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Gaiden 8
외전#1. 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8)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비명. 그저 공포에 질려서 내는 목소리가 아니다. 이건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다. 그것이 들린 장소를 향해 두 사람은 달렸다.
코너를 돌아 구석진 곳에 가려진 화장실 앞에서 정팔은 멈춰섰다.
눈 앞에 외계인이 있었다. 지구에서 본 적 없는 종족이다. 붉은 갑각으로 덮인 피부. 손가락은 여섯 개였는데, 아래에 달린 네 개는 인간의 그것과 비슷하고 기능도 동일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손등 가까이 달린 위쪽의 두 개는 손가락보다는 집게발에 가까웠다. 가재의 앞발처럼 크고 뾰족하다. 서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서슬 퍼렇게 날까지 서 있다.
외계인은 왼쪽 집게발로 한 인간 남자의 목을 잡아 들어 올린 상태였다. 비어 있는 오른손의 집게는 왼손의 그것보다 짧았고 손등에 붙은 채 피로 번들거렸다. 놈의 발치에도 피가 흥건했다. 잡힌 남자에게서 흘러 나온 것이었다. 곁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가 주저 앉은 채 패닉 상태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그가 뿜어낸 피로 몸을 흠뻑 적신 채.
정팔은 그제서야 지금까지 본 시신들의 상처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붙들린 남자의 오른쪽 옆구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도 넓게 찢어져 있었다. 잘라냈다기보다는 ‘오려 낸’ 것 같다. 복내압 때문에 밀려 나온 내장이 덩굴처럼 발 아래로 쏟아져 흔들렸다.
이 모든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정팔은 총부리를 겨눴다. 그보다 한 템포 늦게 영태도 총을 드는 것이 보였다.
“멈ㅊ···!”
스겅!
말을 끝내기 전, 가위의 날을 오므리듯 외계인이 집게발에 힘을 주었다.
남자의 잘린 목이 바닥으로 낙하하는 순간 정팔이 외쳤다.
“쏴!”
탕-! 탕-! 타탕-! 탕-!
외계인은 총탄을 피하거나 막으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총을 맞을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며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 여자로부터 거리를 벌린 것은 다행이었지만···.
파직! 파지직!
다른 종족이었으면 이미 쓰러지고도 남았을 공격. 그런데 아직도 비틀거리면서도 서 있다.
정팔은 총탄을 맞을 때마다 놈의 몸에서 푸른 불씨가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자연적인 스파크는 아니다.
‘오러!’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다.
‘이능력자다!’
그때 놈의 입이 열리며 기괴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희뿌연 눈동자를 두 사람에게 고정시킨 채.
“Khu··· Szai···!”
이해할 수 없는 이계어.
뜻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대신, 정팔은 갑각으로 덮였던 입이 열린 사실에 주목했다.
그곳을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Khu··· Szai!”
무방비로 총을 맞기만 하던 외계인이 괴성과 함께 몸을 날렸다.
마치 나는 듯한 움직임.
놈은 통로의 벽 쪽으로 몸을 띄웠다가, 그 벽을 다시 걷어차며 궤도를 급격히 틀었다. 이어선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급강하한다. 오크의 반사신경은 가까스로 그 움직임을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탕-!
총알이 놈의 어깨에 박힌 것과, 어느 사이엔가 길게 뻗어 나온 오른쪽 집게가 영태의 목을 스친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 어?!”
영태는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외계인은 영태의 곁을 지나치고도 몇 걸음 더 달려나간 뒤에야 멈췄다. 방금 전 총알이 관절에 적중했는지 오른팔을 어색하게 몇 번 움직인다.
그리고 영태가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영태!”
이런 젠장!
정팔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다. 당장 달려가서 자경단원의 상태를 살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탓!
오크가 포효하자 외계인은 경계하듯 빠르게 물러났다. 그 틈을 타 탄창을 바꾼 정팔은 뒤를 쫓았다.
머릿속에 영태에 대한 걱정이 끓어 올라 마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놈은 이제 얌전히 총에 맞아줄 생각이 없어졌는지 지그재그로 움직인다. 번개처럼 궤도를 휙! 휙! 급변하여 도주했다.
정팔은 어느새 놈과 창문 사이 거리가 가까워진 것을 발견했다. 저 힘이라면 외창을 깨는 일 정도는 쉬울 것이다.
