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71
71. 용성애자, 용혐오자, 용도축자 (5) >
***
민준이 에드워드 미첨과 재회한 것은 괴물을 제압하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그에게 결과를 통보하기 전에 젠킨슨과 협의할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네? 잡으셨다고요?!”
용과 외계 생물이 뒤섞인 괴물이 체포된 소식은 당연히 언론에 흘러 나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간 사회의 불안을 증폭시킬 뿐이며 그 배후를 찾는 데에도 지장을 줄 것이기에.
따라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에드워드는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흘에 한 번 돌아오는 사이클이 충족되었음에도 협박 비디오가 날아들지 않았으니까. 기대가 현실로 바뀌자 에드워드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증거는 여기 있습니다.”
이민국에서 협박범을 확보하여 구금 중이라는 것을 에드워드가 믿을 수 있도록 민준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어떻습니까?”
“······틀림없군요.”
화면 속의 괴물은 폴리모프를 한 채다. 에드워드를 만날 때 사용했던 순혈 엘프의 몸. 그녀는 민준이 시키는 대로 현재 자신의 상태를 읊고 있었다.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괴물과 뱀파이어만 아는 그날의 정황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민준에게 공유한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영상을 끄며 민준이 말했다.
“앞으로 이 여자가 미첨 씨를 괴롭힐 일은 없을 겁니다.”
에드워드가 망설이다가 물었다.
“죽일 겁니까?”
요원은 고개를 젓는다.
“죄송하지만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준은 마지막까지 공개를 고민했던 부분을 약간의 각색을 거쳐 말해주기로 했다.
스스로를 강간 가해자로 오해하며 죄책감 속에 살게 놔두는 것과, 사실은 가해자가 아니라 강간 피해자라는 걸 알려주어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도덕적인 일인지 민준은 가치판단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돈을 받고 의뢰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것’을 말해주는 것이 옳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첨 씨. 사실 상대를 매혹을 한 쪽은··· 미첨 씨가 아니었습니다.”
“네?!”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에드워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뱀파이어를 매혹하는 능력이라고요?”
“종을 가리지 않는 ISP 발현자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번식이 가능하니 엄밀히 말하면 진짜 ISP는 아니지만··· 그런 학술적 분류는 넘어가지요.”
창천의 의료제약 관련사를 흡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젠킨슨이 그 화학물질의 성분을 연구할 예정이었다.
“맙소사, 믿을 수 없군요.”
지구 역사상 최초로 강간범 대신 강간피해자가 되어버린 뱀파이어는 멍하니 웅얼거렸다.
“혹시··· 무슨 종족이었는지는 알 수 있습니까?”
민준이 모른 척 묻는다.
“그런 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요.”
용의 유전자가 섞여 있었다는 건 말해줄 수 없었다. 이 땅의 용족을 대표하는 젠킨슨과 약속한 사항이니까. 대신에 민준은 그 생물을 특정하는 다른 이름을 알려주기로 했다.
“거미와 비슷한 생물이었습니다.”
5초의 침묵.
“······네?”
돌상처럼 굳어버린 에드워드가 다시 한번 묻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뭘 잘못 들은….”
“제대로 들으신 것 같습니다. 거미와 비슷하게 생긴 생물이었습니다.”
“거미요? 다리 여덟 개 달린···. 그거?”
“네. 다리는 확실히 여덟 개더군요. 그 중 세 개는 다리라기보다는 돌출된 내장에 가까웠지만···.”
“우웁!”
결국 에드워드는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거하게 구토했다.
한편 문을 박차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민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폴리모프한 상태였는데 저렇게 유난을 떨 일인가? 진짜 다리가 몇 개든 말이야.’
촉수가 스물 여섯 개 달린 생물과 수십 년 살을 섞고 살았던 입장에서는 다리 여덟 개 따위는 무덤덤할 뿐이었다.
잠시 후 더 핼쑥해진 상태로 돌아온 에드워드가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용건은 끝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미뤄 놓았던 화제를 스스로 꺼낸다.
“그럼, 아이들은요?”
괴물을 어떻게 처리할지의 문제보다도 더 예민한 안건은 아이들의 거취다. 어쨌거나 그들이 에드워드의 자식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일단, 이 화면부터 보십시오.”
