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88)
“뭐, 역시나 쉽게 고지를 내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청률 보고를 받은 곽태영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이번 주 방영 결과 시청률 12.8퍼센트까지 떨어졌던 『영원의 시대』는 무려 20퍼센트대로 상승하는 쾌거를 올렸다.
하지만 엇비슷한 하락세를 보이던 『삼세번』은 역대급 상승곡선을 그리며 그 두 배가 넘는 25퍼센트 대에 안착했다.
승부였다면 말할 것도 없는 완패인 셈이었다.
더욱이 각 커뮤니티 등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하면 차이는 그보다 더 벌어질 수도 있어 보였다.
“이현석의 힘이라기보단, 이설 쪽이 너무 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하하.”
방을찬의 볼멘소리에 가까운 말에 곽태영이 껄껄 웃었다.
“방 피디님도 이설 씨와 같이 촬영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 저렇게 하시지 않고.”
“그거야······.”
이설과 유지아라는 황금조합을 가지고 시원하게 말아먹은 전적이 있는 방을찬은 무어라 더 입을 열지 못했다.
솔직히 그가 보기에 당시 카메라에 담던 이설과 작금의 화제를 낳은 인물은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방을찬이 만난 이설은 잘 쳐줘봐야 조금 싹수가 보이는 신인 정도였으니까.
“훌륭한 감독의 자질이란 연출과 영상미를 잡는 능력 이상으로 배우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있는 법입니다. 당시의 이설 씨와 지금이 다른 사람이라면 그건 이현석 감독의 자질이겠지요.”
“예.”
존경하는 곽태영의 말에 방을찬은 무어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들 이현석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곽태영도 그런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더 말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아무튼, 저쪽도 슬슬 본색을 드러냈으니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럼.”
“예, 다음 주에 승부를 걸겠습니다.”
방을찬이 침음성을 냈다.
“···정말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거?”
“방 피디가 제안한 일 아닙니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방을찬은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암만 그래도 그냥 꺼내본 이야기에 곧장 오케이가 돌아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말 그걸로 지금의 한 수를 위해 칼을 갈고 있었을 이현석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 방을찬은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곽태영은 그런 표정을 읽은 듯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주변이 뭐라고 말하든 방 피디님은 정말 큰 도움이 되고 계십니다. 장담컨대 『영원의 시대』가 잘 마무리된다면 피디님을 데려가려는 이들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방을찬은 덕담으로 여겨 감사히 고개를 숙였다. 곽태영은 그런 반응에 그냥 해본 말이 아닌데, 하고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아직까진 반응이 없나보군요.”
“곽 감독님께서 절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시는 거지요.”
방을찬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얼마 전에 이상한 전화가 오긴 했습니다.”
“이상한 전화라?”
“제 능력을 사고 싶다며 충분한 보수를 지불할 테니 조언을 해달라더군요.”
“호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방을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전, 단막극 『같은 세상』을 말아먹은 뒤 사표를 내고 방황할 때의 자신이라면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제 주제를 잘 알고 있다.
현재의 방을찬은 어떻게든 곽태영의 옆에서 배워 다시 메가폰을 잡는 걸 꿈꾸고 있는 정직한 조연출인 것이다.
“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런, 좀 심하지 않습니까?”
곽태영의 놀람에 방을찬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회해 보니 위즈톤 엔터테인먼트의 전화번호를 도용한 모양이라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위즈톤을··· 그건 확실히 보통 놈이 아닌지도 모르겠군요.”
표정을 바꾼 곽태영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놈이 있다면 이 감독을 위해서도 꼭 잡았으면 좋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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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일은 착각으로 일어난 해프닝으로 보고하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고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요즘 보이스피싱이 기승인데다··· 이현석 피디님께는 예전 빚도 아직 못 갚지 않았습니까.”
“하하.”
나는 눈앞의 형사에게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오랜 옛날 이설의 아버지 건으로 마주친 적이 있던 그 사람이었다.
이번 사태의 신고를 받은 뒤 곧장 월권 수준으로 넘겨받아 뛰어왔다는, 아주 쓸데없는 데서 의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나는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뭐, 실컷 들으셨겠지만 『삼세번』 저번 화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다음 주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경찰들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후 나는 간신히 막힌 숨을 뱉어냈다.
내가 머리를 짚고 있는 가운데 김철 선배도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방을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녀석이군. 그 정도의 보수를 제시했는데도 철저하게 발톱을 숨기겠다는 건가.]“예, 심지어 경찰을 통해 합법적으로 견제하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두려운 사람입니다.”
[으음.]김경숙 작가의 시나리오와 샤이의 연기력이 무위로 돌아간 지금, 나는 본래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철 선배가 먼저 신중론을 주장했다.
[아니야, 현석아!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예? 하지만.”
[네가 나서기에는 아직 타이밍이 일러! 여기선 힘을 아껴두는 게 맞다!]“······?”
그런 영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진 후 김철 선배가 허둥지둥 제안한 게 익명으로 방을찬의 조언을 구해보자는 것이었다.
제시된 방식 자체는 조악했으나 방을찬은 일찍이 지아의 대왕오징어를 완벽히 소화해내 나에게 한 판을 빼앗은 전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김철 선배가 열성적으로 설득하자 나도 조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뭐, 보다시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는 제가 나서는 수밖에 없겠지요.”
