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89)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였군.”
『삼세번』의 급작스러운 상승세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건 SBC의 최도정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최근의 실적 부진으로 한창 들볶이고 있던 그로서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가 아닐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이 피디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오지호 CP 역시 마찬가지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입장상 칼이 떨어져도 드라마국 쪽에 먼저 떨어질 것이 자명했던 터라 그로서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눈앞에 닥친 상황이 깔끔하게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할 수 있었으면 진작 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하.”
그렇게 한 마디 보탠 오지호도 최도정 사장의 고민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현 SBC의 실적은 부진했다. 이는 정확히는 공중파 전체의 부진에 가까웠다.
작년부터 이미 징조는 보이고 있었지만 올해 들어서며 변화의 폭은 더욱 가팔라졌다.
종편들이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를 가리지 않고 점유율을 빼앗아오기 위해 나서고 있었고, 시청환경이 다각화되며 시청률 전체 파이조차 줄어들고 있는 양상이었다.
저번 주에 SBC의 『삼세번』과 MBS의 『영원의 시대』가 12퍼센트 대까지 밀리며 여러 말이 나왔지만 실상 다른 황금시간대를 보면 방송 3사 전체의 시청률 합계가 25퍼센트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찍이 없던 비상사태였다.
“저는 자연스러운 변화이지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거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나이지 않나.”
“···예.”
당연히도 이사회는 눈엣가시를 찍어낼 수 있는 핑계를 놓치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지금 신이 나서 최도정 책임론이란 눈덩이를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작은 눈덩이가 금세 말도 안 되게 커지리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멈출 방법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최도정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기왕지사 기세가 좋은 김에 예능 쪽에라도 불씨를 좀 뿌려줬으면 좋겠지만.”
“이설 말씀이시군요.”
“음.”
명백히 『연극처럼 살다』 방영 당시 이상의 붐이었지만 이설의 소속사는 이번에도 조용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드라마 외의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찾아보니 KBC의『토크밴드』 이후로는 어디 다른 데 출연한 경력이 거의 없더군요.”
오지호 CP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마도 당시 이현석 피디가 여론전에서 몰린 상황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로 연기 외엔 안 하겠다는 건지도 모르겠군.”
최도정 사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배우들은 많이 봤어도 실제로 그렇게 하는 배우는 또 처음이군. 돈이 눈앞에서 떠다닐 텐데 말이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공중파의 사장인 최도정이 마음을 먹는다면 어떻게든 강요할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민 끝에 입맛을 다시며 포기했다.
“뭐, 그런 친구를 어거지로 끌어내봤자 말아먹기나 하겠지.”
오지호 CP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미적지근한 분위기가 흐르던 와중이었다.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최도정 사장이 수화기를 들어 받았다.
“김 국장? 무슨 일인가, 아까 본지 얼마나 됐다고?”
“응? 그래?”
“어어··· 그래서 어떻게 한다고?”
현재 SBC에서 김씨 성을 가진 국장은 예능국장뿐이다.
오지호는 가만히 눈치를 살폈다. 최도정 사장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는 걸로 봐서는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닌 듯 보였다.
이윽고 최도정 사장이 말했다.
“말해 무엇하나, 그렇게 하게나!”
무척이나 흐뭇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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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이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소속사인 FMC 엔터테인먼트는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예능 출연 제안에는 늘 그렇듯 배우의 의향에 따라 정중한 거절로 답했다. 평소라면 달래도 보고 지지고 볶아도 봤을 강주연 역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제안서 온건 『인생캠프』나 『이야기를 듣자』같은 것들이죠? 그럼 거절하는 게 나아요.”
“어째서?”
“애초에 게스트 한둘 불러다 질문 쏟아붓는 투나잇 쇼 계통은 설이한테 안 맞으니까요. 이미지 망치고 노잼 소리만 실컷 들을걸요.”
“그것도 그렇군.”
이설은 본래가 좋은 말로는 조용하고 나쁜 말로는 음침한 성격이다.
배우의 좋은 면만 봐야 할 소속사 실장과 매니저조차 이설이 깔깔대며 분위기를 살리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이설은 드물게도 노골적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저도 마음만 먹으면 예스잼으로 만들 수 있어요.”
“···일단 그 말부터가 말도 안 되게 재미가 없다는 걸 모르겠니?”
“예스잼··· 예스, 잼··· 잼 있음······?”
“미안한데 밖에서는 절대로 그 개그 하지 말도록 해.”
소속 배우가 음침할 뿐만 아니라 부장님 수준의 유머센스를 겸비하고 있다는 걸 파악한 소속사는 이후에 날아온 다른 오퍼도 모두 정중한 거절로 일관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악연으로 엮였던 한 배우가 또다시 일을 망쳐놓고야 말았다.
걸려온 전화는 꽤나 단도직입적이었다.
– 요즘 사람들이 그쪽 애랑 나를 신나게 엮고 있는 모양인데,『인생캠프』에 같이 나가면 꽤 재밌는 상황이 되지 않겠어요?
“저, 그건.”
– 미안한데, 그쪽보단 설이 대답을 듣고 싶은데요.
“······.”
강주연은 마지못해 전화기를 넘겼다.
그리고 이도나와 길게 통화를 한 이설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단호한 표정이 되었다.
“저, 거기 나갈게요.”
“···진짜로?”
“진짜로요.”
그간 몇 번쯤 보아온,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을 때의 표정이었다. 일단 저렇게 되면 강주연이 아무리 빌고 매달려도 소용이 없곤 했다.
