욕은 어디까지나 부수적 측면이다. 드래곤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권력욕이니까. 재물 역시 그들에게는 권력을 쥐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산란된 후 알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용은 다른 종족 태아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또렷한 이지와 높은 지능을 갖추고 있다. 부화하기 전, 부모는 주입교육에 가깝게 용이 얼마나 위대한 종족인지 태담(胎談)을 속삭인다. 그들의 우월한 마력과, 단단한 몸과, 탁월한 지성과, 압도적인 지위에 대해서.
덕분에 자신에 대해 한없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리며 부화를 기다리던 용은 껍질을 깬 뒤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알 속에서 상상하던 완전무결과는 거리가 먼 자신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흐물흐물한 비늘과, 미약한 마력과, 아직 그리 탁월하지 못한 지능까지. 상상했던 것과 다른 유한성과의 조우는 무력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많은 드래곤들은 부모를 질투하면서 자라난다. 자신 역시 시간이 지나면 연장자처럼 우월해질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은 그들을 충분히 달래 줄 수 없다. 그가 나이를 먹고 힘을 얻으면 부모는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래곤의 심리적 성장과정은 질투와 열등감과의 끝없는 사투로 정의된다.
그리고 많은 용족은 그런 마음의 그림자를 다른 종족에게 투사하여 해결하곤 한다. 보다 열등한 종족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희열은 그들에게 편안한 감정을 선사하기에.
유아기에 형성된 성격은 삶의 오랜 시간 영향을 끼치며 상당수 드래곤은 나이를 먹은 후에도 다른 종족을 압도하고 지배하면서 만족을 느꼈다. 범차원적 통계는 없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드래곤은 굳이 따져 보면 6할 이상은 될 것이다.
젠킨슨은 그 6할 안에 드는 자였다.
“뭐? 자네, 지금 내게 뭐라고 했지?”
금발을 단정하게 정리한 양복 차림 남자가 싸늘한 눈매로 부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길을 받은 엘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 차가운 불꽃을 동공에서 쏟아 내고 있는 그는 인간 기준으로나 엘프 기준으로나 어려 보이지만, 사실 그 정체는 천 살 넘게 살아온 고룡이었다.
조금 더 묘사를 덧붙이자면, 요 며칠 간 섭식(攝食)성 조직개편 및 정리해고를 몇차례나 고려했을 정도로 단단히 빡이 쳐 있는 고룡.
엘프는 절망감 속에서 생각했다. ‘이번 출장에는 나 말고 비서실장이 따라왔어야 했는데!’
“죄··· 죄… 죄··· 죄송합니다!”
“멀쩡하던 차원도약선이 왜 갑자기 고장이 나!”
북한산 창고가 털렸다는 보고를 받은 뒤 젠킨슨 일행은 위원회에서 곧바로 출발했다. 지구까지는 여섯 번의 차원도약이 필요했고 그들은 어제 막 다섯 번째를 마친 뒤였다. 지금 중간 기착지로 머물고 있는 차원에서 딱 한 번만 더 도약하면 지구로 진입한다.
그런데,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출항이 연기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다.
“어디가 고장인데! 대체 뭐가 문제야?!”
“그, 그건··· 아시다시피… 저희도 잘···.”
급하게 복귀하느라 젠킨슨은 도약선 하나를 통째로 위원회로부터 임대한 상태였는데, 지금 그 위원회의 소유물에 말썽이 생겼다는 것이다!
“수리에 얼마나 걸린다는 건가?”
“지구 시간으로··· 3일쯤···.”
“뭐라고?!”
젠킨슨은 화를 누르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용의 모습으로 돌아갈 태세다. 애꿎은 엘프는 졸도하기 직전이었다. 드래곤은 간신히 화를 가라앉혔다.
분노가 갑자기 끓어오른 이유도, 그것이 다시 가라 앉은 이유도 모두 불안한 감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위험하다!’
민준에게 일을 맡겨 놓긴 했지만 자신이 최대한 빨리 지구로 들어가서 수습할 일이 많았다.
그가 맡은 구역, 즉 한국은 영토가 좁고 인구도 많지 않지만 세계 GDP의 5%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이다.
전통적인 에너지, 식량, 광물, 의료 산업이 붕괴한 현대에 마법은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으며 한국은 그 분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이었다. 마법의 특성상 ‘사람이 지독하게 갈려 나갈수록’ 뛰어난 아웃풋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이 이 나라의 선전에 한몫 했다.
