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97)
생각해보면 내가 이도나의 이모님을 만나는 건 저번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었다.
실제로 대화를 나눠본 건 잠깐이었지만 당시로도 여러모로 인상에 남는 인물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도저히 그 이도나를 키워낸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할까.
[언니랑은 별로 안 닮았더군.]김철 선배가 입을 열었기에 슬쩍 물어보았다.
“이도나 씨 친어머니 쪽은 어땠습니까?”
[···평범했지. 여러모로.]그 말을 끝으로 김철 선배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덕분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조용해졌다.
“어머, 잘 오셨어요.”
적당히 사든 선물세트를 들고 현관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너무 즉각적인 반응이라 나는 조금 당황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편하게 처이모··· 이모라고 불러주셔도 돼요.”
뭔가 이상한 수식어가 붙었던 것 같은데.
나는 적당히 뒤에 님자를 붙이는 선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고모님이 이미 있기도 하고.
“말 놓아주셔도 됩니다.”
“곧 그럴 만한 사이가 되면 그러도록 할게요.”
어째 영 불온하게 들리는 뉘앙스였다.
이모님은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널찍한 거실은 희한하리만큼 고요했다. 두리번거리던 내가 물었다.
“그··· 곽 감독님이나 이도나 씨는?”
“그이는 워낙 부지런한 성격이라 공원 한 바퀴 뛰러 나갔고, 도나는 조금 늦네요.”
옆에서 침묵하던 김철 선배가 뭐? 하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곽태영 감독이 부지런한 성격이긴 해도 운동이라면 질색한다는 건 나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자면 꽤 이상한 말이었다. 갑자기 취미라도 생겼나?
“그리고 도나는··· 제가 실수로 시간을 잘못 알려줬지 뭐예요.”
“······.”
“덕분에 둘이서만 얘기할 시간이 있겠네요.”
제가 이렇게 덜렁거려요, 하고 빙그레 웃는 모습에 나는 어째선지 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곽태영 감독··· 정말 신중하게 결혼을 결정한 게 맞는 걸까?
“자, 일단 앉으세요. 식사는 하셨나요?”
“아뇨, 아직······.”
“그럼 가볍게 하시죠.”
이어진 상황은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불편한 식사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반어거지로 식도에 음식물을 밀어넣는 동안 이도나의 이모님은 손등에 턱을 괸 채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넘어간 것도 그대로 얹힐 것 같은 불편함이었다.
그리고 그 고행이 간신히 끝나갈 무렵, 그대로 기습이 날아왔다.
“그래서, 현석 씨는 우리 도나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커흑.”
사레가 들린 나는 허둥지둥 컵을 찾아 물을 삼켰다. 그리고 그 컵을 눈앞의 상대가 불과 1분 전에 놓아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명백히 의도한 셈이었다.
“어머나.”
내 태도를 뻔히 읽었음에도 나오는 말은 천연덕스러웠다.
“돈도 많겠다, 외모도 알아주겠다··· 조금 솔직하지 못하고제멋대로인 구석이 있긴 하지만 뭐, 그게 반대로 귀엽지 않나요?”
“······.”
“제가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도나는 되레 관계 확실해지면 닭살짓 어지간히 잘할 애라고 보거든요.”
어조는 지나가는 듯한 농조였지만 눈은 면밀히 나를 훑고 있었다.
이후 나는 애써 이 불편한 화제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결국은 한숨을 쉴 도리밖에 없었다.
“따님이나 다름없으니 신경이 쓰이시는 것도 당연하겠습니다만··· 이렇게 관여하시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에는 이도나의 이모님도 조금 겸연쩍은 표정이 되었다.
“뭐, 좋은 일이 아니라고는 생각해요.”
“그럼.”
“하지만, 예전에 적어도 도나 짝만큼은 제가 제대로 지어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녀는 이어 담백한 어조로 덧붙였다.
“절대로 언니처럼 되지 않게.”
그 말에 실린 무게에 나는 입을 닫았다. 옆에 있던 김철 선배의 움직임이 비척 흔들렸다.
의아한 듯 이쪽을 보는 눈에 순간 이채가 서렸다.
“설마 알고 계셨나요?”
