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78
78. 불신지옥 (6) >
***
생살이 찢겨 나가는 기분.
증발한 18만 달란트를 생각하면 느끼는 민준의 심상(心想)이 그러했다.
‘이런. 이 친구, 단단히 화가 났군.’
그의 눈동자에 여느때보다 살벌한 기운이 이글거리는 걸 젠킨슨은 알아차렸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달란트에 대한 수형자들의 집착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한편 민준의 살기를 그대로 뒤집어쓴 하은성은 공포 속에서 생각했다.
‘이 요원님··· 원래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나?!’
물론 영체로 돌아다닐 때도 상대를 만만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추호에도.
그러나 용의 육신으로 인지하는 민준, 그것도 분노를 쏟아내는 그에게서는 오금이 저리는 압도감이 느껴졌다. 비유하자면 포식자 앞에 무방비로 내팽개친 사냥감이 된 듯한 느낌.
실제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 요원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은 순식간에 뼈와 살이 분리되어 고깃덩어리로 전락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꽤나 정확한 예감이었다.
“지금 장난하나?”
꺄아아아악!
민준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등 뒤에 몰려든 망령이 절규하며 몸부림친다. 창천에게 살해당한 뒤 레어를 떠나지 못하는 부하들의 망령은 충분히 많았다. 저 유령을 붙잡아서 꼼짝도 못하게 묶어 둘 정도는 되었다.
=잠깐, 민준.=
고룡이 제안했다.
=일단 유령은 몸 밖으로 나오는 게 어떤가? 육신과 분리되고 나면 혹시나 다른 게 보일 수도 있으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그런데 젠킨슨이 그런 말을 꺼낸 것에는 고룡으로서의 책임감 역시 작용한 것 같았다.
=난 영혼을 못 보니 알 수 없군. 민준, 자네에겐 보이지? 원래 저 몸의 주인이었던 드래곤의 영혼은 어느 정도 회복했나?=
젠킨슨은 하은성이 몸을 빌린 이름 모를 드래곤의 상태 역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민준은 못마땅한 말투로 대꾸했다.
“확실히 훨씬 나아졌군. 처음 구조됐을 때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야.”
한 몸에 영혼이 두 개 들어갔을 때 민준 눈에는 그들이 겹쳐서 보인다. 두 영혼이 가진 영력 총합이 괄목상대하게 늘어났으니 무명 드래곤 쪽이 힘을 되찾은 것이 분명했다.
‘TV 보면서 사료나 처먹··· 아니, 요리나 처먹던 하은성의 영혼이 갑자기 강해질 이유는 없으니까.’
고룡은 이번엔 유령에게 묻는다.
=그는 아직 자고 있나?=
민준의 눈치를 살피며 유령은 대답했다. 쭈뼛대는 말투로.
=네. 지금까지 여러 번 불러봤지만 응답한 적은 없어요. 한 번도.=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군. 영력을 회복했다면 정신을 차리는 것이 수순일 텐데.=
“자기 몸에 다른 영혼이 있으니까 제대로 활개 못 치는 걸 수도 있어. 쟤가 나오면 정신 차리겠지. 야, 일단 나와라. 나와서 이야기하자.”
설사 영체 상태로 돌아가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망령들이 발버둥친다.
=네···.=
하은성은 잔뜩 쫀 채 빠져나왔다. 지선경 때처럼 몸에 갇히는 사태가 발생할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용의 육신은 큰 저항 없이 인간의 영체를 내보내 주었다.
털썩!
뒤룩뒤룩 살찐 용이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자 고룡이 또 한 번 텔레파시로 한탄했다. 엎어져서 비계덩어리가 푹 퍼진 꼴이 아까보다 더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불쌍한 친구를 깨워볼까? 여어, 자네. 정신 좀 차려 보게.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자네 이름과 출신 차원을 말해주게.=
고룡은 무명용이 깰 수 있도록 마법으로 돕기 시작했기에 민준의 반응을 눈치채는 것이 조금 늦었으며, 하은성 역시 오랜만에 영체 상태로 돌아와 이리 저리 움직여 보느라 요원의 표정을 늦게 보았다.
“······!”
민준과 유령의 눈이 마주친다. 하은성은 자기가 또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주눅들었다.
=왜··· 그러세요?=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보는 표정은 조금 전과 달랐다. 당장 산 채로 회 쳐 버리겠다는 듯 노려보던 것이 몇 초 전이었다면 지금은 있을 수 없는 걸 바라보는 당혹감이 가득하다.
“야··· 너!”
