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19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9)
***
하비브는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마리얌을 찾아왔다.
“오늘도 네가 제일 늦었구나? 하비브.”
하비브는 다른 고양이들이 먹이를 다 먹고 사라진 뒤, 마리얌이 혼자 남는 순간이 오길 기다린 뒤에야 그녀 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면 마리얌은 그의 몫으로 따로 챙겨 놓은 사료를 주었다.
장기가 엉망으로 망가진 뒤 그는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본래의 파이로키네시스 능력도 옛날처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고양이 모습으로, 고양이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마리얌은 구세주와도 같았다. 비록 치료의 효과는 크지 않았으나, 그녀의 기도를 한 번 들으면 며칠 동안은 끔찍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악몽도 꾸지 않았다.
‘이건 분명 신성력이다.’
하비브는 마리얌의 이능을 그리 정의했다.
‘하지만 아직 본인의 능력을 완벽하게 통제 못하고 있어.’
신성력의 가장 큰 특징인 황금색의 빛이 그녀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마리얌은 자신이 이능을 쓴다는 사실조차 자각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걸로 보였다.
교류가 이어지며 하비브는 마리얌이 외우는 기도의 내용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알라께서 자비를 베풀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원하는 의지가 힘과 공명한 결과, 작은 기적이 생겨난다.
하비브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아아.’
마리얌의 나지막한 기도소리가 따스한 물처럼 스며든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몸을 짓누르듯 괴롭히던 통증이 가라앉았다.
무척이나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 마리얌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하비브는 늘 그렇듯 축 늘어져 그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기도가 멎은 뒤 하비브가 물었다.
“내게 지어 준 이 이름, 하비브는 무슨 뜻이지?”
하비브의 언어습득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마리얌은 놀랄 만한 속도로 상대의 언어를 흡수하듯 익혀 나갔다.
그 결과 두 사람은 몇 개월만에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의 질문을 들은 마리얌이 웃으며 답했다.
“사랑받는 이. 사랑받는 친구. 그런 뜻이야.”
“왜 내게 그런 이름을 붙였지?”
“넌 알라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게 분명하니까. 말을 할 수 있는 고양이는 흔치 않잖니?”
하비브는 끝까지 자신이 외계인임을 마리얌에게 밝히지 않았다.
소녀는 고양이의 머리와 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 특별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럼 마리얌, 네 이름은 무슨 뜻인데?”
만난 지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처음 해 보는 질문이었다.
“마리얌은 쿠란에 나오는 위대한 여인의 이름이야.”
“위대한 여인?”
“응. 그 분은 아버지 없이 아들을 낳는 기적을 보여주셨어. 성전을 위해 봉사하는 영예스러운 예배 지도자시기도 했지. 참 이상하지 않아? 먼 옛날에는 여자들이 예배를 주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맘들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야.”
“아니, 잠깐만. 그것보다 더 이상한 건 인간이 부친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부분 아닌가?”
“그러니 기적이지. 천사 가브리엘이 그녀를 찾아와 미리 예언했다고 해.”
마리얌은 코란의 구절을 그대로 읊었다.
“알라께서 자비의 증표로써 ‘그’를 만들고자 하느니, 마리얌을 통한 탄생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니라.”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난 내 이름이 마음에 들어. 마리얌은 쿠란에 이름으로 언급된 유일한 여성이거든.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겠지.”
마리얌을 알게 뒤 하비브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 쿠란이라는 경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 중요한 책에 이름으로 언급된 여성이 단 한 명 뿐이고, 그 근거가 된 대단한 업적이 ‘출산’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신기한 건, 여자를 그리 취급하는 종교를 믿으면서도 신성력을 발현한 마리얌이겠지만.’
대체 종교라는 것은 뭘까?
평생 사람을 죽이고 태우기만 했지 제대로 뭔가를 배워본 적이 없는 하비브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마리얌이 하비브에게 어떤 비밀을 털어 놓은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비브, 오늘은 할 이야기가 있어.”
외계인은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는 좀 다른 것을 느꼈다.
“어제 고양이들 밥을 주는데, 평소엔 못 보던 아이가 섞여 있었어.”