부정할 도리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상대가 그 김철 감독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요··· 사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뵙자고 한 거기도 한데 말이에요.”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요? 목소리가 살짝 나긋나긋해진다. 눈가에도 살짝 힘이 실렸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몹시 변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네요. 그런 것치고는 최근에도 김철 감독을 존경하느니 목표라느니 하는 말씀을 하신 것 같던데.”
“사실이니까요.”
“그 작자는 인간쓰레기에요.”
“이도나 씨와 그 어머니 되시는 분께 여러모로 최악의 행동을 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흐음.”
미묘한 감정이 담긴 맞장구였다. 이 기회에 어떻게든 김철이란 인물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게 만들겠다는 투였다.
옆에 있는 김철 선배도 고개를 끄덕여 맞춰주기를 요청했다.
글쎄.
나는 본디 온화한 성격이지만 남들 뜻대로 끌려다니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더하자면, 나로서도 줄곧 하고 싶은 말이 있기도 했다.
“김철이라는 인간이 제 언니한테 어떻게 했는지 말씀드리죠.”
김철 선배에게 얼추 들은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차라리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이도나의 제안을 받아들일 도리는 없다. 그럼 관계가 어색해지는 것도 당연지사겠지.
어차피 그렇게 될 거라면 차라리 이쪽에서 적절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일 것이다.
정리를 마친 나는 이야기가 끝나려는 틈을 타, 상대가 가장 격노할 만한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저, 실례지만.”
“뭔가요?”
“저는 김철 감독이 그 일을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의 일순간, 온화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요?”
잠자는 용의 역린을 건드린 양 무시무시한 기세요, 흉험하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철 선배 역시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재차 반복했다.
“저는 김철 감독이 그 일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모님의 표정이 다시금 변했다.
완연한 적대감, 혹은 배신감.
옛날 내가 PD를 그만두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의 서예린 작가에게서 얼핏 비친 이래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이모는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농담이라면 지금 취소해주시면 좋겠네요.”
“실례지만 진심입니다.”
“머리가 굳은 사람이란 얘긴 들었지만··· 헛소리도 되지 않는 망언에도 그런 줄은 몰랐는데요.”
“죄송합니다.”
[뭐 하는 거야, 이 자식아!]간신히 정신을 차린 김철 선배가 펄펄 뛰는 모습이 보였다.
[미쳤냐? 내 편을 들 데가 있고 안 들 데가 있지! 누가 봐도 내가 개새끼 아니냐!]‘선배님.’
[뭐야?!]‘명예롭고 지적이며 누구보다 현명한 시민만이 사용할 수 있는 논증으로 ‘누구누구 개새끼 해봐’가 있다고들 합니다만······.’
[지금 농담 따먹기 할 때냐?!]내 회심의 농담은 시작하기도 전에 막혔다.
김철 선배는 그야말로 덜덜 떨고 있었고 눈앞의 이모님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정신이 없구만, 이거.
추궁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내가 의견을 고집하자 목소리는 곧 완연히 서늘해졌다.
“도나가··· 사람을 참 잘못 본 것 같네요.”
“이도나 씨가 늘 그렇죠. 오늘도 그렇고 옆에서 살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나가 지금 그쪽이 말한 걸 들으면······.”
“화를 내거나 경멸하겠지요. 연을 끊겠다고 날뛰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어 위약금은 걱정 마십시오, 하고 덧붙였다.
그쯤 되자 이도나의 이모님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되레 머리가 식은 모양이었다. 꽉 깨물었던 어금니를 풀고는 비꼬는 듯한 어조가 되어 물었다.
“최근에 김철 그 인간을 만난 적이 있나요?”
“네.”
“과연, 그 인간이 그렇게 변명하던가요?”
“아뇨. 딱히는.”
“그럼.”
“하지만, 영화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모가 뭔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보충 설명을 할 필요를 느꼈다.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굉장한 대작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하, 그 인간이 원하기만 하면 돈이야 얼마든지······.”
“그런 돈으로 찍어 누른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그간 김철 감독은 영화 안에서 자신을 철저할 정도로 배제해왔습니다. 스크린 안은 못난 사회를 담고 자신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게 그의 스탠스였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그런데 이번엔 좀 많이 달랐습니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 저는 그간 김철 감독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만났습니다.”
정확히는 줄곧 옆에 있었지만 뭐,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는 없겠지.
나는 이어 대수롭잖은 투로 선언했다.
