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40
40. Princess Run (15) – 무료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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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라는 이름의 원형인 테오도르(Theodor)는 신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크리스티안센(Christiansen)은 기독교인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가 태어날 즈음 이미 전통적인 지구 종교의 명맥은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문화 곳곳에 스며든 흔적은 이름에 고스란히 남았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독실한 기독교도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재능이 정말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아도취에 빠지곤 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그는 신의 섭리를 희롱하는 데 매우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
‘테, 테오! 이게 대체··· 오, 주여!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니?!’
흑마법사로서 그는 죽은 자를 걷게 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으며 그 최종적인 목적은 자신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제물로 오크와 고블린을 고른 것은 그들 종족에게 개인적인 증오를 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으로 만연하면, 해당 집단에 진심으로 분노하지 않는 자들까지 쉽게 폭력을 휘두른다. 사회가 신경을 덜 쓰고 경찰이 헌신적으로 보호하지 않을 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수월하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테오 크리스티안센도 굳이 분류하자면 그런 쪽이었다. 그리고 그의 폭력은 상대를 흑마법의 제물로 바치거나 좀비로 소모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네, 무료로 음식을 드립니다. 일자리도 주선해드려요!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유럽 곳곳에서, 그 중에서도 특히 동유럽에 집중되어 나타난 고블린 집단 실종 사태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꾸준히 수사를 요청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수의 오크까지 사라지기 시작하여 건설 및 농업, 어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자신감이 지나쳤던 테오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슬아슬한 선을 넘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같은 기간 인권연대가 살해한 인외종족보다 훨씬 많은 수를 납치해서 죽였다.
‘여기다! 테오 크리스티안센이 여기에 있다!’
엘더 드래곤까지 합세한 추격전 끝에 그가 이끌던 오슬로 학파는 붕괴했고 테오는 긴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연구는 멈추지 않았으며, 인권연대와 꽤 좋은 파트너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서로 지향하는 목적지는 달랐지만 가는 길이 겹쳤던 것이다.
양쪽 모두 인간이 아닌 자들의 피와 고통, 시신을 필요로 했기에.
또한, 테오는 흑마법사 답게 원한을 잊지 않았고 베르미 공주의 경호 요원으로 ‘그’가 합류했다는 첩보를 전달받자 즉각 지원했다.
‘이건 제가 맡지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산 채로 살을 뜯고 뼈를 씹어도 시원치 않을 상대에게 복수할 좋은 기회였으니까.
더군다나, 그 뒤를 봐 주던 레드 드래곤도 지구에 없는 상태라니 이 상황은 말 그대로 ‘신의 선물’과 같았다.
그랬어야 했다.
쉬이이익!
쾅! 쾅쾅쾅!
테오 크리스티안센의 손에서 쉴 새 없이 불꽃이, 산성 용액이, 검은 구름이 터져 나왔다.
어깨 위에 악어 대가리를 달았다는 공주 암살은 그에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2순위였다.
몸을 그림자 괴물로 감싸고 쉴 새 없이 도망 다니는 저 간악한 쿼터 엘프. 저 원수.
놈을 잡아 제발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고문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오늘을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흑마력을 충전해 놓았다. 요 한 달 손가락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귀에 제물들의 비명소리가 딱지처럼 내려 앉았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왜 안 죽는 거냐아아아!”
금발의 사내는 절규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제물을 바쳤는데!’
민준에게 날리는 모든 주문이 무용지물이었다.
애초에 저주가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흑마법 분파를 세분하여 순위를 매기면, 상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저주술사였으니까. 애초에 어느 정도 수준을 넘은 흑마법사 사이에서는 상태이상 마법이 통하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쏟아 붓는 물리마법조차 안 통한다는 것은 이상했다. 이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나려면··· 그래, 테오 자신이 10년차 정도 된 흑마법사를 데리고 놀 때나 나타날 격차였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마치 상대가 자신의 모든 주문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치고 환장하겠는 건 그 중 대다수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펼친 적 없는 테오의 ‘오리지널’ 주문이라는 것이다.
귀신에게 희롱 당하는 심정이었다.
파앗!
지금 주문 하나가 또 허무하게 스러졌다. 제대로 영글기도 전에.
그가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발상’으로 만들어냈다고 자부하는 주문 대부분이, 민준 입장에서는 너무 많이 봐서 지겨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테오는 짐작치 못했다. 그의 ‘놀라운 발견’을 훨씬 오래 전에 수많은 외계인들이 이미 목격하고 지나쳐 왔다는 것도.
민준은 차분하게 생각한다.
‘슬슬, 놈의 힘이 떨어져 가는군.’
이제 끝을 낼 때였다.
화르르륵!