어떤 시설의 내부가 보인다. 민준이 데려온 소년들은 젠킨슨의 고용인들이 돌보고 있었다. 놀이방에는 아이들보다 보모가 더 많았다. 곳곳에는 책과 장난감이 가득 준비되어 있다.
에드워드가 황망한 어조로 말한다.
“······네 명이군요. 그 사이에 또 한 명이 태어났군요.”
“그렇습니다.”
수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성장한 아이들 모습이 에드워드의 눈을 사로잡았다. 가장 큰 아이는 이미 열 살이라고 해도 믿을 발육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민준은 말했다.
“원하신다면 이 아이들의 친권을 주장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에드워드는 홀린 것처럼 영상을 바라보았다.
네 명의 하프 엘프 소년. 그를 쏙 빼어 닮은 아이들이 영상 속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놀고 있다. 마네킹 같은 차가운 표정은 사라지고 다들 활짝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찡그리고, 투정을 부렸다가 울기도 한다. 다채로운 감정이 배어 나왔다.
여왕 거미의 지배를 받을 때 마리오네트처럼 통제당하던 아이들은 그녀가 족쇄를 푼 순간부터 평범한 아이들로 돌아간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진정으로 평범하지는 않았다. 결과물은 일반 아이들과 같았지만 성장속도는 비정상 그 자체였으니까.
아이들은 평범한 하프 엘프에게 불가능한 속도로 언어를 습득했고 초월적인 속도의 지능, 정서, 육체적 발달을 보였다. 뛰어다니다가 넘어져서 울고 있는 셋째에게 다가가 달래주는 첫째의 모습은 태어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생물의 모습이라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뇌나 근육, 뼈 등이 저 속도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급속하게 생명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저 아이들의 남은 수명은 일년 남짓한 정도입니다.”
“!”
고개를 휙 돌려 민준을 바라보았던 에드워드는 다시 떨리는 시선으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일년··· 이라고요?”
비밀리에 급하게 유전자 검사를 맡겼던 에드워드는 친자 확인을 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젠킨슨은 혈액까지 채취해 최고의 연구진들에게 맡겨서 철저한 분석을 진행한 것이다.
그 결과 알아낸 사실은, 괴물이 마법이나 지능 측면에서는 용의 특성을 많이 가져왔지만 생식 방법이나 결과물 쪽은 거미를 많이 닮았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저 ‘남자아이’ 들은 일반적인 병정 거미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대신 단명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유전자를 제공한 하프 엘프와 드래곤 양쪽 다 장생종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이런 부분을 적당히 설명한 뒤 민준은 말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상속권을 주장할 거라고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송을 걸어 봤자 3심까지 가기도 전에 전부 죽을 테니까요. 저 아이들이 자손을 낳을 거라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애초에 씨를 뿌릴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양자로 입적시킬 계획도 없음을 이민국에서 보증합니다. 단.”
민준은 상대의 의중을 캐듯 깊은 눈빛으로 들여다보며 묻는다.
“생물학적 친부인 미첨 씨가 친권과 양육권을 주장하고 저 아이들을 직접 보살필 의향이 있으신 경우에는 이민국에서도 최대한 협조를···.”
“아니요.”
에드워드는 민준의 말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확고한 의지를 담아서 다시 한번 말한다.
“아니요.”
민준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저건, 제가 원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외면할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 년사이에 자라고 늙고 죽는데다가 자손을 낳지도 못하고, 그 어미는 거미라고요? 그런게··· 그런게···.”
하프 엘프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런 게 무슨 사람입니까?”
***
민준이 괴물을 잡아왔던 날.
젠킨슨은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경악했고 다음에는 약간의 공포에 질렸으며 시간이 더 지나서는 불같이 화를 내가 시작했다.
“대체 누가 용의 몸을 가지고 저런 지독한 짓을!”
눈 앞의 괴물은 용의 존엄성에 도전하기 위한 생물학적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젠킨슨은 처음에는 그녀를 그냥 죽여버리려고 했으나 민준이 말렸다.
그리고 휘하의 사람들이 연구를 진행할수록 젠킨슨은 처음 품었던 단호한 결의와 다른 망설임과 흔들림을 느끼게 되었다.
