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56)
“대체 뭐에요, 이게!!”
이도나가 집어던진 신문이 나풀거리다 책상 위에 안착했다. 하늘을 나는 세 개의 주요 일간지의 1면은 모두 『영원의 시대』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실로 놀랍기까지 한 반향이었지만 당연히도 긍정적인 축은 아니었다.
현재 MBS 드라마국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힌 상태였고, 얼마 전 찾아온 CP는 이 인간들이 과연 제정신인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것 같았다.
곽태영의 이름값만 보고 당연스레 전권을 내준 순진한 결정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이름값의 장본인이 꽤나 수그러든 어조로 말했다.
“조금··· 너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아니, 이건 조금 나간 수준이 아니잖아요?!”
이도나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도대체가 세간에서 지금 절 뭐라고 부르는 지나 알고······!”
이도나는 말을 멈추고 이마를 꾹꾹 눌렀다. 일단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삼키고 나자 조금은 기분이 가라앉고 냉정함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이도나 본인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아니, 많았다.
“···아뇨. 생각해보니 남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네요. 저도 연기하면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도 말을 안 했으니까.”
적어도 레슬링 기술을 날리라고 할 때는 이건 좀 아니라고 알아차렸어야 했다.
불행히도 여기에는 이현석의 영향이 지대했다. 그동안 워낙에 괴상한 짓거리를 해도 결과가 좋게 나오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그녀 역시 감각이 조금 맛이 가 있었던 것이다.
곽태영이 아무리 명감독이라 해도 그 미치광이와 비견될 리가 없는데.
···아니, 생각해보면 곽태영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폭주한 것도 이현석을 참고해보겠다는 궁리 때문이 아니던가?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현석이 전부 문제인 거라고 이도나는 확신했다.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
“죄송합니다, 화풀이였어요.”
“도나 씨······.”
이도나가 화를 삭이며 고개를 숙이자 담담하던 곽태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본래가 자신이 욕을 먹는 건 참아도 상대가 우울해하는 건 참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조카, 혹은 수양딸이 될 사람인 바에야 오죽하겠는가.
“아닙니다. 전부 제가 오판을 한 까닭입니다.”
곽태영이 허둥지둥 나섰다.
“제가 드라마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뒤로 물러나 있지 않았더라면······.”
“아니에요, 전부 저 때문이에요!”
둘의 대화를 노심초사하며 지켜보던 유지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애초에 멀쩡한 각본을 썼었더라면······!”
“그렇게 따지면 제때 지적하지 않은 저한테도 책임이 있겠네요.”
그렇게 서예린까지 한 마디 거들자 서로 내 탓이요 하는 괴상한 언쟁이 벌어졌다.
모름지기 상대 탓으로 돌리면 땅이 갈라져도, 자기 잘못을 말하기 시작하면 되레 굳어지는 법이다. 『영원의 시대』의 제작팀은 그렇게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던 이도나가 결론짓듯 말했다.
“중요한 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현석 그 인간한테 졌다는 거예요. 시청률은 엇비슷했지만 이걸 이겼다고 보시는 분은 없겠죠?”
···뭐, 승패를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게 사람 따라 다른 법이었다.
서예린과 유지아는 동시에 고개를 숙였고 곽태영 역시 그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삼세번』 1화를 봤습니다. 무시무시한 연출이더군요. 이현석 감독은 막장드라마의 클리셰를 충분히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도 이현석 본인은 재해석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곽태영이 말을 이었다.
“첫 단추를 영 잘못 끼우긴 했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2화 방영은 다음주이니 어떻게든 수습해 보겠습니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천만 감독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저는 본격적으로 방 피디님을 의지해보려고 생각합니다.”
두 작가와 배우 한 명은 그리 좋은 표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곽태영은 아랑곳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방을찬 피디는 이번 사태를 얼추 예견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의 조언을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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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오셨군요, 곽 감독님!”
복도에서 스태프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던 한 중년인이 얼굴을 돌렸다.
1화부터 이 난리가 덕에 가장 고달파진중간관리자였다.
“고생합니다, 방 피디.”
안쓰러운 어조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번 일은 반쯤 제 책임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게 어떻게 방 피디 탓이겠습니까. 조언을 듣지 않은 내 잘못이지요.”
곽태영이 고개를 숙이는 방을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현석이 보았다면 이건 누구여? 하고 눈을 끔벅일 법한 다른 사람과 같은 변화다.
그리고 뭐, 유지아는 실제로 그러고 있었다.
“유 작가님은 같이 오지 않으셨습니까?”
“예, 그게······.”
“하하, 뭐. 이해합니다.”
방을찬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곽태영이 본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그리 훌륭한 인물은 못 되었던 모양이었다.
둘은 스태프들에게 지시사항을 간단히 이른 뒤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곽 감독님께선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수습을 해야겠지요.”
곽태영이 한숨을 토했다.
“우선 좀 늦더라도 튀어나온 만큼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으음.”
방을찬이 미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 태도에 곽태영이 옳다구나 싶어 물었다.
“방 피디님은 생각이 다르십니까?”
“다르달 것까진 없지만······.”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두 번 세 번 재촉하자 방을찬이 마지못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곽 감독님. 지금의 패인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군요··· 제가 통속극을 너무 쉽게 본 거라고 생각합니다.”
곽태영이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파격을 좋아합니다. 그걸 긁는 것이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입니다만, 거기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선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으로 접근했다가 이렇게 망한 케이스지요.”
방을찬이 낄낄 웃었다.
“아, 물론 당시의 저는 제작자로서도 최악이었지만요!”
“반성하실 줄 아신다면 이제는 잘 풀릴 겁니다.”
