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29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9)
여학교 기숙사에서 화재가 발생한 밤.
기적이 목격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맘 다르하비는 몸소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경험한 소녀들을 마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반신반의한 상태였다.
그곳에서 다르하비는 알라의 축복 대신 마리얌이라는 ‘마녀’를 보았다.
“···그 계집은 회복 마법사였다.”
민준은 일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깨달았다.
‘이런, 젠장!’
욕을 뱉고 싶은 것을 참으며 하비브에게 설명했다.
“넌 이 녀석이 아까 한 말을 못 알아들었겠지. 다르하비에게는 신성력 능력자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이능력을 개화하려다가 중간에 멈춰버린 거지. 그래서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 애매한 힘만 남은 거다.”
=“···그래서?”=
다르하비가 이어서 하는 말을 후라이팬이 해석해 주었다.
“마녀인 것을 안 이상 죽여야 했다. 그게 내 의무이니. 하지만 증거도 없이 형을 집행할 수는 없었지. 그래서 없던 밀고자를 만들어냈다. 익명으로 기록에 남겼지. 그리고 바로 형을 집행했다.”
하비브의 입술이 떨렸다. 상상할 수 없었던 진실이었다. 분노와 충격이 뒤범벅이 된 눈빛으로 추궁했다.
=“밀고자가 없었다고?”=
“없었다.”
=“다··· 네 혼자 꾸민 짓이라고? 결국 마리얌은 너 때문에 죽은 것이고?”=
“다시 말하지만, 난 할 일을 했을 뿐···.”
다르하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기가 난폭하게 요동쳤다. 하비브가 힘을 개방하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외계인이 목이 터져라 포효하는 동시에 이맘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불길을 휘감은 채 이맘은 발버둥쳤다. 제일 먼저 안구의 수분이 증발하고 쭈글거리며 녹아버렸다. 다르하비는 계속 비명을 질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오직 느껴지는 것은 경험해 본 적 없는 극도의 고통.
‘이렇게 죽는 것인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최후였다.
너무도 고통스럽다. 미쳐버릴 것 같다. 차라리 어서 숨이 끊어지기를 바랄 정도로.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다르하비는 자신이 신자들에게 전했던 교리를 떠올렸다. 살면서 덕보다 죄를 많이 행한 무슬림은 불지옥으로 떨어진다. 아마도 그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만큼 괴로웠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다르하비는 신자들에게 몇 번이고 강변했다. 신앙이 깊을수록 알라께서는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신다고. 삶의 고난과 역경은 전부 신이 내리는 시험이라고. 어차피 삶은 찰나에 불과하며, 사는 동안 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 수록 내세에 큰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이건 뭔가 잘못 되었다!’
아무리 시험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아프고 고통스러울 필요가 있는가?
알라는 과연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고통 속에서도 질문은 이어졌다. 나는 이대로 천국으로 갈 것인가? 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자신이 아니면 누가 천국으로 가겠는가? 그렇게 자신했다. 몸이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까지도.
하지만, 피부가 녹아 내리는 지금 다르하비는 의심의 싹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굳고도 강건했던 신앙에 금이 가고 있었다.
진정으로 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 시험이 이렇게까지 혹독해야 하는 게 맞는가? 신이 진정으로 선하며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면, 신자들이 괴로움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질문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이맘이 떠올린 마지막 의문은 이것이었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
털썩!
하비브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궜다. 앞에는 새카맣게 타버린 다르하비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방 안에는 연기와 악취가 가득했다.
그리 원하던 복수를 완수했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태풍이 부는 것 같다.
마도구에 몸이 닿지 않은 상태이므로, 민준이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얼거렸다.
혼잣말에 가까운 어조.
“······밀고자가 없었다고?”
하비브는 그동안 자신이 태워 죽인 소녀들에 대해 생각했다. 마리얌과 몇 년을 함께했다는 그 아이들을.
분명 그들 중 밀고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명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가 보고 겪은 무슬림들의 성정이면, 전원 밀고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기에 소녀들도 종교 경찰처럼 태워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도중에 민준이 방해하지 않았으면 나머지 생존자도 전부 살해했을 터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쉽게 고르지 않을 선택지였다. 누구인지 모를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 수십 명이나 되는 용의자를 몰살하다니.
하지만 하비브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지구에 오기 전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살인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것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하비브는 머리에 총알이라도 박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 아이들을 죽였다.”
그의 축 쳐진 어깨 위에 민준의 시선이 내려 앉는다.
그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고장난 인형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내가 그 아이들을 죽였다.”
밀고자가 없었다는 것은 그 아이들 전부 비밀을 지켜 줬다는 뜻이다.
그들은 마리얌이 이능력자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종교 경찰과 이맘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준 마리얌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아!”
그런 아이들을 하비브는 태워 죽였다.
머릿속에 마리얌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친구들이야.
– 우린 몇 년 동안 이 기숙사에서 매일 같이 살을 부대끼며 가족처럼 지내왔어.
