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96)
그룹 에어리즈의 숙소.
옹기종기 모여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문득 아라가 입을 열었다.
“저기 말이야.”
“응?”
“혹시 이현석 대표님은 내가 이상형인 게 아닐까?”
“······.”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다른 멤버 둘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막내의 말을 무시했다. 서로 짜기라도 한 듯한 완벽한 콤비였다.
하지만 강아라가 거기에 굴할 정도의 성격도 못 되었다. 되레 콧대를 높이고 목소리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아니, 그도 그렇잖아? 보통 누구든 자기가 좋다고 생각한 상대와 사귈 거 아니야.”
“말실수라고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여보 소리 나올 정도면 백퍼 아니겠어?”
은솔이 언니인 주리한테 어떻게든 해보라는 듯 눈짓했다. 주리는 뭘 어쩌겠냐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라의 김칫국 마시기는 점점 점입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 어쩌지. 난 아이돌이라 연애 금진데.”
“아, 근데 소속사 사장님이면 상관없지 않아? 자기가 대빵인데 뭐라 그러는 사람도 없을 거 아냐?”
“···야, 강아라.”
참다못한 은솔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마침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들어오는 사람을 본 주리가 반색이 되었다.
“아, 유미 언니!”
“뭐야, 나 빼놓고 뭔가 재미있는 얘기들 했어?”
한유미가 빙긋 웃으며 들어오자 아라는 반사적으로 조금 기가 죽었다.
하지만 질기기도 질긴 성격이었다. 금세 회복한 막내는 되레 좋은 기회라는 듯 콧김을 뿜었다.
“언니.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응? 뭐가?”
“그게······.”
아라는 어제오늘 두 언니에게 신나게 늘어놓은 이야기를 재차 반복했다. 이야기를 들은 한유미는 음, 하고 말을 골랐다.
“글쎄, 나는······.”
“나는?!”
세 동생의 시선이 일거에 집중되자 한유미가 뺨을 긁적였다.
“지금으로선 홍지호 선배님부터 이겨야 얘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
긴 침묵이 흘렀다.
한유미가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뭐, 적어도 사람들은 두 분이 잘 어울리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거든. 나도 오늘 홍 선배님과 피디님 관계 어떻냐는 질문도 몇 번이나 받았고.”
“···그래.”
효과는 제법 있어 아라는 금세 풀이 죽었다.
“······??”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주리와 은솔에게는 묘한 의혹이 하나 생겨났다.
#
같은 시각, 감독 곽태영의 신혼집에서는 『체험, 폭력의 현장』이 한창이었다.
저번에 여러모로 쓸데없는 비밀을 알게 된 대가로 이도나에게 협력하기로 맹세한 홍지호.
그는 초대받아 도착한 곳의 현관문을 통과하자마자 그대로 목덜미를 잡혀 얻어맞기 시작했다.
“도대체가! 도대체가 너라는 인간은 도움이 되는 적이 없다니까!”
“아얏, 아야야얏!”
“그게 도와주는 거니? 그게 도와주는 거야? 너랑 그 인간이 게이커플로 엮이는 게?”
“으아아! 그만해! 레즈와 백합이 다르듯 게이와 비엘도 다른 거라고!”
“알 게 뭐야!”
그리 아프다고는 할 수 없는 이도나의 공격에 홍지호는 과장된 비명을 지르며 온 몸을 뒤틀었다. 제 나름대로는 미안한 표시인 셈이었지만 그게 되레 이도나의 화를 돋구고 있었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제풀에 지친 이도나는 소파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한쪽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정말이지······.”
솔직히 말해 끔찍한 일이었다.
아니, 암만 그래도 내 열애설이 다른 사람도 아닌 홍지호한테 씹혔다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지쳤으면 과일이나 먹으렴. 오시느라 고생한 손님 좀 그만 때리고.”
이모가 과일을 내오자 눈치를 보던 홍지호는 만세를 부르며 몸을 피했다. 이도나가 그런 홍지호를 고까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째선지 둘의 모습을 번갈아보던 이모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큰일이네.”
“내 말이!”
이도나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도대체가 애꿎은 사람 갖다가 뭔 장난질을 하는 건지······!”
“홍지호 씨 다시 보니 눈치 빠르고, 배려심 있고, 성격 좋고, 잘 생겼고··· 도무지 우리 도나가 이길 구석이 안 보여.”
“그쪽이야?!”
조카는 기가 찬 표정이 되었다.
홍지호는 영광입니다, 하고 고개를 숙인 뒤 그윽한 눈길을 보냈고 이모는 어머나, 하고 뺨을 붉혔다.
“이모부한테 이를 거야.”
“너도 참,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농담 한 마디 못 받으니 친구가 없지.”
“······.”
조카가 말문이 막힌 사이 이모는 어쨌거나, 하고 표정을 고쳤다.
“지호 씨가 협력해준다니 다행이네요. 고맙고, 잘 왔어요.”
“뭐, 저도 여러모로 눈치가 없었으니까 말이지요.”
홍지호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 생각이지만 암만 그래도 스피커랑 헤드폰은 아니었다 싶다.
뭐, 그렇다고 해도 저걸 바로 눈치 채라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나 싶지만.
거기에는 이모도 납득했다.
“설마하니 그 이도나가 말이죠······.”
“그렇죠, 그 도나가······.”
“뭐야. 할 말 있으면 그냥 하지들 그래?”
짜기라도 한듯 뭘? 하고 시치미를 떼는 두 웬수의 모습에 이도나는 맥이 탁 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도 결코 밖에서 누구한테 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 조합에는 어찌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이모가 어조를 바꿨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듣겠습니다.”
