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9)
019 – 사마귀가 수레에게 앞발 들고 개기다(6)
“시작했어!”
아라가 외치자 다른 에어리즈의 멤버들이 코딱지만한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언니다!”
주말 10시 드라마.
평소라면 멀찍이 보이는 것만으로 90도로 인사를 해야 할 하늘같은 선배님들이 보여야 하는 시간이다.
거기에 누구보다 친숙한 얼굴이 비치고 있다.
은솔이 슬쩍 곁눈질로 화면에 나온 유미와 뒤에 있는 유미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흥분되고 떨리는 상황일 텐데 멀찍이 떨어져서는 여유롭게 곤약을 우물거리고 있다.
은솔은 슬펐다.
역시 큰언니는 맛이 가버린 게 틀림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울적한 심정을 애써 내리누르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드라마는 결혼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화려한 결혼식장에서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신부는, 신랑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유미 – 정하늘이 행복한 웃음과 수줍은 미소로 “예.” 하고 답했다.
파노라마 속 하늘로 떠오른 부케에 이어 카메라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비춘다.
신랑은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부유한 집의 장남이다.
그림에 그린 것 같은 부유하고 행복한 삶. 시어머니는 따스하고 시동생은 친근하며 시누이들도 칠칠맞지만 악의는 없다.
거기에 대비되듯 어린 시절의 초라한 풍경이 희미하게 오버랩된다.
“영화 같아······.”
잔잔한 음악과 함께 아련하게 씬이 접혀가는 걸 보며 막내인 아라가 작게 탄성을 낸다.
아닌 게 아니라 통상의 드라마 기법과는 차이가 있다. 예술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출과 영상미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물론 ‘영화 같다’는 말은 꼭 장점만은 아니다.
흔히 안방극장이라 통칭되는 드라마는 무엇보다도 ‘편안한 영상’을 목표로 한다. 영화와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일부러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을 피하고 바스트샷이나 웨이스트샷 정도에서 크게 움직이는 일이 드물다. 그 구도가 가장 텔레비전에 적합한 사이즈인 까닭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영상미를 끌어오면서도 드라마다운 편안함을 잊지 않고 있다.
한낱 입봉, 회귀를 더해도 이제 두 번째 작품을 찍고 있는 PD가 대선배이자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명감독에게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인 덕분이다.
옛날, 제장공의 수레 앞에 버팅기고 선 사마귀의 용기는 그를 탄복시켜 수레를 돌리게 했다고 한다.
[씨발··· 그래, 너 잘났다. 네 좆대로 해봐라.]거장 김철조차 고개를 흔들게 만든 머저리의 고집이 절제되면서도 깊은 영상미를 만든다.
그 아름다움은 뻔하고 단순한 장면조차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에어리즈의 세 소녀는 어느샌가 화면 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창 시선을 빨아들인 후ㅡ
쾅!
갑자기 두 부부가 탄 차가 폭발했다.
“······에?”
세 소녀가 다 같이 고개를 갸웃한다.
“뭐야, 이거······.”
아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영문을 모르겠다.
그리고 얼이 빠질 틈도 없이 스토리가 날뛰기 시작한다.
남편이 죽고 나서 천운으로 살아남은 정하늘은 넋이 나간다.
하지만 이내, 변호사가 등장하고 남편의 유언장이 공개된다. 자신이 죽으면 가진 회사 지분 전체를 아내에게 물려준다는 유언.
하늘은 시어머니와 시댁 가족들의 설득으로 마음을 다잡고 남편이 남긴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그리고, 얼마 뒤.
「정하늘 씨. 당신을 주가조작 및 횡령, 배임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처음으로 개최된 주주총회에서 하늘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주리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색이 반전된 영상이 그동안의 비밀을 낱낱이 드러낸다.
겉으로는 자애롭게 웃고 있던 시어머니는 천한 혈통을 남길 수 없다며 남몰래 며느리에게 피임약을 먹이고 있었다.
사람 좋게 웃고 다니던 시동생은 방해가 되는 형을 쫓아내고 회사를 물려받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사실 배다른 식구였던 시누이들은 한술 더 떠서 실제로 살인멸구를 기획했다.
누명을 뒤집어쓴 정하늘이 아무것도 모른 채 절규하며 감옥에 갇히는 씬까지 오자 은솔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이게!”
일어난 은솔이 절규했다.
“왜 잘 나가다가 개막장이 되냐고오오오오오!!”
#
“푸하하하하하하하!”
MBS 드라마국.
경쟁작 SBC와의 시청률 격차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10억 배우 홍지호가 배를 잡고 구르고 있다.
모두가 얼떨해하는 와중 홍지호만이 박장대소를 하며 매니저의 등을 땅땅 친다.
“혀, 형. 봤어? 방금 거 봤어?”
“···지호야, 보는 눈이 많으니까 일단······.”
“와, 골 때리네! 이거 연출한 양반 누구야? 제정신이래? 푸하하하하핫!”
어찌나 정신없이 웃고 있는지 눈물까지 매달려 있다.
“이 정도로 예술에 가까운 씬을 만들어놓고 곧장 쓰레기통에 쳐박아? 거물이다! 이건 어마어마한 거물이야!”
“지호야, 좀······!”
매니저가 애써 진정시키려 하지만 한번 터진 홍지호의 웃음은 쉽게 멎지 않았다.