속이 탄다. 이대로 놓쳐버리는 것인가?
저런 미치광이 외계인이 거리를 활보하면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게 뻔한데···!
탕-! 타탕-! 탕!
계속 빗나가는 총알.
‘이제 남은 건 한 발!’
어떻게 해서든 못 나가게 막아야 한다. 이미 창문에 바짝 접근한 외계인. 정팔은 눈을 부릅뜨고 놈의 머리를 조준했다.
하지만 그는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휘익!
무언가 외계인과 정팔 사이를 가로막으며, 검은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지금부터는 이민국이 인계받겠습니다.”
눈으로 쫓기 힘든 빠른 속도로, 그가 외계인을 덮쳤다.
방금 전 외계인의 움직임이 매와 비슷했다면, 지금 달려든 존재는 그 매가 땅에 발을 딛은 찰나를 노려 목덜미를 물어 뜯는 흑표범과 같았다.
쐐애액! 허공에 푸른 금이 몇 개 그어진다 싶더니 외계인이 괴성을 지르며 뒹굴었다. 창문과는 반대 방향으로. 정팔은 그쯤에서야 개입한 이가 누구인지 살필 수 있었다.
그는 중년의 인간 남성이었다. 평범한 양복 차림. 하지만 들고 있는 무기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 검신 길이가 정팔의 키와 비슷해 보이는 장검.
그리고 그 검날에는 푸른 오러가 넘실거린다.
‘오러 마스터!’
방금 전 들었던 말을 복기한다. 분명 이민국이라고 했다.
한국에 이민국 요원이 민준 한 명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신고를 받고 다른 요원을 보낸 것이리라.
“Khu··· Szai!”
귀가 찢어질 것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외계인이 요원에게 덤빈다.
그 순간 오크는 이능력자들의 싸움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뒤를 돌아 달렸다.
얼핏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 이민국 요원이 비겁하다고 욕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조차 오크는 떠올릴 수 없었다.
“영태야!”
바닥에 쓰러진 청년의 몸에서는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피가 흘러나온 상태였다. 오크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옷이 붉게 물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으로 목을 눌러 지압한다. 베인 지 겨우 1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지만 출혈량이 너무 많다.
“영태! 영태야! 정신 차려!”
이미 창백해진 자경단원의 얼굴. 이 녀석이 올해 23살이었던가? 이런 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죽어버리기엔 너무 아깝고도 젊은 목숨이다. 오크는 필사적으로 상처 부위를 누른다. 하지만 왈칵! 솟구치는 핏물은 막을 수 없었다.
“겨··· 겨이··· 님···”
입가에서 피 거품이 부글거린다.
“말 하지마. 말 하지마, 영태야.”
“나··· 주끼··· 시··· ㄹ···.”
“괜찮다. 너 안 죽어. 지금 구급차 오고 있어. 지원팀도 오고 있으니까 괜찮아!”
심장이 옥죄이는 것 같다. 머릿속에는 오만 생각이 교차했다.
애초에 이런 현장에 왜 자경단원을 데리고 오게 되었을까? 내가 오크가 아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다른 인간 형사들이 정팔의 팀에 들어오길 거부하는 것은 그의 종족 때문이다. 오크 커뮤니티가 관할 구역인 서의 형사들은 그들의 강력 범죄에 치를 떨었고, 더 나아가 종족 자체에 학을 떼게 되었다. 설사 그 오크가 형사라고 할지라도.
“끄으···!”
영태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정팔은 자문한다.
내가 진작에 포기했다면. 경찰을 하겠다고 여기서 계속 버티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 자경단원은 살 수 있었을까?
‘아니야!’
고개를 젓는다.
아니, 살릴 수 있다. 아직 죽지 않았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군요.”
스스로 이민국 소속이라고 밝혔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압박하는 손을 그대로 둔 채 고개를 돌린다.
방금 전의 요원이 한 손에는 칼집에 넣은 검을, 다른 한 손에는 잘린 외계인의 머리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머리와 검을 내려 놓더니, 영태 쪽으로 손을 뻗는다.
“지압은 계속 하고 계십시오.”
“네··· 네!”
그 순간, 남자의 손에서 금색 광채가 흘러 나왔다.
오크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이건, 신성력?!’
“으··· 으으으!”
영태가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건 좋은 신호였다. 정팔은 쏟아져 나오는 피의 압력이 약해지고 출혈량도 줄어드는 걸 손끝으로 느꼈다.