하비브는 어제 마리얌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새로운 고양이가 먹이를 먹으러 왔다고 한다.
쿨라파에서는 보기 힘든 흑묘였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말을 했어.”
“······?!”
하비브는 동요했다.
“말을 하다니. 나처럼?”
“아니. 그 애는 아랍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했어.”
이어진 이야기는 하비브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패밀리어로군.”
“응, 그 사람의 동료가 예배당에서 나를 봤다고 했어.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이능력자라는 거야. 무슨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능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걸 제대로 쓸 수 없고,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바로 사형을 당하겠지. 난 여자니까. 그러니 내가 원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 짧은 순간 하비브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물밀듯이 몰아쳤다.
마리얌은 분명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지금도 이 정도 힘을 보일 수 있다면, 제대로 훈련을 받고 연습한 뒤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경지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이 나라에서 그런 힘을 보였다간 목이 잘리겠지만, 다른 평범한 나라에서 활동한다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반면, 이런 생각도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리얌이 외국으로 망명한다면 자신도 따라갈 수 있을까? 마리얌은 자신의 정체를 아직 모르지만, 그녀와 함께 움직일 마녀들은 하비브가 변신한 외계인이라는 걸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하비브는 지구인들 입장에선 불법체류자다. 신고라도 당하면 곤란해진다.
끓는 물처럼 부글거리는 생각을 제대로 정돈할 틈도 없이, 하비브는 이렇게 외쳤다.
“가!”
“······뭐라고?”
“떠나! 이 나라를 떠나라고! 그녀들과 함께, 다른 나라로 가!”
마리얌이 살짝 슬픈 표정을 짓는다.
“······하비브.”
“너도 알잖아. 이 나라에서 교육을 마쳐 봤자 기다리는 미래는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되는 것뿐이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도 없겠지. 하지만 외국으로 간다면 모든 게 달라져.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알아!”
마리얌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하비브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고양이는 조급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따라간다고 했지? 응?”
“아니, 내게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
“왜?!”
하비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나라는 마리얌 같은 여자들에게 감옥 같은 장소다.
심지어 이능력을 들키게 되면 이 감옥은 바로 처형장으로 바뀔 것이다.
“그 검은 고양이, 정확히는 고양이를 부리는 마녀일테지만··· 그녀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 하지만 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어. 그랬더니 내게 명예 살인이 무서워서 그러는 거냐고 묻더라고? 난 그냥 계속 아무 말도 안 했어.”
“정말 그 이유 때문이야? 네 가족들이 널 추적해서 해꼬지할까봐?”
“실은 다른 이유가 더 커.”
“대체 뭔데?”
마리얌이 희미하게 웃는다.
“나, 사실은 내 능력이 뭔지 알아.”
패밀리어로 접촉한 마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얌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다.
“하비브, 너 몸이 많이 아프지? 나를 찾아올 때 움직임과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 하지만 내가 기도를 외우고 나면 많이 나아지는 거지? 그렇지?”
“······.”
“나도 바보는 아니야. 네가 몇 번이나 그러는 걸 보고 사람한테도 실험을 해 봤어.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다섯 번, 매일 단체로 기도를 올려야 해. 난 지금까지 그걸 한 번도 빼먹지 않았어. 기도를 마무리하는 내용도 항상 똑같았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응. 또한 그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알라께서 자비를 베풀기를.”
하비브의 갈색 털을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요 몇 주간, 나는 기도 내용을 조금 바꿔 봤어.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녀의 친구들 이름이 나열된다.
“시린은 기숙사에 들어오고 나서 깨끗하게 나은 줄 알았던 만성 두통이 재발했지. 마누르는 복통 때문에 수업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어. 부샤라는 피부병 때문에 고생하고, 아닐라는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된다며 며칠 째 죽으로 식사를 때우는 중이야.”
“······.”
“그러고 보면, 이 수많은 인원이 모인 기숙사에 이상하게 그동안 아픈 사람이 거의 없었어.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가벼운 감기라도 돌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다들 크게 앓지 않고 넘어갔지. 우린 이걸 다 알라의 축복이라 생각하고 감사해 하며 살아 왔어.”
