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5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5)
사하르는 이맘 아티크를 노려보았다. 그의 명령 때문에 죽어간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다르하비는 마녀 사냥에 누구보다 집요하게 매달린 이맘이었다. 허락 없이 마법을 행했다는 죄목을 들먹이며 여자들을 처형했다. 그를 통해 사회 규율을 강화하고 사람들 마음에 공포를 심었다. 마을 광장에는 걸핏하면 크레인에 목이 매달리거나 참수 당한 희생자들이 전시되었고, 쿨라파 사람들은 이맘의 부하들이 강요하는 대로 그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마녀 외에도 평범한 여인들 또한 사소한 잘못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투석형을 당하거나, 가문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것을 걱정한 남자 가족들에게 명예 살인을 당했다. 그런 분위기를 주도한 동시에 그것이 합법이라는 율법 해석을 내놓은 장본인 역시 아티크를 비롯한 이맘들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에서 갈기갈기 찢어 놓고 싶다.
“······네.”
사하르는 그런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물러섰다.
그 사이 민준은 해피 버그의 주문을 준비한다. 그는 하비브에겐 이 벌레를 쓰는 것을 꺼렸다. 회복 불가능한 폐인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묶인 이맘에게는 정보 제공 외에 달리 기대하는 것이 없다.
완전히 망가뜨려도 상관이 없다는 뜻.
찌익!
주문을 외우자 하비브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포가 터지며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을 콧구멍 안에 흘려 넣는다.
“크으으읍!”
이맘 아티크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랍인의 뇌 속에 자리 잡은 벌레는 곧 치명적인 마약 물질을 흘리기 시작했다.
부들, 부들!
이맘의 얼굴이 형언하기 힘든 형태로 일그러진다. 섬망 환자처럼 의미 없는 문장을 연신 뱉으며 헐떡이더니, 이윽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탄과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극상의 환락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더이상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마녀들은 이맘의 아랫도리가 젖어 드는 모습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완전히 풀려 버린 눈동자는 현실을 보고 있지 않았다. 몸은 계속 경련하며 살갗엔 진득한 땀이 흘러 내린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자, 이제 다시 깨어나라.”
민준의 신호와 함께.
“커헉!”
이맘은 물에 빠졌다가 건져낸 사람처럼 급하게 호흡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잔나(جَنّة)는?”
그것은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낙원의 이름이다.
이맘은 지금까지 환각 속에서 그곳을 거닐다 돌아온 듯 했다.
“아, 안 돼. 안 돼···!”
현실을 깨달은 이맘은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절규하며 울기 시작했다. 이 눈물은 방금 전까지 흘렸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깊은 좌절과 절망이 눈가에 고여 넘쳤다.
“다시! 나를 다시 그곳으로 돌려 보내줘! 잔나로! 알라의 곁으로···!”
해피 버그는 숙주가 소망하는 완벽한 환상을 만든다.
당연히 부작용이 수반되는데, 그 자극이 끝난 뒤 숙주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란 잔혹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행복한 허구 속으로 돌아가고픈 충동만 남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상대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민준은 자신했다.
“잔나··· 제발, 잔나로!”
으허헝! 애달픈 울음을 터뜨린다. 이맘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낙원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쿠란의 기록은 정확했다.
순교자들을 위한 그곳에는 향기로운 과실수와 진귀한 요리가 가득했고, 금이나 보석을 포함한 아름다운 재물들이 전부 아티크의 것이었다.
알라께서는 경전에 약속된 것처럼 자신 한 사람을 위해 정숙하고도 순결한 처녀 일흔 두 명을 준비해 주셨다. 또한 현세에서는 금지된 술이 잔나에서는 허락되었기에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 공간에서 아티크는 지루함을 알지 못했으며, 30대 시절의 젊고 건강한 육신을 선사받았다. 덕분에 그는 잔나의 처녀들과 원하는 만큼 몇 번이고 오래도록 몸을 섞을 수 있었다.
침과 눈물을 질질 흘리는 아티크. 그를 보며, 민준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효과가 덜 올라왔군요.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것은 마녀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아티크의 상태가 악화되었다.
“제발··· 제발!”
민준은 이번에 마약 분비량을 급격하게 높였다. 덕분에 아티크가 느낀 후유증은 정신적 박탈감과 고통에만 그치지 않았다. 벌레는 숙주의 엔돌핀 수용체를 엉망으로 헤집어버린다. 따라서 평소에는 고통으로 느낄 수 없는 감각도 엄청난 아픔으로 느껴졌다.
몸을 조인 채찍이 점차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자신의 팔과 등을 누군가 무딘 톱날로 천천히 썰고 있는 듯한 아픔.
또한 침을 삼킬 때마다 유리조각을 삼키는 것처럼 따갑고도 쓰라리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심장 박동도 이제는 통증으로 느껴졌다. 심박이 뛸 때마다 망치로 머리와 가슴을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다.
피부의 감각도 매우 민감해져서 옷자락이 스치기만 해도 기절할 것 같이 아팠다.
하지만 절대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통증 때문에 쇼크사를 할 가능성도 낮았다. 벌레가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아아아!”
아티크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시끄럽군.”
민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방음 결계를 만든다.