꺽꺽거리며 땅바닥을 구르는 그의 스마트폰에서 KBC 채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스태프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특히 장연철 PD의 표정은 어마어마하게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물론 그는 그걸 겉으로 드러낼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작게 헛기침을 한 후 슬쩍 미소를 띄운다.
“뭐, KBC 쪽은 저렇게 박장대소를 하실 정도로 안쓰러운 작품인 모양입니다.”
“그, 그렇죠!”
“입봉 PD, 입봉 작가, 신인 배우의 콜라보니 오죽하겠습니까.”
“하하, 저도 집에 가서 개그라이브 대신 챙겨봐야겠습니다!”
조연출들이 죄다 한 마디씩 아부하듯 거드니 금세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홍지호는 그제야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에 심드렁한 표정이 맺힌다.
“하여간 저 양반은 도통 좋아질 수가 없다니까.”
“그게 뭔 소리야, 자식아! 장 PD님이 애써 수습해주셨는데.”
“수습 좋아하시네.”
땅에 굴러다니던 스마트폰을 회수한 홍지호의 눈에 문득 이채가 맺힌다.
「후우······.」
화면 안에서는 어느샌가 3년의 감옥생활을 끝내고 풀려난 여주인공 정하늘이 포장마차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다.
얼마 전까지의 화려한 장면과 대비되는 초라한 몰골.
아니, 자세히 보니 혼자가 아니다.
스르륵 움직이는 카메라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누군가의 옆모습이 잡혔다.
「엿 같은 인생~♬ 망할 놈의 세상~♬」
정하늘이 노래를 웅얼거린다.
음정, 박자. 무엇 하나 맞지 않는 엉망진창인 노래.
「이렇게 살아 뭐 하나~♬ 차라리 같이 죽었더람 좋았을 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옆모습만 보이는 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사람이 목숨을 건다면 세상에 못할 게 뭐가 있겠니.」
「뭐?」
「홀로 죽으면 시시한 자살로 끝날 거야. 하지만 뭔가를 호소하며 몸에 불을 붙이면 소신공양으로 신문에 보도되기라도 하겠지. 그렇지 않아?」
「······.」
「그리고 만약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간절히 무언가를 바란다면, 혹시 아니? 온 우주가 도와주기라도 할지.」
정하늘이 눈을 깜박인다.
그녀의 시선이 스르륵 돌아가 옆에 앉은 여자를 본다.
「그런데 너, 누구야?」
「얘는.」
여자가 한숨을 쉰다.
「자기가 마시자고 불러내놓고 무슨 헛소리야, 취했니?」
「······??」
정하늘은 한동안 눈을 깜박였다. 몇 번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어라 말하려 하다가ㅡ
문득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맞아, 한지원이, 내 친구!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내 친구!」
「후우, 얘 완전히 맛이 갔네.」
비로소 카메라가 움직여 옆에서 턱을 괸 여자의 얼굴을 비춰준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썹을 늘어뜨린 여자는 달래듯이 정하늘을 일으켜 세운다.
「뭐야, 어디 가려고···! 아직도 술 남았어······!」
「그래, 그래. 하지만 술보다 중요한 게 있잖니.」
「술보다 중요한 거······?」
고개를 모로 빼는 정하늘.
그런 정하늘에게 여자는 내일은 비가 내리겠네, 하는 식의 여상한 투로 말했다.
「복수해야지.」
「복···수?」
「응, 복수.」
여자가 웃는다.
눈을 깜박이던 정하늘이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복수··· 해야 뭐해. 할 재주도 없고··· 한다 해도 어차피 승호 씨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걸.」
「이상한 논리네.」
「······?」
「그렇게 따지면 그 사람은 이미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니 장례식을 치를 필요도 없었다는 소리니?」
「그게 어떻게 똑같아!」
정하늘이 눈을 홉뜨고 소리쳤다.
「같지. 모두 그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행위니까.」
하지만 여자의 부드러운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이야. 하지만 그 넋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편히 가라고 배웅하는 것이 장례의 본질이지.」
「······.」
「그럼 비슷하게 생각해보자. 그 사람의 넋이 남아있다면 지금의 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자가 가만히 속삭이듯 말을 잇는다.
「젊은 나이에 그토록 억울하게 죽어서,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가 이런 꼴로 다니는 걸 보며, 과연 어떤 감상을 품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그 사람이 편히 갈 수 있을까?」
정하늘이 멍하니 그녀를 쳐다본다.
침묵이 흐른다.
일견 자애롭게까지 느껴지는 시선과 표정.
부드러운 음악이 적막한 바람소리에 섞여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끝내 정하늘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그녀가 무어라 말하는 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암전.
홍지호의 매니저는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흘러나오는 스탭롤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시선을 돌린다.
“여러 모로 하고 싶은 말이 많다만··· 지호야, 일단 하나만 묻자.”
“뭔데?”
“마지막에 걔 누구냐?”
“신인 배우. 이름은 이설.”
홍지호가 웃는다.
“형 눈도 아주 녹슬지는 않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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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처럼 살다’ 1화의 방영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집계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평균시청률 4.0%, 시청자 중 해당 드라마를 막장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51%입니다.』
“시작이 좋네요, 선배님.”
[퍽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