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74)
본래 박진태라 하면 능글능글한 태도가 장점이자 특징인 인물이다.
특히나 그와 오랜 사이인 이도나의 경우 성격, 그리고 그 바탕이 된 성장환경을 알고 있었기에 어지간한 사고와 기행은 그냥 쓴웃음으로 넘기는 편이었다.
이현석 역시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생각해 믿고 맡긴 것이고.
“도나야.”
하지만 오늘 운전대를 잡은 박진태의 얼굴은 드물게도 조금 피곤해보였다.
“상식적으로 네가 까마득한 후배랑 드잡이질이나 할 군번이냐?”
“······.”
그 말에 이도나는 불쾌한 기색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현석의 앞에서는 드물게 반성하는 듯, 후회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더니만 나오자마자 금세 태도가 돌변한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나는 누가 된 이현석 본인에게 미안할 뿐 잘못한 것은 없다는 태도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이도나답긴 했다.
“제가 실수한 게 있다면 거기에 사람들 눈이 많았다는 것뿐이에요. 그게 아니었으면 머리털을 다 뽑아놓았을 텐데.”
박진태는 그저 한숨만 내쉴 따름이었다.
“뽑을 수나 있고? 그쪽도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던데.”
“제가 리치가 더 길거든요?”
공식 프로필상 이도나는 이설보다 키가 더 컸다.
그렇다 해도 3센티 이상 속였기에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는 거의 엇비슷했다. 대개 이도나가 시선이 높은 이유는 거의 힐의 높이 차이였다.
박진태가 혀를 찼다.
“얼씨구, 드라마에서 프로레슬링 구경한 김에 아예 그쪽으로 나가려고?”
“아무튼 난 잘못 없어요. 그거 아주 글러먹었다고요. 이 기회에 싹수를 제대로 고쳐놔야 돼요.”
씹어뱉듯 말한 이도나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음······?
계속 타박하려던 박진태는 순간 멈추고 눈치를 보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이거 어지간한 일이 아니구나 싶었던 것이다.
본디 이도나는 겉으로는 사납게 굴어도 속은 그렇지가 못한 성격이었다. 일단 뾰족하게 내뱉고 보더라도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흔했고,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길지언정 속은 살짝 풀이 죽거나 너무했나 고민하는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말 전체에 진심이 한껏 벼려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설을 눈앞에 데려다놓으면 좋아라 드잡이질을 시작할 것 같은 기세다.
어지간한 박진태도 살짝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대체 왜 그러냐? 이설 양하고 사이가 안 좋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잖냐?”
“저쪽이 정신이 나간 거예요.”
이도나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저거, 지금 들떴어요.”
“뭐?”
···암만 봐도 풀이 죽었던데?
박진태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이도나는 이래서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하고 혀를 찼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쟤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라고요. 그러니까 평소라면 자제하고 참을 곳에서도 그냥 되는 대로 들이받고 다니는 거예요.”
박진태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비유였다.
그보다 이도나가 다른 누군가를 두고 되는 대로 들이받는다고 비꼬고 있는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아니, 애초에 네가 먼저 시비를 건 거 아니야?”
“···아무튼, 실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 제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저거 냅두면 그 인간한테 폐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될 일은 없을 거라고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도나는 입을 꾹 닫았다. 설득은 한없이 요원해 보이는 태도였다.
박진태는 재차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씩씩거릴 시간에 왜 스스로가 그토록 씩씩거리고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텐데.
그 태도에 이도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뭐예요?”
“아니다. 그냥 이설 양이랑 같이 돌아가시는 대표님 쪽은 한창 화기애애하겠지 해서.”
“···시비 거시는 거예요, 지금?”
타박이 이어지는 와중, 불행히도 이현석 쪽 역시 그다지 화기애애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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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매니저를 먼저 돌려보낸 뒤, 나는 차에 이설과 강아라를 태운 채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채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그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
단언컨대 내가 지금껏 경험한 중에 가장 어색한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강아라는 뒷좌석에 오른 뒤부터 줄곧 마땅찮은 눈으로 이설을 쏘아보고 있었다. 이설은 그걸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외면하고 있었는데, 드물게도 불쾌한 기색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뭐지. 왜 이렇게 된 거지.
이유는 몰라도 강아라의 저 시선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트라우마마저 느껴지려고 했다.
[어떻게 좀 해봐라, 현석아. 나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다.]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김철 선배가 하소연을 했다.
유령에게도 그런 게 있나 싶었지만 어쨌거나 나도 가만히 있기만은 뭐했다. 적당한 화제를 찾아 입을 열었다.
“아라 씨.”
“아, 네?”
“음, 그러니까··· 요즘 에어리즈 쪽에 신경을 많이 못 써줘서 미안합니다.”
일단 사과로 시작하면 상대가 강하게 나오지는 못하리라는 속셈이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강아라는 곧장 시선을 돌리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표님은 저랑 언니들의 은인이신걸요! 이번엔 저희가 열심히 커서 갚아야 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계산이 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장하고 씩씩한 말이었다.
내가 신음을 삼키는 사이 강아라는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토했다.
“걱정 마세요! 저희 요즘 분위기 진짜 좋거든요? 특히 유미 언니!”
“보고는 받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성장세가 분명한 한유미보다도 그 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맏언니 쪽이 압도적으로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 외의 다른 멤버의 성장세도 나쁘지는 않았다. 팬도 착실히 늘고 있었고.
