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29)
강아라가 연기하고 있는 이진이란 캐릭터는 반쯤 엑스트라에 가까운 조연이었다. 다른 도리가 없어 개척단 안에서 윤가연을 따르고는 있지만 나름 복잡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설정이다.
대사 자체는 여태껏 스무 마디도 안 될 정도로 적었던 반면 얼굴은 묻어가는 컷으로 꽤 자주 비추었는데 물론 의도된 것이었다.
윤가연에 대한 암살 시도.
후반부로의 전환과 그 사이에 다시금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수단이었다. 거기에는 그간 행적이 묘연하던 목표, 유강진이 관계되어 있었다.
“그······.”
하지만 어째선지 강아라는 다음날이 된 오늘까지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물론 말씀하시고 계신 건 알겠지만요··· 그 암살방법은 서예린 작가님이 직접 생각하신 건가요?”
“아뇨, 수단 자체는 제 생각입니다.”
서예린 작가는 암습 이전과 이후의 대본을 만들면서 그 사이, 즉 암습 자체와 중간의 혼란상에 대해서는 온전히 내 재량에 맡겼다.
여간한 신뢰가 아니었던 터라 나 역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은 당연히도 임팩트가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이후의 혼란상과 잘 연결 지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럴 수 있는 암살 수단. 내가 내린 결론은 당연히 한 가지였다.
“역시 미사일밖에는 없지요.”
“아니, 그건 아니죠!”
“······.”
“아··· 죄, 죄송해요.”
강아라는 언성을 높였다가 금세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개운치 않았는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 하지만 미사일로 사람을 날려버리는 건 암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라야?”
내가 암살의 정의에 대해 잠시 고민하던 사이 멀찍이서 다른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최근에야 여러 이유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맏언니 한유미였다.
한 손에 전투기 모형을 든 채 몹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암살의 사전적 뜻은 몰래 사람을 죽인다는 거야. 순항미사일로 목격자까지 깔끔히 지워버리는 것 이상의 암살방법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러니?”
“언니······.”
한유미는 동생의 표정을 외면하고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콧김을 뿜고 있다.
“저는 정말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피디님!”
“음!”
역시,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내 뜻과 같았다.
최근 들어 한유미의 감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강아라는 나와 한유미를 번갈아보며 입을 벌리고 있다가 시선을 돌렸다.
“저기······.”
“대표님께 다 뜻이 있으실 겁니다.”
“그······.”
“놔둬. 결국 어떻게든 풀리더라.”
박진태와 이도나의 심드렁한 태도에 강아라는 이유 모를 울상이 되었다.
“저··· 하지만 이거 아무리 봐도 다들 막장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막장이라고요?”
그간 강아라와 눈을 마주치기를 피해온 나조차 눈을 홱 돌릴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강아라가 어깨를 떨며 흠칫 물러섰다.
“강아라 씨. 이 설정을 시청자들이 막장으로 느낄 거라 보십니까?”
“죄··· 죄송합······.”
“타박하는 게 아닙니다.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겁니다. 편하게 얘기해 보십시오.”
내가 아차 싶어 달래자 강아라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솔직히··· 네.”
“어느 정도로?”
“네? 그야··· 얼추 7할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군요.”
훗.
나는 그 천진하기까지 한 대답에 긴장을 풀고 픽 웃지 않을 수 없었다.
7할, 막장도 70퍼센트.
그 수치가 그렇게 쉽다면 누군들 걱정을 일삼겠는가. 결국은 조예가 없는 이의 기우와 노파심에 지나지 않음이다.
“괜찮습니다.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내 확신에 찬 태도에 강아라도 비로소 납득한 모양이었다. 다시금 머뭇머뭇 고개를 숙인다.
“네··· 죄송합니다. 괜히 뭣도 모르면서 설쳐서.”
“아닙니다.”
내가 관대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이후의 촬영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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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떨까?”
“글쎄······.”
한편 최미나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끙끙대며 노트를 이리저리 들춰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 일상적인 내용은 좀 빼는 게 낫지 않을까?”
유지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진을 올려보라는 건 네가 한 말이잖아?”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최미나는 머리를 헤집으며 한숨을 삼켰다. 지금도 팬으로서의 그녀와 친구로서의 그녀가 내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조금 돌아가 반나절 전.
드물게도 단축수업으로 야자가 없던 날이라 최미나는 그간 벼르고 벼르던 일을 단행했다.
즉, 집에 친구를 초대했다.
“안녕하세요. 미나 친구인 유지아라고 합니다.”
최미나의 어머니는 작게 입을 벌렸다.
“···정말이었네.”
“네?”
“아니, 환영한다고! 그치 엄마?”
“그럼, 그럼. 나는 네 팬인걸. 팬카페도 가입했단다.”
시선을 나눈 두 모녀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아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멋쩍게 웃었다.
“오백 명중에 한 분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오백?”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듣기론 유지아 팬카페의 회원은 얼마 전에······.
“바, 밥 먹자, 지아야!”
하지만 딸이 뒤에서 손짓 발짓으로 사정하는 통에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간 딸에게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는 직접 대화를 나누게 되자 유지아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하여간에 우리 미나가 네 반만 닮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씀 마세요. 미나가 저 같은 애보단 훨씬 나아요.”
어린 나이에 큰 명성을 얻은 이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겸손한 태도 역시 그녀의 마음에 쏙 차는 것이었다.
“그래. 편하게 놀다 가렴.”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회의를 하러 왔어요.”
“회의······?”
다시금 딸의 표정을 본 어머니가 어깨를 으쓱였다.
얼마 전, 유지아는 최미나에게 자신의 팬카페에 스스로의 활동사항을 올릴 수 있지 않을지 의논해왔다.