잠시 후.
“이제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떨리는 손을 떼어 냈다. 피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자 영태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안정된 호흡소리.
“하아···.”
정팔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저 앉는다. 이제 엉덩이까지 피로 흠뻑 젖어들었다.
“감사합니다.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천만에요. 그게 제 일인데요. 너무 늦기 전에 지압을 해 줘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린다.
안타까운 목소리.
“이 청년은 살려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군요.”
요원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기도문을 외운다. 정팔은 그것이 기독교 계열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중 능력자로군.’
저 남자는 오러 마스터인 동시에 신성력도 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신성력 능력자 중에는 다른 이능에도 눈 뜨는 케이스가 꽤 있다고 듣긴 했다. 신성력의 발현 조건은 오로지 ‘독실한 종교적 믿음’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원래 오러 마스터였던 사람이 갑자기 종교에 귀의해서 매우 깊은 신앙을 품게 되었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신성력도 쓸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남자가 기도를 하는 사이 정팔은 생존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쇼크 상태에 빠진 채 부들 부들 떨고 있었다. 정팔이 뭐라고 이야기를 해도 답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오크는 그녀를 부축하여 요원이 있는 곳으로 데려왔다.
그쯤, 남자의 기도문이 멎었다.
요원은 이야기를 듣더니 생존자에게도 신성력을 쐬어 주었다. 그녀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 청년은 생명에 지장까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빨리 수혈을 받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쪽 여자분은··· 일단 안정이 필요한 것 같아서 재우긴 했으나 아마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것 같군요. 제게 마음을 치료하는 능력까지는 없으니까요.”
“신부님··· 아니, 목사님이십니까?”
복장이 너무 평범해서 가늠을 할 수 없다.
정팔의 그런 질문에, 요원은 오해라며 손을 내저었다.
“저는 따로 소속된 단체가 없습니다. 교회도 성당도 다니지 않고요. 그저 제 방식대로 주님을 모시지요.”
정팔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민국 요원이 종교 단체의 성직자직을 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성력의 발현 여부는 그가 교단에서 갖는 성직자로서의 지위와는 상관없다는 것 역시 정팔은 알았다.
다시 말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예배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예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신성력을 깨우치는 것이다.
반대로 한 종단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성직자라고 해도 신성력을 못 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몇몇 종교에서는 신성력이 꼭 독실한 신앙을 증명하지는 않는다면서 애써 변명을 하곤 하지만, 정작 신성력 능력자들의 평소 생활 태도와 언행을 보면 신빙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뛰어난 신성력 능력자들은 보통, 드래곤들이 어마어마한 거금을 걸고 계약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볼 수도 없는데. 이렇게 요원으로 활동할 뿐만 아니라 아낌 없이 신성력을 베풀다니. 이 양반, 정말 좋은 사람이군.’
항간의 소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다시 확신한다.
‘이민국 요원 중에 사이코패스가 많다는 건 역시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었어. 민준 형님만 봐도 그렇지. 그분이 (우리 편한테는) 얼마나 훌륭한 인격자이신데.’
그리 생각하며 요원에게 말한다.
“그나저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중에 제가 감사의 표시라도···.”
“아니, 괜찮습니다.”
어깨의 견장을 흘깃 보며.
“어차피 경위님이나 저나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그럼 존함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나중에 민준을 통해 작은 성의라도 보낼 생각으로 묻는다. 요원끼리는 알고 지낼 것 같으니.
그러자 중년의 요원이 답했다.
“아, 전 강재덕 요원입니다.”
“저는 박정팔 경위입니다.”
악수를 주고 받는다.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침 민준 형님도 안 계시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빨리 와 주시다니. 인력 부재에 대비해 이민국에서 배려를 해 주신 모양이군요. 정말 다행···.”
“아, 아, 잠시만요.”
강재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 표정 변화가 너무도 빨라서 정팔이 놀랄 정도였다.
“지금··· 민준 형님이라고? 혹시 그분도 이민국 요원입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원래 이 구역은 그 형님 관할이지요.”
“설마 예민준 요원?!”
“맞습니다.”
그러자 강재덕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다시 새파랗게 물든다. 그리고는 비어 있는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보호하듯 감싼다.
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아마도 무의식적인 행동 같다.
‘왜 저러시지?’
정팔이 묻는다.
“형님을 아시지요?”
