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23
223
# 준비
다음 날 아침.
샤워를 한 혁권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자 거실에서 신문을 읽고 계시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던 모양이구나.”
“아, 예. 오랜만에 군대 전우들을 만나다 보니 좀 늦게 들어왔어요.”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너무 과음은 하지 말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마시지는 않으니까 염려 마세요.”
“그래야지.”
옆으로 다가간 혁권은 아버지가 기사 유니폼 상의를 입고 있는 걸 보고 말했다.
“오늘도 일을 나가시는 거예요?”
“그래야지. 넌 집에 있을 거냐?”
“아니요. 저도 볼일이 있어서 오후에 나가 봐야 돼요.”
“태워 줄까?”
“번거롭게 안 그러셔도 돼요. 그냥 제가 알아서 갈게요.”
“편할 대로 해라.”
두 사람이 그러고 있을 때 어머니가 불쑥 나와서 말했다.
“다 씻었니? 밥 다 차려 놨으니까 어서 와서 먹어라. 당신도 신문만 보고 있지 말고 얼른요.”
“알았어.”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끙차, 하며 일어선 아버지의 뒤를 따라서 혁권도 함께 식탁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일부러 끓여 주신 콩나물 국으로 든든하게 해장을 한 혁권은 잠시 쉬었다가 강남역 빌딩에 위치한 사무실로 나갔다.
“오셨습니까.”
김덕현 전무와 환대를 받으면서 그는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직원이 차를 내려놓고 나가자 김덕현 전무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좀 쉬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지시하신 대로 다이아몬드 채굴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추려 봤습니다.”
얇은 서류철을 건네받아 펼친 혁권은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장비가 꽤 많이 들어가는군.”
“아무리 채굴이 쉬운 노천 광산이라고 해도 갖춰야 될 기본 장비들이 있으니까요. 만약 굴을 파야 되는 거였다면 이것 보다 배로 더 들어갈 겁니다.”
광산 운영에 대해서는 김덕현 전무가 전문가였기에 그는 수긍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인수한 TC인터내셔널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장비도 있고 부족한 건 중고로 매입하면 되니까 비용은 많이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중고라고?”
“그렇습니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채산성이 떨어져 문을 닫는 광산들이 많아 싸게 매물로 나온 중고 장비들이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데 문제만 없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런데 당분간은 육로를 이용하기가 어려워서 헬기로 수송이 가능해야 돼.”
인접한 기니 공화국이 반군의 배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김덕현 전무는 살짝 표정을 굳히며 말을 받았다.
“대부분 해체한 뒤에 현장에서 다시 조립을 하면 됩니다만, 그렇게 되면 수송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갈 겁니다.”
혁권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등을 뒤로 기댔다.
“어쩔 수 없지. 상황이 이러니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게 또 있나?”
의아한 얼굴로 묻자 김덕현 전무가 사뭇 심각해진 표정으로 답했다.
“장비를 운용하려면 숙련된 기술자들이 필요한데 인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에 그것도 내전이 진행 중인 곳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고 자리를 떠나기 일쑤라서 아직까지 필요한 인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돈을 더 챙겨 준다는데도 그래?”
“예. 아무래도 반군 지역 한가운데서 작업을 해야 된다는 위험이 너무 크니까요.”
“이것 참.”
설명을 들은 혁권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잡일은 근처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고용해서 시키면 됐지만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힘들게 광산을 탈환했는데 인력이 부족해 채굴을 못한다면 그것보다 더 곤혹스러운 일도 없을 터였다.
“일단 최대한 기술자들을 구해 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김덕현이 곧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장비와 인력을 어떻게 광산까지 옮길 생각이십니까? 주변에 마땅한 비행장이 없으니 수송기는 어려울 테고 그렇다고 헬기를 이용한다고 해도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갈 텐데요.”
“그건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
“어떤……?”
“좀 더 확실해지면 이야기를 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뭘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했으나 딱 잘라 말하는 혁권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물어봐도 말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참. 예전 TC인터내셔널 직원들은 잘 적응하고 있나?”
“예. 기존 직원들도 채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다행히 별다른 위화감 없이 섞여 들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김덕현 전무가 조금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 인원을 계속 유지하실 생각입니까?”
“문제라도 있나?”
“하는 일에 비해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
“솔직히 지금 상황이라면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는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대면서 맞은편에 있는 김덕현 전무를 봤다.