그의 등 뒤에서 산과 같은 기세가 타올랐다. 검게 이글거리며 그림자 괴물이 몸을 불린다. 그것을 본 테오의 두 눈에 절망이 어린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요원이 제물을 바칠 수는 없었다. 자기희생적인 방법으로 저 정도 힘을 모았다는 것은 상상범위 밖의 일. 그는 열등감과 분노가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로 외쳤다.
“네 놈! 드래곤에게 몸이라도 팔았나?!”
‘저 병신이 뭐라는 거야?’
민준은 콧방귀를 뀌며 사선을 그었다. 허공을 자르며 그림자 포탄이 쏟아진다. 기겁을 하며 도주하는 테오.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악을 썼다.
“용에게 뭘 받았길래 이런 마법을 쓰면서 아직까지 살아있냔 말이다아아!”
틀림없었다. 용에게 아부를 떨고, 개처럼 기고,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한 덕에 특별한 아티팩트를 받은 것이다. 무슨 아이템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알게 뭔가? 용이 하는 짓인데.
“그래 놓고 고고한척, 자기는 잘난척··· 남을 희생시키는 흑마법은 불법이라고?! 애초에 너나 나나 다를 게 뭔데!”
테오는 목에 핏발을 세우며 발악하듯 주문을 쏟아냈다. 물론 그 중에 민준에게 닿는 것은 없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 유럽의 소탕 작전에서 마주쳤을 때 민준의 힘은 이렇게 크지 않았다. 당시 여러 명의 엘더 앞에서 굳이 힘을 다 보일 필요가 없었기에 그랬다는 것을 테오는 물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잘못됐어!’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곁에 엘더 드래곤만 없으면.
화르륵!
검은 발톱이 스치고 지나갔다. 민준의 공격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테오는 오늘을 위해 집중적으로 쌓아온 마력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났다. 예상했던 대로 돌아가는 것도 없고, 바라는 대로 되는 것도 없다.
그는 민준을 저주했다.
“흑마법은 누군가를 죽이고 희생시켜서 완성하는 예술이다! 자기희생적 흑마법? 용에게 빌붙고 변칙적인 수단으로 연명한다고 얼마나 오래 갈 것 같나! 알량한 도덕에 묶이고, 흑마법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계속 그렇게 자기파괴를 반복할 뿐이겠지! 그 방식으로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민준은 또 한 번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쓰는 흑마법이 변칙적인 수단이라고?
순간 예상치 못하게 훅 치밀고 올라온 옛 기억을 담아서 그는 비아냥거렸다.
“흑마법은··· 원래 이렇게 쓰라고 만든 거다, 이 병신아!”
돌칼을 스스로 그은 상처에서 또 한 번 검은 안개가 일면서 그의 힘을 채워주었다. 그걸 본 테오의 눈에 어떤 각오가 스쳤다.
“큭큭큭!”
음산한 웃음소리.
그리고 아주 짧은 침묵 뒤.
“그래? 그렇다면··· 나도 한 번 해 보지. 그 ‘희생’을!”
그 순간, 테오 크리스티안센의 이성이 무너져 내렸다.
***
투두두두두두!
“막아!”
“으아악!”
민준이 테오와 대치한 동안, 몸이 그나마 멀쩡한 요원들은 공주와 수행원을 호위하여 도약선 가까이 이동했다. 긴급도약코드를 입력해야 하는 블레어도 물론 동행했다. 독이 도처에 깔려 있었으므로 건물 밖으로 나가기 전에 대량의 해독 스크롤이 소모되었다.
슈탄인의 신체 능력은 듣던 대로 매우 뛰어났다. 그 중 이능력자가 한 명도 없음에도 요원들은 전력질주하는 그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노력해야했다. 특히 공주의 달리기 실력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는데, 지구의 웨딩드레스와 미러볼의 특징을 각각 본 따 만든 듯한 복장으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요원들은 그 의문에 오래 매달려 있을 수 없었다. 사방에서 좀비가 몰려 들었으니까.
다들 각종 이능력으로 대치했고 그 중 가장 많은 언데드를 살해한 것은 트롤, 칼 후드였다.
‘화염탄!’
그는 주특기인 인챈트 마법으로 20mm 기관포탄에 이능 속성을 부여했다.
조준, 발사!
투두두두!
묵직한 연사음이 들렸다. 일 초에 열 발 이상 토해내는 포탄이 좀비를 타격한 순간.
콰쾅! 화르륵!
포탄이 남긴 상처는 관통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보든 것이 시린 빛으로 타올랐다. 폭풍처럼 이리 저리 휘몰아치는 화염 속에서 좀비들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화염 저항까지?! 대체 어떤 미친 놈이 좀비를 저렇게 튼튼하게 만들어!’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트롤은 바로 속성을 바꿔서 다시 인챈트한다.
