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00)
장연철이 이현석과 직접 대면해 계약을 끝마친 뒤 얼마간이 지났다.
냉정을 되찾은 장연철은 자신의 손에 남은 계약서를 들고 멍한 심정이 되었다. 여우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직속 상사인 CP가 한 마디로 정리했다.
“이게 대체 무슨 바보 같은 계약서냐?”
“······.”
“돈은 돈대로 쓰고 1년이 뭐냐. 차라리 팍팍 쓰고 몇 년 불러서 이현석이 흐름을 끊어놓던지, 아니면 아예 건드리질 말던지. 이건 이도저도 아니잖냐?”
평소 온화한 사람답지 않은 노골적인 힐난이었다. 장연철이 변명하듯 말했다.
“이현석이는 이쪽에 유지아를 떠넘기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속셈을 알 수가 없어서······.”
“그 양반이 유지아 작가를 이쪽에 보내서 얻을 게 뭔데? 프로젝트 핵심 아니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당시 절실하게까지 보였던 이현석의 태도를 어찌 말로 다 설명하겠는가.
입을 꾹 다문 태도에 CP가 쓴웃음을 지었다. 장연철이 블러프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뭐, 됐다. 웃돈 주고 사온 김에 잘 굴려나 봐. 『화려한 디너』보다야 낫게 나오겠지.”
“······예.”
장연철이 내심 이를 악물었다.
그로서는 변변한 실적도 없는 주제에 뭐나 된 듯 충고하는 선배가 가당찮게 느껴졌다.
그런 불쾌한 기분에 곧 조기종영이 예정된 『화려한 디너』의 언급이 한몫 한 건 물론이었다.
문득 CP가 지나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원광훈 사장님 너무 믿지 마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그 양반은 계산이 확실해서 자기 사람이라는 게 없거든. 별 이유 없이 키워주면 반드시 내던져야 할 상황을 보고 있는 사람이야.”
CP의 목소리가 살짝 진지해졌다.
“아직 CP도 안 단 놈한테 협상의 전권을 맡긴다? 기획제작부나 편성국도 안 거치고? 말이 안 되는 일이야.”
“······.”
“정신 바짝 차려라, 연철아.”
하지만 장연철에게는 질투에 따른 흰소리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흘려듣고 넘겼다.
지금 그에게는 그보다도 좀 더 급한 고민거리들이 많았다. 주로 이현석이나 위즈톤 엔터테인먼트나 드라마 『연구일지』같은 게 그랬다.
그가 일찍이 원광훈 사장에게 말했던 카드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유지아를 빼내 『연극처럼』 프랜차이즈를 좌초시키는 것. 이건 사실상 실패였다.
둘째는 한유미를 빼간 것으로 『에어리즈』 그룹이 해체될 위기에 있다는 걸 도덕적으로 저격하는 것.
이건 천천히 밑바닥을 쌓으며 준비하던 중 급작스레 그룹 전체가 옮겨가려는 정황이 포착되며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장연철은 원 소속사측에 접촉해 수단을 강구했으나 그쪽은 한사코 거부했다. 이현석이 미리 무언가 손을 써둔 모양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놈··· 전부 예상하고 벌인 짓일 테지.’
그 뻔뻔스런 얼굴을 생각하자 장연철은 화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꾹 눌러 참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되면 이제 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배우를 직접 저격한다.’
리스크도 큰데다 몹시 어려운 일이다. 원래라면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조차 우스운 수준.
하지만 최근의 정황은 지금의 장연철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루브도에서 박진태 실장이 나갔다. 더해 이도나 본인도 거기에 남을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고 있지. 루브도는 그쪽을 지키려고 들지 않을 거다.’
‘커버해줄 사람이 없는 이도나만큼 왜곡을 얹기 쉬운 먹잇감은 없다.’
게다가 꽤 괜찮은 탄환도 있었다.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한 장연철이 전화기를 들었다.
“아, 성진아 배우님? 접니다. 다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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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이 박진태에게 기자회견에 대해 전해듣기 며칠 전.
“도대체가 그 인간은 배려심이라는 게 없다니까!”
강아라는 어색한 얼굴로 이도나가 늘어놓는 험담을 들어주고 있었다.