민준이 묻는다. 심지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너 지금 뭔가 이상한 거 못 느끼냐? 네가 변한 거 모르겠어?”
=?!=
저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영체의 시선에 들어오는 자신의 모습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펭귄 옷과 목에 꽂힌 회칼까지.
그런데.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영력이 그렇게 강해진 거냐?”
=영력이요?=
하은성은 그가 말하는 차이점이 영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영체는 영혼을 담은 비물리적 육신과 같다. 그리고 유령은 자기 안을 채우는 근원이 그 전보다 훨씬 묵직해진 걸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어? 이게 왜 이러지?=
민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은성의 영혼을, 정확히는 그 안에 들끓는 영력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면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의 영혼이라고 해도 믿겠···.”
=이, 이보게! 자네! 정신 차리게!=
민준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젠킨슨이 안절부절못하며 어린 용을 향해 정신파를 쏘아 보냈기 때문이다.
=이보게! 대체 왜 이러는가? 이런···! 민준! 이 자의 생체 반응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네!=
고개를 돌려 쓰러진 드래곤을 바라본 민준은 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았다.
맙소사!
요원은 용과 하은성의 영혼을 번갈아 바라본다.
휙! 휙! 그의 고개가 꺾일 듯이 돌아갔다.
“너···.”
바람 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먹어버린 거냐?”
=네?=
=민준, 그게 무슨 말인가?!=
민준은 두통을 느꼈다.
“18만 달란트가 어디로 갔나 했더니.”
두 영혼이 겹쳐 있는 상태에서는 영력을 분별할 수 없었다. 전구 두 개를 바짝 가져다 놓으면 흘러나오는 빛을 광원에 따라 분류할 수 없듯이.
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전체적인 영력이 상승하기에 당연히 용이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용은 구출될 때 상태 그대로인데 어이없게도 붙어 있던 인간 유령의 영력만 급상승한 것이다.
“그러니 하은성이 빠져나가도 정신을 못 차리지, 쟤가.”
이 사태를 도운 매개 역시 짐작이 간다. 민준은 창천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달란트는 다양한 방법으로 영혼에 간섭할 수 있지. 산 자의 몸에서 혼을 뽑아낼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몸에 집어넣을 수도 있어. 서로 다른 혼을 융합하거나 분리할 수도 있지. 더 나아가 아예 영혼을 소멸시킬 수도 있고, 그 강도를 조금 약하게 하면 혼이 붕괴하고 분열토록 만들 수도 있고.
“이것도 일종의 융합이라고 봐야 하나? 다른 영혼에 빨대를 꽂고 영력을 흡수해 버리다니···.”
민준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젠킨슨은 한 박자 늦게 사건의 진상을 깨닫는다.
그리고 경악했다.
=저 유령이 드래곤 몸으로 인간 음식을 처먹는 것도 모자라서··· 드래곤 영력까지 빨아먹었다고?!=
이제 요원과 드래곤의 분노를 동시에 사게 된 하은성은 영문도 모른 채 벌벌 떨었다.
=저··· 저는 억울해요! 진짜 아무 것도 안 했다니까요!=
민준은 저 비만용의 몸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창천의 마법진에서 풀려나자 무명 드래곤의 영혼은 회복을 시작했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그런데 그 회복된 영력이 혼 안에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붙어 있던 하은성이 고스란히 흡수해 버린 것이다.
그 비결은 당연히 달란트일 테고.
‘같은 배에 잉태된 쌍둥이 중 하나가 다른 형제에게 흡수되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그나마 완전히 먹히는 건 면했지만.’
민준은 냉랭한 목소리로 하은성에게 말했다.
“달란트 자체에는 자유의지가 없어. 그러니 네 의지대로 작동했겠지. 대체 한 달 동안 무슨 생각을 한 거냐? TV 보면서 편하게 지내라고 배려해 줬더니··· 저 드래곤 영혼을 천천히 없애고 싶다고 염원이라도 했나?”
그르릉!
민준의 말에 동조하듯 드래곤 피어가 사방에 퍼져나갔다.
“덕분에 영혼의 격은 엄청나게 올라갔군. 그걸 노렸나? 용처럼 되고 싶었어?”
=그럴 리가요! 저는 용 같은···.=
용 같은 종족 따위 극혐한다고 항변하려다가 하은성은 가까스로 정신파를 끊었다.
가능만 하다면 씹어버리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초점이 빗나간 곳을 노려보는 고룡 때문이었다.
그는 유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민준이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이 상황은 뭔데?”
