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14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4)
***
마녀, 야라는 사하르의 양탄자를 타고 쉘터에 도착했다. 화재 현장에서 구출한 소녀를 데리고 들어선다. 야심한 시간. 안에는 아이샤만 깨어있었다. 어제 저녁 민준과 식사를 한 여인이다.
아이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야랴! 팔이 왜 그래요? 이 아이는 또 누구고요?”
야라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화상을 입은 팔이 끔찍하도록 아팠다.
“설명하자면 길어. 가위와 마법 물약을 좀 가져다 줄래?”
아이샤가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붉은 액체가 든 유리병을 가위와 함께 가져왔다. 야라는 불타버린 옷을 조심스럽게 벗고 잘라냈다. 이미 살과 엉겨 붙어 제거할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두었다.
환부에 물약을 골고루 뿌린다.
치이이익!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을린 상처 부위가 진정된다. 야라는 고통이 그나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마법 물약은 임시 조치에 불과했다. 완벽한 회복을 위해서는 신성력 능력자를 만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장벽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복 마법사’라고 불리는 그 능력자들은 다 이맘들의 지배를 받으며 여자는 치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율법에 따라 여자는 여자가 치료해야 하는데, 정작 여자가 마법을 쓰면 처형당하는 모순이 낳은 결과였다. 마녀 중에 누군가 신성력을 각성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한 명도 없다.
“휴우.”
소파에 기대듯 누운 채 한숨 돌린다. 야라는 자신이 상대했던 외계인을 떠올렸다.
상대는 생각의 속도로 불꽃을 소환하고 또 폭발시켰다. 또한 그 불길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그녀를 교묘하게 공격했다.
반면 야라는 마법을 쓰기 위해 주문의 영창이 필요했다. 애초에 주어진 조건이 너무 달랐다.
“아이샤, 잠깐 우리 둘만 있게 해 주겠니?”
아이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위해 물주전자와 컵을 준비해 준 뒤 방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야라와 소녀, 이렇게 둘만 남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나디아.”
“·········.”
그녀의 가족은 아마 다 죽거나, 살아 남았더라도 크게 다쳤을 것이다.
야라는 그 저택이 타오르던 장면을 떠올렸다.
“힘들겠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잔뜩 겁이 먹은 눈동자로 야라를 본다.
그녀는 처음 구해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마리얌 행세를 한 ‘그것’이··· 혹시 네게 무슨 말을 했니?”
왜 나디아를 납치하려고 했는가?
소녀는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지 계속 몸을 경련했다. 야라는 그녀가 정신을 차릴 시간을 주었다.
물이 든 컵을 건네자 나디아는 그것을 받아 조금씩 입 안에 흘려 넣었다.
잠깐 정적이 흐른 뒤.
소녀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복수를 하러 온 거예요.”
“뭐라고?”
“마리얌, 그 애가 제게 복수를 하러 온 거예요.”
나디아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야라는 소녀에게 다가가 멀쩡한 팔로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소녀의 통곡이 더욱 거세졌다.
“그건 마리얌이 아니야.”
꺽꺽대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나디아가 답한다.
“아뇨, 틀림 없이 마리얌이었어요.”
“자기 입으로 그리 말하던?”
“아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저를 노려보더니, 불꽃을 일으켜 집을 다 태우고 저를 잡아가려고 했어요.”
나디아가 다시 진정되기까지는 또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 마리얌이 네게 복수를 하겠어?”
“왜냐면··· 그 애가 죽은 것은 저 때문이니까요!”
야라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때문이라니? 혹시 네가 종교 경찰에게 말했니?”
마리얌이 이능력자라는 사실을 밀고한 사람이 나디아였을까?
하지만 소녀는 강하게 부정했다.
“아뇨! 제가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누가 말했니?”
“그건 몰라요. 하지만 누가 말했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우린 전부··· 알고 있었으니까요.”
“전부 알고 있었다니?”
“마리얌이 마녀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어요. 불이 나기 훨씬 전부터!”
“······?!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야라는 당황한다.
지부장인 사하르가 알던 내용과도 다르다.
마리얌의 친구들이, 그녀의 이능력을 진작부터 눈치챘다고?
“불이 난 그날, 마리얌은 저희를 식당으로 불러 모았어요. 그러자 희한하게도 불길은 저희에게 다가오지 않았죠. 매캐한 연기도, 위험한 열기도 저희를 피해갔어요. 마리얌은 저희 손을 잡고 알라께 기도를 올릴 뿐이었지만, 그리고 이상한 주문 같은 것도 외우지 않았지만··· 저흰 다 알았어요. 그건 마리얌이 부린 마법이라는 걸. 마리얌이 마녀라는 건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다 알았지? 마리얌이 불이 나기 전에 친구들 앞에서 이능력을 보여줬니?”
