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01)
내가 그간 겪은 바로는, 이도나란 배우에 대해 방송 관계자와 대중들이 가진 이미지는 꽤 차이가 심했다.
그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역시 그녀와 가까운 사람과 그 외의 이미지가 제법 달랐다.
대중들은 이도나의 성격을 꽤 직선적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고, 반대로 무시무시한 소문을 듣고 한껏 긴장한 채 만나러 간 방송 관계자는 의외로 점잖고 조용한 태도에 놀라곤 한다.
“바꿔 말해 도나는 자기가 나름 가깝다고 생각하는 상대한테만 지랄을 합니다.”
홍지호가 말했다. 사실무근일 거라고 나를 보는 눈이 제법 절절했다.
“설령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도 선은 가릴 줄 알고요. 바보처럼 뻔히 트집 잡힐 일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피디님.”
“흠······.”
내가 턱을 쓰다듬는 사이 김철 선배도 말을 보탰다.
[쟤 말이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바닥에서 10년 가까이 버텨올 수가 없어.]생각해보면 선배는 어째 나와 이도나와의 첫 만남, 정확히 표현하자면 첫 통화부터 그녀에게 꽤나 온정적이었다.
다만 그와 별개로 설득력은 있는 얘기였다. 그런 성격으로 인성 논란 한 번 나지 않은 게 신기하기는 하지.
‘근데 생각해보면 그 사람 저한테는 처음부터 지랄맞지 않았습니까?’
[······.]김철 선배가 입을 닫았다. 나는 이어 홍지호에게 눈을 돌렸다.
“저쪽이 바보가 아닌 이상 쥔 거 하나 없이 터트렸을 리가 없습니다. 근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홍지호도 우물쭈물 입을 닫았다.
박진태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다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전화를 넣었다. 뾰족한 성과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역시나 이도나의 현 소속사인 루브도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대표님, 일단 도나부터 데려오시죠. 지금 상황에서 기자회견이라는 건 먹이를 던져주는 꼴밖에 안 됩니다.”
거기엔 나도 동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내 전화가 울렸다.
흘끗 보니 강성재였다.
– 형님,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눈치를 보는 듯 한껏 숨을 죽인 목소리다.
“···오냐. 무슨 일인데?”
– 이도나 씨 건 들으셨습니까?
“방금 들었다. 전해줄 말이라도 있냐?”
나는 볼륨 키를 꾹꾹 눌러 음량을 최대로 키웠다. 강성재가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 이쪽은 기자회견 타이밍에 맞춰서 기사를 한 번에 풀 거라고 합니다. 아마 다른 쪽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깔끔하게 움직이는군. 뒷배가 꽤 센 모양이다.
“심증으로 그렇게 움직이진 않겠지. 뭔가 근거가 있을 텐데?”
– 녹취록입니다.
녹취록이라······.
우리 친구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문제될 게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강성재가 말을 이었다.
– 대화 군데군데 자극적인 부분을 이어붙인 편집본인 것 같습니다. 얼핏 듣기로는 꽤 화력이 셉니다.
“상대는?”
– 배우 성진아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알면 충분하다.
“혹시 빼내서 보내줄 수 있겠냐?”
– 죄송하지만 제 짬으로는······.
하긴 그렇겠지.
하지만 충분 이상으로 귀중한 조력이었다.
“고맙다. 이건 빚으로 달아둬라.”
– 하하, 천만에요. 도움이 되셨다니 영광입니다, 형님.
강성재는 “그리고 저.” 하고 잠시 말을 끌었다. 나온 목소리는 더욱 작아져 있었다.
– 예전에 말씀하셨던 이도나 씨 관련 특종 타이밍, 지금입니까?
“오냐.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두 쌍의 시선이 어안이 벙벙해진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기자회견은 이대로 갑시다. 그쪽이 편할 것 같으니.”
나는 흘끗 시계를 보았다. 한시가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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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나는 멍하니 아수라장이 된 회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지간한 루머에는 다 시달려본 그녀지만 이 정도로 갑작스러운 사태는 겪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해명하실 내용 없으십니까?”
“성진아 씨는 적어도 수개월 이상 폭언과 괴롭힘이 이어졌다고 밝히셨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밝히다’라는 표현은 꽤 교묘하다. ‘주장하다’와 얼추 동치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명백히 발언 당사자에게 기울어진 표현이라는 점이 그렇다.
