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47)
“뭐? 결혼?”
작은 음식점에서 배우 최대웅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들고 있던 잔이 기울어져 흐르고 있었지만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기색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가 거듭 캐물었다.
“아니, 이제 와서? 누구랑? 아니, 애초에 왜 그간 이야기를 안 했고?”
“상황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말하는 걸 피하고 싶었어.”
곽태영 감독이 반쯤 빈 잔을 다시 따라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제 날짜를 잡았으니 자네한테 먼저 말해두고 싶어서 말이야.”
“어, 그래··· 일단 축하해.”
“고맙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떨떠름한 어조지만 곽태영은 흐뭇하게 받는다.
그 태도를 본 최대웅도 조금 진정한 기색이 되었다. 조금 겸연쩍어진 기색으로 헛기침을 하고는 묻는다.
“상대는 누구야? 이쪽 관계자?”
“본인은 아니야. 뭐, 그 사람 가족이 이쪽과 연이 깊긴 하지만.”
“누군데 그래?”
“이도나.”
“뭐?”
기껏 채운 잔이 다시 미끄러진다. 몹시 황망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최대웅에게 곽태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도나라니··· 아니 이봐, 친구. 우리가 아무리 늙었어도 다 큰 애 딸린 엄마랑 재혼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그건 또 뭔 소리야?”
“시치미는. 당장 얼마 전부터 이 바닥에 이도나 엄마가 재혼한다고 소문이 쫙 났단 말이야.”
찌푸려진 표정에 최대웅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당장 예전에 『연예투데이』같은 데서도 냄새는 맡았는데 별다른 기삿거리가 아니다 싶어서 묻어두고 있다더군. 그런데 상대가 천하의 곽태영이라는 걸 알면······.”
“그리고 보면 그런 걸로 되어 있었지.”
곽태영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결혼할 상대는 이도나 양의 모친이 아니야, 이모지. 아직 미혼이고. 결혼하면 그쪽은 내 처조카가 될 거야.”
“음? 아니 그러면······.”
“뭐, 아주 틀린 소문은 아니야. 이도나 양의 어머니는 오래 전에 사망했거든. 내 안사람 될 사람이 혼자 남은 걸 맡아 키웠고.”
“······?”
최대웅이 어리둥절해하는 중 설명이 이어졌다. 잠시 후 최대웅이 간신히 이해한 듯 턱을 긁적였다.
“제기랄, 그럼 그간 이도나 어머니라고 알려져 있던 사람이 사실 이모였다는 거구만?”
“알려져 있다기엔 애초에 본인이 언급한 적이 없었지.”
“···하긴, 연예인 사돈의 팔촌까지 팔아먹은 요즘 트렌드에 얘기가 전혀 없는 게 영 묘하다 싶긴 했어”
납득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거나 정리는 잘 하도록 해. 자칫하다간 이도나가 네 수양딸로 알려질지도 모른다고.”
“명심하지.”
곽태영이 빙그레 웃었다. 그 표정을 괴짜 보듯 흘겨보던 최대웅이 혀를 차며 물었다.
“그리고 보면 어머니와 사별을 하고 이모가 키웠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된 일이야?”
“음······.”
“뭐야? 뭔데?”
곽태영은 드물게도 망설이는 태도가 되었고, 그 모습에 최대웅은 흥미가 생긴 듯 거듭 채근하기 시작했다.
곽태영은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가 끝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단서를 달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엔 흥미로워보이던 최대웅의 표정은 점점 묘해지고 일그러지더니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김철 그 인간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천하의 쓰레기였구만!”
“···목소리가 커.”
“다 들으라지! 도대체가 그런 비사가 지금껏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나?! 이게 알려지면······!”
“본인들이 말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소문을 내면 뭐가 되겠어? 혹시라도 이 소문이 퍼지면 자네한테서 퍼져나간 줄로 알고 연을 끊을 줄 알아.”
“······.”
최대웅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기색이었지만 곽태영의 서슬 퍼런 으름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비로소 무언가 납득한 태도가 되었다.
“이거야 원, 그럼 요즈음 이현석을 찾아다니거나 드라마를 찍겠다고 하거나 하면서 김철한테 한 방 먹이는데 집착하던 이유가 다 그것 때문이었군?”
“···그 사람이나 나나 영화감독이야. 한 방 먹이는 걸 굳이 주먹질로 할 필요는 없지.”
빙 두른 긍정이었다. 최대웅이 코를 찡그렸다.
“하여간에 순해빠져서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곽태영 감독이 말을 돌렸다.
“어쨌든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에 나는 이현석 감독의··· 자네가 출연하는 드라마와 정면으로 맞붙어볼 생각이야. 가능하면 그쪽 스타일대로.”
최대웅이 의혹이 섞인 눈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묘하게 의욕에 불타는 표정이구만?”
“뭐,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게다가.”
곽태영이 웃었다.
“자네 말을 빌리자면 수양딸이 될 사람이 지금 원한을 지금 한가득 품은 것 같아서 말이지. 이번 기회에 점수나 좀 따보려고 해.”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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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걸린 TV의 화면 안에서 『연구일지 속 보석함』 47화의 재방이 나오고 있었다.
여주인공 윤가연을 바라보는 유강진의 표정이 기묘하다.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그래.」
「그건··· 좀 의외의 선택인데.」
「내가 결정한 일이야. 나를 ‘성공작’이라고 부를 거라면 내 지시에 따르도록 해.」
윤가연은 짐짓 낮은 어조로 으르렁거렸지만 유강진은 여전히 곤란한 얼굴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굳이 꼭 네 손에 죽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너······.」
화면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박진태가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무언가가 궁금한 표정이다.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죽을지도 모르고 살지도 모릅니다. 제가 스토리에 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을 거 아시잖습니까?”
