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52
52. 21세기 로빈 후드 (6) >
***
요즘 세상에 저런 표현까지 써가며 드래곤을 적대시하는 집단. 민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레드 스타.’
이렇게 나오면 배후를 터는 시간이 확 줄어든다. 민준은 비아냥거렸다.
“장렬하고도 효과적인 자기소개였어. 인상적이군.”
여자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혈관을 틀어막은 혈전 때문에 상당한 통증을 느낄 텐데 흥분과 분노 때문에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손가락질을 하고 목청을 높였다. 적개심 가득한 목소리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당신같은 자발적 노예 때문에 기형적인 사회가 바뀌지 않는 거야!”
“노예라고?”
“그래! 당신은 어떻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상황을 방조하는 걸 넘어 일조할 수가 있지?”
애초에 종족에 대한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여자는 열변을 토했다.
“당신은 드래곤의 노략질을 돕고 있어!”
“뭐?”
“그들의 막대한 자본은 평범한 사람들을 착취한 대가란 걸 알아야 해. 우리가 핏값으로 지불한 잉여가치라고!”
‘전형적인 그쪽의 논리군.’
“물론 용은 당신같은 자들에게 후한 월급을 주겠지. 그러는 사이 외면당하는 진실은? 용이 혼자 다 쓰지도 못할 부를 축적하는 동안 극빈층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어! 그들의 하루는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 소비돼. 자유가 없다고! 실질적인 노예들이야!”
여자는 많이 잡아야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는 이런 이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레드 스타가 키워낸 아이들이다.’
정의로운 도적으로 알려진 그들은 부자들로부터 강탈한 자본을 다양한 곳에 쏟아 붓는다.
빈민가에 식량을 뿌리는 일차원적 원조 외에도 서류상으로 세탁을 마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학교를 세우는 등 미래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 미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해석은 갈린다.
그런 학교의 직원과 교사들을 파보면 어떤 식으로든 레드 스타와 관련이 되어 있고 그들은 학생들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떡잎 바른 자원을 ‘상부’에 보고한다. 물론 이능력자는 그런 선발자 집단에 최우선적으로 포함되었다.
중앙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어렸을 때부터 레드 스타가 주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주는 옷을 입고,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이념에 철저하게 세뇌당한 채 자라난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주의는 용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무기야! 그들을 무너뜨려야 인류가 해방될 수 있···.”
“무너뜨린 다음에는 어쩔 건데?”
“?!”
민준은 손에 마력을 모으면서 시큰둥하게 물었다.
“드래곤은 다른 종족으로 대체한다고 치자. 경제 시스템은? 뭘로 바꾸자는 거지? 옛날 소련처럼 배급제라도 해야 하나?”
그러자 여자는 망설임 없이 소리쳤다.
“그건 일단 무너뜨리고 나서 생각할 일이야!”
“······.”
“완벽한 대안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혁명을 미룰 수는 없어! 미래의 설계도가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지금 가해지는 억압과 고통을 외면할 수도 없어! 일단 노예제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는 지성과 자주성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꽃을 피울 거야. 그리고 더 나은 체계를 만들게 될 거야!”
“그 첫걸음은 드래곤을 망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래!”
‘얘들은 항상 이런 식이라니까.’
레드 스타가 세뇌하는 내용을 보면 드래곤에게 기이할 정도로 큰 적대감을 나타낸다. 물론 그들이 막대한 부를 굴린다는 점은 사실이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인간 대부호가 타겟이 되는 일은 드물다.
이런 사실은 많은 이들이 합리적인 의문을 품게 만들었으나 증거가 없기에 의혹으로 그치고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더 떠들 필요는 없겠군.’
여자를 끌고 가기 위해서 주문을 완성시켰을 때였다.
“어··· 어?!”
염탐자의 몸에 주문이 닿자 마자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다.
“?!”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왔다. 몸 곳곳의 핏줄이 괴이한 형태로 부풀어 오르고 살이 팽창했다.
“이런!”
민준은 자신의 주문이 트리거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의 몸 속에 비활성화 되어 있던 마법이 반응한 것이다. 여자는 자기 안에 그런 것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솥뚜껑 만하게 부푼 자신의 손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안 돼!”
민준은 파훼하려고 해봤지만 마력이 끓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여자는 뭔가를 직감하며 그에게 팔을 뻗었다. 이미 얼굴은 풍선처럼 부풀고 이목구비는 뭉개진 살덩어리로 변한 상태였다.
“살려···.”
그리고 목소리가 폭음에 묻혔다.
