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
정팔이 리야드에 도착하기 며칠 전.
아직 한국을 떠나지 않은 민준은 책상 앞에 앉아 여유롭게 종이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캐시가 문뜩 말을 건다.
“어? 민준씨. 내일 탈 비행기 관련해서 메일이 하나 왔는데요?”
항공편 예약은 비서인 캐시가 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2G폰을 들고 다니는 민준의 이메일 계정을 대신 관리해 주는 것도 그녀의 일이다.
“비행기 출발 여섯 시간 전까지 공항에 미리 오라네요?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나? 그렇게 일찍부터 가서 뭘 하라고.”
민준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한다.
“혹시 내일 내가 탈 비행기, 엘알(El-Al)이야?”
“맞아요. 엘알 이스라엘 항공. 그날 출발하는 직항편 중에 국적기가 없더라구요.”
“아, 그럼 신경 쓸 거 없어. 걔네는 원래 그러니까. 너, 여행은 여기저기 자주 다녀 봤다더니 이스라엘은 안 가 본 모양이지?”
비서가 어렸을 때부터 해외 곳곳을 다닌 것을 알기에 한 질문이다.
가볍게 떠 봤을 뿐인데 캐시는 정색을 했다.
“이스라엘요? 어휴, 거길 제가 왜 여행을 가요?”
미용실에서 손질한 지 얼마 안 되는 머리를 매만지며 질색팔색을 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삭발까지 시키는 야만적인 나라에 개인적인 목적으로는 제 돈 1원도 쓰기 싫은데요.”
“아니 뭐, 여자라고 다 삭발해야 하는 건 아니고 유대인 중에서도 극보수주의자 일부가 그러기는 하는데···.”
“삭발이 아니라도 여자들은 머리를 천으로 꽁꽁 싸매고 다니거나, 아니면 집안에만 처박혀 있어야 한다면서요! 그 옆 나라에서 하는 꼬라지랑 똑같아. 서로 죽도록 싫어하면서 정작 하는 짓들은 비슷하다니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죠.”
이스라엘 내 유대인 중 극보수주의자들의 인구 비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의 번성을 최우선시하는 그들은 당연히 피임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평균 출생률은 오크에 비견될 정도이다.
또한 그들이 여성을 대하는 행태는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보다 더하다는 평가마저 나오니, 캐시가 이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어떤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외간남자에게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된다’라는 규율을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유부녀의 삭발을 의무화하므로 그녀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분개하던 캐시가 민준을 보며 묻는다.
“그래서, 여섯 시간 전에 와야 하는 이유는 뭔데요?”
“내 기억으로 그 항공사 비행기를 탈 때는 공항에서 짐 부치기도 전에 승객 전원이 보안 요원이랑 1:1 인터뷰를 해야 했던 것 같아. 그 과정이 오래 걸리니까 미리미리 나오라는 안내를 한 거겠지.”
“일대일 인터뷰라면 테러 위협 때문에요?”
“그렇지.”
캐시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지른 짓이 있으니까. 몸을 사릴 만도 하죠.”
“실제로 그쪽 항공기가 하이잭이나 격추도 많이 당했었고.”
“요즘도 주변국들이랑 걸핏하면 무력 시위를 벌인다면서요? 무슬림 국가끼리 종파를 초월해서 손잡고 이를 간다던대. 중동 전쟁 때 잃은 성지들을 기필코 되찾겠다면서.”
“네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잘도 안다?”
“이 정도는 상식이죠.”
연이은 전쟁을 통해 샤론 반도(옛 아라비안 반도)의 7할이 넘는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하면서 예루살렘, 메디나를 이어 메카까지 이슬람교의 3대 성지는 모두 유대인들이 차지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은 멈췄지만 주변 국가들과의 크고 작은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세 곳의 성지를 모두 이교도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은 무슬림들의 영혼과 자존심에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세계를 뒤에서 움직이는 드래곤들의 입김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드래곤들이 전면전을 억제하고 있는 지금도 이스라엘 및 주변 중동 국가 간의 테러는 끊이지 않고 있으니, 그 증오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알 만하다고 캐시는 생각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항공사도 저렇게까지 유난을 떠는 것이리라.
“아무튼 그 메일은 신경쓸 거 없어. 내가 내일 알아서 택시 타고 갈 테니까.”
“하지만 탑승 여섯 시간 전이면··· 이민국에서 회의 일정 있잖아요. 스케쥴 조정해 놓을까요?”
“아니, 필요없다니까.”
“?”
의아하게 바라보는 캐시를 향해 민준은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
다음날, 인천공항.
