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1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1)
이맘의 권위에 의해 밀고는 사실로 판정되었다.
형식을 갖춘 재판 절차 역시 생략되었다. 이맘 다르하비의 약식 판결이 전부였다. 마리얌의 처형은 전례 없이 빠르게 준비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넓은 광장에서 많은 입회자의 참관 하에 진행되지만, 마리얌의 경우는 창문 없는 밀실에서 집행인과 이맘 다르하비 두 사람만이 지켜보았다.
– 집행하라.
머리에 검은 자루를 뒤집어 쓴 채로도 그 소녀는 계속 기도를 하고 있었다. 사형대에 무릎을 꿇은 그 순간까지도.
그 내용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맴도는 듯 했다.
– ······알라여, 자비를 베푸소서. 부디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소서. 그들 모두에게 평화가 있도록 하소서. 오, 알라. 당신은 가장 자비로우신 분이며 가장 긍휼이 많으신 분. 부디 우리가 서로를 경멸하지 않도록 하소서.
그 순간 사형 집행인은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맘 다르하비도 그때 느꼈던 경악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손발이 묶이고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린 소녀에게서 찬란한 황금색 광휘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다르하비는 맹세컨대 그리 아름다운 빛을 살면서 달리 본 적이 없었다. 목도한 순간 마음 속에 맺혀 있던 무언가 녹아 흘러 내리는 느낌이었다.
오랜 세월 말라 있던 눈가가 젖어들고, 그 빛에 의지하여 몸을 눕히고 엉엉 울고 싶었다. 그 어떤 회복 마법사 앞에서도 이런 강렬한 충동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꽃잎이 흩날리듯, 소녀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은 허공에서 하늘하늘 춤추며 벽을 뚫고 먼 곳까지 흘러 나갔다.
이맘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 것은 그때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내면에 차오르던 감정을 죽였다. 본성 대신 머리로 판단하여 외쳤다.
– 쳐! 쳐라!
집행인이 머뭇거렸다.
– 어서! 당장 저 사악한 년의 목을 잘라내!
집행인이 이를 악물며 팔을 들어올렸다. 날카로운 칼날이 아롱거리는 빛을 스치며 내려 찍었다. 부들거리는 뺨에 핏방울이 튄 순간 이맘은 눈을 감았다.
***
“이맘 다르하비. 이맘 아티크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맘은 눈을 떴다.
회상에서 빠져 나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다르하비는 수하가 두 번을 더 부른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
“아티크가?”
방금 병원에서 회동을 마친 뒤다.
무엇이 그리 급하기에?
수화기 너머로 아티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방금 중요한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다르하비의 눈이 커졌다.
“동양인이라고요?”
– 네. 검은 머리의 남자가 쿨라파 게이트를 나갔다가 몇 시간만에 돌아오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갈 땐 빈손이었고 올 때는 검은 보스턴 백을 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맘들의 타깃이 된 이교도 마법사가 분명했다.
그 남자가 쿨라파로 들어온 뒤 아티크의 수하는 뒤를 쫒으려고 했으나 결국 놓쳐 버렸다.
아마도 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 그 이교도는 리야드의 호텔에서 동료와 접선한 것 같습니다.
“없었던 가방이 생겨났으니, 넘겨 받은 것이겠죠.”
– 네. 호텔 직원을 매수하여 알아본 결과··· ‘돼지’ 한 마리가 그 가방을 들고 호텔에 체크인 했다고 합니다.
이맘 다르하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마법사의 동료겠군요.”
아직 이교도도 마녀도 행방을 찾지 못했다.
이쪽에서 발견해 낼 수 없다면 상대를 꾀어내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 저희 정보원을 통해 그 동양인의 신원도 알아냈습니다. 광동 연방 출신이라더군요.
역시 중국인이었나?
– 모국에서 사고를 치고 한국에서 잠적하다가, 그 나라에서도 문제가 생겨 여기로 넘어온 모양입니다. 마녀의 시신을 차지해서 종으로 부리려는 것 같습니다. 흑마법사들이 자주 하는 짓이니까요.
캐낸 내용을 더 들어보니 그 남자는 이맘들 선에서 처리해도 탈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딱히 뒷배라고 할 만한 것은 없는 평범한 마법사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맘 아티크는 언제 저런 훌륭한 정보원을 손에 넣었을까? 다음에 만날 때 꼭 물어봐야겠다고 다르하비는 생각했다.