그러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뚝 멎었다. 얼굴의 혈관이 터질 것처럼 부푼 이맘은 침묵 속에서 목이 터져라 절규했다. 충혈된 두 눈은 튀어나올듯이 커졌다.
마녀 몇몇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돌려 버렸다. 폐를 토해낼 것 같은 기세로 절규하는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상은 묘하게도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민준은 주문 몇 마디를 외웠다. 그러자 아티크의 뇌에 있는 벌레가 마약 물질을 다시 분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환락 상태에 빠질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지만 그가 간신히 고통을 잊을 정도로 적당한 양이었다.
절규가 멎자 방음 결계도 거두어 들인다.
“허억··· 허어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이맘.
그를 향해 민준이 다가섰다.
“어때. 알라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나? 그럼, 내 질문 몇 가지에 답해 줘야겠어.”
***
이어진 심문에서 이맘 아티크는 민준의 말에 충실하게 답했다. 저항의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낙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 방금 전의 고통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도 다르하비의 위치는 모른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민준의 순순한 종이 된 아티크. 그의 목소리는 절실했다.
이제 이맘에게는 ‘이 세계’는 의미가 없었다. 낙원을 한 번 보고 경험한 이상, 이런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보내는 1분 1초가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전화기를 내 놔라.”
다르하비와 아티크는 서로 항상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었다. 민준은 이맘의 스마트폰에서 가명으로 저장된 번호 하나를 찾아냈다. 아티크의 말에 따르면 이것이 다르하비에게 연결될 수 있는 번호다.
한손에는 그것을 쥔 채, 민준은 자신의 전화기 역시 꺼내 들었다. 그 핸드폰을 본 사하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할랄 폰?’
할랄 폰은 쿨라파 자치구 주민들을 비롯하여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이다. 이맘이 엄금한 인터넷과 게임 등의 앱은 삭제하고 전화와 문자, 기도시간을 알리는 알람 등 간단한 기능만 살린 구시대적 기기였다. 극보수주의 유대인들이 쓰는 ‘코셔 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가 없다더니 왜 저런 핸드폰을 쓰지?’
익숙한 것이 좋다는 이유로 계속 쓰고 있는 핸드폰이 엉뚱한 오해를 불러 일으킨 걸 모른 채, 민준은 피쳐폰 화면을 보았다.
한국은 이제 막 출근을 했을 시간이었다. 전화번호부에서 이름 하나를 찾아낸다.
[젠킨슨 왕비서]몇 번 통화음이 울린 뒤 수화기 너머로 엘프가 말했다.
– 네, 요원님. 블레어 캠벨입니다.
“회장님 계십니까? 잠깐 통화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요.”
–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요원님.
“네?”
– 지금은 임무 중이시라고 들었는데, 한국에는 언제 돌아오시나요?
“아마 2~3일 안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왜 그러십니까?”
– 그럼 그때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긴히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
저 엘프가 웬일이지?
하지만 임무 중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지 블레어는 더 자세한 사항은 말하지 않고 젠킨슨에게 전화를 돌렸다.
– 아, 민준. 무슨 일인가?
젠킨슨의 목소리.
민준은 바로 본론을 말한다.
“모사드 요원 중에 ‘야킴’이라는 코드 네임을 쓰는 녀석이 있어. 나도 본명까지는 모르고.”
– 야킴?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네. 모사드라면 알-사히디의 사람이겠군.
“그녀석에게 연결될 수 있는 번호를 좀 찾아서 알려줘 봐.”
– 알겠네. 조금만 기다리게.
젠킨슨은 민준이 이런 걸 요구하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자 한국에서 문자 하나가 송신되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민준은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
그 시각, 리야드에 위치한 모사드의 임시 상황실.
띠리리리리!
오퍼레이터가 모사드 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몇 마디를 듣더니 표정이 심각해진다.
“야킴 대장님?”
중년의 유대인이 고개를 돌렸다.
야킴은 드론이 실시간으로 촬영한 쿨라파 상황을 주시하던 중이었다.
“왜?”
“본부를 통해 전화가 한 통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대장님과 통화하고 싶다는데··· 원 발신지가 쿨라파 자치구 입니다.”
“······?!”
등을 타고 불길한 예감이 흘러 내렸다.
야킴은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넘겨 받았다.
“네, 야킴입니다.”
그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하지만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 야킴?
“······?!”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음성.
쿨라파에서 겪었던 악몽이 환상처럼 되살아난다. 작전 차량의 천장이 찢어지며 그 위에 모습을 나타냈던 재앙의 형상이.
PTSD 환자라도 된 것처럼, 야킴은 헐떡이는 숨을 억눌렀다.
“···예민준 요원님.”
저쪽에서 먼저 연락을 걸어온 것은 처음이다.
대체 왜?
여러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며 내달렸다.
– 이번에도 꽤나 재미있는 소문을 뿌렸더군. 광동 연방에서 탈출한 흑마법사라고?
이맘 아티크가 실토한 내용을 전하는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장난끼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낭패를 본다는 걸 야킴은 알았다.
저 남자를 일반적인 상식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엘프의 피가 약간 섞인 인간이라는 정보 자체도 맞기는 한지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조우한 경험은 몇 번이 전부이지만, 민준을 보고 있자면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곤 했다.
민준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린다. 긴장 속에서 마른 침을 넘겼다.
‘들켰어도, 증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