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36)
“아니, 저 둘이 여기는 왜 와?”
두 배우를 본 매니저가 얼이 빠진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이설은 『연구일지』에서 별반 존재감이 없던 조연이다. 윤가연의 장정 1만 광년 이후 자연스레 하차한 상황에서 새삼스레 여기 있을 이유는 없다.
한유미에 이르러서는 20화 전후에 까메오 수준으로 나온 걸 제외하면 아예 이쪽에 연이랄 게 없는 인물이다.
“모르지. 정하늘이 본격적으로 나오려나?”
“그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
샤이의 추측에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아무리 그래도 전작 주인공이 직접 간섭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의아해하는 둘을 본 스태프 하나가 피식 웃었다.
“아닙니다. 한유미 씨는 연구일지 촬영이 아니라 다른 촬영 때문에 오신 거예요.”
“아, 예.”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곱씹어보면 더욱 영문을 모를 소리였다. 다른 촬영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야하지 않나?
“잠깐 쉬어갑시다.”
두 배우를 본 이현석이 짧게 휴식을 지시했다. 그가 이설을 불러 무어라 말하고 있는 사이 한유미는 곧장 동생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그냥저냥.”
“고생이네. 아침이나 제대로 먹고 오지 그랬어.”
한유미가 안쓰러운 얼굴로 손수건을 꺼내 동생의 땀을 훔쳤다. 매니저의 시선은 그 광경에 못 박혀 있었다.
샤이가 어깨를 툭 치며 히죽거렸다.
“가서 인사라도 해보지?”
“···뭔 소리야. 내가 왜.”
“팬이니까?”
“······.”
매니저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샤이의 모가지를 꾹꾹 주무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도나를 비롯한 이들에게 연거푸 데인 와중 한유미는 다행히도 그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상냥한 태도에 사려 깊은 행동거지, 조곤조곤한 목소리까지. 동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누구씨들 때문에 지친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유미 씨. 잠깐 와주시겠습니까?”
“아, 네!”
대화를 마친 이현석이 부르자 한유미는 동생의 팔을 몇 번 주물러주고는 발을 옮겼다. 매니저의 멍한 시선이 그대로 뒤따라갔다.
“중증이네.”
비꼬는 샤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한 모양새.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증상인 오래 가지 못했다. 천사님께서 이현석과의 대화를 주고받던 중 갑작스레 목소리를 확 높이셨던 까닭이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순항이죠!”
매니저가 깜짝 놀라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한유미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강변하기 바빴다.
“여기는 순항미사일 말고는 없다고 생각해요, 피디님!”
“이유가 있습니까?”
“많죠!”
한유미는 그대로 순항미사일이 가진 로망성에 대해 일장연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탄도미사일에 비해 화려함은 없지만 저고도로 비행할 수 있고, 경로를 설정해둘 수 있어요. 화려한 궤도를 써도 설정오류가 아니라고 우길 수 있고요!”
그야말로 사람이 통째로 뒤바뀐 것 같은 태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지잖아요, 토마호크!”
“흠··· 잘 알겠습니다. 참고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런 모습에 이현석은 익숙한 태도로 고개를 주억였다. 멀찍이 선 강아라가 머리를 짚고 있는 걸 보니 하루 이틀 있던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
환상이 깨진 쇼크에 뻣뻣하게 굳은 매니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샤이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도나가 나름 예의를 갖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고 서예린 작가가 부드러운 태도로 유명우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지금 손짓 발짓을 동원해 열정적으로 떠들고 있는 한유미까지.
음.
샤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위즈톤 소속들은 이현석 감독님 앞에서만 태도가 굉장히 변하는 것 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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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누가 벌인 일인지 짐작은 가요.」
매니저는 이어지는 촬영에 곧 정신을 차렸다. 사실 그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찾아내서 대가를 치르게 하죠.」
미사일 테러에서 간신히 생존한 윤가연은 직감적으로 범인을 깨닫고 추적에 나섰다.
하지만 필사적인 윤가연과 달리 유강진은 조금 장난스럽기까지 한 태도다. 무슨 괴도나 된 마냥 몰래 힌트까지 건네주며 추리를 돕는 모습이 얄밉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스토리가 숨 막히는 템포로 흘러가는 만큼 촬영도 마찬가지로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컷. 다음 갑니다.”
“한 번 뒤집고 바로 이어가겠습니다.”
“역광 한 번 받고 시야 부감으로 올립니다. 조명판 조정되는 즉시 갑니다.”
방금 전까지의 집요한 태도와 달리 이현석의 지시는 물 흐르듯 했다. 거기에 주연인 이도나와 유명우 역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나 이도나는 자기가 NG를 냈다 싶으면 흘끗 시선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된 지점에서부터 곧장 연기를 이어가곤 했다.
그렇게 박자가 맞다보니 마치 촬영현장이 아니라 실제 이어지는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흡사 촬영속도의 템포가 연기의 템포를 이끌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와······.”
“미친.”
샤이는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고, 매니저 역시 그런 샤이에게 무어라고 할 새도 없이 입을 떡 벌리기 바빴다.
그렇게 촬영이 절정에 이를 무렵, 끝내 윤가연은 장장 10여 화만에 목표에 도달했다.
「잘 찾아왔어.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야.」
「헛소리는. 다 네가 꾸민 일이잖아.」
윤가연과 유강진이 마주섰다.