“거 너무하십니다.”
껄껄 웃은 박진태가 고개를 돌렸다.
연말이 코앞까지 다가온 와중 나와 박진태는 조그만 회사가 대개 그렇듯 앞장서 결산에 한창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초대박까진 아니더라도 배를 두드릴 정도의 흑자는 되었다. 첫 해라는 걸 감안하면 합격점이라고 봐도 좋겠지.
회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연구일지』에도 KDS의 투자를 들고 컨소시엄에 끼어든 게 꽤 짭짤하다.
···그나저나 이도나는 정말 어지간히 버는구만. 에어리즈도 지금 꽤 잘 나가는 편이지만 넷이 합쳐도 비벼볼 구석도 안 나온다.
내가 펜대를 굴리던 와중 박진태가 슬며시 물었다.
“저, 대표님.”
“예?”
“이 프로젝트는 승인하시는 겁니까?”
박진태의 눈이 가리키는 서류를 보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서류를 올린 이는 놀랍게도 지아와 서예린 작가, 그리고 이도나였다.
내가 김경숙 작가와 새 기획을 꾸리는 사이 놀랍게도 셋은 독자적으로 모여 새 기획을 꾸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슬쩍 살펴봤을 뿐이지만 꽤 완성도가 높았다.
어떻게 각자 활로를 찾아주나 고민하던 내 입장에서는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는데, 그 세 명이 용병으로 데려온 이는 심지어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설마하니 그 곽태영 감독을 드라마 판에 데려올 줄이야···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영 믿기질 않는 일이었다.
따져보면 내 드라마에 최대웅을 끌어온 것보다 훨씬 더한 이변이었다. 본격적으로 발표한다면 필시 어마어마한 이슈가 될 것이다.
“부사장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
“아··· 예, 대충 감은······.”
“이거 서운합니다. 저한테도 좀 알려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하하. 아마 들었더라도 안 믿었을 겁니다.”
곽태영 감독의 합류는 작가들, 특히나 지아의 경험치를 쌓아줄 방법에 고심하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반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잠시나마 이쪽 소속으로 일을 맡아준다지 않는가? 예전 MBS의 장연철 PD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호조건이다.
불만이 있을 리 없는 일이건만 박진태는 어째선지 가만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MBS 쪽과 손을 잡는 것과 대표님과 거의 동시간대에서 맞붙는다는 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얼마 전 위즈톤을 두 개 회사로 분사했다. 코딱지만 한 회사를 쪼개고 있자니 상황이 좀 웃기긴 했지만 어쨌거나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도나와 『에어리즈』 그룹 쪽은 엔터테인먼트로 놔두고 박진태를 대표로 높여 맡겼고, 외주제작 부문을 새로 설립해 서예린 작가와 지아를 소속시켰다. SBC 쪽이 인수에 들어갔을 때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기껏 처리를 끝내놓으니 저쪽도 사정이 영 아닌지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뭐, 이유야 뻔했다.
“뻗대는 SBC의 높으신 양반들한테 남 주기 아깝다는 느낌이라도 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게다가 시간대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 집안싸움은 기사 좀 뿌리면 금방 화제가 될 겁니다.”
내 기획이 SBC쪽에서 또다시 주말 10시를 노려보는 사이, MBS 쪽에서는 뉴스를 옮기고 배치한 주말 9시를 제시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확정된다면 직접 맞붙는 게 아니면서도 시너지는 다 보는 최적의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해라, 현석아. 너 곽태영이가 괜찮게 뽑으면 네 드라마가 더 막장스럽게 보일 것 같아서 그러는 거 아니냐?]‘뭐, 그것도 있습니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곽태영 감독은 좋거나 싫거나 한국스러운 신파에 강점을 가진 감독이다. 그런 사람의 뒤에 김경숙 작가의 시나리오가 나온다면 사람들은 ‘다시 보니 선녀 같다’는 유행어의 의미를 깨달을 수밖에 없겠지.
그럼 B팀의 기획의 평가는 오르고, 내 기획의 막장도도 오른다. 꿩 먹고 알 먹는 실로 완벽한 구성이 아닌가.
더하자면 김경숙 작가가 곽태영 감독에게 가지고 있는 의미 모를 적대감도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 삼세번입니다, 선배님. 시작이 좋군요.’
[흠··· 뭐, 곽태영이랑 비교되는 건 나쁜 상황은 아니긴 하지.]내가 씩 웃었고 김철 선배도 조금 복잡한 표정이었지만 동의했다.
박진태가 물었다.
“저, 대표님. 그럼 B팀 기획은 자율에 맡기시겠습니까? 모레 가벼운 인터뷰를 잡고 싶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둘 생각입니다. 어차피 이쪽에서 예산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한 번 보시는 편이······.”
“하하, 부사장님. 그 곽태영 감독입니다. 이제 3년차 되는 제가 일일이 지시하면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읍시다.”
나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 박진태는 그런 나를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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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서 다시 이틀 후.
TV 안에서는 MBS의 아침 코너를 맡는 인터뷰어가 진땀을 빼고 있었다.
– 그··· 곽태영 감독님. 어떤 드라마를 추구하신다고 하셨죠?
어떻게든 수습을 하고픈 표정에 곽태영 감독은 재차 성실한 얼굴로 대답했다.
– 궁극의 막장드라맙니다.
– ······저기, 저, 그러니까.
– 저희는 궁극의 막장드라마를 만들어 한바탕 승부에 나설 생각입니다.
눈을 끔벅이던 김철 선배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저 곽가놈이 미쳤나. 현석아, 저게 대체 무슨······.]김철 선배가 어째선지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말을 멈췄다. 하지만 나는 그걸 돌아볼 상황이 아니었다.
얼굴에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것 봐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