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6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6)
정보 교란 과정에서 증거는 일절 남기지 않았다.
무슬림들에게 역정보를 흘린 요원은 이미 리야드로 복귀한 뒤다. 그가 모사드라는 사실을 이맘 아티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추정할 근거도 없다. 야킴은 진심으로 그리 확신했다.
그때, 민준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한다.
– 야킴 네겐 문제가 여럿 있긴 한데, 그 중에서도 대가리를 너무 굴리는 게 가장 큰 문제야. 눈깔 돌아가는 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서 여기까지 들리네?
“······?!”
– 이쪽 이맘들한테 역정보 흘릴 조직이 모사드 말고 더 있겠어? 내가 너 말고 다른 누굴 의심하겠냔 말이지. 너도 참 어지간하다. 그렇게 생각 안 하냐?
물증은 없어도 심증은 충분하다는 뜻.
야킴의 긴장이 최고조로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저 남자는 설마 이것을 빌미로 삼아 여기까지 쫓아올 것인가?
사실 야킴은 몰랐지만, 어제 모사드 본부에서는 계약 요원 몇 명이 기습적으로 휴가를 냈다. 야킴이 한국의 예민준 요원에 대한 역정보 공작을 펼쳤고, 그게 성공했다는 보고가 전해진 직후였다. 그들은 서로의 머리 위에 뜬 은밀한 기호와 숫자를 읽을 수 있는 수형자들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지구에 잠입한 그들은, 성격 더럽고 손속 독하기로 악명 높은 그 ‘아시프-666’이 극노하여 모사드 본부까지 뒤엎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미리 몸을 뺀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본부에 그런 여파까지 끼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야킴은 민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그런데, 천운이 따랐는지 이어지는 음성엔 강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
– 뭐··· 덕분에 이 새끼들이 땅굴 파고 숨는 대신 더 설치고 나대서 내가 편해졌지만.
야킴은 옅은 숨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아직은 안도의 한숨이 나올 타이밍이 아니다.
– 그리고, 너희들이 이번에 내 친구도 구해줬고 말이지.
민준은 혹여 정팔이 습격 당한 사건에도 모사드가 개입했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이맘 아티크의 심문이 예상보다 길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황을 볼 때 그런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민준이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관찰하고 호텔 직원을 매수한 것은 전부 아티크의 부하들이었다. 누군가에게 따로 정보를 얻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직접 목격하여 추적한 것이다.
그리고 민준은 아무리 야킴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설마 자신의 주변 사람을 건드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후환이 훤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역정보를 흘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 서로 몇 가지 주고 받기는 했는데, 저울 눈금이 수평으로 맞춰지기엔 아직 모자라. 내 요청 두 개만 들어주면 피차 빚과 앙금은 다 털어내는 것으로 하지. 어때?
야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 일단, 첫 번째 요청. 내가 지금 전화 번호 하나를 보낼 거다. 너희들 쿨라파 내 단말기 신호는 전부 감시하고 있지? 당장 위치 찾아낸 다음 좌표 따서 보내. 5분 준다. 그리고 두 번째 요청은···.
그렇게 두 가지의 요청사항을 입수한 뒤, 모사드는 이맘 다르하비의 번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민준에게 돌아온 답변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 녀석들, 아무래도 추적이 불가능한 단말기와 유심칩을 쓰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그 정도로 찾기 쉬웠으면 모사드에서 진작 이맘들을 암살했을 것이다.
민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도 미리 감안했기 때문이다.
– 어쩔 수 없지. 그럼 두 번째 요청 사항이라도 제대로 준비 해 놓도록 해.
***
전화를 끊은 뒤 민준은 아티크에게 물었다.
“지금 네가 다르하비에게 만나자고 요청하면 놈이 의심할까?”
민준은 벌레가 내뿜는 마약 물질의 양을 여전히 정교하게 조정 중이었다.
아티크는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한 뒤, 옅게 떨면서 답했다.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사태가 사태다 보니 만나서 논의를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제가 가만히 있어도 다르하비가 연락을 해 올 확률이 높습니다. 이번 전투 때 그쪽 마법사도 많이 다쳤을 테니까요.”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기다릴 필요까지는 없지. 네가 먼저 전화를 해라. 지금 만나자고 해.”
***
그 시각.
아티크와는 다른 곳에 숨어 있던 다르하비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허탈하게 당하다니!’
그의 곁을 지키는 호위들은 연신 전화통을 붙잡고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이번 전투에서 두 이맘은 다른 이맘들의 마법사들까지 빌려 사냥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작 이교도 마법사도 마녀도 머리카락 한 올 보지 못한 채 아군의 피해만 막심했다.
마법사를 빌려준 이맘들에게도 큰 빚을 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겨우 회복을 해서 전투에 복귀시켰던 다르하비의 직속 마법사도 다수 당했다. 이번에는 사망자도 나왔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전화를 끊은 수하 한 명이 말했다.
“일단 부상자들은 전부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수가 재활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수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회복 마법사를 또 한 번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손 쓸 시기를 놓치면 불구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랬다간 마법사를 빌려준 이맘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공조 체계가 붕괴되면 권력 역시 흔들릴 수도 있다.
‘그 면상을 다시 봐야 하는가.’
자신이 회복 마법사에게 품은 경멸이 열등감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식 못한 채, 다르하비는 그저 그들을 역겨운 위선자들로 낙인찍었다. 가능하면 얼굴을 마주치지도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러기엔 녹록치 않은 상황.
