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65
65. 21세기 로빈 후드 (19) >
***
창천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림자를 타고 몸 속에 파고든 전류는 피를 끓이고 살을 태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가 입은 데미지는 젠킨슨의 그것보다 컸다. 무방비한 체내를 가격한 전격(電擊)이었기에.
용은 바람을 찢으며 몸부림친다. 번개는 이미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젠킨슨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민준 역시 그녀의 몸에 그림자 원뿔을 박고 매달린 채다. 그것은 심지어 계속 회전하며 살을 파고들었다.
후두둑!
외피를 뚫은 두 팔을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새까맣게 탄 살점이 갈리고 흩뿌려지자 그 다음은 적당히 익은 고기층이 나왔고, 조금 더 들어가자 다시 피가 콸콸 솟구쳤다.
민준은 알았다. 여기에서 한 뼘만 더 들어가면 척추가 나온다.
그림자와 상처 사이 틈으로 터진 소화전처럼 혈액이 뿜어져 나왔다. 제방에 구멍을 뚫은 듯 쏟아진다. 팔이 깊이 들어갈수록 상체가 기울고 민준의 머리는 용과 가까워졌다. 범람하는 계곡물같은 혈류 때문에 민준의 얼굴은 흠뻑 젖었다. 벌어진 입가로 용혈이 계속 흘러 든다. 다시 한번 감미해 본다.
달콤했다.
확실히 젠킨슨보다도 훨씬 오래 산 용 다웠다. 3천살은 넘었을 것이다.
일렁이는 의식 속에서 현실과 과거가 섞이며 울림을 만들었다. 기시감. 민준은 겪지 않은 기억을 재료로 판단한다.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꽤 비싸게 팔리겠는 걸?
그 판단은 수형자로서의 경험을 근거로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고룡의 피가 매매되는 시장이 존재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은 머릿속에서 창천의 고기와 혈액에 등급을 매기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그는 독한 술에 취한 기분으로 얼큰하게 젖어 들었다.
농밀하다 못해 질식할 것 같은 혈향.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설렜다. 그간 가슴에 얹혀 있던 권태감이 녹아 사라지는 느낌.
너무 오랜만이다.
살아있다는 느낌.
캬아아악!
더 깊어지려고 했던 상념이 용의 몸부림 때문에 끊겼다.
쿠르릉!
창천이 거칠게 몸을 흔들자 민준은 공중으로 튕겨 나갈 뻔했다. 피부 속으로 깊이 파고 들었던 드릴도 빠지고 말았다.
침투했던 이물질이 사라지자 고룡의 신체는 기적적인 회복력을 보였다. 갈기갈기 찢긴 근육과 지방층, 혈관과 외피에 케라틴과 칼슘, 마법화합물이 응집되며 결정화된다. 움푹 파였던 상처자국을 단단한 붉은 색 수정이 메우는 것에는 몇 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걸 본 민준은 혀를 찼다.
고기 다 버렸군.
머릿속에서 낯선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도축 과정에서 이렇게 장시간 스트레스를 주면 고기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숨통을 끊기 전 몸 여러 군데에 상처를 내면 손상 부위가 경화(硬化)되는데 딱딱하고 맛이 없어서 못 먹는다. 따라서 그만큼 다 도려내서 버리니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누군가의 호통을 걱정하며 민준은 팔 형태를 다시 바꿨다. 엮이고 뭉쳐서 드릴을 만들었던 두 팔이 분리된다. 이번에는 몸 전체적인 윤곽도 변화시켰다. 그를 완전히 덮었던 그림자가 더 명확한 형태를 그려냈다.
그때.
캬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창천이 급선회를 한다. 그리고 도주하듯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고통 때문에 이성이 흐려진 것 같았다. 눈앞의 둘을 죽여서 없애는 대신 일단 이 자리만 모면하자는 식의 탈주.
=이런!=
젠킨슨이 뒤따른다.
이성을 잃은 용은 머리를 쳐들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았다. 추격하는 레드 드래곤이 각종 주문으로 폭격했다. 그 중 일부는 명중했고 고룡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도주를 멈추지 않았다.
