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7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7)
다르하비가 손가락으로 알샤마리를 가리킨다.
그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놀란 사람은 이맘 아티크였다.
여기에서 일이 그르치면, 자신은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 아티크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아니, 이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사람은 알샤마리···.”
“아닙니다! 저자는 알샤마리가 아니에요! 설사 그가 맞더라도··· 이제 저희에게는 쓸모 없는 존재입니다!”
“대체 무슨 뜻입니까?”
“저자는··· 저자에게서는 ‘회복 마법’의 능력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네?!”
당황한 아티크가 재차 그 말의 의미를 물었지만 다르하비는 그쪽은 보지도 않았다.
알샤마리를 향해 외친다.
“말해라! 능력을 잃은 것이냐? 아니면··· 그로 위장한 것이냐? 본인이 맞다면 그걸 증명해라!”
아티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회복 마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요?”
“네! 전 원래 느낄 수 있습니다. 감히 위대한 알라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사이한 힘을 펼치는 죄인들의 기척을요! 그런데, 그 기운이 저자에게는 없습니다! 이맘 아티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때 천장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한한 능력이 있었군. 신성력을 각성하려다 만 건가? 뭐, 이유야 짐작이 가지만.”
“?!”
그 순간.
콰-앙!
다섯 명이 모여 있던 응접실 천장이 갑자기 폭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쏟아지고 뿌연 먼지가 피어 올랐다. 그 사이로, 미리 위층에 잠입했던 민준이 뛰어 내렸다.
그것이 신호였다. 이어서 닫힌 응접실 밖 복도에서 연신 굉음이 울려퍼졌다.
쾅-콰쾅-!
“으악! 침입자! 침입자다!”
“저건··· 마녀들! 마녀들이 떼를 지어서 몰려왔다!”
“으아아악!”
병원의 이능력자들과 사하르를 비롯한 마녀들 간 전투가 시작되었다. 다르하비는 경악으로 몸을 떨었다.
“아티크! 이게 대체?!”
하지만 아티크는 다르하비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제 자기 몫은 다 했다고 주장하는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민준을 올려다보았다.
“저,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제발 다시···!”
그의 두 눈에는 옅은 희망의 빛이 일렁였다. 이제 낙원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런데.
“······?!”
남자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한 순간, 아티크는 몽롱한 정신으로도 직감했다.
“안 돼···!”
머릿속 마약 물질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민준은 더이상 벌레를 통제하지 않았다. 이맘 아티크와의 용무는 이미 끝났으므로.
아티크의 전신에 절망적인 갈증과 극심한 고통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안돼에에에에!”
아티크는 깨달았다. 상대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다시 말해, 아티크는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사이 다르하비의 두 수하는 양쪽에서 그를 감싸듯 호위했다.
다르하비는 핏발이 선 눈으로 민준을 노려보았다. 이 결정적인 순간, 허리춤에 권총이나 아티팩트 대신 편수 후라이팬을 차고 나타난 괴인을.
얼핏 광인처럼도 보였지만 이맘은 방심하지 않았다. 광기와 지능을 겸비한 적이란 실로 무서운 상대임을 알기에.
“이 미치광이 이교도, 이게 다 네 술수였구나!”
어쩌다 미친 것인지, 무슨 사연인지는 궁금하지 않다.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 연유가 중요했다.
애초부터 자신들을 노렸던 것이리라. 모사드와 결탁했을 가능성도 높다.
민준은 싸늘하게 이맘과 두 호위를 응시한다. 그는 상대의 전력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여기에서 마주친 놈들 중에는 그나마 제일 낫군.’
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저주를 몇 번 날렸는데도 모두 튕겨낸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맘을 비롯하여 전부 꽤나 고가의 아티팩트로 몸을 보호한 것 같다.
다르하비가 이를 악물며 지시한다.
“전부 다 죽여라!”