펑!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이 골목 내 울려 퍼졌다. 민준은 그림자를 얇게 펴서 보호막을 만들고, 여자의 몸이 폭발하며 쏟아내는 열기 폭풍을 막아냈다. 주변으로 흘린 충격파는 은행 외벽에 인챈트 된 결계가 흡수했다.
치익!
후두둑!
살 타는 냄새를 비롯한 역한 내가 코를 찔렀다. 방어막을 없앤 민준은 방금 전까지 여자가 있던 자리를 낭패감 속에 바라보았다.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면 꼼짝없이 휘말렸을 것이다.
사방에는 타다 만 살점과 뼛조각, 어떤 부분이었는지 알아보기 힘든 여자의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붙잡히면 바로 꼬리를 자를 수 있도록 해 놓았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이능력을 보유했지만 적의 손에 넘어가게 두느니 망가뜨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레드 스타가 육성한 아이들의 흔한 말로였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결국 쓰고 버리는 폭탄 취급이다.
‘아무리 그래도 트리거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대체 뭘 경계하고 있기에···.’
“요원님!”
“괜찮으십니까?!”
물려 놓았던 경비원들이 폭발음을 듣고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들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민준은 손을 내밀어 저지했다.
“잠깐만!”
영문을 모른 채 멈춰선 경비들을 방치한 채 민준은 허공을 노려보았다.
방금 전 폭발은 여자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자살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다.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수록 그 영혼이 순조롭게 영계로 흡수되고 윤회를 향해 나아갈 확률은 낮아진다.
그 가능성에 주목한 민준은 차분하게 기다렸고 그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일이 되었다.
“!”
지시대로 접근하지 않고 대기하던 경비원들은 영문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민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을리고 저며진 시신에서 흘러나온 뿌연 기운이 점차 또렷한 형태를 갖춘다. 온 몸이 퉁퉁 부어서 익사체를 연상케 하는 나체의 여인. 폭발 직전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처참한 정신파가 울려 퍼졌다.
=아아! 아파··· 살려 줘··· 살려 줘···!=
민준은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진술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죽었다고 해서 꼭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레드 스타가 키워낸 염탐자는 망령이 되었다. 주변을 맴돌 시신이 사라진 망령의 운명이란 이대로 황천을 방황하거나, 매우 낮은 확률로 지성과 기억을 완벽하게 되찾고 고스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체는 그 전에 민준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민준은 여자를 제압하고 일시적인 권속으로 만들기 위한 주문을 외운다. 사후 바로 고스트가 되었다면 이런 식으로 부리지 못하겠지만 망령인 상태에서는 가능했다. 죽는 순간 기억과 원한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한 정신체니까.
그의 머릿속에 기억이 조각난 채 흘러 든다. 의식의 악다구니와 같은 혼란스러운 흐름 속에서 민준은 몇 가지 의미를 건져냈다.
‘레드 스타는 창천은행 본점에서 사건이 발생한 걸 알고 있었군.’
그 기억을 보고 민준은 확신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이 새끼들이 확실해.’
창천은 달란트를 도난당한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이런 극비를 레드 스타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바로 그들이 도둑이기 때문이다.
여자를 보낸 것은 은행의 주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고 대응하려는 속셈 같았다.
‘털어도 너무 큰 걸 털었으니 바짝 쫄리긴 했나 보지?’
이능력자가 들키지 않을 거라 믿고 보냈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달란트를 대체 어떻게 훔친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여차하면 버릴 패로 키워진 이의 기억 속에는 그에 대한 단서가 전무했다.
‘젠장,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 없다!’
시신, 즉 묶어 놓을 그릇이 없는 탓에 망령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사라졌다. 그런 뒤 민준은 비로소 경비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창천에게 보고하여 경찰 출동을 막는 것까지 본 뒤 민준은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
– 네, 민준 씨.
민준은 이동하면서 캐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드 스타랑 관련된 정보, 있는 대로 다 정리해서 보내 줘.”
그들에 대한 정보는 이민국보다는 경찰 쪽에 많을 것이고 캐시는 공식 협조요청을 날린 뒤 극비에 해당하는 내용까지 넘겨 받을 것이다.
그것을 정리하고 민준에게 공유하는 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달란트를 어떻게 훔쳐 갔는지도 궁금하지만 왜 훔쳤는지 그 이유도 추측이 안 되는군.’
그런 조직 손안에 들어가 봤자 그걸 가지고 거래하기도 힘들고, 지구 화폐로 불법 환전을 하면 말도 안되는 환율에 수수료까지 부담해서 남는 것이 없을 터다.
‘용을 미워하는 혁명가 놈들이 우주에서 가장 가치 높은 화폐로 할 수 있는 일이라···.’
