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23)
회의 중 내가 말했다.
“프로파간다를 만든다고 생각합시다.”
“···예?”
스태프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금 반복했지만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조을호 편집감독이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저, 이 피디님. 그게 대체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 듯 싶어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윤가연과 그 친구들에게 장해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해결됩니다. 아니, 애초에 해결될 수밖에 없는 장해를 설정합니다.”
“······.”
“부정적인 면은 철저히 없애야 합니다. 밝고, 희망차고, 끝내 정의가 승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프로파간다라는 겁니다.”
윤가연과 그 친구들은 갑작스럽게 우주의 개척자가 된 상황이다. 철저히 복선을 깔았더라도 무리수로 여겨질 정도의, 가히 황당한 수준의 장르 변환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애써 개연성을 던지는 것보다 알기 쉬운 대증요법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즉, 시선을 돌린다.
“착한 무리들 속에 섞여든 악역을 만듭니다.”
“악역···입니까?”
“그렇습니다. 알기 쉽고 어설프게 영리한데다 말까지 많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녀석에게 실컷 어그로를 끌게 하고 장대 위에 매답니다. 이 패턴을 꼬아가며 반복합니다.”
내가 강조했다.
“시청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는 겁니다.”
그렇게 악역이 하나둘 매달리며 이상향은 나아간다.
윤가연과 그 친구들의 행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항상 옳은 길이며 발전과 번영으로 이어진다. 음악은 밝고 희망차며 이미지는 선명하다. 그리고 연출로 그 모든 걸 최대한도로 부각시킨다.
“그걸 윤가연 본인과 링크시킵니다.”
모든 과정을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다. 군상극이지만 중심은 유지한다.
위대한 영도자 윤가연 동지가 성장하는 것과 같이, 국가도 성장한다. 그런 연상이 가능한 연결성을 주면 충분하다.
“도시 경영 게임이나 국가 건설 게임을 생각해보세요. 한 턴이, 혹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무언가가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그게 중독성을 불러 일으키지 않습니까? 그런 요소를 착실히 살려 담아내는 겁니다.”
그렇게 최후에는 모든 것이 완벽해지고, 게임이라면 당연히 승리 엔딩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법한 상황을 만든다.
이야기라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의 해피 엔딩이 당연한.
“이해했습니까?”
“일단은······.”
스태프들은 아리송한 중에서도 일단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들고 있던 기획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의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 다음에는······.”
내 말이 끝났을 무렵 주위의 표정은 완전히 황망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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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우리가 그렇게 완성될 유토피아를 철저하게 지옥불에 쳐넣어야 한다는군.”
디에고 로드리게즈가 한숨을 쉬었다.
이쪽 스태프들의 반응 역시 한국 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말인즉슨 대부분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고 최대한 나아 보이는 해석을 꺼냈다.
“진짜 지옥불입니까, 감독?”
“그러면 좋겠지만······.”
디에고가 고개를 저었다.
“정신적인 타락이야. 우리가 지금 『연구일지』에서 보고 있는 희망찬 모습이 세월에 얼마나 쉬이 변질되고, 무너졌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자는 것이지.”
“······.”
“그간 우리가 벌칸을 선하고 이상적인 곳으로 표현했던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악하게 그려달라는 게 현석의 요청이네.”
말인즉슨 간단했다.
『연구일지』에서 더없이 올바르고 완벽해보이는 선택을 보여주면, 『벌칸의 몰락』에서는 그 선택이 세월이 흐른 후 얼마나 처참하게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옳은 행동을 행하겠다는 다짐은 아집이 되고, 건전한 토론의 장은 다수결에 대한 맹신으로 화한다.
“다른 ‘미개한’ 이들에 대한 우월주의, 그에 따른 ‘보호’를 주장하는 팽창주의, 그리고 끝내 그에 따라 생겨난 식민주의와 패권주의······.”
이현석이 보내온 가이드는 가히 집요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영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건 당장 스태프들의 반발에서 나타났다.
“이해할 수가 없군.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야?”
“『연구일지』에서 시청자들이 얻었다고 생각한 걸 죄다 쓰레기통에 쳐넣자고? 이런 정신 나간 수법으로?”
“백 보 양보해서 하나의 작품이라면 모를까,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둘은 엄연히 별개야! 심지어는 방영되는 국가마저 다르다고!”
엄밀히 따져 이 결정으로 『벌칸의 몰락』은 큰 타격이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연구일지 속 보석함』의 스토리와 주제의식, 더 나아가 드라마 전체다.
“리 감독은 조디악을 똥통에 쳐넣는다면 거기에 연결된 윤도 마찬가지가 된다는 걸 모르는 건가?!”
디에고 로드리게즈가 모은 만큼 이들 스태프들은 대부분 이현석의 작품의 팬이거나, 최소한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나온 반발이었다.
“모를 리가 없겠지.”
디에고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무리수라는 건 현석도 익히 알고 있을 거라 보네. 아마 그 친구의 시야에서 보이는 뭔가가 있겠지.”
“음······.”
“그와 별개로 나는 우리가 거절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어떤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부분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수긍했다. 이의가 있는 이들도 당장 들어온 9화 분량의 오더를 때울 대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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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몇 주가 지났다.
