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41
41. Princess Run (16) [유] [료] [시] [작] >
***
뭔가를 각오한듯 악을 지르던 테오의 눈이 뒤집혔다. 그 순간 민준의 예민한 귀는 심상치 않은 소음을 포착했다.
‘진동?’
다음으로 코를 자극한 것은 악취였다. 근원지는 테오 크리스티안센의 몸 속. 내부에서 출혈과 조직 붕괴, 변이가 섬뜩할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내막을 알아챈 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새끼!”
압도적인 실력차.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도주할 엄두도 나지 않는 격차를 느낀 순간 테오는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만식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 유추한 결말보다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죄의 질을 따질 때 당연한 일이었다. 흑마법을 수련하면서 겪은 고통과는 비교가 안되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그의 선택은 빨랐다.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평생 흑마법을 수련한 자로서는 힘든 결정이었음에도.
‘그래도, 그 정도로 괴로운 건 싫으니까!’
생의 절반 이상을 오크와 고블린을 고문하는 데 쓴 자의 원초적인 희망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이유.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괴롭히고 싶다!’
도덕적 우월감을 핥아 먹는 저런 위선자들이 어떤 상황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테오는 잘 알고 있었다.
완전무결성을 지켜내지 못한 후회.
양심의 가책.
‘유럽에서 날 못 죽이고 놓쳤던 걸, 그리고 오늘 여기서 날 한 번에 못 죽인 걸 평생 후회하게 될 거다!’
거기에서 흑마법사의 의식이 끊겼다.
스으으!
공중에 뜬 몸은 검은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듯 보였다. 미세한 입자가 공중에 퍼져 나간다. 민준은 다급하게 주문을 퍼부었지만 이미 저주는 통하지 않았고 물리 마법은 말 그대로 상대를 ‘통과’했다. 이미 변화가 상당히 진행된 뒤였던 것이다.
마법과 충돌한 테오는 무너졌지만 소멸하지는 않았다. 마법이 관통한 자리부터 검은 색의 선이 확장하며 퍼지고 말단까지 덮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벌레의 군체였다.
민준은 저 주문의 정체를 알았다.
‘자기를 희생해서, 몸을 붕괴시켜 벌레 떼로 변하는 마법!’
엘더 여덟 명의 추적에서 도망 다닐 수 있는 흑마법사가 모든 것을 건 주문. 더군다나 저런 종류는 술사가 생전 쓰던 주문보다 훨씬 강력하게 완성되곤 한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저건 언데드도 아니라는 거다. 산 곤충이 죽은 곤충보다 훨씬 지독할 수 있는 이유는···!
부우우우웅!
‘지랄 났군! 차라리 매노바 말벌이 낫지!’
해충제를 뿌리듯 급하게 산성 안개를 살포하고 불로 태웠지만 공중을 덮은 검은 벌레 수는 늘어나기만 했다. 이미 테오의 몸이 완전히 사라진 뒤임에도.
벌레는 섭리에서 벗어난 속도로 알을 낳고 있었다. 기계적인 무성생식. 꽁무니에 붙은 알을 깨고 새끼가 바로 부화한다. 그리고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자 마자 바로 산란, 다시 부화.
흑마법사의 육신과 마력이 제물이 되고 영양소가 되었다. 말도 안되는 번식과 성장이다.
유전자를 그대로 복사한 행위에 불과했지만 수가 늘어나는 속도만으로 치명적이었다.
‘이런!’
검은 먹구름이 민준에게 달려 든다. 그는 테오의 의도를 이해했고, 그렇기에 분노했다. 저 벌레 때문에 자신이 이곳에서 죽을 일은 없다. 하지만···.
‘이미 퍼지기 시작했다!’
벌레 떼 일부는 민준의 움직임을 막으려는 듯 주변을 감쌌고 그 사이 다른 무리는 공항 너머 거주 지역으로, 더 나아가 저편의 바다로 날아간다. 그 사이에도 물론 계속 수를 불렸다. 메뚜기 떼에 비견할 수 없는 저 난폭한 탐식자들은 결국엔 도심을 덮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물어 뜯고 병을 옮길 것이 분명했다.
테오 크리스티안센은 마지막 순간까지 지독한 악의를 남겼다.
민준은 불꽃을 일으켜 벌레 떼를 몰아내며 고민했다.
‘혼자서는 저것들 퍼지는 거 다 못 막는다. 젠킨슨이 나중에 난리 치겠지만 다른 드래곤들에게 알려야 해. 그리고 일단 여기부터 해결하려면 내 팔 하나 정도는 잘라야···!’
사방이 어두컴컴하게 변한 것은 그때였다.
“?!”
