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11)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그 장연철마저 흠칫하지 않을 수 없던 인상임에도 김경숙 작가는 금세 표정을 정돈했다.
“그쪽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다면 요즘 잘나가기로 이름 높은 작가가 둘이나 딸려 있을 텐데··· 무슨 장난질일까?”
심드렁하다 못해 무례하게까지 들리는 어조인 건 그녀에게 있어 이현석이 그 정도로 껄끄러운 존재인 탓이다.
우선 김경숙에게 있어 애증의 대상인 서수현 작가와 친밀한 관계였다. 여기까지는 뭐, 납득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현석의 행보가 ‘막장의 대모’인 그녀의 자존심을 한없이 구겼다는 데 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예전, 초창기의 『연극처럼 살다』를 대하는 헤드라인은 대개 이런 느낌이었다.
여기에 종종 이런 헤드라인이 추가되곤 했다.
뭐, 조금만 막장스러운 물건이 나오면 김경숙을 가져다 대는 건 본래 흔한 일이었다. 초반부의 『연극처럼』은 그만한 임팩트를 보여주기도 했고.
하지만 문제의 드라마는 약 15화부터 평가가 길항하기 시작했고, 30화 이후로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막장이 막장이 아니게 되자 김경숙 작가는 일시에 도마 위에 오르는 꼴이 되었다.
– 진짜 막장을 극으로 달리면 말이 되게 되는구나;
– 김경숙을 막장의 극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리석었다··· 그냥 클리셰에 사로잡힌 아줌마일 뿐이었음ㅋ
– 유지아>>>(넘사벽)>>>김경숙
이런 반응들을 김경숙은 애써 그러려니 수긍하고 넘겼다.
20년이 넘는 경력에 신입 작가와 비교되는 꼴이 어찌 달가웠으랴만은 스스로도 장강의 뒷물결에 밀려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지아에 대한 평가는 『연극처럼 살다』가 종영되고 단막극 하나가 나온 후 다시금 뒤집혔다.
– 진짜 해도 너무한다;
– 대왕오징어······.
– 봤냐? 저게 이현석 없는 유지아임. 유자단 놈들 반성 좀 해라.
끝내 『연극처럼』 성공의 핵심이 PD인 이현석이라는 게 정설이 되자 통칭 유자단은 애써 그런 유지아를 싸고도느라 바빴다.
– 그래도 결국 유지아가 이현석 얘기 잘 따라주니까 『연극처럼』이 나온 거지.
– ㅇㅇ 맞음. 결국 글은 작가가 쓰는 거고 둘이 신뢰관계가 있으니까 저런 결과가 나온 거임.
– 당장 김경숙 전작 봐라ㅋ 피디가 아니라고 하는데 밀어붙이다 무슨 꼴이 났는지ㅋㅋ
줄곧 비교대상이 되던 김경숙은 그 유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이가 있는 작가였고, 연속극은 결국 작가가 시작하고 끝낸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비교대상이 작가라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개 PD, 그것도 서수현과 친분이 있는 상대에게는 그녀도 생각하는 바가 없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 설상가상으로 더욱 자존심을 구기는 사건마저 일어났다.
축약하자면 단순한 사태였다.
“차기작 하나 생각난 게 있는데··· 편성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가 모두 맞춰드려야지요!”
『내 딸의 아들내미』를 비롯한 연말 드라마들이 죽을 쑨 와중, 시청률 보증수표가 제 발로 찾아오자 SBC측은 화색으로 반겼다.
“언제가 좋으시겠습니까?”
“글쎄요. 『아름다운 집』 끝나고 월화 자리가 비면 괜찮을 것 같은데. 가능할까?”
“즉시 맞춰보겠습니다!”
늘 그렇듯 1순위로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던 편성은 그녀가 궤도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발목이 잡혔다.
“죄송합니다. 월화 편성은 좀 어렵게 됐습니다, 작가님.”