–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그 소녀가 하비브만큼 아끼던 사람들.
“······아아!”
마리얌의 하루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났던 것을 기억했다. 그 기도의 상당 부분은 하비브와 친구들의 행복 및 안녕을 비는 것에 할애되었다.
하비브는 오늘 처음 떠올렸던 질문에 다시 주목한다.
마리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녀가 살아있다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복수였을까?!
두근, 두근!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 맺힌 것 같았다. 알샤마리가 치료해 줬을 때 생겨난 감각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그가 없음에도 느껴졌다. 이 따스함은 마리얌의 기도를 들었을 때와 같은 결이기도 했다.
하비브는 자신의 몸 안에 마리얌의 의지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좌절로 이어졌다.
“내가··· 내가···!”
부모를 모른 채 세상에 던져진 뒤 하비브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세상은 홀로 투쟁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의존했던 상대가, 겨우 열일곱 살 먹은 소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런 마리얌의 의지를 품고도 그녀가 제일 바라지 않을 짓을 저질렀다.
기이한 일이었다. 청부 살인과 테러를 업으로 삼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죽여 왔다. 상당수는 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많은 이가 죽기를 원하는 의뢰주가 나타나면, 적당한 보수를 대가로 그만큼 사람을 태웠다.
하지만 지금 하비브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여태 경험한 적 없는 감정. 명치에 맺힌 뜨거운 무언가 그의 핏줄 속으로 녹아 들며 심장 박동과 함께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하비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그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
쿨라파에 다시 태양이 떠오른다.
쉘터 옥상에서 두 손을 난간에 올린 채, 사하르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간밤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거리는 조용했다. 해는 어둠에 묻혔던 도시를 천천히 황금빛으로 적셨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하다. 생각과 감정이 실타래처럼 뒤엉켰다.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는다. 어제 사건은 쿨라파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만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 향후 계획을 짜느라 머리가 아팠다.
“역시 여기 계셨군요.”
요원의 목소리.
사하르는 고개를 돌렸다.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피로에 찌들어 있을 것은 분명했다.
반면 자신보다도 많은 활약을 펼친 요원은 쌩쌩해 보였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의뢰비가 입금되었더군요. 떠나기 전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임무는 완수했고 개인적인 용건도 해결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벌써 가시게요? 마지막으로 같이 식사라도···.”
“괜찮습니다.”
요원이 사양하자 사하르는 더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덕분에 일이 잘 끝났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민준이 나서준 덕분에 최초의 목적이었던 외계인을 잡는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다르하비와 아티크는 이맘 중에서도 극단적인 인사들로 뽑혔다. 테러리스트를 양성하는 데에도, 여자들을 탄압하는 데에도, 마녀들을 색출하여 죽이는 데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두 명이 무력화되었으니 앞으로 이 나라에서 마녀들의 활동이 더 편해질 것이다.
“제가 가르쳐 준 주문은 잘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몰라 녹음도 해 뒀으니까.”
민준이 사하르에게 가르쳐 준 것은 해피 버그를 통제하는 주문이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하비브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제 입장에서도 의외였어요.”
민준은 수형자만 볼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하비브에게 걸린 현상금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워낙 모습을 자주 바꿔댄 터라 위원회는 그의 목에 달란트를 거는 대신 그의 의뢰주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결국 민준은 하비브의 처분을 가지고 추가 협상을 하는 대신 본래 계약대로 마녀들에게 넘겼다. 죽이든 살리든 그녀들의 선택으로 남긴 채.
그런데 몇 시간동안 말을 잃고 묵묵히 허공만 바라보던 하비브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한 것이다.
– 너희를 돕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마녀들이었다.
“그 녀석은 마리얌이 살아 있다면 자신에게 무엇을 바랄지 고민해 봤다고 했습니다. 그 소녀는 본래 마녀가 되는 길도 고려했다지요. 신성력을 쿨라파를 위해 쓰려 했고요. 하비브는 비록 신성력이 없지만, 다른 힘으로라도 그 유지를 이어 나가고 싶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마녀들의 종이 되기를 자처한 것은, 자신에게 내리는 일종의 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마리얌의 의지를 대행하는 동시에 스스로 죄값을 갚아 나가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알샤마리라고 했던가요? 그 회복 마법사도 거두셨다고요?”
“네, 제 제안에 선뜻 동의했어요. 그 아이는 원래 신성력을 깨우치기 전까지 셰이크라는 명예로운 칭호로 불렸던 신학자였어요. 자신의 힘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얼마든지 협조하겠다더군요.”
민준은 백발이 성성한 알샤마리의 외모를 떠올렸다. 적어도 70대는 되어 보이던데.
그런 노인을 상대로 ‘그 아이’라고? 아무래도 사하르는 민준이 짐작했던 것보다도 연배가 높은 모양이다.
요원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질문했다.
“그런데, 마녀 조합이 남자를 조직 내에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우리와 뜻을 함께 하고 연대한다면 성별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