대화를 나눠 본 사하르에 따르면 경솔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소녀, 나디아는 훌쩍거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리얌은 천재였어요. 시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죠. 쿠란과 하디스(예언자의 언행록)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외우는 아이는 마리얌밖에 없었어요. 또,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와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페르시아어와 독일어, 스페인어까지 독학으로 익혔죠. 선생님들 몰래 우리끼리 인터넷으로 영상을 볼 때면 자막이 없어도 마리얌이 해석해 줬어요.”
울고 또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소녀는 말했다.
“게다가 마리얌은 우리 중 가장 신실한 아이였어요. 이맘들이 만든 이상한 규율은 가끔 어겨도 쿠란의 가르침에는 순종했죠. 기도 시간을 꼭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경전을 읽었어요. 그 애는 자기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또 선생님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요. 저는 그 아이 만큼 기도를 자주, 또 간절한 목소리로 하는 아이를 달리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어요.”
“믿을 수 없다니, 무엇을?”
“그 애가 마법을 쓰는 장면을 제가 봤거든요.”
소녀의 두 뺨은 눈물 범벅이 되었다.
심장이 조여드는 듯 아프다며 두 팔로 가슴을 두드렸다.
“제가 봤어요. 마리얌이 마법을 쓰는 것을 봤어요. 비밀로 하려 했는데··· 너무 놀라서 딱 한 명에게만 말했어요. 그랬더니 학교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다 퍼져버린 거예요.”
“마리얌이 무슨 마법을 썼지?”
“·········.”
나디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진실을 토로했다.
“마리얌은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에게도 상냥했어요. 항상 학교 뒷마당에 오는 고양이들 밥을 챙겨 줬죠. 선생님들은 못마땅해했지만 딱히 막지도 않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봤어요. 마리얌이 어떤 고양이 한 마리랑 같이 있는 장면을요. 그런데 그 고양이가··· 마리얌에게 목소리를 내서 말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
“처음엔 착각한 줄 알았죠. 하지만 그건 평범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니었어요. 그 고양이는 분명 사람의 목소리로 뭔가를 말했고 마리얌도 웃으며 대꾸했어요.”
눈물이 가득 맺힌 눈동자로 야라를 바라본다.
“동물과 대화하는 건 마법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렇죠?”
나디아는 야라를 처음 만났지만 그녀가 마법사라는 걸 알았다.
동의를 구하듯, 자신은 오판하지 않았다는 듯 되물었다.
“마리얌은 마법사가 맞죠? 오직 마법사만 동물에게 말을 가르칠 수 있잖아요. 제 말이 맞죠?”
“······.”
야라는 충격 때문에 잠시 눈 앞이 어질해졌다.
마리얌이 고양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그것을 이 소녀에게 들켰고··· 결국은 학생들에게 전부 소문이 퍼진 것이라고?
그게 마리얌이 죽게 된 원인이라고?
‘고양이! 고양이라면···!’
마녀들은 패밀리어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으며, 그들을 통해 원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도 나눈다.
그리고 지부장 사하르는 마리얌이 살아 있을 때 종종 자신의 패밀리어를 보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사하르의 패밀리어는··· 고양이다.
‘말도 안 돼. 사하르가 실수할 리 없는데? 분명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서 접촉했을 거야.’
사하르도 그렇게 확신했고 야라도 그리 생각했다.
들킬 리가 없다. 누구도 보지 못했을 확률이 99.9%에 가까웠다.
···하지만 만약 0.1%의 확률이 실현되었다면? 사하르가 딱 한 번이라도 실수를 했다면?
그래서 목격자가 생겼고, 나디아가 누설한 끝에 모두가 마리얌의 이능을 알게 된 거라면?
그래서 누구든 종교 경찰에게 밀고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라면?
‘맙소사, 이건···.’
야라는 한동안 충격 때문에 얼어붙어 있었다.
***
외계인을 쫓던 마녀, 사하르는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탓!
어느 사이엔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그림자.
민준이 돌아온 것이다.
“꼬리는 다 잘랐나요?”
“더 이상 방해할 자는 없을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군요. 이제 폐차장으로 거의 몰아 넣었어요.”
민준과 사하르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미리 힘이 빼 놓은 덕분에, 사하르 혼자서도 여기까지 유인해 올 수 있었다. 외계인이 일으키는 불을 차근차근 꺼 가면서도 말이다.
더군다나 사하르는 지금까지 단순히 추격만 해 온 것이 아니었다.
“외계인을 따라 잡는 사이 주변의 다른 마녀들에게 연락을 넣어 놨어요.”
외계인이 나타날 법한 장소에 매복하고 기다리던 마녀는 야라 외에도 몇 명 더 있었다.
부상을 입고 쉘터로 복귀한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마녀 중 비교적 가까이 있던 이들 몇몇이 폐차장에 도착한 상태다.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덫을 쳐 놨군요.”
잠시 후 민준의 눈에도 폐차장이 보였다.
