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35)
최미나와 그 어머니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던 때로부터 얼마 전.
“최대웅? 그 최대웅이 나온다고? 진짜로?”
한 프로그램 대기실에서 따끈따끈한 소식을 들은 샤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죽 놀랐던지 그 애지중지하던 핸드폰 게임에서도 손을 놓고 있다.
매니저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썼다.
“선배님을 붙여, 자식아.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우와, 나 그런 초대작 드라마에 캐스팅된 거야? 쩐다!”
하지만 별반 효력은 없고, 금세 여느 때와 같은 태도로 촐싹대기 시작한다. 매니저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감탄할 게 아니라 위기감을 느껴야지, 이 자식아. 이설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하물며 최대웅이야. 이 드라마 말아먹으면 십중팔구 네 탓이라는 소리 나올 거라고.”
매니저가 반응을 보라는 듯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지금도 기사는 쉴 새 없이 업데이트되고, 댓글은 끝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천만 배우 최대웅이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사표를 던진 건 그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사실 놀랍다기보다도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 최대웅이 뭐가 아쉬워서 드라마에 나옴??
– 내 말이. 오라는 데가 천지일 텐데?
– 팀이 괜찮긴 하지ㅇㅇ 이설 증명됐고 이현석은 요새 날아다니고
ㄴ 막장 대모님이 빠지셨는데요^^
ㄴ 맞음. 다른 건 몰라도 김경숙 하나로 죄다 나가리임
ㄴ 발연기의 달인 샤이도 잊지 말라구!
어떻게든 납득해보려고 하면 김경숙이란 이름 세 글자가 순식간에 발목을 잡으니 사람들의 혼란은 멎을 기미가 없었다.
그런 와중 샤이도 곧잘 언급되곤 했다. 당연히도 십중팔구가 부정적인 뉘앙스였으니 매니저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샤이는 태연했다.
“괜찮다니까. 잘 될 거야.”
“대체 뭐가 널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만드는 거냐?”
황당해진 매니저가 묻자 샤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최대웅도 이설도 죄다 대단한 사람들이지?”
“당연하지. 네가 지렁이면 이설은 매고 최대웅은 용이야, 이 자식아.”
“이현석 감독님은 그런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날 뽑았잖아. 그럼 뭔가 생각이 있으신 게 아니겠어?”
“······.”
언성을 높이던 매니저가 허를 찔린 기분으로 입을 다물었다.
썩 멀쩡한 논리는 아니었지만 샤이의 태평한 태도에는 사람을 멋쩍어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 나중에 긴장해서 얼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
매니저는 애써 납득하기로 했다. 하지만 굳이 싫은 소리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디 실제 촬영 들어가서도 그럴 수 있나 보자. 취재 들어갔던 양반들이 배우 굴리는 거 보고는 깜짝 놀랐다더만.”
“하긴. 천하의 이도나를 그렇게 까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아니, 이도나도 이도나지만 난 강아라 얘기하는 거야.”
“······?”
고개를 젓는 매니저에게 샤이가 금시초문인 표정이 된다. 강아라? 하고 열심히 기억을 뒤지는 모습에 매니저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강아라 몰라? 에어리즈 막내! 요즘 잘 나가잖아.”
그룹명을 듣고서야 샤이도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에어리즈 막내가 그런 이름이야? 나야 몰랐지.”
“아니, 모른다니······.”
“뭐야. 애초에 나는 스캔들 터지면 수습 안 되니까 걸그룹 쪽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며?”
“······.”
다시금 할 말이 없어진 매니저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말은 또 이상하게 잘 듣는다니까.
“이진 역 배우 말야. 윤가연 미사일로 날린 암살범.”
“아··· 진작 그렇게 말했으면 알지.”
“아니, 네가 노인네도 아니고 연예계에서 배역 이름으로 사람 기억하고 있냐? 애초에 인사도 몇 번 했었잖아.”