“그거야 아직 시에라리온에 위치한 광산에서 채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이니까 당연한 일이잖나.”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래도 수입은 적은 데 비해서 나가는 비용이 많으니, 임시로 인력 조정을 해서 적자를 줄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직원들을 해고하자는 거야?”
눈가를 찡그리며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자 김덕현 전무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당분간 무급 휴가를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그거지. 직원들 입장에서는 월급도 못 받는데 그냥 나가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냐.”
“하지만…….”
“그렇게 해서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데?”
“그건…….”
김덕현 전무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며 혁권이 진지한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어차피 광산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다 필요한 인력인데, 돈 몇 푼 아끼자고 신뢰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드는 건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좋지 않은 행동일 거야. 그리고 아직 자금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당장은 그렇긴 해도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출이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아틀라스사와 용병 계약을 맺으면서 조만간 지출해야 될 금액만 수백만 달러에 달했으니, 혁권의 자금 사정을 정확하게 모르는 김덕현 전무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태일그룹에서 510억이라는 거액을 뜯어냈다고 해도 지금처럼 쓰다가는 순식간에 바닥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김덕현 전무의 걱정을 꿰뚫어 본 듯 혁권이 한가로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주머니 사정은 훨씬 여유로우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덕현 전무는 좀처럼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런다고 해서 자신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보여 줄 수는 없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판로를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나?
뭔가 더 할 이야기가 있는지 입맛을 다시던 김덕현 전무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곤 물음에 대답했다.
“원석을 취급하는 도매 업체들은 여러 곳이 있었지만 저희가 원하는 것처럼 많은 수량을 장기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업체는 하나뿐이었다.
“드비어스De Beers()를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지 혁권은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거긴 좀 껄끄러운데…….”
“저도 그리 내키는 거래 상대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봐서 드비어스 말고는 대량의 원석을 구매해 줄 곳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쪽을 통하지 않았을 경우 받게 될 견제와 방해를 생각하면 척지는 것보다 손을 잡고 같은 편이 되는 게 여러 가지로 나을 겁니다.”
“흐음.”
1888년 영국인 사업가 세실 로즈Cecil Rhodes에 의해서 세워진 드비어스사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생산부터 매입, 가공과 판매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손을 대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었다.
드비어스 사가 유명한 것은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서였다.
지금도 독점적인 지위를 누르고 있지만 예전에는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생산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광산 대부분을 소유하면서 서아프리카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새로운 광산이 발견되기 전까지 시장 전체를 장악하고는 가격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이런 행태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서 다이아몬드 원석 거래가 이루어지는 영국 런던의 CSO(Central Selling Organization : 중앙판매기구)를 통해 유통 물량을 적절하게 조절해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걸 막았다.
이를 위해서 드비어스사는 자신을 중심으로 다른 업체들을 끌어들여서 일종의 카르텔Cartel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한쪽 손으로 깔끔하게 면도한 턱을 매만지면서 고심하던 혁권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드비어스와 거래를 하면 일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원석을 판매할 수 있으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 정도 이점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굳이 드비어스와 거래할 필요가 없겠지.”
“그러면 드비어스 쪽에 선을 대도록 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애써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서 드비어스가 만든 카르텔의 일부로 예속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으나, 이미 시장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도록 짜여 있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쩐지 고생은 자신이 하고 드비어스의 배만 불려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그렇게 혁권은 몸을 뒤로 기댄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드비어스와 거래를 한다고 해도 생산되는 원석을 전량 다 구매해 주지는 않을 거 아냐?”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럼 말이야. 그거하고 별도로 우리도 다이아몬드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 어떨 것 같아?”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김덕현 전무는 눈만 껌뻑였다.
“원석을 그냥 넘기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지 않겠어?”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아무런 경험이 없는 데다 아직 광산 문제도 다 해결되지 않았는데 일이 너무 커지지 않겠습니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김덕현 전무와 달리 혁권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누가 지금 당장 하자고 했어. 광산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기 시작하면 그때 상황을 보고 고려를 해 보자는 거지.”
“잘은 모르지만 가공과 판매도 그냥 쉽게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한 투자가 필요할 겁니다. 그러니 잘못했다가는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자가 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그건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
혁권이 기세 좋게 덧붙였다.
“일단 조사부터 먼저 해 봐.”
단단한 결심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그리 말하니 김덕현 전무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 것은 여전했으나 혁권이 저렇게 밀어붙이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