“무슨 일이죠?”
“그게··· 이미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연극처럼』의 이현석 피디가 이쪽으로 오는 바람에······.”
“···그쪽을 나보다 우선순위로 뒀다는 뜻이네.”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기획이 이미 꽤 진행된 상황이라······!”
사실상 친정인 SBC에서까지 이런 취급을 당하자 김경숙도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눈앞의 PD를 싫어할 만한 이유는 충분히 모인 셈이었다.
“딱히 장난질은 아닙니다.”
김경숙의 그런 마땅찮은 표정에도 이현석은 태연자약한 표정이었다.
“물론 유지아 양과 서예린 씨 모두 훌륭한 작가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김경숙 작가님의 작품을 더 훌륭하게 빚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그쪽 멋대로 뜯어고쳐서 말이죠.”
김경숙이 비꼬듯이 말했다.
“미안한데 내 작품을 멋대로 만지작거린다는 소리를 할 거면 그만 일어나지요. 난 나이대가 있어서 그런지 우주선이니 외계인이니 하는 괴상한 건 이해도 못 하겠으니까.”
“···오해가 있으신가 봅니다. 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어떠련지.”
노골적이기까지 한 냉소였다.
“요즘 잘 나간다고 세상이 쉬워 보이나 본데, 이쪽에서 굴러본 사람을 입봉 작가 둘 휘두르듯 멋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 게 좋아요.”
“멋대로 휘두른다라······.”
이현석이 한숨을 쉬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고 중얼거리는 얼굴에는 어째 진실미가 넘쳐흘러 김경숙은 잠시 저어했다.
이현석이 곧 표정을 바꿨다.
“뭐,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요. 저는 작가님을 마음대로 휘둘러보려고 합니다.”
“······.”
건방져도 너무 건방지고 뻔뻔하다 해도 너무 뻔뻔한 말에 김경숙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당황이 분노로, 이어 입 밖의 노성으로 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이현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 빨랐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몇 년 전부터 세웠던 계획에 저는 처음부터 김경숙 작가님과 이렇게 만날 것을 상정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김경숙 작가는 화를 내려던 것도 잊고 멍하니 굳었다.
누가 봐도 헛웃음을 지을 법한 얘기다. 하지만 김경숙은 그걸 그냥 헛소리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도 귀가 있다. 눈앞의 애송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안다.
그야말로 십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당장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파천황적인 인물.
“허언을······.”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제가?”
이현석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스스로 금칠하긴 뭐합니다만 지금까지 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 건 없습니다.”
“······.”
“처음 유지아 작가를 캐스팅했을 때부터 『연구일지』를 통한 세계관 확대, 그리고 현재의 미국 진출까지. 지금껏 『연극처럼』 시리즈의 모든 흐름은 제 설계 안에 있었고, 그대로 움직였습니다.”
공기가 흠칫 떨렸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경악스럽기까지 한 뻔뻔함에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리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김경숙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현석이 손에 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였다. 눈가에 드리워진 음영이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작가님을 대하고 있는 것도 그 계획의 일환입니다.”
그런 이현석의 모습에 김경숙은 침음성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계획.
눈앞의 PD는 불과 2년 만에 맨주먹 외엔 아무것도 없던 입봉 PD에서 미국에서까지 알려진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남자의 새로운 계획이란 뭘까.
김경숙은 애써 치밀어 오르는 궁금증을 내리누르고 차갑게 말했다.
“···저런, 그 잘난 계획에 내가 거절할 거라는 예상은 없었나 보지요?”
“물론 있습니다. 대안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작가님께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이현석이 말했다.
“그게 작가님에게도 도움이 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부탁도, 협박도 아닌, 그저 사실을 담담하게 나열하는 듯한 태도. 비로소 김경숙은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대안이 있긴 하지만··· 그쪽은 정말로 제가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되어서 말입니다.”
