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87)
이현석의 『삼세번』과 곽태영의 『영원의 시대』 10화는 각자에게 있어 여러모로 큰 전환점이었다.
그렇다 해도 딱히 스토리 자체가 발전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 반대라면 모를까.
구성만 해도 『영원의 시대』는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게 된 일련의 과정으로, 『삼세번』은 아예 시댁의 괴롭힘에 넋이 나간 여주인공 혼자서 한 화를 우려먹었다.
하지만, 그런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시놉시스임에도 여론의 변화는 가히 극적이었다.
– 이도나 연기 보소ㅋㅋㅋ
– 진짜 열불이 터지고 속이 뒤집어지려는 거 꾹꾹 눌러 참는 거 같네;
– 저거 진짜 빡친 거 같은데? 누가 리얼루다가 속 긁어놓은 거 아님?
– 이도나면 그냥 가서 누구든 모가지를 꺾어버리지 않을까요
– 이미 꺾었다에 백원.
그렇게 모 피디의 모가지에 돈이 걸리고 있는 와중, 10시에 이어진 『삼세번』 쪽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이도나에 대한 코멘트가 감탄과 박장대소였다면 이쪽은 차라리 경외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가며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 이설 쟤 뭐냐ㄷㄷ
– 그러게, 진짜 뭐냐ㄷㄷㄷㄷ
– 이중인격 삼중인격 이딴 게 아니라 열 개는 되어 보이는데?
– 미친;
다른 인물 하나 없이 여주인공 혼자서 펼쳐가는 1인극. 그리고 낡은 브라운관 TV를 보는 듯 자연스레 그걸 거드는 연출.
눈을 감거나 시선을 돌리면 내용에 아무런 위화감도 느낄 수 없었다. 거기에 소름이 돋지 않는 이는 많지 않았다.
연기라기보단 차라리 기예에 가까운 영역.
드라마보다는 그걸 보고 떠들고 싶은 목적이 주인 이들도 이번만큼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채 눈을 떼지 못했다.
– 뭐임? 안 보고 있는데 왜 또 리젠 망함?
– 또 개망이죠ㅋㅋ
– 이현석도 퇴물이라니까, 이제.
– ??? 얘네 진짜 손절함? 반응이 너무 없는데?
평상시와 같이 날뛰던 이른바 ‘어그로’들도 워낙 무반응이자 하나둘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1시.
SBC에서 내보내는 화면이 광고로 전환된 후 반응은 그야말로 막아놓은 둑이 터진 기세였다.
– 미친, 와 씨발 미친······.
– 저걸 1인극으로 성공시키네ㄷㄷ
– 내가 뭐랬음. 이현석 이번에도 한방 노리고 있댔지??
– 두 번을 보고도 세 번째에 예상을 못하냐ㅋㅋ 걍 드라마 접어라 병신들아ㅋㅋ
– 태업이니 뭐니 헛소문 퍼뜨리던 머저리들 어디갔음? 버로우탐?
– ‘촬영 중 나온 NG씬을 폐기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팩트)
– 오케이가 이건데 당연히 아닌 건 폐기해야지ㅋㅋ
『삼세번』의 애매함으로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이현석 팬덤이 순식간에 커뮤니티 전역을 점령한 와중, 당연히 이설에 대해서도 찬사가 쏟아졌다.
– 까말 저게 인간한테 가능한 영역인지 모르겠다; 마술쇼 같은 거 본 기분임
– 니들 모르냐? 사실 이설은 가명임. 외계인이 둔갑하고 있는 거임
– 한지원?
– 한지원도 많은 가면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분은 수천억 년 전부터 많은 이름으로 불려왔지.
– 젤설ㄷㄷ
ㄴ 이름 존나 구린데;
그리고 이런 어마어마한 떡상에 가장 기뻐하고 있는 이가 누군지야 말할 것도 없었다.
비유컨대 『삼세번』의 대주주. 늦은 시간에 서류를 처리하면서도 TV에서 노심초사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인물.
KDS 엔터테인먼트의 강영철 대표는 극이 끝나자마자 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내가 뭐랬나! 저 친구한테 다 생각이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패닉에 빠져 투매하는 놈들한테 미래는 없지! 올라갈 거라는 확신이 있는 우량주를 가지고 왜 그래야 하냔 말이야!”
모름지기 물린 주식이 본전을 찾으면 천운이라 여기지만 상한가를 쳐버리면 제 실력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건 강영철쯤 되는 위인이라도 별 차이는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는 조금 다른 면에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 있는 이설 말이야, 우리 딸내미가 키웠어! 아, 물론 이현석이 공이 제일 크겠지만 2대 주주쯤은 된단 말씀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도 아버지였다.
강영철 대표가 브랜디를 신나게 들이키고 딸에게 전화를 걸 생각에 부푼 사이, MBS 원광훈 사장도 자신의 빼어난 추리력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다.
“과연 내 생각이 옳았군. 이현석이 놈에게 다 생각이 있었어.”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모름지기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법이라 엇비슷한 맞장구가 이어졌다.
다른 것은 포지션뿐이었다.
“저건 김철의 방식이 아니야. 적어도 이현석이가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졌어.”
“그럼, 이번에 해외 감독들을 초청한 것 역시······.”
“분명 그 녀석의 생각이겠지.”
측근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조금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삼세번』이 『연구일지』처럼 해외 진출을 노리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모르겠군.”
원광훈 사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벌칸 시리즈 쪽이 유력하다고 보네만, 그 녀석은 지금껏 상식 외의 짓거리를 너무 많이 벌여왔으니.”
“···우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음.”