“활동사항이란 건 좀 과장된 거고··· 나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니 그냥 일기나 좀 써보려고 해. 간간히 차기작 설정도 좀 풀고······.”
유지아가 멋쩍게 웃었다.
“뭐, 몇 분 안 봐주실 것 같지만, 그건 자기만족 같은 느낌으로.”
“······.”
당시 그 말을 들은 최미나는 순간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일단 떡밥만 던져지면 점령당한 팬카페가 수복될 터였고 최근 사그라든 유자단의 영광도 봉화를 타고 터져나갈 터였다. 최미나는 그 모습을 능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원수가 오백 명 정도야?”
“어, 응. 지아야, 그게 사실은······.”
“조금 부끄럽네··· 조금 더 많았으면 올릴 생각도 못 했을 거 같아.”
이것이야말로 최미나의 회원수 500명 정보통제가 시작된 이유였다. 그녀는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포토샵을 공부했다.
다행히도 유지아 역시 최근까지 의무교육 외의 방법으로 컴퓨터를 접해본 적이 드물었던 터라 최미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응.”
최미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애써 다잡았다. 유자단의 영광을 위함이니 그녀의 이름 아래 곧 모든 것이 정당화될 것이다.
최미나는 흥미를 보이는 어머니를 방에 밀어 넣고 방에서 팬카페에 올릴 내용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 한창이었다.
“그··· 인원수가 적다고 해도 인터넷은 어디에 어떻게 퍼져나갈지 몰라. 너무 민감한 사진은 올리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렇구나.”
유지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반응에 최미나는 적이 안도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웬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러 의미로 팬인 그녀를 자극하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도 많이 아닌 것 같아.”
“······.”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현석 피디님하고 친한 건 아는데 그래도 이런 건 안 놔두는 게······.”
“돌려줘.”
담담한, 하지만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최미나는 찔끔 놀라 사진을 건넸고 유지아는 그걸 곱게 펴서 다시금 파일 안에 넣었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뭔진 몰라도 실수했구나 싶던 최미나는 눈을 굴리며 필사적으로 화젯거리를 찾았다. 다행히도 답은 시계가 내려주었다.
“아··· 『연구일지』 할 시간이다.” “벌써?”
유지아의 얼굴에는 다시금 미소가 돌아왔다.
“생방으로 보는 건 간만이야!”
그걸 본 최미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둘이 나란히 앉아 본 드라마의 내용은 결코 안도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네가 가연이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걸 알아. 그걸 해소할 기회를 주고 싶어.」
어디까지나 『벌칸의 몰락』과의 연계가 문제였지 드라마 자체로는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던 『연구일지』지만 하필 오늘은 초장부터 불안한 분위기를 깔고 있었다.
「완벽한 암살수단이 준비되어 있어. 네가 결정하기만 하면 돼.」
한참을 고뇌하던 강아라 – 이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유강진은 그 모습에 흐뭇해했다.
「그래. 그럼 이걸 가지고 있도록 해.」
유강진이 조그만 주머니를 건네고, 최미나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크기로 봐서는 작은 칼··· 아니, 독약? 생각나는 게 너무 많았다.
「호위가 얼마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가연이 방심하고 있을 때 꺼내면 답이 보일거야.」
역시 독가스인가······!
최미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후 긴박한 배경음 속에 치열한 눈치싸움이 이어졌다.
그렇게 진행되며 긴장감에 최고조에 오른 순간, 이진이 주머니를 열었다.
“······?”
「······??」
하지만 거기에 있는 건 암살수단이라기엔 좀 뭐한, 큼지막한 빨간 버튼이 하나 달려있는 리모콘뿐이었다.
최미나와 마찬가지로 이진도 놀란 듯 한참을 망설이다가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광경.
「뭐지, 저건?」
「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미사일은 건물을 심각하게 붕괴시키고 큼지막한 불을 일으켰다.
「제기랄,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화재를 진압하고······!」
「저기 하늘을 보십시오!」
언성을 높이던 한 중년인의 눈이 하늘을 향했다. 그야말로 화살비로 보일 정도의, 빽빽한 미사일의 군집이 보였다.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연이은 화려한 폭발에 최미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암살?
“역시.”
황당한 상황에 얼이 빠진 최미나와는 달리 유지아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저건 예린이 언니 스타일이 아니야. 내 생각이 맞았어.”
“뭐?”
“김경숙이란 작가는 단순한 카모플라쥬, 진짜 적은 오빠야. 미사일을 날려 모조리 지워버린다는 허를 찌르는 암살법.”
유지아의 눈은 침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라면 생각은 했겠지만 저렇게 망설임 없이 쓸 수 없었을 텐데······!”
“아니, 저건 쓰면 안 되는 종류라고 생각하는데.”
최미나가 드물게도 냉정하게 지적했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유지아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가방에서 자신의 원고를 꺼내들었다. 몇 장을 읽어나가다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젓는다.
“역시 부족해··· 이런 걸론.”
“······.”
최미나는 순간 몹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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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일지 속 보석함’ 39화의 방영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집계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35.8%,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약 71%입니다.』
『연동된 ‘연극처럼 살다 – The Fall of Vulcan’의 정보를 로드합니다.』
『평균시청률 1.88%,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약 20%입니다.』
『사용자 이현석은 이미 연동을 포기한 바 있습니다. 결과가 합산되지 않습니다.』
바보 같은······!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동시제작! 동시제작 어디다 팔아먹었냐, 이 멍청한 자식아!]김철 선배가 옆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나는 멍하니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막장도 71%··· 거의 7할.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적중률.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