“예민준 요원님,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보딩 타임을 정확히 30분 앞두고 민준은 택시에서 내렸다. 미리 기다리던 항공사 직원 두 명이 정중하게 인사하며 민준으로부터 여권과 짐을 넘겨 받는다. 무장한 보안 요원은 보이지 않았다.
민준은 자신을 맞이한 직원들의 유니폼을 본다. 보안을 이유로 지상직 업무를 타 항공사에 아웃소싱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맞는지 엘알 항공 특유의 마크, 다윗의 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연배를 봐서는 한국 지사장일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앞서 가는 두 직원 뒤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다. 민준은 도중에 걸음을 멈출 필요도 거의 없었다. 인터뷰 같은 것도 물론 없었다.
‘몇십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군.’
하긴, 지구에 막 도착해서 임무를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예민준이라는 위장 신분의 명성이 꽤나 높아지긴 한 것 같다. 특히 일부 계층 및 종족들 사이에서 말이다.
물론 이 항공사 직원들이 이렇게까지 달라 붙어 의전을 수행하는 이유에는 다른 것도 있겠지만.
둘은 민준을 마법사 전용 보안 검사 게이트도 아닌 그 옆의 문으로 인도했다. 기내 수하물에 허가 받지 않은 아티팩트가 없는지 확인하던 마법사들이 그런 민준을 흘깃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민준의 가방을 검사하거나 그의 몸을 수색하려는 시도는 없다.
오히려, 그들을 지휘하던 백발의 마법사가 민준을 보곤 흠칫! 굳더니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얼굴이다. 아마 몇십 년 전 그의 청년 시절에 자신이 마법을 가르쳤을지도 모른다고 민준은 생각했다.
지구에 온 뒤 이런 식으로 얽힌 인연은 셀 수도 없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Welcome aboard, sir. This cabin is all yours!”
그를 환영한 승무원의 말처럼 비즈니스 클래스의 승객은 민준 한 명 뿐이었다. 예약한 사람이 정말 더 없는지 아니면 민준을 위해 나머지 좌석을 다 비워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민준은 자리에 앉은 채 감각을 집중하여 뒤편 일반석의 승객들을 살폈다. 창천을 죽인 그날 이후 그의 감각은 경이로운 수준까지 상승했다.
‘어디보자, 마법사가 셋··· 넷··· 다섯··· 전부 여섯이군.’
보통 여객기를 탈 때 마법사가 자신을 포함하여 한, 두 명 정도였던 것을 비교하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민준은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보낸 사복 경찰 겸 마법사들이 테러 방지를 위해 승객과 섞여 앉아 있는 것이다. 민준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운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라고 마케팅을 할 정도이긴 하다고 민준은 생각했다. 실제로 민항기에는 찾아볼 수 없는, 전투기에나 장착될 만한 고도의 결계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이 비행기에도 장착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민준이 탄 이상 이 비행기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기가 될 것이다. 그 어떤 테러 단체도 후환이 두려워 감히 격추나 하이잭을 시도도 하지 못할테니.
‘테오 크리스티안센, 그 흑마법사 같은 또라이만 아니라면 말이지.’
민준을 살해하려고 했던 흑마법사는 자신의 몸을 붕괴시켜 벌레 떼로 만들었고, 그 벌레 떼들 조차 어비스로 추방당했다.
요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바로 여기였지.’
비행기가 이륙한 뒤, 민준은 무덤덤한 얼굴로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인천공항과 바로 옆에 그 몇 배에 달하는 부지를 차지하는 시설이 보였다.
‘터미널.’
차원 도약 터미널은 공항 가까이에 짓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야 차원 이동을 막 마친 승객들이 지구 곳곳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으므로.
민준의 시선은 터미널의 건물 중에서도 가장 큰 빌딩의 옥상에 머물고 있었다. 이 높이에서는 마치 장난감처럼 작게 보인다.
몇 달 전, 테오 크리스티안이 죽은 날. 민준은 저곳 난간에 잠시 걸터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 상대방 역시 옛날에 인연이 얽힌 이였다. 방금 전 봤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백발의 마법사보다는 깊이 엮였을 것이다.
그녀는 민준의 전처였으니까.
– 퇴직금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내 예상이 맞다면 그런 거액을 공용 화폐로 동원할 수 있는 자는 없어.
–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그게 내가 사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죄라······.’
전처는 자신에게 사죄를 하고 또 도움을 주기 위해 지구에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이 차원을 떠났다.
‘지금은 어디쯤에 있을까?’
잠시 후, 민준은 자신이 그런 의문을 떠올린 사실 자체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지금 어디에, 누구와 있든.’
언젠가 다시 정보를 흘려주러 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다.