기를 쓰고 도주하던 도플갱어가 그 넓은 구역으로 진입했다. 민준은 그가 밟지 않고 건너 뛴 땅바닥에 가느다란 선 하나가 그려진 것을 보았다.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마법적인 선이었다. 마녀들이 미리 준비해 놓았으리라.
잠시 후.
탓!
민준과 사하르 역시 그 선을 넘었다.
그 순간, 사하르가 전언 마법으로 매복 중인 마녀 전원에게 명령했다.
=지금!=
우-웅!
선은 폐차장 전체를 감싸는 형태로 그려져 있었다. 사하르가 신호를 주자 마녀들은 그 선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반투명한 돔(Dome) 처럼 희뿌연 빛이 폐차장을 휘감더니 곧 빛을 잃고 사라졌다.
민준은 이 주변에 투명하고도 단단한 결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독 안에 든 쥐군.”
등을 보이고 도망가던 도플갱어는 몇 번의 도약으로 폐차들이 만들어낸 고철의 동산 정상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결국 무언가를 눈치챈 듯.
휙!
다시 고개를 돌리며, 적의 가득한 시선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자기가 갇힌 것을 알아차린 것 같네요.”
“이제 마지막 발악을 할 겁니다. 조심하십시오.”
도플갱어가 몸을 띄운 것은 민준이 말을 막 마친 그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폭음.
퍼-엉!
퍼퍼펑! 펑!
둘에게 달려든 외계인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파도처럼 이어지는 불길과 충격파. 지축이 끊임 없이 흔들린다.
민준과 사하르는 양쪽으로 갈라져 몸을 피하는 동시에 도플갱어를 공격했다. 민준이 만들어낸 검은 화살과, 사하르가 쏘아낸 보라색 파동이 타깃의 몸을 스친다.
그 공격을 피해내며 도플갱어는 폐차들이 만들어낸 언덕으로 뛰어 들었다.
다시, 폭발.
펑-!
퍼펑!
폭발이 터질 때마다 폐차가 끝난 금속들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불길이 비처럼 내리고, 화산탄처럼 타오르는 쇳덩어리들이 곳곳에 나뒹굴었다. 폐차장 중앙에서 화산 분출이라도 시작된 것 같은 광경이었다. 폭발의 순간에는 엄청난 고열이 발생하므로, 쇳덩어리가 녹아서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이 용암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몰아넣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군.’
사방에 불티가 휘날리고 유독한 연기가 열풍에 휘말려 소용돌이쳤다. 불길이 거세지며 만들어진 열기는 사람을 산 채로 익히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민간인들의 주거지에서 이런 싸움을 벌였으면 본의 아니게 휘말린 사상자가 백 단위로는 나왔을 터다.
‘다시 말해서 똑똑한 놈은 아니란 말이지.’
그랬다면 민준과 사하르의 의도를 알아차렸을 터.
그리고 이런 인적 드문 곳까지 도망치는 대신 인구가 많은 곳을 노려서 인질극을 벌였을 것이다.
화르르륵!
사방에는 불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치솟는 열풍 때문에 사하르의 머리카락이 사납게 휘날렸다. 마녀가 손을 뻗은 순간 그녀가 쏘아낸 에너지 탄환이 도플갱어에 뒷통수에 직격했다.
퍼억!
인간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도플갱어.
그가 휘청거린 그 순간.
쐐애애액!
민준의 등에서 수백 가닥의 그림자가 채찍처럼 뻗어나가 남자의 어깨부터 발까지 완전히 휘감았다.
요원이 외쳤다.
“잡았···!”
탄성을 막 내지르려던 그 순간.
“?!”
그림자 밖으로 튀어나와 있던 도플갱어의 머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흥!”
민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또 변신이냐?”
놈을 감싸던 그림자 채찍이 출렁였다. 갑작스러운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으로 변했던 도플갱어가 순식간에 몸 크기를 줄인 것이었다.
‘확실히 똑똑한 놈은 아니군.’
그림자 채찍이 만든 고치의 구멍, 본래 남자의 머리가 있던 그곳에서 갑자기 작은 동물 하나가 튀어나왔다.
펄쩍!
하지만 민준이 만든 검은 채찍이 바로 그것을 쫓아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꽁꽁 묶어 버렸다.
“캬아아아악!”
민준은 그림자가 만든 밧줄에 꽁꽁 묶여버린 그 생물을 보았다.
‘고양이?’
하긴, 저 외계인은 애초에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종으로 변신을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종으로도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캬악! 캬아아아악!”
고양이로 변한 도플갱어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거렸지만 민준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발악하는 모양을 보니 저것보다 더 작은 형태로는 변신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랬다간 뇌가 너무 줄어들어서 이능력도 쓸 수 없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다시 큰 형태로 변신했다간 조여든 그림자 채찍 때문에 온 몸이 수십 조각으로 동강이 날 게 분명했다.
휘릭!
민준은 채찍의 길이를 줄이고, 갈색 털의 고양이로 변한 외계인의 모가지를 잡았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두 눈을 마주보며 말한다.
“잡았다, 도플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