=그, 그게!=
그때. 하은성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뭐냐고!”
유령은 속으로 읊조렸다. ‘망했다! 설마 그건가?’
염라대왕처럼 노려보는 요원 앞에서 거짓말할 엄두도 못 내고 사실대로 토해낸다.
민준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가늠할 방법이 없는 유령은 허튼 소리를 했다가 거짓으로 들통날 일이 두려웠다.
고룡도 잡아 죽이고 망령을 조종하는 남자가 유령 하나쯤 찾아 해코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대기권 밖에서 계속 숨어 지낼 각오가 없는 한 저 요원을 화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제가 저 아저씨 몸에 있는 동안 같은 꿈을 자주 꾸기는 했는데요.=
말을 더 들어보니 자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거의 매일 비슷한 꿈을 꿨다고 했다.
그게 뭐냐면.
“먹는 꿈을 매일 꿨다고?”
=네···.=
잠시 후 사정을 모두 청취한 민준은 이렇게 추측했다.
하은성이 사후 잃었던 3대 욕구가 몸을 빌린 순간 되살아 났고 영혼에도 영향을 끼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허기’를 느끼자 그 감각은 혼에도 스며들었다. 후라이팬의 경이적인 요리 덕분에 계속 뭔가를 먹고 싶은 욕망이 꿈 속까지 투사된 것이 아닐까? 무의식이 혼란스럽게 펼쳐진 그 난장판 속에 말이다.
‘영체는 꿈을 꾸지 않지. 영체는 뭘 먹을 수도 없어. 원래대로라면 말이야. 하지만 그 영체가 몸 속에 깃들어 있고 흡수할 ‘먹이감’이 절묘하게도 바짝 붙어 있었다면···.’
물론 이게 후라이팬 때문이라는 가정은 비약적이지만, 어쨌든 꿈까지 꾸게 만든 그 무의식이 달란트를 자극했을 것이다. 지선경을 소멸시킬 때처럼 강렬하지는 않게, 아주 천천히··· 스며들 듯이.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이대로는 위험하네! 민준, 일단 유령에게 다시 드래곤 몸에 깃들라고 말해 주게!=
민준은 그대로 전했고 하은성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이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민준은 비만용 몸 속의 유령에게 차갑게 말했다.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달란트를 훔쳤던 것처럼, 이번 역시 고의는 아니지만 달란트를 소모해 버렸군. 그 전까지 쓴 10만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으니 언급하지 않겠어. 하지만 이번의 추가적인 18만은···.”
쓰리다.
매우.
민준이 나지막이 말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거지?”
물론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하은성을 용 몸에 한 달 머물게 한 민준의 과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굳이 그 부분을 입에 담지는 않는다.
하은성이 우물쭈물 말했다.
=가··· 갚을까요? 하지만 어떻게···.=
민준은 사고였으니 어쩔 수 없다며 허허 웃으며 그냥 보내 줄 만큼 호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분노에 휩쓸려 의미 없는 복수를 할 마음도 없었다. 그래 봤자 소멸된 달란트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요원은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래야지. 수중에 가진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값···. 아니, 그 몸은 다시 반납해야 할 테니 영혼으로라도 갚아. 18만 달란트.”
=네?!=
그렇게 고룡에 이어서, 민준이라는 철두철미한 채권자가 관장하는 빚의 지옥에 빠져버린 희생자가 또 하나 탄생했다.
이번에는 유령이었다.
***
하은성은 계속 용에게 빙의된 채 지하실에 머물게 되었다. 주인 영혼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몸의 저항은 거의 없다고 했고 달란트가 없으니 이젠 한 쪽이 빨아 먹힐 염려도 없었다.
민준은 그에게 영체 상태로 돌아다니지 말고 몸에 꼭 붙어 있으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회복도 회복이지만 그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때처럼 달란트에 홀려서 다시 흡수해버리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우우웅!
‘흠, 역시 쉽지 않군.’
요즘 민준은 달란트를 활용한 각종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72만 달란트를 증여세 없이 계좌로 옮길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는 이 돈을 활용하여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방법을 연구 중이다. 타이밍 좋게 요즘 들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그의 과거 말이다.
초반이니만큼 달란트 소모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접근했기에 속도는 더딘 편이다.
=민준, 잠깐 괜찮은가?=
한창 골몰하여 집중하고 있는데 젠킨슨이 마법 통신을 걸어왔다. 용건을 짐작한 민준이 대뜸 말했다.
“아직 회복되는 기미는 없어. 좀 더 기다려 봐야할 것 같은데?”