홍지호와 이도나를 키워낸 박진태의 프로듀싱 능력이 괜찮은 편이긴 해도 결국 본인들에게 장점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숙소에 유미 언니 앞으로 온 대본이 한아름이 쌓인다니까요? 질려버릴 정도로!”
강아라가 양 팔을 큼지막하게 벌렸다.
“그런 것치곤 본인은 출연하고픈 의사가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 유미 언니는 당분간 그룹으로서의 활동에 집중하고 싶대요.”
“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아라가 슬쩍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저. 또 드라마에 출연한다면 대표님 작품이 좋다고 하기도 했고.”
불러주실 건가요? 하는 물음에 나는 기회가 닿는다면, 하고 웃어넘겼다. 아닌 게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한유미와 이설, 이도나를 죄다 불러다가 삼총사를 찍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몰랐다.
···뭐, 그 전에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렇게 간신히 분위기가 조금 훈훈해지려던 때였다.
“솔직히 말씀하시지 그래요. 언니가 채용되는 김에 같이 묻어가고 싶은 생각이 만만하다고.”
나는 순간 누가 입을 열었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런 종류의 목소리였다.
“슬슬 홀로 서는 방법을 익혀보시는 게 어떠세요? 아니면 남에게 매달리는 것 이외에는 사는 법을 모르시는 건가요?”
“······.”
나는 멍하니 시선을 돌렸다.
워낙에 갑작스럽고 서늘한 투라 어지간한 김철 선배조차 눈을 퉁방울만하게 뜨고 있었다.
나는 이설이란 인물의 성격을 나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감정을 꽉꽉 눌러 담은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습을 당한 강아라는 나 이상으로 당황했으련만 성격이 성격이었다.
금세 당황을 수습하고 시선을 돌려 이를 드러냈다.
“뭐래? 지금 사고 쳐서 대표님께 민폐 끼치고 있는 게 누군데!”
“전 폐를 끼쳐도 수복할 능력이 있어요. 능력도 없는 주제에 불평불만만 토하는 당신과는 다르게.”
“뭐가 어째?! 야!”
“그만.”
시뻘게진 얼굴로 조수석으로 주먹을 들이밀려던 강아라가 움찔 팔을 거두었다. 이설 역시 아차, 하고 저질렀다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잘 한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죄다 시비를 걸고 다닐 생각이냐?”
“···죄송해요.”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사과부터 해야지.”
“······.”
이설이 머뭇거렸다. 새파란 감정이 어린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내가 재촉했다.
“못하겠어?”
“······죄송합니다.”
이설은 망국의 한을 곱씹는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지간한 강아라도 당혹스러웠는지 얼결에 고개를 끄덕여 받았다.
내가 말했다.
“아라 씨는 사무실에 내려드리겠습니다. 조금 기다리면 다른 멤버들도 돌아올 겁니다.”
“네? 네······.”
강아라를 내려주고 난 뒤에는 더욱 짙은 침묵이 이어졌다.
이설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재차 한 소리 하려던 나도 그런 모습에는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요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어쩌면 드라마의 부진이 영향을 끼친 거라면 내 책임도 없지 않을 터였다.
이설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반대에요.”
“반대?”
“무척 좋은 일이 있었어요.”
이설이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수십 번을 시도해도 안 되었던 일이 있었는데,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을 시도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랬는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져서, 조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대체 뭔 소린지 원.
아무튼 이해는 안 갔지만 이설의 표정에는 진심이 어려 있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은 마치 옛날 역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표정을 연상케 했다.
후우.
상황을 알 수 없던 나는 일단 원론적인 조언이라도 해주기로 했다.
“뭔진 몰라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지.”
“···네?”
이설은 어째선지 멍하게 굳었다. 아주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인다.
그런 모습에 나는 의아한 심정이 되었다.
“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문제가 생겨?”
“···조금요.”
이설이 머뭇거렸다.
“아니, 많이······?”
“그래도 애초에 그 정도로 포기할 수 없었다는 건 그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 이잖아?”
“물론이에요.”
그 대답만큼은 또렷했다. 그럼 되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지,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될까요?”
“하지 않으면 평생 미심쩍은 기분이 남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도리가 없겠지.”
“······.”
이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소속사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얼굴이 씻은 듯이 개운해져 있었다.
얼굴에는 다시 옅은 미소가 매달렸다.
“감사해요.”
“좀 진정됐냐?”
“네.”
이설이 하얗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고민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세상 만사가 다 그렇지.”
“맞아요. 애초에 이제와서 물러설 이유가 없는데.”
흠.
여전히 뭔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뭐, 마음을 다잡은 것 같으니 좋다고 칠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되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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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곽태영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자신이 밝혀낸 천인공노할 사실을 두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두고 번민하던 것도 잠시, 유지아 서예린 두 작가가 들고 온 대본이 그를 더욱 고뇌하게 했다.
곽태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 정말 이대로 내보내실 생각이십니까?”
“네.”
“···어딘가 이상한가요?”
“아뇨,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곽태영은 말문이 막혔다.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아니 어느 쪽이냐면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의미로 이상하다는 건 아니고ㅡ
곽태영은 게슈탈트 붕괴가 올 것 같아 잠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주 간단히 정리해 이 대본의 문제는 하나였다.
‘···지나치게 멀쩡하지 않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