오가는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미리 언급 받은 대로 하비브는 문을 가로막고 버텼다. 다르하비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조치였다. 그러자 그를 호위하던 이능력자 중 한 명이 그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지직! 지지직!
두 손에 전류가 번뜩이더니.
콰르릉! 쾅! 쾅!
방 안에 쩌렁쩌렁한 천둥 소리가 울린다.
한 줄기의 전광이 하비브를 향해 내려 꽂혔다. 변신한 그는 한 마리의 표범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뇌광은 애꿎은 벽을 강타했고, 몸을 피한 하비브는 두 손에서 불을 일으켰다.
그걸 본 다르하비는 상대가 알샤마리가 아닌 것을 재차 확신했다.
‘그런데··· 불?!’
머릿속에 복잡한 가정들이 일렁인다.
그동안 쿨라파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들 또한 떠올랐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하비브와 전기 능력자가 공격을 주고 받는 사이, 이맘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칼리드! 그걸 써라!”
다르하비를 호위하는 또 한 명의 이능력자, 칼리드는 대머리에 전신이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뒤덮인 자였다. 이맘의 허가를 받은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다르하비가 비싼 값을 주고 손에 넣은 비장의 무기였다. 휘하에 회복 마법사를 두지 않는 그는 안전을 강구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
민준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린다.
칼리드는 두 손으로 그것을 감싸는 자세를 취했다.
그 사이에 둥실! 떠오른 것은 가로 5cm, 세로는 그 두 배 정도 될 것 같은 조각이었다.
적갈색을 띈 표면에는 금속 같은 광택이 돈다. 위는 뭉툭하고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더니 끝은 칼날처럼 뾰족하다.
‘이 허접한 새끼들이 저걸 어떻게 얻었지?’
그는 바로 공격하는 대신 다음 행동을 관찰하기로 했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기다림을 다르하비는 다른 감정으로 착각한 듯했다.
“크흐흐··· 그래, 미친 놈이라도 이게 뭔지는 알겠느냐?”
되돌아온 민준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뭐긴 뭐야, 용린(龍鱗)이잖아.”
답을 맞췄지만 다르하비가 기대한 반응은 아니었다.
용의 비늘을 알아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마법 재료가 될 수 있는지도 잘 알 텐데.
약간의 짜증이 섞인 눈빛으로 민준은 말했다.
“알-사히디가 영지 관리를 얼마나 개판으로 하는지 보여주는 증거군. 아무리 자기 것이 아니더라도, 용의 허물이 너희 같은 새끼들에게 굴러가게 방치하다니.”
“······?!”
단 한 장의 비늘에 불과했지만 민준은 그 주인의 특징을 추정해냈다.
아마도 화룡족. 나이는 6백살에서 7백살 사이. 색깔을 보니 떠오르는 녀석이 몇몇이 있긴 하지만 이곳의 지배자 것일 리는 없다.
사룡(沙龍) 알-사히디는 엘더 중에서도 나이가 지긋한 편이다. 그렇기에 용족 회의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발휘하여 마정석의 도입을 미룰 수 있었다.
하지만 발언권이 세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영지 관리를 꼭 잘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알-사히디는 드래곤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과 의무보다는 자신의 재산과 권리에 더 집착했다. 물론 모든 용족에게 그런 경향이 조금씩 있기는 하지만 알-사히디는 유독 심했다.
덕분에 다른 드래곤 같으면 엄격하게 관리감독할 동족의 비늘이 이런 곳까지 흘러 들어오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너무나 태연한 민준의 반응 때문에 불안했지만, 다르하비는 그 감정을 억누르듯 외쳤다.
“뭘 하느냐! 칼리드, 어서!”
“Beiku-tanyiniha-mushtafqi-aiha!”
칼리드가 아티팩트를 발동하는 시동어를 외운다.
그러자 들고 있던 용린에 마나 각인이 새겨지더니, 곧 강렬한 힘을 뿜으며 그의 몸을 덮었다.
