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8)
018 – 사마귀가 수레에게 앞발 들고 개기다(5)
포스트 과정은 늘 그렇듯 힘겨웠다.
편집감독, 거기에 더해 김철 선배와 한바탕 입씨름을 하고 오니 스태프들이 죄다 신사임당을 한 장씩 손에 쥐고 있었다.
“시청률 성적 내기?”
내가 혀를 찼다.
“어차피 첫 시청률 애국가급 나올 거 다 예상하고 있지 않냐?”
내 말에 스태프들이 할 말을 잊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중 민재 녀석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아니, 형··· PD가 처음부터 부정 타게 그게 뭔 소리에요.”
“부정 타는 게 아니라 팩트를 얘기하는 거다. 처음 한 3화까지는 죽 쑬 수밖에 없어. 그 이후로 반등을 노리는 거지.”
“······.”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았다.
스태프들은 물론 유지아도 조금 침울한 기색이고 서예린은 눈썹을 좁히고 있다.
음.
괜히 어설프게 기대했다가 기세가 꺾이는 게 무서워 찬물을 끼얹어봤는데 좀 너무했던 모양이다.
“좋아. 그럼 3화··· 아니 5화 시청률로 어때요?”
대견하게도 민재 녀석이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 한다. 이래서야 도리가 없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5만원권 두 장을 꺼냈다.
“오냐, 15퍼센트.”
말도 안 되는 고점을 질렀다.
누가 먹을진 몰라도 떡이나 먹으라지.
내가 스타트를 끊으며 선을 긋자 스태프들은 눈치를 보더니 득달같이 달려들어 숫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참 달아올라있던 중 서예린 작가도 스리슬쩍 끼어들었다.
“저도 불러도 되죠?”
“암요. 예린 씨는 몇 퍼센트에 거실 겁니까?”
민재 녀석의 말에 서예린이 빙긋 웃었다.
“20퍼센트.”
툭, 하고 5만원권 네 장이 쌓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여간, 저 지기 싫어하는 성격하고는.
#
4인조 아이돌 그룹 『에어리즈』.
“내 생각엔 유미 언니가 결국 돌아버린 게 틀림없다고 봐.”
그 막내인 강아라, 예명 아라가 엄숙하게 말했다
다른 두 멤버가 얼굴을 마주보았다.
한유미를 제외한 멤버 셋은 오늘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와 있었다.
남은 멤버 한 명, 한유미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KBC 드라마『연극처럼 살다』의 첫 방송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아,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그래.”
“헛소리가 아니라니깐! 잘 생각해봐. 최근 유미언니의 행동이 정상인지!”
“뭐래.”
셋째인 은솔이 짜증스레 타박을 하는 사이 둘째 주리가 미간을 좁혔다.
“잠깐만, 은솔아. 좀 들어보자.”
“듣긴 뭘 들어! 이년 또 어제 바나나 쳐먹으면서 셜록 보더니만 탐정병 걸려서 헛소리 하는 거라니까!”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라는 한참을 꺄악대며 셋째 언니와 육체 대화를 주고받다가 간신히 빠져나와 베개를 장전하고 콧김을 뿜었다.
은솔도 뒤늦게 베개를 장전했다. 하지만 아라의 것은 엊그제 새로 넣은 빵빵한 구름솜이었고 그녀의 것은 쓴지 1년이 넘어 물베개 수준으로 축 쳐진 물건이었다.
직감적으로 불리함을 감지한 은솔이 타협을 청했다.
“좋아. 들어보기나 할게.”
“진작 그럴 것이지.”
아라가 큼큼,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다들, 처음 유미 언니가 『연극처럼 살다』에서 주연에 캐스팅됐을 때 반응 기억해?”
“그야 미친 것처럼 미쳐 날뛰었지. 우리 다.”
“네가 틈을 타서 피자 사다먹다가 매니저 언니한테 들켜서 사흘 내내 잔소리 들었고.”
“그런 거 말고!”
아라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 뒤 짐짓 파이프를 피는 시늉을 했다.
“쌩쇼를 하고 있네.”
이죽거리는 은솔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는,
“그야 유미 언니는 무진장 기뻐했어. B급 아이돌인 우리 인지도를 띄울 수 있는 큰 기회니까. 하지만, 기뻐하긴 했지만 필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고.”
“그건··· 그렇지.”
은솔이 고개를 주억였다.
동시간대 편성을 보면 확연하다.
MBS의 『이슥한 달』과 SBC의 『내 딸의 아들내미』 모두 홍지호와 이도나라는 탑급 배우에 더해 제작비를 퍼부어 해외 로케이션을 더하는 등 작정하고 승부에 나서고 있었다.
반면 KBC의 『연극처럼 살다』는 입봉 PD에 입봉 작가라는 기적의 조합이다.
사실상 버리는 패. 한 5~6퍼센트만 굳혀도 선방이라고 할 만 하다.
“그래도 별 볼일 없는 조그만 행사만 다니던 우리한테는 충분히 기적 같은 기회잖니.”
주리의 말에 아라가 박수를 쳤다.
“그래! 딱 그 정도의 기대였단 말이야. 처음 촬영 들어갈 때 유미 언니가 했던 말 기억나?”
“‘언니가 최대한 열심히 할게. 뻔한 결과라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라고 했지.”
“한 달쯤 전에는?”
“‘생각보다 잘 되어가고 있어. PD님과 작가님도 케미가 좋고 촬영장 분위기도 좋아. 생각보다 잘 될지도 모르겠어!’ 라고.”
“그래! 그리고 어제는 뭐라고 했지?”
“‘히히히, 떡상한다! 우리 드라마는 떡상해! 얘들아, 믿으면 복이 온단다!’ 라고 했지.”