그야말로 단호박.
강주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동안 완벽하게 설계해준 예능은 다 걷어차더니만······.
평상시라면 그래도 매달려 봤겠지만 강주연은 얼마 전의 연기를 본 후 살짝 자신감을 잃은 와중이었다. 자연히 태도도 소극적이 되었다.
“···꼭 그래야 한다면 이도나한테 적당히 묻어가. 어차피 그쪽이 선배니까 다들 이해할 거야.”
매니저는 하다못해 피해라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했지만 이설은 쓸데없이 완강했다.
“비중, 최대한 빼앗아올 거예요.”
“······그러니.”
도리어 의욕을 불태우는 모양새에 강주연을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이도나와 이설, 요즘 핫한 두 배우의 토크쇼 출연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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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작 이 소식을 접한 『인생캠프』의 MC들의 반응은 꽤나 심드렁한 것이었다.
“오, 이번엔 게스트가 세군요?”
“시청률 좀 오르려나, 어쩌려나.”
깜짝 놀라는 반응을 기대하던 PD는 순간 기가 찬 표정이 되었다.
“아니, 다들 너무 심플한 반응이신 거 아닙니까? 다른 프로그램은 못 끌어들여서 안달인 배우들인데.”
“시청자들이야 재밌겠지만 저흰 재미없을 게 뻔하잖습니까.”
한 MC가 어깨를 으쓱였다.
“예쁘장한 배우님들에 예능 초보라니, 맙소사. 대본 싸그리 적어두고, 시시한 질문들이나 던지고, 씬 나오더라도 이미지에 영 아니다 싶은 건 통편집 할 거 아니에요?”
“이도나는 보나마나 이번에 퍼진 소문 슬그머니 해명할 테고. 이설은 앉아서 방긋방긋 웃음이나 지을 테고.”
“리액션 하는 것도 문제고, 끌어내는 것도 문제고······.”
그야말로 불평불만의 연속이었다. 몇 년이나 합을 맞춘 사람들이니만큼 죽이 절로 맞았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냈다.
“차라리 이현석 피디를 섭외하는 게 나았을 텐데.”
곧장 열렬한 동의가 잇따랐다.
“그렇지. 그만큼 이미지가 강렬한 사람이 없지!”
“그 양반 데려다놓으면 진짜 뻥뻥 웃길 수 있겠는데 말이죠.”
“그 얼굴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궁금하고··· 비단 우리만 그런 게 아닐걸?”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PD가 에휴, 하고 퉁을 놓았다.
“저기, 지금 저희들이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 말이 장수 프로그램이지 슬슬 약빨 다하고 있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야 알지만요.”
장난스레 불평을 늘어놓던 MC들이 멋쩍은 듯 입을 다물었다.
『인생캠프』는 꽤 오래 이어온 프로그램이었지만 슬슬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포맷을 몇 번 바꿔보기도 했고, 조금 효험을 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때뿐이었다.
대부분이 슬슬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종영을 하더라도 그래도 바닥이 아니라 허리께쯤에서 박수칠 때 떠나는 게 멋지지 않겠습니까. 다 화제성을 위한 일이니 협력 좀 해주십시오.”
“···뭐, 저희도 다 압니다. 농담 좀 한 거지.”
MC들이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들에게 담당 PD가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특히나 이도나 씨와 이현석 피디 관련한 소문은 꼭 자연스럽게 넘겨달라고 주문 들어왔으니 신경 써주십시오. 더욱이 저희는 일반인 객석도 있으니······.”
“거 우리가 이런 일 한두 번 합니까? 염려 마십쇼.”
MC 하나가 큰소리를 쳤다.
“예능 초보 둘에 생방도 아닌데 그거 컨트롤 하나 못할까봐요? 적당히 시시한 질문 던지면서 우리끼리 티키타카나 하면 되지.”
“이도나 걔가 뭔 말실수를 하던 우리가 커버할 자신 있습니다.”
MC들은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PD는 노파심이었는지 두 번, 세 번 거듭 다짐을 받았다.
“꼭 신경 써주셔야 합니다.”
“거참, 알았다니까 그러시네.”
그쯤 되자 MC들도 조금 짜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이도나 소속사에 전달하십쇼. 이번 방송 이후에 그쪽 염문설 다시 나오면 내가 위즈톤 대표··· 이현석이 앞에서 무릎 꿇고 코 박겠다고.”
“나도 같이 하지요.”
“아, 그럼 나도 그러지 뭐.”
MC들이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자 그제야 PD도 조금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얘기는 위즈톤 쪽에 전달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십쇼.”
MC들이 기가 찬 표정으로 손짓했다.
이어 본방의 날이 밝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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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소문이요? 사실이에요.”
이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같이 태연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어조였다.
하지만 혀가 던지고 있는 건 폭탄이었다.
MC 하나가 멍하니 되물었다. 생각이 진행되어서는 아니고 일종의 반사작용 같은 것이었다.
“·········어, 그러니까··· 예?”
“사실이라고요.”
“······.”
“아, 사실관계는 조금 잘못됐네요. 제가 먼저 고백했고, 아직 답변은 못 들었거든요. 그건 이 기회에 정정해두고 싶네요.”
몹시 긴 침묵이 흘렀다.
MC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객석은 웅성이고 있었고, PD는 꿈인지 생신지 의심하는 듯 눈을 몇 번이고 비비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인 상황에 MC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볼 도리밖에 없었다.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본인이 까발리면 어쩌라고.’
만약 그들의 코를 박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함정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