빛이 사라진 뒤, 칼리드는 손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감싼 적갈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드래곤 스케일 아머.’
용의 비늘을 매개로 시전하는 마법이다.
시전자의 마력과 물리공격력이 몇 배나 증폭되는 것은 물론이고, 방어력은 비늘의 진짜 주인과 비슷할 정도로 급상승하는 사기에 가까운 주문.
물론 이런 마법을 반영구적으로 펼칠 수는 없다. 한 장의 비늘로는 딱 한 번 마법을 펼칠 수 있으며 유지 시간에도 제한이 있다.
‘어쨌거나, 방어력은 진짜 용과 비슷하다 이거지.’
고룡이 아니더라도 용의 비늘은 처리하기 매우 까다로운 소재다.
민준은 냉정하게 생각한다.
‘저 껍질, 어떻게 까버릴까.’
수형자가 겪어 본 적 없는 먼 옛날의 기억이 일렁인다.
스승에게 배운 정석적인 용 박피법과, 현장 실무에서 익힌 빠르고 간단한 묘수가 번갈아 떠올랐다.
정석적인 방식으로 하려면 일단 목부터 자른 다음 등과 날개 뿌리 결을 따라 크게 칼집을 내야 한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비늘이 일그러지거나 손상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다. 살짝 칼집만 내도 좌우로 잡아당기는 탄력 때문에 촤악-! 시원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지점이 따로 있었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렇게 인간이 뒤집어쓰고 있으니 좀 애매한데······.
“······?!”
용린갑 앞에서도 주춤거리는 기색이 없고 오히려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민준 때문에 다르하비는 다시 한 번 큰 불안을 느꼈다.
그의 상식으로 용린을 부술 수 있는 마법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 자가 용이 아닌 이상은.
‘허풍인가?’
칼리드의 두 주먹에 푸른 빛이 맺힌다. 그는 오러 마스터였다. 검 따위를 들지 않아도, 드래곤 비늘로 만든 건틀렛이면 어지간한 마법 무기를 압도할 것이다.
다르하비가 단호하게 외쳤다.
“죽여라!”
그 순간, 칼리드가 땅을 차며 달려 들었고.
민준 역시 저 갑옷의 처분 방법을 결정했다.
‘내 정신 좀 봐. 어차피 저건 마법으로 재현한 용린이잖아?’
마법이 끝나면 다 사라진다는 점을 깜박했다.
콰콰-쾅!
칼리드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며 민준은 생각한다.
‘어차피 재사용도 못할 거 그냥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게 낫겠군.’
예쁘게 잘 벗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굳이 정교한 솜씨를 발휘할 필요가 없다면.’
화르르륵!
민준은 그림자를 소환했다. 발 밑에서 짙은 어둠이 부풀더니 그의 몸을 감싼다.
동시에 민준은 가장 최근 드래곤을 잡아본 기억을 떠올렸다.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민준은 고룡의 비늘을 뚫기 위해, 그림자로 빚은 혀를 드릴처럼 고속 회전하여 목덜미에 구멍을 냈었다.
‘고룡의 비늘이니 힘을 작은 한 점에 집중해야 했지. 하지만 저건 천 살도 먹지 않은 젊은 용이다.’
그렇다면 더 효과적인 방법은···.
‘그게 좋겠군.’
검은 괴물로 변한 민준의 오른팔이 끓어오르며 형태를 바꾼다. 민준은 팔뚝 상하 단면을 따라 날카로운 톱니를 닮은 가시를 일렬로 배치했다.
그리고 그것을 원형으로 매우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마치 전기 톱처럼.
쐐에에에에에엑!
모터가 없으므로 천둥 같이 드릉거리는 굉음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공기를 날카롭게 찢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실내를 채웠다.
그림자로 만든 톱을 들이 밀며, 민준이라고 해야할지 확실치 않은 존재가 웃었다.
“그럼, 간만에 작업 좀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