이도나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지만 이내 말문이 막혔다.
기자 하나가 일어서서 다가오자 이어 둘이 일어섰다. 다시금 다섯이, 열이. 이내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성난 파도처럼 몰려드는 인파를 막아내기에 몇몇 이들로는 역부족이었다.
매니저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도나야! 일단 피하자!”
이도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건 도망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던 까닭이었다.
이도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되레 눈앞의 인간의 파도를 당당하게 비웃으며 비꼬고 물리칠 수 있는사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따라주지 않았다. 표정이 흔들렸다.
“이도나 씨! 대답해 주십시오!”
“도망치시는 겁니까!”
매니저를 뿌리치고 넘어온 기자는 턱수염이 수북하고 고리눈을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기시감이 엄습하고 시야가 순간 아득해졌다.
외쳐지는 말.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들. 축축하고 곰팡이가 핀 벽. 꾹꾹 눌려 일자가 된 클립. 낡아빠진 송곳. 사용기한이 지난 안약.
“이도나 씨!”
아.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자연스런 태도로 이도나의 앞을 가로막고 카메라를 밀어냈다.
“자, 그만. 거기까지들 하시죠.”
지금 들려올 리가 없는 목소리에 이도나는 눈을 깜박였다.
멈추지 않으면 모가지를 돌려버리겠다는 듯한 험악한 표정에 개떼처럼 몰려들던 기자들이 순간 멈칫했다.
순간 분위기가 가라앉은 사이 이현석이 고개를 돌렸다. 근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이도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저기··· 그게······.”
“대화는 빠져나가고 합시다. 여기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했는지는 그 때 듣겠습니다.”
이현석이 뒤돌아섰다.
하지만 패시브로 공포 오라를 달고 다니는 그도 특종이 코앞에 있는 연예계 기자들을 어쩌지는 못했다.
언제 움찔했냐는 듯 되레 열기가 더해졌다.
“이현석 피디님! 피디님도 이번 건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인터넷에서 하차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하실 요량이십니까?”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몰려드는 질문의 폭풍에 간신히 이도나의 정신이 돌아왔다. 이도나는 입술을 깨물며 물러섰던 발을 되돌렸다.
이건 내 일이다. 내가 해명해야 한다. 욕을 먹어도 내가 먹고, 칭찬을 들으면 내가 듣고, 공은 나에게서 멈춰야 한다.
그게 내가 연기하는 이도나라는 배우다.
“이봐요······!”
무어라 외치려던 이도나를 누군가가 와락 잡아끌었다. 성난 기색으로 돌아보던 이도나의 표정이 당황스러워졌다.
“실장님?”
“가자.”
박진태는 다짜고짜 이도나를 잡아끌었다. 이도나는 끌려가면서 마구잡이로 성질을 냈다.
“가긴 어딜 가요! 저 인간 생긴 것만 저 모양이지 사실 허당이라고요! 당장 해명하고······!”
“아무렴 너만 하겠냐. 그리고 네가 할 것 없어. 준비 다 해놨으니까.”
이도나가 눈을 깜박였다.
“무슨 준비요?”
“해명하고 상대 묻어버릴 준비.”
“···언제부터요?”
“글쎄다.”
박진태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위즈톤 설립할 때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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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 몇 개월 전, 박진태가 『연구일지 속 보석함』의 촬영장에 찾아간 건 방영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 당시의 대화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왕 오셨으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제작발표회 일정이 잡혔습니다.”
“아, 저희가 힘을 좀 써야겠군요! 걱정 마십시오.”
껄껄 웃는 박진태에게 이현석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뇨. 『연구일지』의 제작발표회는 방송국 대기실에서 조촐하게 열 예정입니다.”
“예······?”
“대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도나도 들어 아는 이야기다.
“···그건 회사에서 실장님 내쫓으려는 거 전하려는 거였잖아요?”
“그럼 내게 ‘부탁’이라는 말을 쓸 이유가 없지 않았겠냐?”
“그건······.”
말문이 막힌 이도나에게 박진태가 씩 웃었다.
“뭐, 그런 말이 없었다는 건 아니고.”
당시 장소를 바꾼 이현석은 루브도 사내에서 박진태를 불미스러운 혐의를 뒤집어씌워 쫓아내려는 움직임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박진태는 작게 탄식했다. 그 때에는 어찌 알았는지 궁금하기보다 결국 이렇게 됐구나, 하는 회한이 강했다.