대화가 이어졌다.
이어진 삼십 분간 홍지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파악한 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결과가 안 좋을 거라는 건 도나의 개인적인 느낌 아닙니까?”
“그건 그런데··· 어쨌거나 본인은 확신하는 모양이어서 말이지요.”
홍지호가 시선을 보내자 이도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평생의 원수인 홍지호한테 낯부끄러운 사실이 줄줄 흘러가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가 그녀가 다분히 몰려있음을 보여주었다.
으음, 이도나답지 않달까··· 오히려 반대로 이도나답달까.
“그래서, 지호 씨는 어떻게 생각하지요?”
“그렇군요.”
홍지호도 태도를 진지하게 했다.
“일단 만나보지 않으면 해결되는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 지금까지 이야기 뭘로 들었어?”
“대충 이해했으니까 말한 거야.”
얼굴을 찌푸린 이도나에게 홍지호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다만 가벼운 몸놀림과 달리 얼굴은 제법 진심이었다.
“내 생각엔 빙 돌아가는 수단은 죄다 그냥 삽질이야.”
“뭐?”
“이현석 대표님이 외부 해자를 메운다고 씁 어쩔 수 없지, 하고 흘러가는 성격이냐? 되레 엿 먹어보라고 독이라도 풀고 자폭할 양반이지.”
이도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홍지호도 살짝 어조를 풀었다.
“독은 뭐, 비유지만··· 아무튼 그 마이페이스인 양반한테 외곽에서의 접근은 안 통할 거라고 본다. 차라리 정말로 차이더라도 옆에 붙어서 시작하는 게 차라리 낫겠지.”
“······.”
이도나가 침묵하는 중 이모가 끼어들었다.
“저기, 그건 지호 씨의 개인적인 판단인가요?”
홍지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실장님··· 그러니까 박진태 부사장님 생각이십니다.”
“이현석 대표님과 그분은 많이 친하신가요?”
“솔직히 부러울 정도죠.”
“흐음.”
이모는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기색이 되었다.
평소라면 뭐라고 타박이라도 놓을 조카도 침묵했다. 그녀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참 후, 이모는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주억였다.
“좋은 의견 고마워요. 참고할게요.”
“참고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좀 진부한 수법이긴 한데.”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 그이가 이 대표님을 어머님과 같이 집에 초대를 하면 되지 않겠어요? 상견례 같은 느낌으로.”
“······.”
진부는커녕 획기적이다 못해 세 계단쯤 건너뛴 것 같은 방안이었다.
두 배우는 멍하니 서로를 마주보았다.
#
“흐흐흐.”
나는 김경숙 작가와 협의를 마친 최종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용을 볼수록 절로 품위 있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정도의 물건이었다, 이건.
내가 김철 선배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저는 많고 많은 막장을 만들어왔지만 결코 이만한 녀석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사람이 열 명이나 죽으니까.]“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선배님.”
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그 죽는 방법이 터무니없는 급사라는 겁니다!”
일찍이 『삼세번』의 여주인공의 시어머니는 초코파이가 목에 걸려서 죽었다.
슬픈 일이었지만 아직 시댁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에는 시동생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웃다 죽게 될 것이며, 이후 시누이는 막장드라마를 보다가 복장이 터져서 죽게 될 것이다.
이후의 사인들도 무엇 하나 만만한 것들이 없었다.
특히 우리와 협찬한 수제햄 브랜드가 아니라 런천미트를 사온 무례함에 싸우다 뒷목을 잡는다는 사인에 이르러서는 감동마저 느껴졌다.
나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겼습니다, 선배님. 아무리 대한민국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이런 걸 막장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제정신인 인간일 수가 없습니다!”
[글쎄다. 나는 네가 제정신인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이젠.]“하하, 농담도 잘 하십니다.”
나는 껄껄 웃었다. 아무래도 김철 선배도 유쾌한 기분인 모양이었다.
선배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지만 그냥 고개만 젓고는 말을 돌렸다.
“뭐, 촬영은 네 뜻대로 한다고 치고··· 아까 온 연락은 어쩔 거냐?”
“연락이요?”
“그··· 곽태영이 마누라한테서 온 거 말이다.”
“음, 그거 말씀이군요.”
나는 침음성을 냈다.
엄밀히 말해 전화를 걸어온 인물은 곽태영 감독의 아내분이라기보단 이도나의 이모라는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존재였다.
말인즉슨, 김철 선배에게 있어서는 여러모로 편한 상대는 아닐 터였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김철 선배가 짐짓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다 애초에 가해자잖냐. 나를 신경 쓸 이유가 없지.]“거참 섭섭한 얘길 하십니다. 저와 선배님이 그런 논리적인 이해로 엮인 사이입니까?”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김철 선배는 악당일 것이다. 이도나나 그녀의 가족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걸 사죄하기 위한 목적으로 같이 온갖 궁상맞은 짓을 다 해온 입장에서 보면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이 아니지 않은가.
잠시 침묵하던 김철 선배가 헛기침을 했다.
[···고맙다.]“뭘요.”
[그래도 이번에는 가는 게 맞겠지. 요즘 도나 만날 기회 없잖냐?]“뭐,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나는 저어했지만 김철 선배는 계속 나를 설득했다. 나는 끝내 한숨을 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같이 가시죠.”
[음.]“선배님도 뭐, 이 기회에 조금 익숙해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나는 곧장 전화를 걸어 초대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뭐,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