에어리즈 막내인 아라가 고등학생 시절 데뷔했으니 5년차인 올해는 20대를 훌쩍 넘겼다. 『로켓맨』에 비해 평균연령은 어려도 짬은 엇비슷하게 먹은 셈이다.
하지만 샤이는 정말로 기억에 없는 모양이었다.
“걔가 한유미랑 같은 그룹이었구나··· 그룹이 다 연기 괜찮게 하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웬수를 본 매니저가 쓴웃음을 지었다.
“걔 그간 연기 더럽게 못한다고 말 많았어.”
“어? 뭔 소리야, 저번에 연기 선생이 영상 보여주면서 이 정도만 하라고 하더만.”
“요즘은 그런데 처음엔 한유미 덕에 낙하산 떨어졌다고 말 어지간히 나왔다니까?”
샤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지금은? 타고난 거야?”
그 질문에 매니저는 묘한 꿍꿍이가 섞인 얼굴로 씩 웃었다.
“글쎄, 어쩌다 잘 하게 되었을 거 같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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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그로부터 며칠 뒤, SBC 일산제작센터.
매니저는 눈앞의 인상파 감독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은 견학을 허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닙니다. 애초에 샤이 씨는 머잖아 같이 일하실 분 아닙니까.”
씩 웃은 이현석이 이내 얼굴을 살짝 굳혔다.
“다만 지금은 유출에 민감한 시기입니다. 각별히 주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매니저는 한 걸음 물러서고 싶은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 있다가도 절로 사그라들 것 같은 표정이다.
여전히 웃을 때랑 표정을 굳힐 때의 인상이 천양지차인 양반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현석이 다른 스태프에게 시선을 돌리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우와.”
한편 샤이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드라마 세트장이야 본 적이 드물 테지만 그 외는 흔히 보던 것들인데도.
“나 왔어요.”
샤이가 그렇게 촌놈처럼 굴던 와중 멀찍이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얼굴을 본 매니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누구에요?”
“아, 이도나 씨. 견학입 니다.”
“견학?”
이도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에 보이는 이목구비에 얼이 빠져 있던 매니저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안녕하십니까!”
매니저가 곧장 고개를 숙였다. 정신을 빼놓고 있는 샤이도 팔꿈치로 후려쳐 얼른 머리를 숙이도록 했다.
데뷔 9년차 배우 이도나.
다른 계열이라도 조심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제 연기에 데뷔하는 입장이 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사신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인사를 건성으로 받은 이도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얘가 여기서 뭘 배우겠다는 건데요? 연기하는 애도 아니잖아요.”
“아, 샤이 씨는 지금 저와 기획을 같이 하고 계십니다.”
똑딱.
잠시 불온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이도나가 어쩐지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요?”
“그러니까 제 신작으로 연기 데뷔를 하실 거라는 뜻입니다.”
“······.”
이현석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매니저의 생각에는 이도나가 그걸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는 않았다.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움직인다. 돌아보는 표정에는 서늘한 서리가 내려앉아 있다.
“···이 나를 쳐내고 고른 게 고작 이거란 말이죠.”
“예?”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선이 마주치자 어지간한 샤이도 순식간에 얼굴이 굳었다. 그야말로 뱀의 시선을 받은 개구리처럼.
이도나가 코웃음을 쳤다.
“유미네 막내가 차라리 깡은 더 낫겠는걸요.”
“처음에야 다 그렇지요.”
“제대로 고르신 거 맞아요? 요즘 이상한 짓만 골라 하더니만 눈이 맛이 가기 시작한 건 아니고요?”
이현석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노골적인 힐난이 돌아왔다. 매니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도나의 성격이야 얼추 풍문으로 들었고, 최대한 각오하고 있을 요량이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더욱이 그 감정은 자신들에 그치지 않고 눈앞의 이현석에게까지 향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영문 모를 짜증과 신경질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태도에도 이현석은 태연자약했다.
