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199)
“형님.”
“음?”
“혹시 누구랑 싸우셨습니까?”
“···아니, 왜?”
나는 무심코 얼굴을 매만졌다.
실상 서로 멍청하게 허공만 후려쳐댔을 뿐이니 흔적 같은 건 없을 텐데.
“그, 아닙니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실없기는.”
『연예투데이』 강성재 기자님은 멋쩍게 웃고는 내게 인사를 건넨 뒤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에 도착하자마자 인사 대신 건넨 게 저 말이었던 셈이었다.
예전부터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곤 생각했지만 이런 직업병이 한몫을 했나 싶었다.
살짝 어색해진 얼굴로 헛기침을 한 강성재가 물었다.
“그래서, 오늘 부르신 건 일 얘기인가요?”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보기사를 하나 내줬으면 좋겠다.”
“형님 일인데 물론 도와드려야죠.”
강성재가 씩 웃었다. 늘 그렇듯 못된 일을 공모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에어리즈입니까? 아니면 홍지호 씨 쪽?”
“아니, 드라마.”
“예?”
강성재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영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양쪽 눈썹을 끌어올린다.
“저, 형님. 실례지만 지금 『삼세번』이 딱히 홍보가 필요합니까?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신나게 기사를 쏟아내는 마당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설이 뜨거운 감자인 가운데 삼세번 쪽이 같이 언급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어쨌거나 기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고, 광고 단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만한 순항이 없다.
하지만 뭐, 늘 그렇듯 이쪽의 순항의 기준은 남들과는 좀 달랐다.
“홍보라고는 해도 뭐 스토리가 어떻다거나 이런 점이 좋다거나 그런 뻔한 기사를 써달라는 게 아니야.”
“그럼······.”
내가 씩 웃었다.
“욕을 좀 해다오.”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잘 못 들었습니다?”
“이런 점이 모자라다, 이런 점이 안일하다, 이 설정은 좀 아니다, 뭐 이런 식으로 비판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강성재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황망하게까지 느껴지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까달라는 말씀입니까?”
“오냐.”
“그런 기사료를 제작비에서?”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내 사비로 나갈 거다.”
“······.”
이제는 숫제 이해할 수 없는 외계 생물체를 보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뭐, 나는 나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세간에는 욕하고 비난하는 걸 남들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위키에서는 ‘비판’ 단락을 가장 먼저 찾아보고, 무언가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흐뭇해하게 마련인 부류들이다.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그런 독니를 피하고 찻잔 위의 태풍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곤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상황이 반대였다. 외통수에 몰린 지금 막장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도리어 이들을 결집시키고 주류 여론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는 근거로 쓸 만한 깃발을 쥐어주는 게 최선이었다.
‘일단 기사가 나간다면 그중 활동적인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여러 커뮤니티에 도배를 하고 다니겠지요.’
스토리에 따라 막장도를 확 끌어올릴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다.
[결국 외부의 힘을 빌리겠다는 뜻 아니냐.]김철 선배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여전히 심통이 난 기색이 역력한 투다.
[언제는 순전히 내용으로만 승부하겠다고 하더니.]‘저는 지금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네가 마음만 돌리면 서두를 필요 없어진다니까?]‘···그러니까 그 얘긴 그만 하자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알 게 뭐냐, 하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머리를 짚었다. 이거야 원 애도 아니고.
“···형님?”
“음, 아니다. 자세히 얘기하마.”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강성재는 여전히 눈곱만큼도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형님께서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부탁한다.”
이어 몇 마디 잡담을 마친 강성재는 입맛을 다시며 일어섰다.
내게 인사를 한 뒤 발을 돌리려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묻는다.
“아참. 저, 그런데 말입니다.”
“왜? 뭔 일 있냐?”
“그것이······.”
강성재는 잠시 내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혹시 그··· 저희 누나랑 무슨 일 없으셨죠?”
“···무슨 일 말이야?”
“아뇨, 아닙니다.”
강성재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여간에 헛소리만 늘어서는.”
음.
강성재가 문을 닫고 나가기까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김철 선배가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 적당히 좀 합시다, 선배님.”
#
SBC 최도정 사장에게 있어 이현석은 믿음직한 존재였다.
작년, 『연구일지 속 보석함』의 역대급 스케일은 최도정에게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은 지원이 되어주었고, 이번 『삼세번』역시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전체적인 부진 속에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뭐, 믿음직한 것과는 별개로 그 기이한 행동은 슬슬 이해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최도정의 손에는 일간지가 쥐어져 있었다. 발간사는 연예투데이, 기자는 강성재라는 이름이었다.
어째선지 무척이나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그러니까.”
최도정이 신문을 접고 눈가를 꾹꾹 눌렀다.
“이 기사를··· 현석이 그 친구가 직접 의뢰했다고?”
“그렇습니다.”
“자기 사비를 들여서 말이지?”
“예.”
“······.”
“······이 녀석은 대체 뭘 하자는 거야!”
최도정 사장이 신문을 내팽개쳤다. 허리를 굽혀 주운 오지호 CP 역시 그렇지요ㅡ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최도정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가슴을 땅땅 쳤다.
“아니 그 놈은 그··· 좀 평범한 짓을 하면 어디가 덧난다든? 꼭 남들이 보기에 정신이 나간 짓을 해야 속이 시원하겠다냐?”
“뭐, 첫 작품부터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점점 수준이 올라가고 있잖아!”
여기에는 늘 유들유들한 오지호도 쓴웃음을 지을 도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벌칸 시리즈 때는 드라마 안에서만 또라이였다면 이제는 그 밖에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암만 그래도 제 돈 들여 자기 드라마 욕하는 글을 싣는 PD 따윈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 녀석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는 놈이 있다면 그쪽도 심리검사를 받아봐야 할 거다!”