쿨라파 자치구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회복 마법사는 알샤마리다. 다르하비가 아티크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던 그때, 타이밍 좋게도 그쪽에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
– ···이맘 다르하비, 저도 지금 소식을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 싶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아티크의 음성이 들린다. 평소보다 크게 동요한 투였다. 매우 긴장한 것처럼 음색도 다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다르하비는 이해했다. 크게 놀라고 정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는 상대를 의심하는 대신 분노를 쏟아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정보가 완전히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마녀는 지금까지 불만 냈을 뿐 마법 지뢰 같은 건 심은 적이 없습니다. 그건 이교도 마법사가 놓은 덫이 분명합니다!”
다르하비가 생각하기로, 마녀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발휘했을 터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이곳에 출몰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저희 수하들 증언에 따르면 현장에서 마력 탐지가 봉인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능력을 지닌 마법사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입수한 정보에서 설명된 수준보다 훨씬 뛰어난 흑마법사잖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티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무래도 정보 교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상상치 못한 이야기에 다르하비의 숨이 턱! 막혔다.
– 그 흑마법사의 실력을 누군가 일부러 평가 절하하여 흘린 것 같습니다. 애초에 다르하비, 당신의 부하들이 그와 싸웠을 때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잖습니까? 그때도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겁니다.
“고의로 평가 절하했다면, 누가···?”
– 아마 모사드가 개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르르!
충격에 다르하비는 몸을 떨었다.
더러운 유대인들이 설마 그 이교도와 엮여 있는 것인가?!
– 정말 모사드가 나선 것이라면 큰일입니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전화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상 통화가 길어지면 감청 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통신사를 우회하여 추적 불가능한 유심칩이라고 해도 전파감시장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통화 내역이 적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 일단 만납시다.
“좋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 회복 마법사도 같이 오는 것이지요?”
– 물론입니다.
“네, 이번에도 부탁드립니다. 치료를 받아야 할 마법사들이 많습니다.”
이맘 아티크의 직속 부하들은 부상을 당한 즉시 알샤마리가 기다리는 은신처로 옮겨졌다.
하지만 나머지 마법사들은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단 병원으로 이송해 놓은 것이다.
– 장소는 어디입니까?
“일단 타왈라 2가 방향으로 출발하십시오. 도중에 목적지를 다시 한 번 알려 드리겠습니다.”
***
몇십 분 뒤, 쿨라파 모처의 한 병원에 승합차 한 대가 도착했다.
무장한 병력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창문 내려!”
운전자는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얼굴을 스카프로 감춘 상태였다. 경비는 이 밤중에 위장을 한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드러난 눈매도 낯설다.
“그 스카프 벗어! 그리고 전원 하차해라. 몸 수색을 하겠다.”
그때, 차의 뒷좌석에서 꼬장꼬장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 멍청한 것들! 내 얼굴이 안 보이나?!”
그제서야 뒷좌석을 확인한 경비원은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달았다.
“아··· 이맘 아티크. 죄송합니다!”
자세히 보니 그의 곁에 앉은 백발의 노인은 셰이크··· 아니, 이제는 회복 마법사가 된 알샤마리다.
“통과!”
경비의 말과 함께 차단기가 올라가고 바리케이트가 움직인다. 장애물이 사라진 도로 위를 자동차가 달렸다.
충분히 거리가 멀어진 뒤, 경비병들 앞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기사가 말했다.
“역시, 그 얼굴만 들이밀면 무사 통과군.”
목소리는 사하르의 것이었다. 하비브에게 다른 사람을 변신시키는 능력은 없었기에 옷으로 체형을 가리고 스카프를 두른 것이다.
뒷좌석에 앉은 이맘 아티크도, 그 곁에 앉은 백발 노인도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경비들을 향해 당당하게 호령하던 아티크는 몹시 긴장한 듯 땀을 주르륵 흘린다.
백미러로 그런 이맘을 흘깃 보며 마녀가 말했다.
“혹시라도 헛된 수작 부리지 말라고. 알지?”
그대로 차량은 병원 건물 내로 진입했다.
***
병원의 응접실 겸 회의실.
“이맘 다르하비, 이맘 아티크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이쪽으로 모셔라.”
다르하비는 최측근 호위 두 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본래는 무작위로 로테이션을 돌리지만 오늘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장 우수한 마법사를 골라 곁에 두었다.
잠시 후 응접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섰다. 이맘 아티크와 회복 마법사 알샤마리였다.
“아, 이맘 아티크. 어서 들어와서 앉으십시오. 모사드의 개입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평소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길 여유는 없었다. 자리를 권하던 이맘의 눈길이 아티크의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아니, 알샤마리. 당신은 왜 여기에 있지?”
예전에는 극존칭을 하며 모시던 셰이크이지만, 회복 마법사가 된 후로는 비천한 죄인에 불과했다. 알샤마리를 대하는 다르하비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이 자리에 당신은 필요 없어! 어서 평소처럼 병실로 가서 치료를···.”
다르하비의 말이 갑자기 멈췄다.
그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뭔가를 감별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시선은 알샤마리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얼굴에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
알샤마리는 회의실에 들어선 뒤에도 침묵을 고수했다. 닫힌 문 앞을 지키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얽히고.
“맙소사!”
다르하비가 경악하며 입을 벌린다. 질문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넌··· 너는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