‘산탄!’
그 직후 이어지는 사격은 뚜렷한 효과를 보였다. 기관포로 속사하는 한 발 한 발의 탄이 적중한 순간, 클레이모어처럼 빛의 소나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저 무리가 평범한 생물이었으면 몇 초 만에 전부 정리하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공격이었다. 칼 후드의 마력이 쫙쫙 빨려 나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으니까.
꿰에엑!
캬아아악!
찢어진 살과 조각난 뼛조각이 날렸다. 여전히 비명이 새어 나오고 꿈틀거렸지만, 적어도 여기까지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다.
“죽여주네! 잘 한다!”
“사랑해, 칼!”
요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염병하네, 대체 얼마나 많이 불러 모은 거야!”
그 너머에서, 더 멀리서 또 다가온다.
좀비의 파도가.
“이대로 오래 못 버팁니다! 빨리 도약 준비를!”
그렇게 말하던 칼이 쿨럭! 피를 쏟아냈다.
“요원님!”
블레어는 칼 후드가 갑자기 무너진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트롤이라는 이유로 해독 스크롤을 슈탄인을 포함한 다른 종족에게 양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계처럼 반응할 정도로 몸에 밴 트롤의 희생정신, 양보정신이 발휘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독에 노출된 이상 트롤의 몸에도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재생력과 해독력은 무한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트롤은 지금 드래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강의 생물이 되었어야 할 터다.
“여기, 요원님을 도약선 안으로!”
꼭 후라이팬을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으로 뜻이 통했다. 힘이 센 슈탄인들은 트롤의 거체를 번쩍 들어 도약선 안으로 옮겼다. 그녀 역시 내부로 몸을 들였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모두 겔랑코 차원으로 넘어가야 해!’
그렇게 마음먹고 무인 조종실로 향하던 그녀가.
“!”
순간 발을 멈췄다.
“크퉤에?!”
의아한듯 수행원이 손짓 발짓으로 묻는다. 어서 도약코드를 입력하지 않고 뭘 하냐는 듯한 물음.
하지만 블레어 캠벨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이거···.”
그녀는 이곳에 들어선 순간 어떤 소리를 들었다. 밟고 선 바닥 아래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진동. 블레어에게 아주 익숙한 소리였다.
이 아래에는 화물칸이 있다.
머릿속에 위원회와 주고받은 통신 내용이 떠올랐다. 미리 신고한 화물 대비 중량이 많이 차이가 나기에 다시 신고를 해야했다. 물론, 생명 반응이 없는 것은 체크했지만 원래 절차대로면 도약하기 전에 이민국에서 전체적인 화물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지금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제 엘프의 두 눈에는 섬뜩한 빛까지 감돌았다.
‘그래, 내가 타지 않았더라면 이대로 도약했을 거야!’
젠킨슨 컴퍼니에서도 극히 소수의 사람만 아는 사실이 있다. 그들은 분실에 대비하여 레어에 보관된 모든 보물에 특별한 조치를 해 둔다.
물론 위치추적장치나 마법 표식 같은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런 노골적인 조치는 훔쳐간 자들 역시 쉽게 알아차리고 무력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물며, 고룡의 결계를 뚫을 정도의 실력자라면 말이다.
그래서 젠킨슨과 측근들은 잠재 범죄자들의 심리적인 허를 찌르려고 했다. 비마법적 수단이지만 사전 정보가 없으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꼬리표를 달기로. 훈련받은 인재라면 이 물건이 젠킨슨의 장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오랫동안 은밀하게 연구한 성과가 적용되어, 레어에 보관된 보물을 포장하거나 보관한 모든 용기는 독특한 음을 내며 민감하게 공명(共鳴)한다. 굳이 때리거나 접촉을 하지 않아도, 주변의 작은 소리에 반응하여 그 자체로 발음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음압이 너무 작아서 평범한 종족은 들을 수 없고, 기계장치로 포착은 가능하나 그 패턴에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사전지식 없이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 말을 뒤집으면, 사전지식이 있는 드래곤과 엘프는 그 소리를 인지할 수 있다.
이번에 도난당한 보물 중에는 액체류가 많으며, 내용물이 손상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용기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며칠의 시간으로는 모자라다. 젠킨슨의 의도대로 분해하기 쉽지 않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어쩔 수 없이 본래의 용기 그대로 옮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바로 ‘오늘’ 그것을 반출해야 했다면!
얼음 기둥처럼 잠시 서 있던 엘프가 말했다.
“화물칸! 화물칸을 확인하겠어요!”
수행원 한 명이 후라이팬 손잡이를 잡고 나서야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상황에요?! 당신, 제 정신입니까?”