하지만 그 축복의 매개가 된 사람은, 바로 마리얌이었다.
“이건 다른 나라에서는 ‘신성력’이라고 부르는 힘이겠지? 이 나라에서는 ‘회복 마법’이라고 칭하지만.”
하비브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맞아. 마리얌, 넌 신성력 능력자야. 아직 제대로 쓰는 법을 모르기에 황금색 빛은 나지 않지만 그 가능성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욱 이 나라를 떠나야···!”
“아니, 난 떠나지 않을 거야.”
“?!”
“내게 진정 신성력이 있다면, 난 이 힘을 이곳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해.”
사우디 아라비아 내 무슬림 자치구의 경제 상황은 최악이다.
실업률은 정확히 집계된 적이 없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는 확실히 넘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자치구 내로 유입되는 모든 물자는 이스라엘 군에 의해 통제된다. 또한 자치구 밖으로의 수출 역시 유대인을 통해서만 가능한 실정이었다.
장벽 밖으로의 외출 역시 역시 쉽지 않은 터라, 많은 아랍인들은 소음과 악취 때문에 기피되는 양계업에 종사하거나 왕조 시절 개간한 땅에서 대추 야자 등을 재배하여 팔았다. 노력에 비해 소득이 크지 않은 업종들이다.
자치구 내 공장 역시 모두 유대인들 소유이고, 세계적 추세에 따라 최저 임금이나 법적 노동 시간 같은 제도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회복지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어서 의사는 당연히 부족하고 의약품 공급도 충분치 못했다.
이곳에서 자랐기에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마리얌은 말했다.
“이 힘은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 해.”
하비브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들켰다간 당장에 사형이야!”
“그러니 평생 숨어서 살아야겠지. 내게 흑묘를 보낸 그녀처럼.”
“마녀가 되겠다는 뜻이야?”
“그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어.”
사하르가 들었다면 대환영을 했을 발언이었다.
그녀들 중에는 아직 신성력 능력자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나서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불가능해. 여자 혼자 외출할 수 없는 사회이니까. 앞으로도 모든 남자들이 내 행실을 감시할 테니까. 언젠가는 꼬리가 밟힐 거야. 그러니 숨어서 살아야겠지. 모든 인간 관계를 단절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은신한 채 조심스럽게 내 능력을 사용해야 할 거야.”
“그게 네가 원하는 삶이야? 그런 비참한 인생 대신, 외국으로 나가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 수 있어!”
마리얌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알라께서 내게 이 능력을 주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어. 그리고 내린 대답은 이거야. 이 힘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장소는 여기, 쿨라파야.”
하지만 아직 사하르에게 이런 마음을 전하지는 않았다.
그저 생각할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마리얌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 길을 걷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부모님, 친척, 친구, 선생님들 전부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겠지.”
쓸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그 중에서도 친구들이 제일 마음에 걸려. 우리들은 몇 년 동안 이 기숙사에서 매일 같이 살을 부대끼며 지내왔어. 그 애들은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앞으로 1년만 더 있으면 졸업이니 마지막 한 해를 소중히 여기며 좀 더 이 나날을 즐기고 싶어. 쿨라파의 마녀가 되어 평생 숨어 사는 생활은 그 이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아.”
하비브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하지만 지금 이 속도라면··· 그리고 이미 스스로가 자각을 한 상태라면, 넌 결국 졸업 전에 신성력을 완전히 개화하게 될 텐데!
“앞으로 1년이야.”
슬퍼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쿠란의 마리얌은 주저함 없이 알라의 뜻에 따라 홀로 예언자 이사(عيسى, 예수)를 낳았지. 하지만 난 그분과는 달라. 걱정도, 고민도, 두려움도 많은 평범한 인간이야. 각오를 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해.”
하비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비비(حبيبي, 나의 하비브), 날 이해할 수 있겠니?”
***
“불! 불이야!”
“꺄아악! 사람 살려!”
“불이 났어요! 불이야! 제발 살려 주세요!”
마리얌의 기숙사에 불이 난 것은 둘이 그 대화를 나누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