창천은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고 있었다. 민준은 이 비행이 부유 마법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창천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그림자로 야수의 발톱을 만들며 비늘을 뚫고 용의 살을 움켜 쥐었다.
이제 그는 창천의 외피에 바짝 매달려 함께 날아가고 있었다.
화르르!
들끓는 그림자에 덮인 수형자는 네 발 짐승의 형태가 되었다. 그는 벼룩처럼 매달린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네 다리를 모두 활용해서 위로 오른다. 원기둥 모양 암벽을 오르는 형상이었다.
창천의 몸을 등반하는 그를 향해 산더미 같은 구름이 다가와서 충돌하고 부서진다. 그런 구름층의 습격도 잠시였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주변에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창천은 계속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매서운 한기가 그를 덮쳤다. 맹렬한 압력과 돌풍이 바위처럼 묵직하게 그림자를 때렸다.
강철도 으스러뜨릴 공기저항을 버티면서 민준은 계속 올라갔다. 용의 가슴에서 시작한 등반은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발을 딛을 때마다 용의 외피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흘렀다. 뒤에는 젠킨슨이 날아오지만 좀처럼 따라잡지 못한다. 여러모로 창천보다 미숙하다. 아직 시장에 출하할 연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창천은 딱 적합하다.
기묘한 상승감과 흥분 속에서 민준은 용의 목덜미에 다다랐다. 몇 분 전에 드릴로 뚫어버리려고 했던 타겟은 원래 여기였다.
쩌억.
민준의 입이 열리고 그림자가 뭉쳐 길쭉한 혀를 만들었다. 혀는 흉부를 으깼던 드릴보다 훨씬 가늘고 긴 철사 형태를 만들었다. 그것이 그대로 회전하며···.
위이잉!
푸욱!
용의 뒷통수를 찌른다.
——!
민준은 오래 전 배운 지식을 복기했다.
용은 중추신경계가 손상된 상태에서도 한참을 움직이며, 도축 시간이 길어지면 스트레스 때문에 고기에서 끔찍한 맛이 난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동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효율적인 도축법은 무엇인가?
수형자는 기억에 따라 최적의 움직임을 재현한다. 가늘게 응축한 그림자가 비늘을 뚫고, 전동 드릴이 장착된 내시경처럼 파고든다. 오랜 경험 덕분에 민준은 감각만으로 지금 그림자 송곳의 첨단이 어디쯤 갔는지, 이 방향 끝에는 뭐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과 도취 속에서 그는 중얼거렸다.
다 왔군.
이런 작은 ‘연장’으로 용의 두개골이나 척수를 끊어 놓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위치, 목덜미에는 파고들 틈이 있었다. 혀 끝에 단단한 것이 걸리는 느낌이 든다. 멈추지 않고 밀었다.
푹!
머리를 깨는 대신 목을 뚫고 올라가는 방식으로 뇌에 닿았다.
그 순간 젠킨슨과 민준은 보지 못했지만 창천의 두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인간으로 치면 머리통의 하단, 뇌와 척수를 잇는 연수를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은 죽지 않았다. 비행 속도는 여전했고 각도도 틀어지지 않았다. 몸을 둘러싼 생존마법 역시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의식은 잃은 상태였다.
민준은 생각했다.
이 상태로 오래 끌면 고기가 더 엉망진창이 되지.
내분비계가 계속 작동하므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근육 내에서 폭주하듯 분비되는 중이다.
따라서 민준은 길게 방치할 생각이 없었다.
하필이면 뇌의 최하단을 노린 이유는 이곳이 입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뇌가 보관되어 있는 비밀의 방, 용의 두개골 안쪽으로 이어지는 관문이.
민준이 만든 그림자 송곳이 연수를 뚫고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여섯 개의 뇌를 서로 잇는 신경이 뭉친 곳으로.
그럼, 이 다음은?
저 가느다란 그림자 가닥으로 어설프게 안 쪽에서 휘젓고 뭉개봤자 숨통이 끊어지는 데까지 오래 걸린다.
그 대신, 이럴 때 쓰는 방법이 있었다.