이현석이 딱히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둘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들어차 흘러내렸다. 감정선을 재고할 틈도 없이 거듭 쌓으며 숨가쁘게 달려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
‘김철 감독이 간혹 다찌마와리(=롱테이크)를 할 때 저런 식으로 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서 보는 광경은 결코 그보다 못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더 대단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매니저는 그제야 비로소 강영철 대표가 이현석에 집착하는 까닭이며, 배우 최대웅이 굳이 드라마를 찍겠다고 한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저런 게 정말 그 샤이에게 가능할까?
더해 시나리오에도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었다.
‘저 자연스러운 흐름이 스케일 큰 사건들에 묻히는 느낌이 없지 않아. 저런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우주를 오가는 게 아니라 인물간의 갈등만으로 진행되는 쪽이 더······.’
아, 하고 매니저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김경숙이구나······!’
더 이상 아무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매니저는 허둥지둥 수첩을 꺼내 차후 강영철 대표에게 올릴 보고서에 쓰일 마디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또다시 이현석의 꿈과는 한 걸음 멀어지게 만들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사이, 슬슬 촬영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윤가연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내 아버지라고 자칭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그랬지.」
「놀랍네. 그런 사람이 나를 그렇게까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거구나.」
윤가연의 눈은 깊었다. 분노와 울분, 배신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끝도 없이 얼굴을 타고 솟아올랐다.
전혀 연기라는 느낌이 없는 이도나의 모습에 매니저는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
반면 유강진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무언가를 크게 헛짚은 상대를 대하는 양 난처한 얼굴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이라는 말이 빠진 것 같은데.」
「또 궤변을 늘어놓는 거야?」
「아니, 거기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란다, 가연아.」
유강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반응을 봐선 네가 들고 있는 연구일지, 아직도 전혀 해독하지 못했지?」
「······.」
윤가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당황을 덮으려는 듯 더욱 사나운 반응을 쏟아낸다.
「말 돌리지 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고말고.」
유강진이 달래는 투로 말했다.
「시공간에 간섭하는 힘은 물론 대단하지만, 어디까지나 딸린 부가물에 지나지 않아. 진짜는 거기에 있는 내용물이란 말이지.」
「···마치 이것의 정체가 뭔지 아는 것처럼 얘기하네.」
비꼬는 윤가연에게 유강진이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물론 알고 있어. 사실 그걸 하필이면 네가 가지게 된 이유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고.」
「헛소리를.」
「그건 어머님의 수기야.」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좀 특별하긴 하지. 그분의 피를 이은 사람만이 볼 수 있으니까.」
유강진의 표정이 미세하게 진지해졌다. 믿을 수 없는 인간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 그런 인상이다.
윤가연이 애써 경계를 유지하며 물었다.
「어머님이라면··· 내 할머니?」
「뭐, 그렇게 표현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지만··· 얘기가 계속 겉돌고 있네. 일단 네가 내용을 아는 게 빠르지 않을까?」
유강진은 자연스러운 태도로 윤가연이 들고 있는 연구일지를 가로채 펼쳤다.
그리고는 그녀가 줄곧 연구해도 수식 외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암호와 같은 내용을 간단하게 훑어나갔다.
「방법이 없다. 이 세계는 곧 멸망할지도 모르겠다.」
「불행히도 나는 어리석어 그걸 되돌릴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내용에 멍한 표정이 되는 윤가연. 그런 그녀를 흘끗한 뒤 유강진은 계속 읽어나갔다.
「그 멍청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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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멍청이는 하필이면 나한테 자기가 가진 힘을 죄다 밀어넣은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화면 안의 벌칸인과 조디악의 대장이 순간 멈칫했다. 유령이라도 본 것 같은 시선이 강보에 싸여 있는 아기를 향한다.
– 아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그 녀석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한동안 옹알이를 하듯 중얼거리던 아기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마치 순간순간 무언가를 배우고, 자라고 있는 것처럼.
–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할 것도 없이 실수였다. 나는 아직도 그 녀석에게 가능했던 일의 절반조차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 루프 상한 도달에 따른 한계시한 초과라니. 웃기지도 않는 병명이다. 그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자기도 되돌릴 수 있었을 텐데.
– 하지만 녀석은 만족스레 나만 남기고 죽어버렸고, 남은 게 이 참상이다.
「제기랄,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 녀석 말할 수 있는 거였나?」
조디악의 장군은 불가해한 상황을 참아내지 못했다. 솥뚜껑만한 손으로 아기의 얼굴을 우악스럽게 잡아 올린다.
「무슨 짓이에요! 그만두세요!」
「닥쳐!」
기겁한 벌칸인이 발버둥을 치지만 남자의 힘은 강했다. 하지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도 아기의 목소리는 평탄하게 이어졌다.
– 내가 그간 시도해본 모든 방법을 이 안에 기록한다. 그 녀석이 내게 남겨준 힘도 여기에 둔다.
– 부디 이 물건을 발견하는 이가 누구보다 지혜로워 나 이상의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기를.
– 그리고··· 가능하면 어딘가의 시대에는 살아있다고 믿는 그 녀석이 이걸 발견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거기에 두 어른이 황망해진 사이 아기가 말을 끝맺었다.
– 화왕성(火王星) 우주함대사령관, 정하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건 또 누구야? 금시초문인 이름에 대장의 눈살이 노골적으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벌칸에서 태어나 벌칸에서 자란 여자의 눈은 한없이 커져 있었다.
메마른 입술이 열렸다.
「···시조님?」
「잠깐, 누구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