“저도 물러날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냥 은퇴하실 겁니까?”
“슬슬 지치기도 했고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박진태는 시원스레 웃었다. 직접 데려온 이도나와 홍지호도 궤도에 올랐겠다, 이걸로 되었다 싶은 생각이 강했다.
그걸 본 이현석은 어째선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가능하시면 몇 개월만 기다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뭔가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현석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도나 씨가 불미스러운 사태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진태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누굽니까? 근거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니, 사실 지금으로선 아무 일도 없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9할 9푼쯤.”
“······네?”
박진태는 멍해졌다. 지금 장난하나 싶은 심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현석 본인은 조금도 장난을 치고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제 기우로 끝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이후 어떤 방식으로든 사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걸 좌시할 수 없습니다 – 적어도 박진태는 그 표정에서 꾸밈을 찾지 못했다.
침묵을 지키던 박진태가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적어도 『연구일지』가 종영되기 전까지는 주변에 사람이 반드시 있게 하시고, 대화는 상시 녹취가 이루어지도록 해주십시오. 그게 제가 드릴 부탁입니다.”
“······.”
박진태는 흘려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는 대신 믿을 만한 매니저에게 지시해 그대로 따르도록 했다.
“그리고 덕분에 오늘 구사일생했지.”
박진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너도 있다가 들어봐라. 도대체가 악마의 편집도 그런 악마의 편집이 없더라.”
상황을 들은 이도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예요 그게··· 그런 걸 저한테도 숨기셨었던 말이에요?”
“너는 코웃음을 칠 테니까.”
박진태는 어깨를 으쓱이며 핸드폰으로 기사를 넘겨보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도나를 욕하는 사이 『연예투데이』에서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강성재란 이름의 기자는 원본 녹음 파일을 공개하며 해당 녹취록이 악의적으로 조작되었다는 걸 드러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손바닥을 뒤집는 여론을 보며 박진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고생했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쌓인 분량에서 이거다 싶은 걸 골라내야 했으니까.”
“······.”
“이 피디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려라. 이번엔 정말 모르고 있었으면 완전히 당했을 뻔했어.”
이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오도카니 선 채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한참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지. 대체 어떻게 냄새를 맡으셨는지 원······.”
“그런 게 아니라요.”
이도나가 옷자락을 꾹 움켜쥐었다.
“당시 저랑 그 사람 사이 아시잖아요?”
“···좋지는 않았지.”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었어요.”
이도나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다짜고짜 편집실에 쳐들어가서는 나 꽂아달라고 을러대고, 온갖 비상식적이고 제멋대로인 행동은 다 했어요. 그런데 뒤에선 날 위해 그런 짓을 했다고요?”
박진태가 눈을 끔벅였다.
“···다행히 네 행동이 비상식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구나.”
“전 미친년을 연기하는 거지 정말 미친년인 게 아니라고요.”
이도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슬슬 모르게 되고 있긴 하지만.”
박진태의 말로는 이현석은 그에게 이야기했을 때보다 훨씬 앞서 경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기로 따져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이도나를 캐스팅하지 않거나 조기에 하차시키는 것이었을 거다. 실제로 과정도 엉망진창이었던 데다 초기에는 싸움박질하기에 바빴으니 어려운 일도 아닐 터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현석의 행동은 지극히 비합리적이다. 이건 누가 봐도 이현석을 위한 게 아니라 이도나를 위한 행동이니까.
“그런 주제에 제 팬은 아니란 말이죠.”
“도나야.”
이도나가 쿡쿡 웃었다.
“저기요, 실장님. 그 사람이 호평한 제 배역들, 뭐뭐인지 아세요?”
“뭔데?”
이도나는 빙그레 웃으며 읊어나갔다.
『리어카 왕』의 소연 역, 『우리 동네 박사님』의 조수 역, 그리고 『사기꾼들』의 이름도 없는 피해자 역.
가만히 듣던 박진태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도나야, 그건······”
“네.”
이도나가 몹시 피곤한 미소를 띄웠다.
“얄미울 정도로 제 원래 성격으로 연기한 작품들만 고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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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서수현 작가님. 이현석입니다.”
“예, 예. 송구합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역시 장연철이군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