화르륵!
민준은 뇌에 꽂아 넣은 혀를 통로로 삼아 더 많은 그림자를 응축하여 용의 몸 속으로 퍼부어 넣었다. 그 원리는 풍선에 가느다란 호스를 꽂은 다음에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퍼붓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풍선 안이 물로 가득 찬다면?
가장 약한 곳으로 내용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젠킨슨과 민준이 본 것은 그런 현상이었다.
퍽!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창천의 두 눈에서 연분홍색 폭포가 쏟아져 나왔다.
***
“아이, 씨! 이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하은성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의 계획은 간단했다. 창천은 망령을 되살리기 위해 이 모든 짓을 시작했으니, 저 귀신이 사라진다면 계획을 단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퇴마진을 해체하여 망령을 바깥 세상에 풀어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 진짜, 꼼짝도 안 하잖아!”
영체 상태에서 자유롭게 뚫을 수 있던 퇴마진이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 화근이었다.
창천과 부하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산 사람이 퇴마진에 개입할 가능성을 외면할 리 없었다. 따라서 퇴마진을 감싸는 물리결계가 존재했고 엘프의 몸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걸 뚫을 수는 없었다.
‘어떡하지?’
생각이 이어진다.
그리고 흥분이 가라앉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잠깐만, 애초에 저 귀신을 풀어주는 게 문제 해결이라고 볼 수 있나?’
용의 망령은 지금까지 성불하지 못했고 고스트로 진화하지도 않았다.
그런 귀신이 세상에 풀려 난다고 해서 더 좋아질 일이 있을까?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어. 저 귀신에게는 미안하지만···.’
용의 망령을 풀어줘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저 귀신은 소멸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대로 계속 영적 업화 속에서 괴로워하도록 방치하는 대신 소멸을 돕는 것이 저 귀신을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생각을 바꾸고 퇴마진 밖에서 정신을 집중했다.
“없어져라··· 없어져라··· 없어져!”
하지만 소용없었다.
이전과 비슷한 형태로 기원했고 달란트도 의지에 반응하여 광채를 내뿜기는 했다. 망령을 가둔 마법진 역시 공명하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령은 계속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불타오르는 영적인 열기에 휩싸여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하은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엘프 몸을 버리고 영체 상태로 저 결계 안에 들어가서 해 볼까? 그런데 저긴 너무 뜨겁던데.’
다시 생각을 바꾼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아니면!’
지선경의 영혼을 소멸시킬 때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한 몸에 두 영혼이 함께 갇힌 상태··· 그러니까 일종의 ‘접촉’을 유지한 상태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그러려면 두 가지 조건이 선결되어야 했다.
어쨌든 퇴마진을 부수고 저 영혼을 밖으로 꺼내야 하며, 망령을 빙의시킬 적당한 육신을 찾아야 한다.
하은성은 자신이 빙의된 연구진을 보았다. 엘프의 몸이 용의 혼을 견딜 수 있을까?
‘차라리···.’
그는 고개를 돌린다.
방금 지나온 방. 그곳의 거대한 유리관과 안에 봉인된 용의 몸을 응시했다.
이름도 모르고 대체 언제부터 붙잡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저 용은 영체감응력자가 아니다. 하은성은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창천은 망령을 저 용에게 빙의시키려고 했어. 그리고 이전에도 빙의 자체는 잠깐이나마 성공한 적이 있다고 했고. 오래 못 버텨서 문제였지만.’
비결이 무엇일까?
그 전까지 납치했던 용이 전부 영체감응력자였을까? 아니면···.
‘창천은 영매 체질이 아닌 자에게도 강제로 빙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 이유가 될 만한 것은 한 가지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창천은 이런 말을 했다.
– 달란트는 다양한 방법으로 영혼에 간섭할 수 있지. 산 자의 몸에서 혼을 뽑아낼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몸에 집어넣을 수도 있어. 아예 영혼을 소멸시킬 수도 있고, 그 강도를 조금 약하게 하면 혼이 붕괴하고 분열토록 만들 수도 있고.
다시 한번 되뇐다.