민준은 그들이 달란트가 어떤 물건인지 제대로 알지 못할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당장 그조차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오직 위원회만이 발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원하는 대로 무한정 찍어낼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달란트는 영혼에 인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변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 정도.
‘영혼 소거를 위해서도 달란트가 필요하다고 했지.
수형자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노동교화형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위원회가 집행하는 형벌이다.
‘그리고, 내 영혼에 새겨진 기억을 지우는 데에도 달란트가 소모되었을 거야.’
민준이 달란트 실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결국 그의 기억을 되찾을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이런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뇌리에는 섬뜩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텔레시아의 최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며, 그것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민준은 더 이상 이런 예감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젠킨슨이 일단 달란트 실물을 손에 넣기만 하면··· 그 중 어느 정도가 소모되든 분실이나 파손으로 꾸미면 그만이다.’
관리를 잘못하면 금방 증발해 버리는 물질이니 가능한 설명이다.
‘이런 것까지 고려하면 확실히 레드 스타 같은 애들이 함부로 욕심낼 물건이 아닌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전화벨이 울렸다.
‘벌써?’
자료 이관과 정리가 이렇게 금방 끝날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했더니 발신인은 역시나 캐시가 아니었다.
“어, 정팔아.”
– 바쁘십니까?
“바쁘다면 바쁘긴 한데··· 왜?”
이어지는 말을 듣고 민준은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도 용건은 후라이팬이었다.
어제 봉인을 한다는 것이 갑자기 창천을 방문하게 되어 미뤄뒀더니 그 소식을 캐시로부터 들은 모양이다. 당장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은 없기에 알아서 사무실에 들러 빌려 가라고 허락을 해 주었다.
“아, 참.”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다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레드 스타 주 활동 구역은 오크 커뮤니티잖아?’
“정팔아.”
– 네, 형님.
“네 관할구역, 여전히 오크 동네지?”
그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당연하죠. 저 말고 누가 이 구역을 맡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럼 좀 묻자. 요즘 레드 스타 애들 이상한 기미 없었어? 예전에 안 하던 짓을 했다거나 이상하게 조용해 졌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도 좋고.”
그러자 정팔은 의아한 듯 말했다.
– 어? 이민국에서 왜 그쪽을 캐요? 형님도 김광우 회장 건 때문에 그러십니까?
“······.”
또 이 이름이 나왔다.
김광우 회장.
민준이 언급하지도 않은 사람을 정팔이 먼저 거론하자 그의 눈빛이 변했다.
“그 양반은 왜?”
정팔은 상황을 설명했다. 회장이 몇 주 휴가를 빌미로 자리를 비웠다는 공식적인 정보는 경찰에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도 그 핑계를 믿지는 않았다.
김광우 회장은 오크 갱을 은밀하게 지원하는 대부(代父)이며 경찰의 집중 관찰 대상 중 하나다. 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자 경찰에서는 숨겨진 정황을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 지금 유력한 용의자가 레드 스타입니다. 둘이 원래부터 사이 안 좋았던 건 형님도 아시죠?
“그랬던가? 아··· 하긴 둘 다 오크 커뮤니티가 사업장이니 부딪칠 수밖에 없겠군.”
양쪽 모두 오크 커뮤니티의 주민들에게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레드 스타는 그곳에서 부자를 습격하는 테러리스트를 육성하고자 하고, 김광우 회장은 자신의 부를 증식하는 수단인 갱스터를 키우고자 한다. 따라서 두 집단은 서로를 오랫동안 견제해 왔다는 정팔의 설명이었다.
– 그래도 서로 영역 침범하는 일이 없이 나름 휴전 상태를 오래 이어가고 있었는데··· 몇 달 전 레드 스타 애들이 김광우 회장 세력권 내에서 얼씬 거리는 것이 포착되었거든요.
경찰은 그것을 전쟁의 기미로 판단했고 평소보다 면밀히 주시하던 중이었는데 회장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잠적해 버린 것이다.
‘그에게 손댄 게 창천이 아니라 레드 스타 쪽이었나? 아니, 아직은 확신할 수 없군.’
전화를 끊은 뒤 민준은 상황이 예상보다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핏 사건과 관계없어 보였던 김광우라는 이름이 자꾸 여기 저기서 등장한다.
‘레드 스타··· 얘들은 뭐길래 온 사방에 불씨를 튀기고 다니는 거야?’
민준은 더 깊어지려는 상념을 멈췄다.
‘달란트를 턴 이유와 방법이 뭐든 간에··· 내가 여기서 오랫동안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는 없지.’
이유가 궁금하면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다소는 거칠고, 그다지 신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민준은 레드 스타를 족치기로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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