김철 선배가 탄식했다. 어째선지 예상된 비극을 목도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염려를 모르는 것도 아니라 나는 일부러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이쪽도 힘들지만 저쪽 역시 더 견디지 못하고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일단 막장도가 떨어지면 복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저와 선배님도 아는 바가 아닙니까.”
[으음.]“다음 주입니다. 시청자들의 기대가 최고조로 오른 때 승부를 걸겠습니다.”
김철 선배는 실로 마지못한 듯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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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과 곽태영 모두 다음 주를 벼르고 있던 무렵, 양쪽 모두와 무관계한 홍지호는 위즈톤의 사무실에서 늘어져 있었다.
모든 점이 양극단인 이도나와 그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소속사 사무실 알기를 제 집 알듯 한다는 점이었다.
딱히 자기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예전 소속사와의 차이를 신경 쓴 이현석이 따로 시어터 설비가 갖춰진 작업실 겸 휴식공간을 빌려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홍지호는 귀국한 뒤로 항상 PC방에 출퇴근하는 백수마냥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보는 박진태로서는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와, 또 이설 씨네.”
여느 때처럼 굴러다니며 TV를 보던 홍지호가 에휴, 하고 입맛을 다셨다. 뜰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한 얼굴이다.
“아주 사방이 난리네요. 나도 일본에서 나름 흥했는데 그냥 묻혔고······.”
“저만큼 할 수는 있고?”
“에이, 실장님. 좀 말이 되는 주문을 하셔야지 않겠습니까?”
“······.”
말을 말아야지. 박진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설도 따지고 보면 남의 식구인 만큼 그 역시 살짝 배가 아픈 것도 사실이었다.
이도나도 만만찮게 잘 했지만 결국은 이설에게 화제성에서 밀리고 있는 형편이었고, 이렇게 비교되는 건 선배인 이도나의 입장에서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현석에게 한 마디 거들 입장도 아니지만······.
“실장님은 예전부터 도나만 싸고도시네요.”
“걔는 성격은 지랄 맞아도 성실하잖냐. 너처럼 뺀질뺀질하지 않고.”
“팩트로 후려치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실실 웃던 홍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설 씨 소속사도 참 한결같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안 뛰어들고 있으니.”
대부분의 소속사는 지금처럼 화제가 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물 들어오는 데 노 젓는 양 전방위적으로 이름값 알리기에 나서며, 이는 예능, 라디오, 광고 등을 가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떡밥을 살포하지 않으면 대중들이 쉽게 잊어버린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설의 소속사는 이번에도 조용했다. 덕분에 이설의 이름이 계속 언급되면서도 보이는 건 드라마 장면밖에 없었다.
박진태로서도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전에 간 보다가 시상식 건으로 진땀 뺐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나설 거라고 생각했다만······.”
“그러게요. 암만 그래도 이 기회에 예능은 하나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홍지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지금 그쪽이 급한 건 이도나겠지만요.”
“도나가 왜?”
“아시잖습니까, 이 피디님 쪽 소문.”
“음.”
당연히 모를 리가 없다. 박진태는 입을 닫았다.
당사자인 이현석은 쓸데없는 소문이라고 가볍게 넘긴 모양이지만 박진태로서는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조금 늦었는지도 몰랐다.
“무슨 배우가 피디한테 녹즙 못 먹여서 안달이 나고, 어떻게 말 한마디 못 걸어볼까 얼쩡댑니까.”
홍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연구일지 촬영 때는 커버하느라 진땀 뺐어요, 진짜.”
“···고생했다.”
박진태는 그렇게밖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뭐, 그간 친구 하나가 없던 이도나이니만큼 그런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인기 배우의 행실이라기엔 심히 문제가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당시의 홍지호는 정말로 고생했다······.
“제가 고생한 거 아시면 이런 일로 문제 안 생기게 수습이나 잘 해주시지 말입니다.”
홍지호가 한숨을 쉬었다.
“적당한 게스트 토크 하나 내보내서 썰 풀면서 이래저래 신세 져서 많이 친하다, 뭐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만.”
“도나가 예능 쪽은 질색하는 거 알잖냐?”
“···알지만요.”
데뷔 초창기에 마지못해 내보냈을 때도 터질랑 말랑 불안했는데 지금이야 어찌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홍지호의 의견만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박진태는 마지못해 전화로 이도나에게 의사를 묻기로 했다.
– ···그러니까, 나가서 그 인간과의 사이를 해명하라는 건가요?
“해명이라기엔 뭐하고, 정리를 해달라는 거지. 아무래도 그 쪽이 깔끔하게 끝날 것 같거든.”
– 그래요······.
이도나는 잠시 생각하는 기색으로 말이 없다가 이내 작게 웃음기를 머금었다.
– 그거 좋겠네요.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것도 성미에 안 맞던 참인데.
드물게도 순순한 대답에 박진태가 안심한 것도 잠시, 이도나의 말이 더 이어졌다.
– 근데 저만 나가면 재미없지 않겠어요?
“···또 뭔 생각이냐?”
– 별 건 아니고요. 기왕 나가는 김에 요즘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삼세번』 여주와 같이면 어떨까 하는데요.
“······.”
박진태가 눈을 끔벅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