뭐, 최근으로서는 흔한 일이었다.
“너도 오늘 촬영 봤지? 그 인간이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네? 네······.”
이도나의 옆에 있는 매니저가 송구스런 표정으로 눈인사를 했다. 아라 역시 쓴웃음을 지으며 답례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꽤 이도나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가 얘기했던가? 『연구일지』 첫 화 찍을 때······.”
들었다. 한두 번 도 아니고 얼핏 새어도 네 번 정도. 하지만 선배도 보통 선배여야 뭐라고 하지. 어지간한 아라도 어색하게 웃으며 맞장구나 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욕을 하나 싶어 욱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게 단순한 푸념이라는 걸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아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그런데 정말 제가 이런 곳에 와도 되는 걸까요?”
단순히 화제를 바꿀 생각이었지만 주변을 둘러본 아라는 다시금 주눅이 들었다.
그야말로 샵 전체에 금칠이라도 한 것 같은 번쩍번쩍한 분위기다. 가격을 듣고는 하마터면 눈이 돌아갈 뻔했다.
이도나가 작게 혀를 찼다.
“난 여태껏 네가 이런 데 안 와봤다는 게 더 놀라운데. 요즘 너네들 제법 잘 나가지 않니?”
어색하게 고개를 젓는 아라를 보며 이도나는 대체 그간 얼마나 해먹은 건지,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너네 대표님이 말한 거고 그쪽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다 경험이니까.”
“······네.”
이현석의 사비라는 걸 알자 아라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안 그래도 후하다 못해 눈을 의심할 만한 계약 조건을 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즈음이다.
그 위력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같이 넘어온 이영신 매니저는 금세 사근사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던 중이었다. 문득 누가 인사를 건네왔다.
“아, 이도나 선배님. 안녕하세요.”
“···그래.”
이도나가 마지못한 태도로 인사를 받았다. 대놓고 퉁명스러운 태도였다.
상대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옆에 앉은 아라를 보고는 슬며시 말을 삼켰다. 묘하게 께적지근한 웃음이었다.
“못 보시던 분인데··· 누구신가요?”
“···넌 여전히 사람이 덜 됐구나.”
“심기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냥 뵌 적이 없으니 궁금해서요.”
겉보기엔 흠잡을 데 없이 정중한 말투다. 하지만 무명 걸그룹 4년차쯤 되면 어느 정도 표리부동한 이를 알아채는 직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뭐, 사실 그걸 떠나서 인지도로 먹고 사는 연예계에서 사람을 대뜸 ‘누구냐’고 묻는 것부터가 꽤나 무례한 과시행위기도 했다.
이도나가 눈썹을 꿈틀거리는 사이 아라가 얼른 나섰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에어리즈』의 아라라고 합니다.”
“아, 이야기는 들었어요. 고생하시네요.”
상대는 몇 마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떠났다. 아라가 물었다.
“···저 분, 배우이신 성진아 선배님이시죠?”
한때는 이도나와 라이벌 관계로 띄워주던 인물이었다. 지금에야 격차가 나도 한참 나지만.
“가능하면 엮이지 마. 어지간히 겉과 속이 다른 녀석이니까.”
이도나가 투덜거렸다.
“원래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였는데 요즘 이상하게 얽혀오더라. 기분 나쁘게.”
“······.”
아라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성진아는 태연한 태도로 누군가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방금, 무슨 말을 하려다가 나를 보고 그만둔 것 같았는데?’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라는 이미 들은 말이 있었다.
“죄송해요, 선배님. 잠시 친구한테 메시지 좀 보낼게요.”
아라는 양해를 구한 뒤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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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태의 전화를 받고 나는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오셨군요, 대표님.”
도착하니 박진태가 몹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의 느긋한 태도는 어디론가 간 곳이 없었다.
거기에 눈을 끔벅이고 있는데 뒤이어 뜻밖의 인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글렀습니다, 실장님.”
홍지호였다. 역시나 우거지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제 연락은 당연히 안 받고 희정이도 어딨는지 모르겠답니다··· 아, 이 피디님도 계셨군요.”