“제 수하들도 리야드로 보내겠습니다.”
– 역시 이맘 다르하비는 말이 잘 통하시는군요.
그 이교도는 분명 강한 마법사다.
하지만 쿨라파의 이맘들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하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이교도와 싸우다 죽는 것은 순교이며, 순교자에게는 천국길이 보장된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순교자가 되는 것을 영예로운 일로 여긴다.
다르하비는 말했다.
“그 돼지를 붙잡아서 미끼로 씁시다.”
***
정팔이 호텔을 나선 것은 야심한 시각이었다.
공항에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양복 차림의 기사가 고급 차량과 함께 로비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저번과 같은 루트면 10분 정도 걸리겠군.’
유일한 짐이었던 보스턴 백을 민준에게 넘겼으므로 간단한 손가방 하나 없는 간소한 차림이었다. 여권과 지갑만 챙긴 채 정팔은 차량에 탑승했다. 미리 차갑게 해 둔 생수 몇 병이 차 안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를 태운 세단은 리야드 공항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도로에 다른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변이 벌어진 것은 출발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였다.
끼이이익!
“어, 엇?!”
피곤해서 눈을 감고 있던 정팔의 귀에 신경이 거슬리는 소음과 당황한 운전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번쩍! 눈을 뜬 순간 앞에서 마주보고 달려오는 대형 트럭이 보였다.
그런데 차선을 벗어나 있다.
‘차량 고장인가?’
아니, 단순 사고 같지는 않다.
정팔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끼이이이이익!
트럭은 그대로 급정지를 하더니, 가로로 비스듬하게 세워서 4차선 도로를 사실상 막아 놓다시피 했다.
‘이건, 설마···!’
순식간에 트럭의 화물칸이 열리며 검은 옷의 남자들이 뛰어나왔다.
전부 무장한 상태다.
‘젠장!’
정팔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피가 역류하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남자들은 무기를 겨냥한 채 정팔이 탄 차량을 둘러쌌다. 그 중 몇몇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으아아악!”
방탄 유리인 것을 알면서도 운전자는 기겁하여 고개를 숙였다.
남자들이 노린 것은 타이어인 듯 했다.
“내려! 내려!”
남자들은 아랍어로 소리쳤다.
그들 중에는 이능력자도 있는지, 저 뒷편에서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며 두 손에 일렁이는 불꽃을 만들고 있다. 총을 든 남자는 그쪽을 턱으로 연신 가리켰다. 당장 내리지 않으면 차와 함께 태워버리겠다는 의도인 듯 했다.
‘젠장, 하필 총도 없는 상태에서!’
정팔은 출국할 때 무기를 챙겨오지 않았다. 입출국 수속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결국 기사와 정팔은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이 밖으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순간.
탕-!
총구가 불을 뿜었다. 운전기사가 뒤통수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이 미친 새끼들이···!”
정팔은 분노하며 포효했다. 그런 그를 향해 남자들이 총구를 동시에 들이민다.
“무릎 꿇어! 꿇으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였지만 뭘 원하는지는 분명했다.
정팔은 이를 갈며 몸을 숙이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도로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다른 남자가 다가와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대체 왜 날 노리는 거지?’
손쉽게 일이 해결되었다 싶었는지, 아랍인들이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더러운 돼지 새끼.”
누군가 퉷, 침을 뱉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똥오줌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쿨라파까지 데려가는 게 고역이겠어.”
남자 두 명이 정팔의 양팔을 잡고 일으켰다. 그대로 트럭 화물칸으로 끌고간다.
급정차를 하고 상황이 정리되기까지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젠장, 어떻게든 형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핸드폰은 이미 놈들에게 넘어간 상태.
설사 손에 있더라도 이런 감시 속에서 통화는 불가능하다.
자신 앞에 닥친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앞에, 오크가 이를 갈고 있던 그때였다.
“?!”
남자들 중 누군가 고개를 돌리더니 뭔가를 발견하며 외쳤다.
“어? 저쪽에서 다른 차량이 접근합니다!”
“그러니 빨리 태워!”
“······잠깐만,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 한 대도 아니고.”
“반대쪽에서도 여러 대 몰려옵니다!”
트럭 양쪽에서 포위하듯 달려오는 검은 차량들.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아랍인들의 리더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런 미친 이교도들! 대체 어떻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탕-! 탕-! 탕-!