김경숙 작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죠?”
이현석이 빙그레 웃었다.
“저는 작가님의 원고에 전혀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뭐라고요?”
“물론 『연극처럼』 시리즈와의 연결도 없을 겁니다. 배우들 역시 원하시는 분들을 최우선으로 캐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김경숙은 비로소 멍하니 굳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현석이 배우를 보는 데 집착한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연극처럼 살다』에서는 모두가 기겁을 하는 와중에 쌩판 신인이던 한유미와 이설을 뽑아 올렸고, 『연구일지 속 보석함』에서는 대형 기획사와 한판 하면서까지 유명우란 무명배우를 데려왔다. 그리고 모두가 그 값을 했다.
애초에 대본과 캐스팅을 넘긴다니, 아무리 봐도 이현석의 스타일이 아니다.
“연출은, 그쪽이 하는 거죠?”
“물론입니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박을 생각입니다.”
“······.”
그렇다면 악평마저 모두 물고 가겠다는 뜻이다. 마지막 의심마저 사라지자 김경숙은 더욱 의아해졌다.
“대체······.”
“말씀드렸듯 저는 그저 작가님의 작품을 훌륭하게 빚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이현석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저는 그걸 성공시킬 계획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
“슬슬 은퇴를 생각하시는 걸로 압니다. 제가 마지막 커리어를 화려하게 장식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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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다···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사기야······.]김경숙 작가와의 미팅이 끝난 후 김철 선배는 기가 찬 얼굴로 꿍얼거리기 바빴다.
[설계니 계획은 얼어 죽을··· 불과 반나절 전에 생각나서 쳐들어간 놈이······!]“뭐, 현실로 만들면 사기가 아닙니다, 선배님.”
내 너무나도 당연한 말에 김철 선배가 눈을 부릅떴다.
[그게 사기꾼 놈이 하는 말이야, 자식아! 따서 갚으면 된다는 거랑 뭐가 다르냐!]“그건 도박꾼이죠.”
뭐가 나은지는 차치하고··· 일단 작가는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음은 스태프와 배우다.
김철 선배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어쨌거나 SBC 쪽에 얘기나 해야 되는 거 아니냐? 편성 받아야지.]“그렇죠.”
[내가 보기엔 그게 제일 어려운 일 같은데? 최도정이 그 양반이 오냐오냐 받아줄 리가 없을 테고.]“뭐, 설득할 재료는 있잖습니까?”
[무슨 재료?]나는 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들었다.
“뭐, 최악의 경우 방송 3사를 다 돌아본 셈 치면 되겠지요.”
김철 선배는 잠시 눈을 끔벅이다 이내 입을 떡 벌렸다.
[진짜로 돌았냐, 네 녀석?!]“물론 제정신입니다. 적어도 최근의 이도나 씨보다는요.”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김철 선배가 입을 떡 벌린 채 말문이 막힌 사이 눈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돌아보니 최근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메시지창이었다.
『경고 : 사용자 이현석은 이미 ‘동시제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획을 진행할 시 기존의 ‘동시제작’을 해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알 게 뭐냐. 그쪽에 이제 와서 무슨 기대를 하라고.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여 수긍했다.
『사용자의 요청을 실행합니다.』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원인 파악 중······.』
···응?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메시지가 돌아왔다.
『처리를 완료했습니다.』
『’동시제작’을 해제하고 발견된 취약점을 완전히 차단, 보강했습니다.』
“···뭔 운영체제 업데이트같은 소리를 하는군요.”
[···그러게?]나와 김철 선배를 얼굴을 마주보고는 어깨를 으쓱하고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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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서늘한 한기가 스쳐지나갔다.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넘겨보던 이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이가 돌아와 있었다.
“···안녕히 돌아오셨어요. 말씀하신 것보다 조금 빠르지 않아요?”
[······.]“저기요?”
평소답지 않게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본 이설이 고개를 갸웃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