그늘진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글쎄, 나야 오는 게 맞지. 이상한 건 댁이 새파란 아침부터 여기 있는 거고. 내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홍지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태가 사태니까요. 하여간 요즈음 꽤 조용하더니 한 번 터트리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대표님. 대체 도나와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나는 이도나가 이쪽에 오길 원했고, 내가 좋게 거절했다는 걸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자 어째선지 둘은 너나할 것 없이 동시에 탄식했다. 서로를 돌아보는 표정이 굳었다.
“큰일입니다. 쫀심 장난 아니게 상했겠는데요?”
“그래. 보통 사태가 아니다.”
“스팀 어지간히 올랐을 거예요. 무슨 미친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어찌됐든 회견장 가기 전에 찾아야 돼. 도나 자주 가는 곳들 다시 한 번 찾아보라고 하지. 너는 생각나는 데 있으면 말해주고.”
“예.”
마치 국가 재난 사태라도 선포된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둘이 공포영화에 나오는 희생자마냥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순간 움찔했다.
“아니 뭐,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몰라도 이도나 씨는 공사는 잘 구분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리 큰일을 벌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 이쪽에 일말의 얘기도 없이 저지른 거야 이도나답지만.
홍지호는 잠시 제 귀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 되묻는다.
“저, 피디님. 우리 배우 이도나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거죠?”
“···아니었습니까?”
“······.”
어째선지 홍지호는 내 설명과 이도나를 등치시키기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다. 슬쩍 돌아보니 박진태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홍지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피디님. 혹시 도나가 그간 무슨 일 벌여왔는지 모르십니까?”
“얼추 소문은 들었습니다.”
루브도에서 벌였다는 이도나의 깽판은 반만 믿어도 어지간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결과 아무래도 과장된 소문이 많았다. 이도나는 성격에 문제가 있긴 해도 그 정도로 안하무인으로 나대는 정도는 아니었다.
뭐, 성격이 그 모양이니 소문이 침소봉대되는 것도 쉬웠겠지.
내 반응에 홍지호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다.
“아니··· 그, 피디님. 그거 축소되면 축소됐지 과장은······.”
“지호야.”
홍지호는 박진태의 얼굴을 보고는 어째선지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박진태가 말을 받았다.
“아무튼,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는데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찾도록 해주십시오, 대표님.”
“그러십시오. 막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는 순순히 응낙했다. 딱히 그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뤼팽이나 되는 양 이도나는 신출귀몰했다.
아무래도 이쪽에 헐록 숌즈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루팡 라이벌이면 셜록 홈즈 아니냐?]‘맙소사, 선배님! 저니까 봐드리는 겁니다. 다른 데서 그런 말씀 하시면 죽습니다!’
[······?]하지만 이도나는 훌륭한 괴도는 못 되었는지 결국은 행적이 드러났다.
“바로 잡으러 가겠습니다!”
박진태가 드물게 씩씩거리며 일어서던 찰나였다.
“큰일 났습니다!”
아래쪽에 있던 직원 하나가 헐레벌떡 짓쳐들어왔다.
“지금 이거보다 더 큰일이어야 할 텐데요.”
“그것이······.”
이죽거리던 홍지호의 얼굴은 이어지는 설명에 퍼석 굳었다. 박진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흠. 이 때였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 원 참, 가는 날이 장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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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나는 기자들 앞에 서 있었다.
익숙한 일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수백 쌍의 눈동자와 짧은 시간 일렁이는 서로 다른 광원들이 시야에 가득 찼다.
약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평소의 일이었다.
스스로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짧게 코웃음을 쳤다.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들었다. 이도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감히 나를 까?’
이현석의 얼굴을 생각했다. 그 재수 없는 표정을 생각하니 순식간에 모든 게 괜찮아졌다.
목소리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도나입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도나는 살짝 의아함을 느꼈다.
이상했다. 술렁임이 멎지 않았다.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갔다.
“제가 여러분들을 모신 이유는······.”
그 순간이었다. 기자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꽤나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에서 더욱 비상식적인 질문이 터져 나왔다.
“이도나 씨, 후배인 성진아 씨에게 수시로 수시로 욕설 등 폭언을 자행하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뭐가 어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