개기일식이 시작된 것처럼 어둠이 시야를 덮었다. 처음에 민준은 그 변화를 사방에서 몰려드는 벌레 때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추측이었다. 태양을 이토록 철저하게 가리는 것은 벌레가 아니었다.
아래쪽에서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 저건, 뭐야?!”
테오가 벌레 떼로 변하자 통제를 잃은 언데드 군단은 목적성을 갖고 움직이는 대신 대소요를 일으켰다. 덕분에 도약선 주변에서 방어진을 친 요원들 역시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고개를 들고 갑자기 나타난 이현상의 원인을 향해 시선을 꽂을 수 있을 정도로.
하늘에 뚜껑이 덮인 것 같았다.
보통 해가 저문다고 해서 폐쇄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밤은 하늘을 가리는 대신 물들여 버리므로. 하지만 지금 상공에 나타난 그것은 분명 땅을, 세상을 덮고 있었다. 정상적인 푸른 하늘과 어둠의 경계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린 결과 그것은 영종도 절반 정도의 크기로 보였다.
공항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은 스물 여섯 개 기둥은 터무니없이 굵다. 그 동체 가운데에는 컴컴한 그림자 속에서도 또렷이 대비되는 심연 같은 구체가 있었다. 그것이 눈동자이며 혐오감과 분노를 가득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
너무나 거대한 것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지형지물이나 건축물에 가까운 물체가 저렇게 가볍게 미끄러지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행위처럼 보였다. 청동색 기둥 중 하나가 유려하고도 부드럽게 곡선을 만든 순간, 요원들은 그것에 기둥 대신 다른 이름이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고르자면···. 촉수?
그리고 천둥이 울렸다.
=감히 이 더러운 것들이!=
지구인들은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들이 겪어 본 것 중 가장 강렬한 정신파였다. 저 존재가 가리킨 ‘더러운 것들’이 좀비나 벌레 떼에 국한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울림.
하지만 반경 6km짜리 촉수 덩어리가 산 포유류와 죽은 포유류, 산 곤충류 중 어느 쪽에 제일 강한 혐오감을 느낄지는 인간으로서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지상 요원들과 다른 이유로 경악한 마법사가 여기에 한 명.
‘······.엔델리온?!’
저 자가 어떤 종족인지 민준은 알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중간 중간에 구멍이 난 것 같은 기억이지만 남겨진 것만 조합해도 그가 놀라기에는 충분했다.
위원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고대 종족 중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는 자들. 범차원적 귀족.
수형자가 된 뒤 얽힌 적은 딱 한 번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고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저 종족이 있었다. 그가 민준의 처지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읊어줬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그리고 아주 약간의 연민을 담아서.
‘왜 지구에?!’
전투가 한창일 때 터미널 인바운드 슬롯에 생긴 변화를 보기는 했다. 도약 시 동반되는 푸른 섬광이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눈치 없는 종족이 이 상황에 지구로 오는 것인지 어이없었지만 돌아가라고 통신을 넣을 방법도 없었고 싸우다 말고 달려가서 주의사항을 읊어 줄 의리나 여유도 없었다. 저것도 팔자려니 생각하면서 바로 관심을 끊고 테오를 열심히 잡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갑자기 엔델리온이 튀어나왔다는 건 방금 그 도약선에 타고 있었다는 듯이다.
‘왜 종족 전용 도약선을 안 타고 저런 작은 배를?!’
그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엔델리온의 거대한 눈동자가 바라본 자리에 검은 구멍이 뚫렸다. 허공에 생긴 블랙홀 같은 균열은 순식간에 그 힘을 뻗쳤다.
아니, 정확하게는 뻗기 보다는 빨아당겼다.
휘이이이이잉!
넓게 번지고 허공을 점령했던 벌레 떼가, 비디오를 거꾸로 돌리듯 검은 구멍으로 쓸려 들어간다.
아직 공항 안에 남아 있던 놈들도, 영종도 곳곳으로 스며들던 놈들도, 이미 바다 위를 덮고 비행하던 놈들도··· 모조리.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빨아들인다. 진공청소기처럼.
눈앞의 어마어마한 광경과 대조되게도 다른 이들은 산들 바람 한점 느끼지 못했다. 직전에 저 벌레와 겨우 몇 센티미터 유격을 뒀던 민준도 마찬가지.
마침내 모두가 깨닫는다. 평범한 흡착 현상이라면 주변에 영향을 조금이라도 끼쳐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대기의 흐름을 컨트롤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별적인 중력 왜곡!’
저 벌레가 모두 몇 마리나 될까? 수십만? 수백만? 그 모든 개체를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마킹한 다음 뒤틀린 중력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더군다나 쓸려 들어가는 저 검은 문 너머에는···.
인간을 초월한 시각으로 확인한 민준은 몸을 굳혔다.
‘잠깐만, 저 괴물이 지금 어비스(Abyss)로 이어지는 문을 연 거야?’