그간 『연구일지』는 일약 어마어마한 화제작이 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었다.
– 진짜 미치겠네······.
– 시청자들 가지고 노나. 같은 작품 내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 방영되는 프리퀄 가지고 뭐 하는 거임?
– 이걸 왜 봄? 윤가연이 백날 죽을 똥 싸도 결국 저렇게 되는 게 뻔한데?
반발은 예상했듯 어마어마했고,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김철 선배는 늘 그렇듯 굳이 그런 반응을 찾아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서예린 작가의 원안은 여러모로 약했습니다. 그냥저냥한 비판이 몰리면서 사그라들었을 겁니다.”
그건 최악이다. 그렇기에 나는 작정하고 판을 키워버리기로 했다.
‘프로파간다’라는 표현에 걸맞게 카메라에 힘을 팍 실었다. 김철 선배가 기겁했을 정도로 과도한 연출이었다.
반면 미국 쪽에는 철저하게 정적인 연출을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구도와 배경, 상황은 최대한 동질감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생가대로 이윽고 스트리밍 사이트 등지에서 편집된 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연구일지』 위에 Before란 단어를 삽입하고, 이어진 프리퀄에 After를 표시한 단순한 영상이었지만 꽤 인기를 끌었다.
“저희는 그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위해 보다 나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럼 그걸 찾아봅시다. 그걸 위해 저희가 모인 겁니다!”
최초로 십이궁의 대표가 모인 의회가 설립되는 과정을 나는 위기감을 심어주는 구성과 복잡한 카메라 워크로 최대한 화려하게 그렸다.
“그럼 상정된 안건에 대한 표결에 들어가겠습니다··· 찬성 9, 기권 3으로 태양계에 대한 평화적인 무력시위가 결정되었습니다.”
“다음 안건은 플로리다 항성계의 개척에 대한 지분을 어떻게 분배할까에 관하여······.”
반면 같은 주 『벌칸의 몰락』에서는 5분간 구도의 변화가 없는 채 대의 없는 영합주의와 파벌싸움으로 별 의미 없이 벌칸 침공 의결이 모아지는 장면을 그려냈다.
이 두 장면을 모은 영상은 가장 끔찍한 Before&After로 주간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언제나 얘깃거리가 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얘깃거리조차 되지 않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서예린 작가 역시 그렇습니다.”
[음······.]“뭐, 지금 도는 게 제게 있어서 썩 나쁜 평가도 아니고 말입니다.”
국내 언론들의 의견은 대개 비슷했다. 대부분 내가 지나친 인기에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발을 헛디뎠다고 보고 있었다.
물론 내게 빈틈은 없었다. 나는 여기에서 서예린 작가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현 사태를 나의 독단으로 했다.
– 이 피디님······.
“제 잘못입니다, 서 작가님.”
– 아뇨,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저는······!
“대본은 다 나왔으니 잠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서 작가님은 나쁘지 않습니다. 전부 제 책임입니다.”
– 아······!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해본 탓인지 서예린 작가는 다소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잘 달래서 잠시 머리를 식히도록 했다. 굳이 직접 찾아가지 않고 전화로 대신한 것도 부담감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까 해서였다.
뭐, 내가 방패막이가 된 상황에서의 간접적인 경험이면 싸게 먹히는 거겠지.
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지나치게 거품이 껴서 막장도에 방해가 되고 있는 지금, 최근의 평가는 김경숙과의 차기작을 위한 양분이 될 터였다.
그럭저럭 계획대로 된 셈이랄까.
하지만 김철 선배는 어째 미적지근했다.
[···서예린이 걔 한 번 찾아가보는 게 낫지 않겠냐?]“네? 왭니까?”
[아니, 왜냐니······.]“······?”
무어라 말하려던 김철 선배는 어째선지 이도나 쪽을 한 번 보고는 입을 닫았다.
그렇게 어찌어찌 최소한의 피해로 틀어막았다 싶던 참이었다.
그 즈음 최근 들어 영 대화가 없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장난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나쁜 소식을 들고.
나는 멍하니 되물었다.
“···뭐가 어쨌다고요?”
– 말 그대로입니다, 현석.
로이드 곤잘레스 감독은 전화 너머로 흐뭇하게 웃었다.
– 당신의 작품이 국제 에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
심사위원들이 죄다 정신이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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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은 미국 TV 부문에서 명실상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하지만 사실 에미상 본편에 비해 국제 에미상은 비교적 관심도가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찾아보면 드라마를 포함한 국내 영상물도 결선까지는 올라간 경우가 드문드문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수상한 적은 없고, 애초에 동양권 작품은 대개 체면치레를 위해 후보로 올리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냉정하게 볼 때 현재 후보로 올린 의미는 『벌칸의 몰락』에 연계된 화제성을 본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실제로 줄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겠죠?”
[미치지 않고서야 그래야지!]김철 선배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처음 황금색 곰탱이 받아온 다음작부터 얼마나 거품이 덕지덕지 끼었는지 아냐! 우리 모가지가 붙어 있으려면 무조건 아니어야 해!]나는 불안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다행히도 상을 타지 못했다. 아무래도 심사위원 중 미치광이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행이 아니었던 건 그 다음부터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