‘다른 몸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
혹시, 그 몸이 꼭 영체감응력자가 아니더라도?
‘실험해 보자!’
하은성이 저 용의 몸을 제압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그는 옆방으로 가서 액체 속에 잠긴 용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무슨 짓을 해 왔는지 영혼이 쇠약해진 상태인 걸 알 수 있었다. 몸을 지배하기 힘들 정도로, 생명만 간신히 유지할 정도.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저 약해진 영혼 대신 몸을 잠깐 빼앗는다. 용의 몸이니 힘도 엄청나게 셀 거고, 저 퇴마진을 부술 수 있지 않을까?
그 다음엔 저 망령까지 이 몸에 흡수해서 셋이 일시적인 한집살이··· 아니, 한몸살이를 하는 것.
물론 그 상태로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 불러서 가둔 다음에는 그대로 소멸시켜 버릴 거니까. 지선경처럼!’
그러고 나면 이 몸에는 본래의 혼만 남기고 자신은 빠져나가는 것이다.
물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정이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시나리오든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결정을 내린 그는 엘프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쿨럭!”
그가 이탈하자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엘프가 주저앉으며 기침과 헛구역질을 했다.
영체 상태로 돌아온 하은성은 용의 몸 속으로 뛰어들었다.
‘음? 그래도 그냥은 안 되네.’
영체감응력이 전무한 육신은 다른 영체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짜 주인의 장악력이 약해진 상태임에도 그랬다.
그러나 하은성이 달란트와 공명을 시작하자.
화아아앗!
=어? 어?! 된다!=
지금까지 그를 밀어내던 저항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느껴지더니.
부글부글!
유리관 속의 용이 두 눈을 떴다.
콰쾅!
촤르르르!
그가 팔다리와 꼬리를 휘젓자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깨지고 안을 채웠던 물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퀘엑! 쿼어억!”
어린 용의 몸을 빼앗은 하은성은 휘청거렸다.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깨진 유리조각 위를 기다시피 걸었다. 물론 유리가 모래처럼 으스러졌으면 으스러졌지 용의 육신에는 작은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 쓰러진 채 몸을 떠는 엘프 하나.
“히익! 흐으윽!”
그는 용의 몸을 빼앗아버린 유령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하은성은 오크나 성별이 다른 동족의 몸을 통제할 때와 차원이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이나 인간에게 없는 부위를 움직이는 법 등 모든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휘익!
콰쾅!
가장 미치겠는 부분은 꼬리와 날개를 통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였다. 평생 달아 본 적 없는 물건이 달려 있다 보니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지금도 걸음에 거슬리지 않게 약간 들어올리려고 했을 뿐인데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가더니 실험실 곳곳의 기기를 후려치고 파괴해버렸다.
“크··· 크륵!”
하은성은 결국 또 한 번 넘어졌다.
쾅!
그가 쓰러지며 내려친 땅은 금이 가며 쩍 갈라졌다. 그리고 콘크리트에 파고든 손톱 일 미터 앞에는 바지를 적신 엘프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씨! 말이 안 나오잖아!’
용의 혀과 성대는 본래 인간의 언어를 발음하는 데에 적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는 하은성이 짜증을 내던 순간.
=아! 씨! ······어?=
하은성은 자신이 텔레파시를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잘됐다!’
이렇게 되면 꼭 저 퇴마진을 몸으로 깰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엘프에게 물었다.
=저 퇴마진 좀 없애 봐요!=
“······네?”
그는 윽박지르듯이 정신으로 외쳤다.
=저 퇴마진 좀 없애보라고요!=
“흐익! 네··· 네!”
엘프는 무릎이 풀렸는지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걸음으로 옆 방을 향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쿵! 콰당!
=아이, 씨! 진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듯한 움직임으로, 유령에게 빙의 당한 용이 뒤따르고 있었다.
한 쪽은 공포에 떨고 다른 한 쪽은 짜증을 내며 엉거주춤하게 걸었다. 둘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병신춤을 추는 무용수를 연상케 했다.
그렇게 엘프와 용은 비틀거리며 망령을 향해 다가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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