이빨을 드러내고 쇠 가는 소리를 내는 악어 앞에서도 엘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네, 봐야겠습니다! 지금 당장이요!”
“아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코드를 입력···!”
나머지 말은 듣지도 않고 후라이팬을 거둬 들였다. 그녀의 두 눈에서 불꽃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요원들 중 자신을 도와줄 자가 없는지 살폈지만 도약선 안으로 대피한 칼 후드는 이미 정신을 잃었고 나머지는 밖에서 좀비들과 사투 중이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차라리 좀비에게 잡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예민준 요원!’
지금 어떤 상황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 믿을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전 내리겠어요!”
캠벨이 도약선 문을 향해 다시 몸을 돌린 순간.
“!”
그녀의 뒤통수에 아릴 만큼 뜨거운 것이 닿았다.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났다.
통각이 그것의 형태를 그려냈다. 포탄을 쏟아낸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른 기관포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베르미 공주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슈탄인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으며 위협적으로 이빨을 드러낸 상태다. 트롤조차 양손으로 들어야 했던 20mm 기관포를 한 손으로 가뿐하게 든 채, 공주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Shut up and go key in the damn code, bitch.”
놀랍도록 유려한 영어 발음이었다.
***
– 도약 완료! ‘지구’에 도착하였습니다.
– 가시는 목적지까지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몇 시간에 달한 도약 끝에 지구에 도착하자 마자 인공지능 음성의 반가운 환영음이 들렸다.
델은 환한 미소와 함께 눈을 빛냈다.
속으로 다짐하듯 말한다.
‘기다려! 내가 곧 당신을 자유롭게 해 줄게!’
도약선 문을 열기 전 범차원 조약에 따라 이곳 터미널의 관제센터에 개문(開門) 허가를 요청한다.
미리 공부해 둔 이쪽 세계 공용어를 다소 어색한 발음으로 말했다.
“아, 아! 여기는 ‘DEL-2520.’ 반복합니다, 여기는 ‘DEL-2520.’ 도약 완료 보고 및 개문 허가를 요청합니다. KRICN, 응답바랍니다. KRICN, 응답 바랍···.”
이상했다. 돌아오는 답이 없다.
그녀는 몰랐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관제 센터에는 살아 있는 자가 없으니.
“무슨 일이지?”
시스템 조작판을 만지자 메시지 몇 개가 떠오른다. 외부 통신이 끊긴 사이 지구 쪽에서 몇 차례나 보낸 통신 내용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베르미 공주의 긴급 탈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시 모르니 아웃바운드와 인바운드의 시간차를 두려는 관제센터의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전달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고민하다가, 결국은 문을 열고 말았다.
그리고 몸을 굳혔다.
“······어머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사방이 불바다였다.
멀리서는 좀비 떼가 달려 들고, 아웃바운드 슬롯에 계류 중인 도약선에서는 전투를 벌이는 중인지 각종 마법과 이능력이 펼쳐지고 있다.
“전쟁?”
더군다나 문을 열자 마자 눈이 맵고 목이 칼칼한 것이 심상치 않았다.
피부가 유난히 매끌거리는 걸 보니 누가 용해성 마법독이라도 뿌린 모양이다.
“씨, 화장 지워지게.”
투덜거리며 손짓을 했다. 그 순간, 인근 1km 내 모든 독성 물질이 깨끗하게 증발. 물론 그녀의 얼굴은 메이크업이 약간 흐릿해졌을 뿐 그 밖의 눈에 띄는 이상은 없었다.
“어?!”
주변을 유심히 살피던 그녀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왜··· 왜 여기에?!”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주변의 다른 모든 것은 흑백으로 바뀌고, 오로지 단 한 명만이 생동감 넘치는 천연색으로 빛났다. 눈이 부셨다.
저 멀리, 하늘을 가로지르는 남자.
굳게 다문 입술. 결의에 가득 찬 눈빛. 가차 없는 움직임. 쉴 새 없이 들끓는 마법.
그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허파가 조이고 심장이 떨렸다.
“날 마중 나온 거야? 어떻게 알고?!”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투덜거리던 델의 눈에, 민준 곁에서 몰아치는 ‘어떤 것’이 보였다.
“?!”
상황 파악은 빨랐다. 그녀 역시 한때는 수형자였고, 최전선에서 각종 전투와 고약한 상황을 겪어 봤으니까.
민준은 지금 싸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상대가···.
“저 더러운 것이 감히!”
환희와 기쁨도 잠시.
델은 오장육부가 끓어오르는 듯한 지독한 분노를 느꼈다.
감히··· 감히!
그녀의 두 눈이 뒤집힌 그 순간.
온 세상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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