다시 말해 그런 중요한 지역을 담당하는 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용족은 많았다.
이대로면 그가 쥔 권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
“다른 도약선은? 위원회에 허가 받은 도약선이 이거 말고 하나도 없나?! 빨리 찾아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젠킨슨이 위원회와 협조한 결과 지구로 진입하는 도약은 막지 않았지만, 지구에서 나오는 도약은 모두 봉쇄한 상태. 그것이 급하게 전세를 낸 이유 중 하나였다. 한 번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굳이 지구로 가려는 무역선이나 여객선은 찾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 것.
상식적으로, 지금 와서 다른 배를 찾아 봤자 당장 나올 리가 만무했지만···.
“저, 사실은, 이미 찾아봤습니다···!”
비서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내민다. 그것을 읽은 젠킨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바로 오늘 지구로 진입한다고 신고를 하고 위원회 허가까지 받아 놓은 도약선이 하나 있긴 했다.
하지만.
“젠장, 여긴 너무 멀잖아!”
그 배가 출발하는 차원은 지금 젠킨슨 일행이 있는 세계에서 너무 멀었다. 다른 여객선을 잡아타서 몇 번의 도약을 거치는 동안 이미 지구로 가 버리고 없을 것이다.
‘이것도 전세선이군. 하긴, 이 상황에서 지구에 들어가려면 이 방법 밖에 없긴 하겠지만··· 음?!’
그는 짜증 속에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전세선에 탄 단 한 명의 승객에 대한 정보를 읽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위원회에 신고된 명부에는 이름은 없었지만 다른 사항이 적혀 있었다.
‘······왜 이 종족이 이런 상황에서 혼자 지구로 향하고 있는 거지?’
그 순간.
삐릭!
엘프가 뭔가를 확인하더니 쭈볏거리며 말했다.
“아, 저··· 회장님! 지금 지구에서 캠벨 비서실장으로부터 통신이···.”
용은 상념을 털어 내며 그것에 응했다. 지독한 불운이 연달아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좋은 소식이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몇 초 후, 보고를 받던 엘더 드래곤은 통신기를 부술 뻔했다.
***
지하 주차장에서 처참한 시신을 확인한 뒤, 블레어는 바로 젠킨슨에게 통신을 시도했고 공주가 즉각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민준의 의견을 전달했다.
비서실장은 현재 상황을 최대한 침착하게 보고했다. 아직 인권 연대 고위층에 대한 정보를 캐내지 못했고, 북한산 창고에서 도난당한 장태준의 연구 자료 및 시료 행방 역시 오리무중이며, 베르미 공주는 대낮에 대로에서 습격당했고, 그 사실이 언론에 쫙 깔린 상태인데다가, 해외에서 초빙한 요원 다수가 끔찍하게 살해당했다고.
이 모든 보고를 마친 뒤 비서실장은 마법 영상에서 젠킨슨을 잠시 놓쳐버렸다. 잠깐동안 그녀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은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색뿐이었다. 뒤늦게 젠킨슨이 영상기록장치 해상도를 조종한 후에야 그녀는 콧구멍에서 불을 뿜는 고룡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통신을 마친 그녀에게 민준이 물었다.
“허가는 받았습니까?”
비서실장은 핼쑥한 얼굴로 말했다.
“네. 회장님이 위원회 쪽에 직접 이야기하셨습니다. 베르미 공주님이 타고 온 차원도약선에 한해서··· 오늘 출항이 가능합니다.”
차원 장벽을 경계로 아웃바운드가 완전히 막힌 상황이었지만, 위원회에서 예외적으로 그녀의 배만 통과시키도록 설정을 다시 한 것이다.
더 이상 한가롭게 차량을 타고 돌아다닐 상황도 아니었기에 동원된 마법사들의 힘으로 공주와 수행원, 요원들을 통째로 텔레포트 시켰다. 목적지는 영종도였다.
잠시 후, 그들은 인천 공항 내 도약 터미널의 VIP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우웅! 우우웅!
공주는 통역을 위해 챙겨온 후라이팬과 내용을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민준은 옛 동료에 대해 생각했다.
‘비접촉 정신교감이라.’
브래들리가 지녔던 능력의 열화 버전이 후라이팬에 내재되어 있다. 절대 흔한 능력이 아닌데 말이다.