양 방향에서 달려오고 있는 차량은 전부 여덟 대였다. 좌우 창과 썬루프가 열리더니 검은 헬멧을 쓴 인원들이 몸의 일부와 총을 내밀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차가 달리는 상태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으악!”
“적이다! 공격해!”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손에 불덩어리를 들고 있던 아랍인 마법사였다. 그가 주문을 외치는 것보다 총알이 그의 두개골을 관통하는 속도가 빨랐다. 얼굴 한복판에 구멍이 뚫린 그는 허무하게 쓰러졌다. 손 안에 맺혀 있던 불꽃도 순식간에 스러졌다.
그 후로도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거친 총성이 이어졌다. 수많은 인원이 집중 사격을 하면서 생긴 굉음. 아랍인들은 비명과 고함을 지르며 응수했다. 도로에 핏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곧 커다란 웅덩이를 만든다. 머리가 어지러워 질 정도의 소음과 매캐한 화약 냄새를 느끼며, 정팔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탕-! 탕-!
방금 등장한 남자들은 특수한 훈련을 받은 이들로 보였다. 달리는 차 안에서 사격을 했음에도 명중률이 매우 높았다. 아랍인들은 차례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끼이익-!
끼이이이익-!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들을 세웠다. 몇몇이 밖으로 내리더니 자동차를 엄폐물 삼아 사격을 계속한다.
4차선 도로는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모했다. 번쩍이는 불씨와 함께 총알이 사방에서 튀었다. 검은 헬멧을 쓴 남자들의 무기는 반자동 소총이었다. 일 초에도 몇 발씩 쏟아지는 총탄 앞에 아랍인들의 몸은 처참하게 찢겨졌다.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수적으로도 저쪽이 우세였고 실력 역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였다. 아랍인들이 차례로 픽픽 쓰러지는 반면 그들의 공격은 기세를 잃지 않았다.
또한 격렬한 교전 중에도 저들 쪽엔 부상자가 거의 안 보였는데, 정팔은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תן לכוח להגן עלינו”
검은 차량 안에 남은 이들 중 마법사가 존재하는 듯했다.
그들 전체를 감싸는 푸른 빛이 총탄을 튕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안으로! 돼지를 안으로 끌고 가!”
아랍인 리더가 기를 쓰고 외쳤다. 그러자 정팔의 양팔을 잡은 두 남자가 그를 컨테이너 입구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트럭 운전수는 아직 살아있었다. 시동도 켜 놓은 상태고, 정팔을 태우면 바로 급발진을 할 것이다. 이 정도 크기의 트럭이면 차량들을 뚫고 탈출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정팔은 주변을 살폈다. 다른 아랍인들은 전부 검은 헬멧을 쓴 습격자들에게 응전하느라 바쁘다.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다.
판단과 행동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정팔은 기습적으로 몸에 하중을 실어 숙이는 동시에 두 팔을 안으로 조이듯 끌어 당겼다.
“억?!”
그를 잡은 두 남자가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정팔은 다시 확신했다. 공항에서 경험한 것처럼 국민 중 순혈 인간 비율이 99%가 넘는 이 나라에서, 아랍인들은 오크를 직접 마주한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오크 한 명이 낼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체험한 적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잘 훈련된 인간이라고 해도 두 명 정도로는 오크 하나를 이겨내기에 어림도 없었다.
“흐아압!”
괴성과 함께 땅을 찬다. 수갑을 찬 손 대신 어깨로 힘차게 밀어내자 오크와 두 남자는 동시에 쓰러졌다.
이제 정팔은 오른편 남자를 몸 아래에 깔고, 왼편 남자를 위에 올린 샌드위치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는 아래에 누운 남자의 머리를 노리고 힘껏 박치기를 한다.
퍽!
“커헉!”
남자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정팔은 멈추지 않고 다리로 땅을 밀어냈다. 수갑을 찼어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 몸을 틀어 위치를 조정한 정팔은 위에 쓰러진 남자의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주먹을 쥐며 짓이긴다.
무언가 일그러지며 납작해지더니, 뭉개지듯 왈칵 터지는 촉감이 이어졌다.
꾸직!
“······꺼어어어어어어억!”
정팔의 왼팔을 잡고 있던 남자도 눈동자에 핏발을 세우며 떨어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