그 균열은 하나의 의문으로 이어졌다.
저 생물을 과연 용이라고 볼 수 있는가?
“용의 신체 일부를 재활용한 키메라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군.”
유전자 단위까지 들여다보니 확연하게 드러나는 특징.
“저건 인공적인 ‘교배’를 시도한 결과물이야.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완벽하게 성공은 못했어.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한 것도 아니네. 저건 어쩌면 자연 상태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어서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개념··· 그렇지, 용의 혼혈종이라고 봐야할 지도 모르네.”
지금까지 용을 상대로 ISP를 발현하는 이종 개체는, 예를 들면 김연주처럼 상대를 유혹할 뿐이지 그 사랑의 결과물을 낳는 일은 없었다.
민준은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오베르 거미는 용의 혼혈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라고 봐야 하나?’
아예 태생부터 이종 번식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생물. 괴물을 만들어낸 자들이 왜 하필 거미를 선택했는지 의중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 젠킨슨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저 거미가 낳은 아이들 역시 용의 유전자를 조금씩 가지고 있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내 저주가 안 통하더군. 용이나 되어야 가능할 항마력이야.”
물론 드래곤의 범위를 이 자리에서 함부로 넓힐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젠킨슨 입장에서 그들 모두를 처단할 수도 없었다.
결국 드래곤은 절충점에서 결론을 냈다.
“저 거미도 아이들도 일단은 내가 보호하고 있겠네. 친부가 그렇게 나온다면 말일세.”
“나야 상관없지.”
민준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저 괴물을 생포해 온 진짜 이유.
수형자와 드래곤은 돌연변이에게 말을 걸었다.
“자, 전부 이야기해 봐. 넌 어디에서 왔지? 어디에서 태어난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
“달란트 실물은 왜 찾고 있었지?”
바르르 떨면서, 괴물은 대답했다.
***
정상적인 용과 달리 괴물은 태어난 순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탄생했을 때 그녀의 정신은 용보다 거미에 가까웠던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두운 골방벽에 희미한 빛이 서리듯 지성이 피어났고 그 섬광은 점차 캄캄했던 머릿속을 환하게 채웠다.
자아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겪은 것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게 실험을 했어요··· 아주 많은 실험을.=
이미 자신의 운명은 눈 앞의 요원과 레드 드래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괴물은 질문에 순순히 응했다.
괴물의 기억에 따르면 실험을 하던 자들 기준으로 자신은 실패작이라고 했다. 유전자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미흡한 부분이 많이 튀어나온 돌연변이.
“그 연구진들이 어떤 자들인지 보았나?”
=아니요, 항상 정신파만 들려왔어요. 제가 지금 의지를 전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들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그곳에는 거미 괴물과 비슷한 생명체가 더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둘의 얼굴은 급속도로 굳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전 ‘바깥’에 있었어요.=
바깥 세상의 존재조차 몰랐으니 탈출을 시도한 적도 없었다.
그냥 눈을 떠 보니 밖이었다.
‘방생한 거군.’
괴물의 창조자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를 사회에 풀어 놓은 것이다.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이지?”
=대략··· 10년 전.=
민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괴물이 10년이나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자신이 몰랐다고?
하지만 이어진 말을 통해 의문이 풀렸다.
그녀가 처음 방생된 장소는 옛날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있었던 곳이었고 그 후로도 한동안 구(舊) 중국의 후예국을 돌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용케도 잡히지 않았군.”
그런 그녀가 한국으로 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날짜를 들은 민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창천이 죽은 직후에?”
창천의 사망 소식은 언론에 보도될 수밖에 없는 큰 뉴스였다.
고룡이 국내법과 드래고닉 코드를 동시에 위반하는 큰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엘더 드래곤에 의해 처벌당했다는 소식은 외신에서도 특종으로 보도했다.
그 와중에 창천이 살아 있었으면 새어 나가지 않았을 정보도 뉴스에 올랐다. 그녀의 재산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였는데 재산 목록 중 거액의 달란트가 도난당한 상태였다는 것이 뒤늦게 은행 직원들 입을 통해 제보된 것이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것이 있는 것도 잘 모르니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뉴스에 귀를 기울인 괴물이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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