결국 방향성은 달라도 두 사장 모두 현재의 상황을 이현석의 심모원려가 발휘된 덕으로 여기고 있는 셈이었다.
사실 비단 둘뿐만이 아니라 그간 『삼세번』을 보아온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음, 분명히 대단하긴 한데······.”
다만 언제나 그렇듯 한 작가만이 눈살을 찌푸린 채 고민에 잠겨 있었다.
“기분 탓인가, 배우가 혼자 날뛰어서 연출이 어쩔 수 없이 맞춰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니?”
돌아온 조카의 반응은 뾰족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돼, 고모? 작정하고 1인극으로 갔는데?”
“···안 되는 것 같구만.”
서수현 작가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주억였다.
항시 유일하게 진실을 찾아내던 그녀 역시 고개를 저으며 나도 늙었나, 하고 고개를 돌렸다.
진실은 그렇게 어둠 속에 묻히고야 말았다.
#
“······.”
같은 시각, 이설을 뒤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은 강주연은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도 그 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사실, 말하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많았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매니저로서 설이의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맞춰 계획을 짰고, 성장성을 고려하고, 판촉을 생각했다.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이설에게는 그 계획이 최적이라고 생각했고, 따지고 보면 이현석에 대한 적대감도 결국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은 눈곱만큼도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설아.”
“네?”
“이번에 한 연기 말이야.”
“뭔가 문제가 있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영 명료하지가 못했다. 강주연은 드물게도 조바심을 느꼈지만 그럴수록 말은 더욱 어눌해졌다.
결국 나온 말은 하나뿐이었다.
“···좋았다고. 인터넷 반응도 그렇고.”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이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제 다른 사람들의 생각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지만요.”
“뭐?”
강주연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배우로서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언행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배우라도, 아니, 대단한 배우이기에 더더욱 대중을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그 정도로 거만해진 거라면······.
“아뇨, 딱히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정말로 아무래도 좋다는 거예요.”
“······.”
그건 그것대로 꽤 문제가 있었다.
그 표정을 읽은 듯 이설이 살풋 웃었다.
“언니, 전 말이에요. 그간 너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주제라든가, 자격이라든가, 혹은 전에 저지른 거라든가ㅡ
그간 묘하게 달라붙어 있던 것들을 전부 털어낸 듯한, 몹시 후련한 어조였다.
“솔직히 이도나 선배와 감독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무척 싫었어요.”
“어, 응······.”
“너무너무 싫어서 눈앞에 이도나 선배님이 있었으면 그냥 찔러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요.”
“뭐?!”
“아, 그러니까 볼을요.”
강주연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불안한 얼굴로 곁눈질을 했다.
농담··· 맞지?
이설은 멋쩍은 듯 웃고 있었다. 사실 그간 봐온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행색이 더 불안해보였다.
“예전에 감독님이 저한테 그랬어요. 포기할 수 없는 거라면 있는 힘껏 매달리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이 피디님이? 언제?”
“이도나 선배님과 싸웠을 때요. 되게 멋진 말이었어요.”
그렇게 깔끔하고 멋진 말도 아니었고, 심지어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도 했다.
콩깍지란 게 이렇게나 무서운 법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설은 그걸, 일종의 허가증으로 여기기로 했다.
“저한테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었어요. 절대로.”
“······.”
“감독님, 기뻐하셨겠죠?”
대놓고 응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강주연은 그저 막막한 한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이지 복에 겨운 사람이라니까. 전생에 뭔 덕을 그리 쌓았는지 원.”
#
[넌 대체 전생에 뭔 죄를 그리 지은 거냐!]김철 선배는 여전히 내 옆에서 고함을 치고 있었다.
[고작 사흘이야! 사흘 만에 망작이 관짝에서 부활한다는 게 말이 되냐!]“······.”
[어째서냐··· 어째서 이런 일이······!]반면 나는 비교적 담담한 심정으로 마실 것을 홀짝이고 있었다.
물론 나도 김철 선배 못잖게 고뇌하고 절망하고, 애꿎은 베개도 후려친 다음에 얻은 평온이었다. 사실 작금의 상황은 그 정도로 불합리했다.
하지만 뭐, 모름지기 후회와 고뇌에 한 잔의 포도주만큼 도움이 되는 게 없다는 건 의학 이전부터 존재해온 지혜가 아니던가.
[뭔 문자 썼다는 표정을 짓고 있냐? 애초에 네가 먹고 있는 건 맥주잖아?]“맙소사, 선배님은 정말 멋이라는 걸 모르시는군요.”
작품들은 그렇게 멋진데.
[나도 저 수치가 조금 제정신으로 나왔으면 그 멋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만.]“으음.”
김철 선배가 비꼬았다. 거기에는 나도 침음성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시청률 25%. 그리고 막장도 20%.
그것이 이번 화의 성적이었다.
막장도 70퍼센트. 그 목표가 별 것 아니라고 코웃음을 칠 때가 엊그제같은데 지금은 다시금 산과 같이 멀어보이게 된 것이다.
또다시 외통수ㅡ
하지만 모름지기 고수는 노페어가 들어왔을 때야말로 웃는 법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뭐, 좋게 보면 이걸로 확실해지지 않았습니까.”
[···뭐가 말이냐?]“최고의 막장 작가를 모셔오고, 최고의 발연기 배우를 고용해봤자 결국 남에게 맡겨서 해결되는 일이란 건 없다는 것이지요.”
[······.]“데려온 사람들에게 교훈을 얻었으니 이제 제가 다시 나서 이끌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배운 것도 좀 있고요.”
나는 김철 선배를 달래기 위해 아주 믿음직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름 먹혔는지 선배는 이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몹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