영계처럼 물질계와 동일 좌표에 겹쳐서 존재하는 공간이다. 도약선으로 뛰어 넘는 평행 우주가 아니라 별도의 기술이나 마법으로 연결되는 차원층위.
그 중에서도 어비스는 위원회조차 탐험과 연구를 포기해버린, 범차원적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노동교화를 시켜도 경제성이 안 나온다고 판단되는 죄수들을 집어 던지는 지옥. 한 번 넣었던 것을 다시 뺄 방법을 위원회조차 알아내지 못한 블랙홀.
민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쟤··· 대체 누구야? 저 정도면 위원회가 빨리 와서 잡아가야 하지 않나? 정체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엮이지 말아야겠다.’
***
베르미 공주의 위협을 뒤로 하고 비서실장, 블레어는 천천히 무인 조종실을 향해 걸었다.
이론적으로 도약선에는 조종사나 승무원이 필요하지 않다. 한 번의 도약에 겨우 몇 시간 밖에 걸리지 않으며 모든 종족 취향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인 조종실의 계기판은 사전에 터미널 직원들이 알아서 세팅을 해 주므로 원래대로면 승객들이 들어갈 일 없는 장소였다.
지금 같은 예외적인 순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You’d better hurry up unless you want to get your face torn off. (그 면상 찢어 놓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 걸.)”
공주는 어차피 이곳에서는 쏘지 못할 기관포를 내려 놓고 위협적인 손톱을 들이밀었다. 으르렁거리는 엄포를 들으며, 블레어는 자신들이 단단히 착각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슈탄 족 공주가 영어를 저 정도로 배워 둘 이유가 대체 뭐지?’
외계 종족 간 대화가 필요한 경우, 특히나 주체가 왕족이라면 품위 유지를 위해서라도 통역을 쓰는 것이 관례다. 굳이 저 수준까지 연습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블레어는 공주가 집단 이민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고백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젠킨슨의 이해와 일치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면?
‘연금술 업체들을 잡아먹으려 한댔지? 만약 그게 평범한 재산 증식 목적이 아니라···.’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황금 시장은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분야다.
‘지구에 정착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려는 거라면?’
그렇다면 지구나 위원회에 미리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이민을 준비해야 할 이유는···.
‘연합왕국의 다른 종족들이 슈탄을 놓아줄 리 없으니까!’
GDP의 15%나 차지하면서도 정치적 영향력은 전혀 발휘 못하는 물주를··· 아니, 솔직히 말해서 ‘가축’을 지구에 순순히 빼앗길 리 만무했다.
하지만 블레어의 추리는 또 하나의 벽에 부딪친다.
‘회장님 보물을 훔치는 일과, 연합왕국의 타종족 반대를 이겨내고 이민가는 것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지?’
별개의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공주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어차피 증거는 남지 않을 거라는 뜻인가?’
어쨌든, 이대로 도약해서 겔랑코에 도착한 뒤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은 뻔했다.
‘바깥에 알려야 해!’
느릿하게 코드를 입력하는 척하면서 블레어는 슈탄인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와줘!”
정령사는 깊이 신뢰하지 않으면 타인 앞에서 정령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지구의 정령사 중 99.9%는 엘프이니 일반인이 정령 볼 일 없는 건 당연했다. 약점 드러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그들 성격을 감안하면 더더욱.
엘프들이 그만큼 꺼릴 이유가 있었다. 정령은 소환자가 가장 그리워하는 상대를 닮는다는 말은 진실을 좋게 포장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 생김새에는 정령사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심리적인 약점이 투영되었다.
따라서 모델은 당장 만나지 못해 그리워하는 이가 될 수도 있고, 가까이 두면서도 연모하여 애끓는 감정을 삼켜야 하는 짝사랑 상대가 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정령 꺼내기 조심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이루어지지 못한 소망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셈이니까.
참고로, 블레어 캠벨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른 사람 앞에서 한 번도 정령을 꺼낸 적 없다. 애초에 감응력이 시답잖은 수준이었기에 이력서에 기록하지도 않았고 누구도 블레어에게 요청하지 않았다. 능력이 어설퍼서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블레어 캠벨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정령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었으니까.
“크퉵췝칵!”
슈탄 공주가 수행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당혹한 기색 없이 착착 움직이며 도약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들 전부가 연루된 계획이다!’
식은 땀을 흘리면서 블레어는 느릿느릿 코드를 입력했다.
그리고 동시에.
스으으!
그녀의 발을 타고 이질적인 기운이 흐르며 조종실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못한 곳.
블레어와 슈탄인 발 밑에 있는 화물칸에서 반투명한 형체가 결집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가! 가서··· 예민준 요원에게 모습을 드러내!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알려 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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