“뭐, 저로서는 최선의 인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어찌나 태연했는지 그런 태도를 눈곱만큼도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까지 보일 정도였다.
하얗게 질렸던 샤이는 그 한 마디에 순식간에 다시 살아나서는 감동 섞인 표정이 되었다.
“흥.”
반면 이현석을 보는 이도나는 그대로 한 방 날리고 싶은 얼굴이 되었다.
당장이라도 일이 터질 것 같은 모양새에 어쩔 줄을 몰라하던 매니저가 한 걸음 물러서던 순간이었다.
이도나가 든 가방에서 신경질적으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자요. 오늘 할당량.”
······?
꺼내놓은 물건과 이현석의 표정을 본 매니저가 눈을 깜박였다. 이현석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감사합니다. 그만 가져오셔도 된다고 말한 것도 이걸로 백 번을 넘은 것 같군요.”
“혼자 알아서 먹으면 누가 뭐래요.”
이도나는 여전히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처럼 보이는 표정으로 가방에서 온갖 수상한 색깔의 즙들을 꺼내 떠안기고는 사라졌다. 이현석 역시 재차 한숨을 내쉬고는 그걸 말없이 입에 가져갔다.
···대체 무슨 관계야? 매니저가 어안이 벙벙해있는 가운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이 피디님. 미국 쪽 시놉은 피드백 없었나요?”
『연구일지』 메인 작가 서예린이었다. 종종 소문이 되었던 모습처럼 이지적이고 온화한 얼굴에 매니저는 그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아, 네. 별 문제 없다면 다음 방영분하고 동시에 같이 나갈 겁니다.”
“그렇군요.”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서예린이 시선을 돌렸다.
“저, 이 분들은요?”
“아, 그게 말입니다.”
“······.”
설명을 들은 서예린의 얼굴이 변했다. 그러니까, 이지적인지는 몰라도 결코 온화해보이지는 않는 얼굴이었다.
이도나보다 오히려 더한 것 같은 표정에 매니저는 안심은커녕 재차 겁에 질렸다.
“···잘 돌아가셨으면 좋겠네요.”
“예? 예······.”
당장 꺼지라는 뉘앙스로 들리지만··· 아니겠지?
그 이후로도 촬영 전까지 샤이와 매니저는 여러 사람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었다.
다행히 이도나와 서예린 다음부터는 별반 큰일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2연타를 맞고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심을 올리고 있던 매니저는 순식간에 녹초가 되고 말았다.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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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다시 가겠습니다.”
“네!”
촬영에 들어간 이현석은 딱히 말이 많지 않았다. 흔히 보듯 쉬이 신경질을 내거나 가슴을 치는 경우도 없었다.
“다시 가겠습니다. 혹시 제 설명과 콘티에서 이해가 안 가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아뇨!”
“알겠습니다.”
그저 담담한 태도로 리테이크를 요구하고, 또 요구했다.
지적하는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두루뭉술한 표현은 쓰지 않았고,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그리고 타협은 없었다.
“다시 가겠습니다.”
“헉··· 헉······.”
강아라가 기진맥진해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보였다. 살짝 질린 매니저가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처음엔 흥미진진하게 보던 샤이의 표정도 멍하니 굳어 있었다.
이제 이 녀석도 조금 현실을 깨달은 모양이군. 고생스러웠지만 상기의 목적은 달성한 모양이다.
매니저가 장난스레 물었다.
“이제 걱정이 좀 되냐?”
“뭐?”
“연기하는 거 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싶지? 너는 더할 거야.”
샤이가 눈을 어리둥절하게 떴다.
“뭔 소리야.”
“응?”
“형은 지금 대체 뭘 보고 있어? 그보다 저쪽이나 봐봐.”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멀찍이서 분장을 마친 배우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뭐야. 그냥 한유미랑 이설이잖아.”
별 거 아니라는 듯 툭 내뱉은 매니저는 잠시 후 스스로 한 말이 의아해져 고개를 갸웃했다.
한유미랑 이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