저런 종류의 통역은 우주의 모든 언어를 저장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촉하는 초월적인 기적이 아니라, 발화(發話) 순간 화자의 언어화된 표면의식을 읽는 원리. 다시 말해 제한적인 독심술이다.
접촉 없이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자는 드물었고 민준이 아는 이도 브래들리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는 능력을 통역 보다는 잔류 사념을 읽고 추적하는 쪽에 활용했지만 말이다.
민준의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다시 공주가 들고 있는 후라이팬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다.
‘그런 희귀 능력을 고작 조리도구에게 이식했다고? ······역시, 이상하다.’
이 사실을 젠킨슨은 모르는 것 같았다. 대외적으로 배부된 제품설명서에 따르면 저 모델에는 원래 저런 기능이 장착되어 있지 않다.
더군다나 이민국을 통해 들어 보니 소송 때문에 해당 모델은 대부분 회수 및 폐기 처분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공주가 들고 있는 저것이 전 우주에 단 하나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잠시 후라이팬에 대해 생각하던 민준은 다시 생각의 방향을 돌려 브래들리를 기억하고 추모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런 희귀한 능력자라면··· 퇴소 후에도 남 부럽지 않게 살았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다. 그를 주시하던 공주가 무어라 말했고 후라이팬이 전과 다른 진동을 울렸다. 자신에게 손을 뻗어 달라는 뜻.
평소 같으면 무시했겠지만 지금 저건 공주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다. 후라이팬의 통역을 통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 그대의 친우가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수형자 동료라는 것까지는 모르지만 어떤 계기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설명해 둔 상태였다.
다른 요원들 간 오가는 대화를 후라이팬이 듣고 전한 모양이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군.”
그녀의 두 눈에는 죄책감과 염려가 깊이 묻어 나왔다. 민준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공주님 잘못이 아닙니다.”
베르미 공주는 자신을 노린 자들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이쪽 세계는 유난히도 종족 간 갈등이 심하다고 하더군.”
“······고작 몇 십 년 동안 일곱 차례나 집단 이민을 받아들인 사례는 매우 드뭅니다. 뻔히 예상되는 결과였지요.”
“자신의 영역에 낯선 생물이 돌아다니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본능이지. 충분히 이해는 간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서 생기는 원초적 방어의식이니까.”
그녀는 인간으로 치면 한숨에 해당하는 제스처를 보이며 말했다.
“우리 세계는 집단 이민이 몇 백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족 전쟁을 여러 번 치러야 했다. 원주민과 이주민 중 그 누구도 ‘이방인’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보여줘야 불안이 사그라들 터인데, 위원회는 그 부분에 있어서 실패했어. 물론 가장 큰 희생양은 우리였지. 슈탄은 처음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종족이었으니까.”
민준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 들었던 내용과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족 전쟁 전 역사는 거의 소실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중 일부는 전해지는 것도 있다.”
그들의 대화를 끊으며 블레어가 다가왔다.
“도약까지 앞으로 몇 시간 정도 더 대기해야 할 것 같아요. 지구로 들어왔을 때와 비교해서 도약선 화물 중량이 많이 차이 나서 이유가 뭔지, 혹시 밀항자 그룹이 숨어 탄 것은 아닌지 추가로 검사하고 그 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생명 반응이 없었으니 바로 승인은 날 겁니다.”
그러자 공주가 노골적으로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폐를 끼쳤군. ······오랜만에 외계로 나온 참에 보석을 좀 구매하였다.”
민준은 그녀가 걸친 화려한 스케일 아트를 보며 생각했다. 저 종족은 보석이 의복 개념을 대신한다. 인간으로 치면 외국을 나온 김에 의류 쇼핑을 실컷 한 것과 같았다. 물론 그녀 자신은 어제까지 호텔에서만 머물렀으니 밑의 사람들이 알아서 리스트에 있는 물건을 쓸어 담아 도약선으로 다이렉트로 옮겼을 것이다.
‘뭐, 돈이야 썩어 날 테니까.’
어쨌거나, 이번 호위 임무의 마지막 단계가 목전이었다. 공주를 안전하게 고향 차원까지 ‘배달’하는 것. 운송 행위 자체는 도약선이 알아서 할 테니, 그의 책임은 이곳에서 이대로 몇 시간 버티다가 안전하게 배웅하는 것까지다. 그 뒤에는 브래들리를 그렇게 만든 범인을 추적해서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조져놓···.
“으아아아악!”
“?!”
그런 민준의 상념을 끊어 놓은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함께 온 요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옥상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