곽태영이 위로하자 방을찬은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곽 감독님.”
“예.”
“혹시 이현석 피디가 이 모든 걸 계획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눈을 깜박이던 곽태영이 인상을 노골적으로 일그러뜨렸다.
“설마하니 유 작가님이나 서 작가님이 일부러 대본을 소홀하게 썼다는 소리라면······.”
“아뇨, 그게 아닙니다.”
방을찬이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물론 두 작가님을 최선을 다하셨을 테고, 이 기획이 정해지고 난 후에 이현석 피디가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렇겠지요.”
“제 말은, 혹 그것 자체가 계획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
곽태영이 눈을 깜박였다.
“자세히 들어보지요.”
방을찬이 신중한 태도로 말을 골랐다.
“우선 이현석 피디의 인재를 보는 눈은 정평이 나 있습니다. 작가로는 유지아 작가와 서예린 작가를 발굴했고, 배우로는 이설과 한유미, 그리고 유명우를 발굴했지요. 모두가 대단히 성공했습니다.”
“예. 저도 나름 좋은 감독들을 많이 알지만 비할 상대가 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곽태영이 백번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작가 둘은 방향성을 둘째치더라도 절대 묻혀서는 안 되는 종류의 재능이 있는 이들이었다.
특히나 유지아에 이르러서는 대체 어떤 감각으로 뽑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키우고 쓰는 방법은 각기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방을찬이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가령 이설에 대해서는 반쯤 방임했던 반면 한유미는 종종 참견했고, 유명우에 대해서는 옆에서 철저하게 연기 방향을 지시했다고 하더군요.”
곽태영이 재차 수긍했다. 특히나 유명우에 대해서는 예전 이도나가 투덜대는 걸 들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잘 맞아들었습니다. 즉 이현석 피디에게는 인재를 발굴하는 눈 이상으로 성장에 필요한 최적해를 도출해내는 능력도 있는 겁니다.”
“음······.”
“저는 제 경우에도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곽태영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방을찬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이야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당시의 저는 멍청하게도 이현석 피디의 성공이 배우와 작가를 잘 만난 탓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 제가 반어거지로 그 둘을 빼내는 걸 이현석 피디는 순순히 수락했습니다.”
방을찬은 말이 조금 미진하게 느껴졌는지 고민하다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라고 덧붙인다.
이후로는 누구나 아는 바다.
그 유명한 대왕오징어 이야기가 나오게 된 단막극 『같은 세상』의 이야기다.
그건 유지아와 이설의 고삐를 잡았던 이현석이 어느 정도의 인재인지 알리며 『연극처럼 살다』의 성공이 결코 운이 아니라는 걸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리고 유지아 작가는 그 이후로 더욱 성장했습니다. 『’연구일지』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역을 맡았던 이설 씨도 어제 연기를 봐서는 더욱 원숙해진 것 같고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이현석 피디는 처음부터 모든 결과를 예상하고 저를 두 사람의 거름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곽태영의 표정이 멍해졌다. 방을찬이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곽태영이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삼세번』 1화는 무척 도전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냥 평범한 물건만 가져다 댔더라도 현재의 분위기는 정반대가 되었을 겁니다.”
“···바꿔 말해, 이쪽이 이런 구성으로 나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면 저렇게 나오지 못했을 거다?”
“정보가 샜을 리는 없습니다. 설령 샜더라도 시간 관계상 저렇게 고퀄리티로 뽑아낼 여유는 충분치 않았을 겁니다. 즉, 처음부터 이쪽의 카드를 뻔히 읽고 있다는 게 보다 합당한 추측일 겁니다.”
재차 긴 침묵이 흘렀다.
곽태영은 오래도록 숙고한 끝에 자신에게 그 추측을 부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말인즉슨, 저희가 ‘평범하게’ 돌아가려 한다면 그 뒤를 잡을 만한 계획이 충분히 있을 거라는 뜻이군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방을찬은 한 발 뺐으나 표정은 긍정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현석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김철을 넘기 위한 징검다리로 취급될 위인이 아닙니다.”
이현석은 방을찬을 고평가하고 있었고, 방을찬은 하도 호되게 당한 나머지 그런 이현석을 무시무시한 상대로 경계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공평한 세상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을찬을 신뢰하고 있는 곽태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겠군요.”
“그렇다고 하심은?”
“플랜 B입니다.”
방을찬이 눈을 끔벅였다. 대충 그런 반응이 나올 정도의 얘기였지만 곽태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어디선가 나오고 있는 소리랑 꽤 비슷하긴 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은 다들 통하는 면이 있게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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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플랜 B를 설명하는 내 앞에서 최대웅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이설 걔한테 너무 부담이 가는 거 아닙니까?”
“최대한 조절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녀석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최대웅은 거 잘 모르겠는 신뢰관계인데,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너무 덮어놓고 믿지 마십쇼. 그 녀석은 사실 그리 뛰어난 연기자는 아닙니다.”
“···예?”
“뭐, 배우로선 대단하긴 하지만. 그거야 궤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뭔 소린지 모르겠다.
뭐, 최대웅은 초기부터 이설을 그리 달가워하진 않았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내 옆에서는 김경숙 작가가 수정한 대본을 넘겨보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쉬운 일이었어요.”
김 작가가 빙그레 웃었다.
“고작 시부모를 메치기로 넘기는 정도로 이겼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지요.”
“제 말이 그겁니다!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작가님!”
내가 뜨겁게 동조하며 부추기고 있는데 최대웅이 길게 한숨을 쉬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미쳤었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천금같은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저쪽이 한 방 먹여서 안심하고 있을 때가 적기.
단숨에 끝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