=아니, 그 용 때문에 연락한 게 아니네.=
“그럼?”
드래곤은 최근 입수한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드림랜드 총본단이 외계인 시신 인도를 지구교구에 요구한 다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민준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요하임이 총대주교 시신을 가지고 튀었다고?!”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양부(養父)의 머리를 품에 꼭 쥔 채 주저앉아 있던 성직자.
“잘린 목을 돌려주기 싫어서 갖고 도망쳤단 말이야?”
=동기는 나도 짐작하기 힘들군. 어쨌든 분노한 총본단··· 그러니까 ‘공의회’는 요하임 슈타인마이어를 파문하고 이단으로 선언했네. 그리고 시신 강탈 혐의를 내세우며 독일 정부에 신변을 요구했지. 하지만···.=
“거절했겠지.”
=정확하네. 오랫동안 외교가 단절되었던 차원이다보니 지구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야.=
“그래서 그 세눈박이들이 어떻게 나왔지? 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나?”
=다들 그렇게 예상했지만 틀렸어. 그 종족은 위원회를 개입시키는 대신 직접 사건을 처리할 생각 같네. 며칠 후 지구에 이단심판관을 파견할 거라고 독일 정부에 통보했어. 결격사유가 없으니 임시체류증은 발급되겠지.=
젠킨슨이 연락을 넣은 이유는 그 방문객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요하임 행적을 쫓다 보면 과거 한국에 들른 걸 알게 될 걸세. 혹시 이단재판관들이 자네를 찾아오거든···.=
그는 민준을 걱정해서 연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주게. 외교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다소 자네 심기를 거스르는 언행을 보이더라도 일단은 내게 먼저 연락해 주면 안되겠나? 내가 나서서 다 처리하겠네.=
“좋아.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통신을 종료한 뒤 민준은 생각에 빠졌다.
‘차원 #77-102 원주민들이 고향 밖으로 나온다고? 위원회가 기회를 놓치지 않겠군.’
지금은 사라진 임무이지만 내부 사정을 알고 싶어서 61만 달란트나 걸었던 위원회다. 그곳 주민들이 밖으로 나돌아 다닌다면 접촉 찬스를 놓치지 않을 터.
‘이 정도면 수형자 같은 비정규직에게 맡기는 대신 위원회 정규직들이 직접 나서겠는걸?’
다시 말해 위원회의 정직원들이 지구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
‘그건 좋지 않은데. 하필 지금 상황에서는.’
하지만 민준의 예상과 걱정은 여러가지 방향으로 빗나갔다.
며칠 뒤 그에게 위원회의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이번에도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형태였다.
– 기관이 차원 #22-189(극오지 4급)에 파견된 모든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특수임무를 고시하였습니다. 내용을 확인하여 조치 바랍니다.
‘이건 또 뭐야?’
차원 #22-189는 위원회에서 지구가 속한 차원을 부르는 이름이다. 민준은 묘한 예감 속에서 메시지를 열었고 그 즉시 두 눈을 크게 떴다.
– ((대외비)) 차원 #22-189 파견 수형자 전용 특수임무 전달. ‘엘라후-프라가’ 교단의 #22-189 교구 총대주교의 시신을 확보하여 위원회에 제공하시오. 보상: 40만 달란트.
‘뭐야, 이거?!’
수형자를 죽이고 터미널에 테러를 가한 테오 크리스티안센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10만이었다.
그런데 이건 시체 하나 찾아온다고 40만이란다!
민준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다음 줄의 주의사항을 읽었다.
– 주의사항: 반드시 시신의 두부(頭部)가 손상 및 유실되지 않은 상태로 제출 필요. 머리가 없는 경우 달란트 지급이 불가함에 유의할 것.
민준의 생각이 깊어진다.
공의회 지시를 거부하고 도주한 이단사제. 그의 뒤를 쫓는 이단재판관. 그리고 수형자들을 조종하여 개입하려는 위원회.
그들 모두의 관심사는··· 총대주교의 ‘잘린 목’이다.
‘이건 분명 뭔가 있군!’
하지만 내막은 달란트를 받고 나서 파 보아도 늦지 않다.
이 임무는 현시간부 지구의 모든 수형자에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쉬워 보이는 일에 40만이 걸렸으니 전부 다른 일은 팽개치고 눈에 불을 켠 채 달려들 터.
민준은 바로 캐시에게 전화했다.
“응, 나야. 지금 하던 일 다 멈추고 바로 짐 싸서 나 픽업하러 와. 오랜만에 해외출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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