민준은 그렇게 되뇌며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했다.
***
“어이, 여기야!”
다음날, 이스라엘 령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 도심부의 한 카페에서 민준은 약속 상대를 만났다.
“오랜만이군, 트리스탄.”
냉큼 악수를 건네는 상대는 키가 민준의 허리춤에 오는 드워프였다. 살짝 허리를 숙여 그 손을 잡고 흔든다. 직원이 드워프 용 의자를 가지고 오기까지 좀 기다린 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았다.
민준은 트리스탄이 쓰고 있는 모자에 주목했다. 작고 테두리가 없는 둥근 모자. 머리를 다 덮지 못하고 그 일부만 가린 상태로, 납작한 그릇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 모자는 실내에서도 써야 되는 거였던가?’
잠시 주변을 본다. 트리스탄처럼 작은 모자를 쓴 사람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챙이 더 넓은 검은 모자를 쓴 이들이 더 많았다.
민준이 말했다.
“일단 주문부터 하지. 여기 술도 파나?”
“당연히 팔지. 여기가 ‘무슬림 구역’도 아니고. 위스키처럼 독한 술은 없지만, 와인이나 맥주 정도는 팔아.”
“난 와인으로 하지. 트리스탄, 넌 당연히 맥주지?”
그리 묻자 드워프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니 왜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보는 거야? 드워프면 당연히 맥주를 좋아할 거라는 편견을 버려. 그거 고정관념이야!”
“그럼 뭐 먹을 건데?”
“······기네스.”
싱겁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민준은 점원을 부른다.
잠시 후 술잔을 기울이며 두 사람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뜸 용건부터 언급하는 대신 민준은 드워프의 안부를 묻는다.
“결혼 생활은 어때?”
“아주 행복하지. 당연히 행복해야지. 내가 이 결혼을 위해 포기한 게 얼마나 많은데.”
“뭘 그렇게 많이 포기했는데?”
“많지.”
드워프의 한탄이 시작된다.
“코셔 인증을 받지 않은 수많은 가공식품을 비롯해서 평생 돼지고기는 못 먹고 거기다가 카페라떼, 치즈버거도 포기했어. 그 뿐인가? 안식일에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집에 있어야 하지. 이런 자잘한 것 말고도 평생 지켜야 할 큰 규칙만 해도 613개야!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내 포피까지 포기를 했···!”
“에이, 씨. 술맛 떨어지게.”
민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트리스탄은 유대인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을 한 드워프다.
그리고 이교도가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개종 학교를 졸업하고 최종 시험에 통과하는 것 외에도, 남자라면 꼭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할례였다.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상상하게 된 민준은 그 장면을 재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래도 트리스탄, 네 선택이었잖아. 유대인이 된 건.”
“맞아. 그러니 어쩔 수 없지. 결혼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했고, 이 편이 ‘활동’하기에 편하고 말이야. 이 나라에서 유대인은 무슬림 구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는 통 어려우니까.”
드워프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육식주의자 엘프처럼 어색하게 들리지만, 현실을 보면 인간이 아닌 종족도 유대인이 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유대교를 믿고 몇 가지 테스트 및 의식을 통과하면 유대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혈통이나 피부색, 생김새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모두에게 문이 열려 있던 것은 아니다. 이종족의 지구 이민이 시작되며 랍비들은 꽤나 심각한 고민에 빠져야 했다.
유대인은 당연히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엘프나 오크, 드워프 같은 종족도 사람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그들의 경전인 토라에 따르면 사람은 엘로힘(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졌다고 했다. 따라서 사람은 인간과 비슷한 형상이어야 한다.
이 ‘형상’의 개념을 신체적인 특징에 국한되어 해석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미 고대의 랍비들 사이에 논의가 끝난 것처럼 엘로힘과 영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및 이성으로 정의해야 하는지 치열한 논의가 오간 끝에, 유대인들은 후자의 해석을 선택했다.
덕분에 드워프 유대인, 엘프 유대인, 오크 유대인, 물론 이론상이지만 본인만 원한다면 엔델리온 유대인까지도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넌 요즘도 무슬림 구역을 드나든단 말이지?”
“당연하지. 요즘 비싸게 팔리는 건 거의 다 그쪽 정보니까. 아 혹시···.”
드워프는 요원이 왜 이 나라까지 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왔구나?”
“맞아.”
고개를 끄덕인 민준은 트리스탄과 거의 동시에 말했다.
“도플갱어.”
“언데드.”
“······?”
“······?”
서로 엇갈린 단어를 말한 두 사람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트리스탄이 먼저 물었다.
“도플갱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