“제 짧은 식견을 말씀드리자면 김철이란 인간은 단점투성이입니다.”
“······네?”
적당히 입을 열었음에도 말할 거리는 끝도 없이 나왔다.
폭급하고, 성격이 나쁘고, 자신이 세상에서 잘난 줄 아는데다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도량도 없다. 불평만 늘어놓기 바쁜 주제에 해결책은 없으며, 태도는 거만한 주제에 마음은 약해 의외로 쉽게 포기하는 새가슴이다.
목소리는 걸고, 산적 두목상인 주제에 자기가 괜찮게 생긴 줄 아는데다ㅡ 내가 끝없이 쏟아내는 악평에 눈살을 찌푸리던 이모는 점점 입을 벌리더니 끝내 황망한 표정이 되었다.
옆에 있던 김철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았으면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양새가 자못 우스웠다.
나는 적당히 십오 분을 더 떠들고 말을 멈췄다.
“더 있지만 이쯤 하겠습니다.”
“더 있는 건가요?”
황당하다는 듯한, 방금 전까지의 기세가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새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말씀하셨듯 영 답이 없는 양반이니까요.”
“······.”
“하지만 뭐, 이번 영화에서는 자신을 좀 돌아봤더군요.”
김철이 결국 칸 영화제마저 제패하게 만들 마지막 영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 첫 작품인 『파랑새』를 극단적으로 뒤틀다 못해 쓰레기통에 던져버려 곽태영 감독이 욕을 쏟아붓게 할 작품.
그 최후의 명작은, 잘 포장되었지만 그저 후회와 자기혐오로 점칠되어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 후회의 근원을 잘 알 수 없었다. 평론가들은 그것을 세상이니 인간이니 멋대로 해석해 의미를 부여하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김철은 지금 딸에게 사과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근거로.”
“제가 틀렸다면 메가폰이고 뭐고 집어 던지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겠습니다. 그걸 근거로 생각해주시죠.”
“······.”
나는 작게 한숨을 쉰 뒤 슬쩍 어조를 바꿨다.
“오해를 정정하자면, 저는 딱히 용서하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김철 감독은 이도나 씨와 돌아가신 어머님께 쓰레기 같은 짓을 했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하는 데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예전부터 확신하고 있는 게 있었다.
그것은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술에 떡이 된 이도나를 보고서 계속 생각해왔던 일이었다.
“이도나 씨를 위해서는, 둘은 한 번만이라도 서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평소처럼 욕설을 쏟아붓고, 걷어차고, 걸레짝으로 만들어도 좋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어째서요?”
“그게 까닭 모를 막연한 적의보다는 도움이 되는 감정일 테니까요.”
뭐, 정확히는 양쪽 모두에게 말이다.
막연한 증오와 죄책감만큼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모름지기 정신은 자기 자신에게 파고드는 생명이라 방향성이 있는 괴로움은 향유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열병과 같아 끝없이 자신만 좀먹곤 한다.
이건 양쪽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에 힘을 담았다. 다행히도 이어진 시선에는 딱히 분노가 보이지 않았다.
이어진 말은 맥이 풀려 있었다.
“···이 이야기, 현석 씨가 했다고 도나에게 전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도나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쪽을 원망하고 미워한대도 말인가요?”
“그래도 필요합니다.”
“그래요.”
이모는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간격이 흐른 후 그녀가 지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그냥 돌아가주시겠어요? 도나와 둘이서 이야기할 일이 있을 것 같네요.”
“물론입니다, 실례했습니다.”
나는 하나가 잘 풀린 듯한, 반대로 엉킨 듯한 복잡미묘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뭐,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도나의 고백 건은 이걸로 자연히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원망은 충분히 샀겠지.
···글쎄.
미운 정도 정인지 어째선지 좀, 그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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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을 배웅한 후 눈을 감고 있던 이모는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걸어가 닫혀있던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이불을 둥글게 만 공벌레가 한 마리 웅크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몰라. 이제 와서 뭘.”
눈은 마주치지 않았고 대답은 까칠했다.
“애초에 다짜고짜 방으로 밀어넣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는.”
“그게 아니라, 저 사람.”
“······.”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지 않아?”
“······시끄러워, 나가.”
공벌레가 굴러갔다.
쓴웃음과 함께 문이 닫힌 뒤 작은 목소리가 투덜거렸다.
“누가 놓친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