아라가 거 보라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턱을 치켜들었다.
주리와 은솔은 서로 마주보며 눈을 깜박였다.
“조···금 돌은 것 같기도 하네.”
“요새 촬영이 많이 힘들었나봐.”
“냉장고에 제로사이다 한 개 남은 거, 유미 언니 줄까?”
세 멤버들이 쑥덕대는 사이 덜컥, 현관문이 열렸다.
“얘들아ㅡ 언니 왔다ㅡ!”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문제의 한유미가 히죽히죽 웃으며 등장했다.
히죽히죽.
한 달 전까지의 한유미라면 가장 거리가 있는 의태어로 꼽힐 만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그룹 에어리즈의 맏언니인 한유미는 대개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편이었고, 간혹 웃더라도 히죽히죽은 절대로 아니었다.
실로 무시무시했다.
아라가 속삭였다.
“매니저 언니한테 캠 켤때 조심하라고 하자. 언니 저런 얼굴이 잡히면 십 년의 사랑도 식을 거야.”
“······.”
막내의 말에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은솔도 이 말에는 쉬이 반박하지 못했다.
주리가 얼른 일어서서 유미에게 냉장고에 있던 제로사이다를 건넸다.
“고생했어, 언니.”
유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이거 은솔이 거 아니니? 나 줘도 돼?”
“그럼, 그럼.”
은솔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자 유미는 얼떨떨한 얼굴로 사이다를 받아 마셨다.
“오늘 첫 방송이라 나름 팬 카페에 글도 올리고 캠도 찍어 올리고 해봤어.”
주리가 힐끔힐끔 눈치를 보았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괜찮아, 주리야.”
그런 주리에게 유미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실로 자애롭고 따뜻한 미소였다.
“마음만으로도 기뻐.”
“···응.”
항상 보아오던 그런 표정이다.
그 표정을 본 주리는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룹의 맏이로서 항상 궂은일은 맡아 하고 기회는 하나라도 더 양보하고 싶어하던 언니가 아니던가.
그런 언니가 평소 안 하던 태도를 한다?
동생들인 자신들이 걱정할 걸 염려해서임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언니를 두고 돌았니, 뭐니 하는 자신들은 얼마나 막돼먹은 동생들인가.
주리가 후회와 참회에 젖어 있는 사이 유미가 그런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떡상할 주식은 아무 것도 없어도 언젠가 떡상하게 되어 있단다!”
“······.”
주리는 입을 닫았다.
“믿으렴. 우리 드라마는 떡상할 거야! 그리고 우리 그룹도, 후히히!”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유미 언니는 돌아버렸다.
#
MBS 드라마국.
막 『이슥한 달』의 첫 방영을 앞두고 최종 조정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뷰징, 티저. 모두 반응 좋습니다!”
“그냥 좋은 수준으론 안 되지. SBC 쪽은 어떤데?”
장연철 PD가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밀리고 있잖아, 자식들아!”
“···이도나는 아이돌 가수 출신 아닙니까. 팬들 화력이 장난 아니에요.”
“그걸 변명이라고 해? 홍지호 씨 이름값이 아무렴 더하면 더했지 못하겠냐!”
장연철 PD가 멀찍이 앉아 있는 홍지호의 눈치를 보며 윽박질렀다.
“KBC는 지금······.”
“그딴 걸 왜 봐, 멍청아! 대가리는 장식이야? 좀 쓸데 있는 짓을 하고 살아!”
장연철이 크게 성질을 내자 그냥 말이나 꺼내봤던 조연출 하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는 되돌아섰다.
“하여간, 지금 뭘 한다고 크게 바뀌는 것도 없을 텐데 바쁘기도 하셔라.”
배우 홍지호는 그런 시장바구니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채 길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KBC 얘기만 나오면 저 지랄로 날뛰는 게 영 뭔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런 말 대놓고 하지 마라.”
“내가 바보야, 형? 형만 있으니까 말하는 거지. 그리고 장연철이 저 양반 솔직히 밉상이야. 소문도 안 좋고.”
매니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말해봐야 소귀에 경 읽기다.
“아무튼 다들 여기랑 옆집 방송 확인하느라 정신없으실 테니 나라도 이쪽을 볼까.”
홍지호가 스마트폰을 들어 방송을 켠다.
KBC의 로고가 화면 우측 상단에 떠올라 있다.
매니저가 혀를 쯧쯧 찼다.
“거 그쪽 PD도 안됐지. 너 하나면 차라리 낫지 이도나까지 사이에 껴서는, 참.”
홍지호가 고개를 젓는다.
“까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야, 형. 나보다 잘난 배우 써도 망한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이건 영화가 아니고 드라마다.”
“아무튼.”
“그리고 어지간해야지. 입봉 PD, 입봉 작가도 모자라서 주연에 신인 배우 둘에 무명 하나야. 참 사석을 던져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던지나 싶다니깐.”
매니저가 이죽거렸다.
“저럴 거면 아예 편성 빼버리고 스페셜이나 다른 걸로 때우는 게 낫지.”
“형, KBC쪽 티저 영상 봤어?”
“아니? 굳이 뭐 하러?”
“그래.”
홍지호가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봐두는 게 좋아. 드라마야 어떨지 몰라도 누구 하나는 나중에 확실히 뜰 거 같거든.”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화면에 그려지기 시작한 그래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9.1%! 9.1% 시작입니다!”
장연철 PD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상향하는 그래프에 스태프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
그 소란 속에 홍지호만이 비켜나 있다.
미간을 좁힌 그의 시선은 스마트폰 안에 비치는 KBC의 드라마에 집중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