“형님? 아, 네. 알지요. 예민준 요원님을 제가 모를 수는 없지요.”
그리곤 부르르, 몸을 떨면서 낮게 중얼거린다. 그 말소리는 너무 작아서 오크의 청력으로는 들을 수 없었다.
“형님? 임무밖에 모르는 그 잔인무도한 킬링 머신과 형동생 사이로 지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군.”
그런 반응을 보며 정팔이 조심스레 말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봅니다?”
“아, 네. 뭐.”
딱히 숨길 생각은 없는지 강재덕은 과거를 털어놓았다.
어쩌면 민준에게 어차피 듣게 될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저희 계약 요원들끼리는 사실 정기적으로 모이지 않고 관할도 달라서 엮일 일이 거의 없긴 한데. 예민준 요원님과는 20년 정도 전에 딱 한 번 같이 임무를 뛴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서요. 상황이 좀 복잡했거든요.”
그때 강재덕은 요원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참이었다.
하지만 신참이라고 해서 실력이 반드시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었고, 당시 강재덕은 꽤나 자신만만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수사 초반부터 요원님과 저는 계속 충돌했습니다. 저도 어렸죠. 그리고 예민준 요원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몰랐어요. 조직 사회에 제대로 속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저를 붙잡아 놓고 설명해 주지도 않았으니까요. 저는 요원님의 방식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요원님은 제 방식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씀하셨죠.”
당시 민준은 죄를 지은 외계인을 미끼로 삼아, 더 강력한 외계인 범죄자를 꾀어 내는 작전을 구상했다고 한다.
강재덕은 그 과정에서 미끼가 된 외계인이 살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작전에 반대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계속 부딪쳤죠. 아,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일방적으로 항의하고 싸움을 건 것에 가깝지만요. 어쨌든 여차저차 수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민준 요원님께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죠. 그래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난 뒤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아니, 명목상으로는 이능력자들끼리의 대련이었다고 할까요?”
대련? 그것도 민준과?
오크는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본다.
강재덕은 스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었죠.”
당시 강재덕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신성력과 오러를 사용하는 근접계 능력자이고, 상대는 수사를 진행하는 내내 ‘탐색’과 ‘저주’ 관련 능력만 보였기에 그것이 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선공을 날리면, 육체계인 제가 두뇌계인 요원님을 압도할 거라고 오산했죠.”
“터무니 없는 오산이었군요.”
“네, 기어코 죽고 싶으면 차라리 다른 방식을 골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되기는요. 뱃속에 있는 걸 다 토해낼 때까지 얻어 터졌죠.”
강재덕의 주먹은 민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고 한다.
요원은 그 이야기를 하며 다시 한 번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듯 보호한다.
‘혹시 그때 가슴을 중심으로 두들겨 맞았나?’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심지어 앞으로 다신 이렇게 기어 오를 생각 못하게 만들겠다며, 저주까지 걸어 놓고 가셨습니다. 얼마나 지독한 저주이던지. 그 후로 한동안 잠도 못자고 밤낮을 고통 속에서 끙끙대야 했죠. 제 신성력도 듣지 않더군요. 하긴, 당시만 해도 제 능력은 파괴된 신체 조직을 복구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으니까··· 아마 요원님은 그 부분까지 감안하여 저주를 고르신 것이겠죠?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말을 하며 다시 한 번 몸을 부르르 떤다.
여기까지 들은 정팔은 궁금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대체 어떤 저주였습니까?”
고민을 하듯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중년의 남성 요원은 이렇게 말했다.
“······젖몸살이었습니다.”
“······.”
“······.”
“······네?”
당황한 정팔의 목소리가 약간 뒤집어졌다.
하지만 요원은 굳이 그 단어를 다시 한 번 말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오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 하지만 요원님은 남자시고··· 남자시니까··· 남자는··· ‘그게’ 없잖습니까?”
유선이라는 단어가 생각 안 나서 대충 이야기를 했지만 요원은 알아들었다.
“원래 저주라는 게 없던 것도 생기게 만들고, 있던 것도 없애는 식으로 적용한다고 하더군요.”
“······.”
“······.”
“······아, 그렇군요.”
정팔은 이 남자가 당시 겪어야 했을 고난을 잠시 상상했다가, 곧바로 상상하기를 멈추었다. 절대 유쾌한 상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구급차와 지원팀이 도착할 때까지 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