최도정이 씩씩거렸다.
“그 녀석은 미치광이냐? 내 속을 긁어놓으려고 작정을 했다든?!”
“뭐, 본인은 시청률에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하고 있답니다. 두고 보라더군요.”
“그래, 젠장! 두고 보면 또 어떻게 기상천외하게 잘 풀리기야 하겠지!”
이현석이 그간 얻어낸 신뢰를 잘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위장약 값은 누구에게 물어야 한단 말인가. 최도정은 실로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이제 적당히 만들어도 충분히 흥할 물건을 왜 열심히 도박수에 밀어넣느냔 말이다.
오지호 CP의 쓴웃음이 짙어졌다.
“벌써 인터넷 등지에서는 꽤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평소 곱게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날뛰고 있고요.”
“···이현석 본인이 의뢰했다는 얘기는.”
“누가 믿겠습니까.”
“그렇지.”
나도 안 믿기는데 세상에 그런 미치광이가 있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최도정은 한동안 끙끙 앓았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끓는 속을 애써 달래며 포기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래, 제기랄. 알아서 하라고 해라. 어차피 내 말 아니어도 알아서 할 놈이겠지만.”
“알겠습니다.”
“다른 놈들이 얼마나 비웃고 있을지 모르겠구만.”
최도정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특히나 MBS 원광훈 사장의 폭소가 눈에 선했다.
#
같은 시각 MBS 사장실.
최도정 사장의 예상과 달리 원광훈은 딱히 폭소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니, 어느 쪽이냐면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미간에는 길게 주름마저 져 있다.
“이현석이 이놈, 대체 무슨 작정이지?”
“글쎄요······.”
해탈한 최도정과 달리 원광훈 사장은 그리 상황을 쉽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껏 용의주도하게 수많은 음모와 모략을 꾸며온 이현석이다. 그는 그 음흉하고 계산적인 놈이 아무 생각 없이 자충수를 두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녀석에게는 그김철을 끼고 있다는 의혹까지 있지 않은가.
머리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배우의 연기력을 폭발시키기 위해 드라마 몇 화쯤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수도 있는 녀석이야. 이번 것도 어떤 계획의 일부가 틀림없어.”
“하지만, 그게 뭐겠습니까?”
“그걸 알면 이러고 있을까?”
원광훈이 신경질적으로 타박을 놓았다.
뭐, 어쨌거나 지금으로선 무시할 수는 없어진 상황이었다.
원광훈은 얼마 전 방송문화진흥회 비정기 회의에 다녀온 참이었다. 화제는 KBC 관련이었고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안기식 사장이 작정하고 일으킨 KBC 사태는 1년을 넘게 끌어온 끝에 얼마 전 완전히 종식되었다. 이사회는 완전히 물갈이되었고 소방수로 끼어든 방통위는 성난 여론에 짓밟혔으며, 사퇴하려던 안기식 사장은 환호 속에 임기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 완패에는 MBS 측도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이현석이 은근슬쩍 지지성명을 냈었죠.”
“그래. 밖에서 깔짝대면서 배동··· 뭐라는 놈과 국장을 이사회와 엮어댔지. 그게 효과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당시의 이현석은 에미상이니 골든글로브니 하며 주가가 최대에 달할 무렵이었다. 심지어 당시 고작 2년차인 이른바 로열로더이기까지 했으니 여론이 흔들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일단 결과가 나오자 지금껏 눈에 밟히면 적당히 손봐주자는 수준이던 진흥회의 분위기도 변했다.
“이현석이 그놈 밟아놓을 방법 없냐고 묻는 놈들이 허다하더군.”
“아니, 애송이일 때는 손 쓸 생각도 안하더니 이제 와서 말입니까?”
측근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현재의 이현석은 SBC를 갈아엎으려고 이를 부득부득 가는 최도정 사장의 비호를 받고 있고, 무엇보다 본인의 명성부터가 적지 않은 인물이다.
하물며 김철과도 친분이 있다면 늘 하듯 짓누르는 방법이 먹힐 리가 없다. 하다못해 해외로 탈출하는 방법까지 있을 터였다.
보통 이럴 때면 조금 돌아가면 되게 마련이지만······.
“사생활 쪽은?”
“이런 바른생활 사나이가 또 없습니다.”
측근이 진저리를 쳤다.
“조사 결과 지금 드라마는 연구일지 속 보석함이 끝나기도 전에 제작 들어갔다고 합니다. 드라마에 목숨이라도 걸렸는지 원.”
“정말 목숨이 걸렸다면 재미는 있겠구만.”
의외의 핵심적인 약점은 둘 모두 그러려니 넘어가고 말았다.
사방이 막힌 원광훈 사장이 콧잔등을 문질렀다.
“아무튼, 그런 얘기까지 들었는데 이렇게 날뛰게 두면 나나 너나 재미없어. 뭔 생각인지 어떻게든 촬영대본이나 시놉시스라도 구해와 봐.”
“그것이, 저······.”
그 말에 어째선지 측근이 슬쩍 눈치를 보았다. 원광훈이 혀를 쯧 찼다.
“역시 어렵겠어?”
“그게, 생각보다 쉽게 구하긴 했습니다.”
“그 얘길 왜 먼저 안 해!”
원광훈은 측근을 타박해 얼른 원고를 받아들고 페이지를 넘겼다. 무슨 생각인지 알면 대처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원광훈은 몇 페이지가 넘어가자 점점 표정이 요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반도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원고를 집어던졌다.
고성이 쏟아져내렸다.
“야, 이 자식아. 지금 장난해?”
이 결과를 예상했던 측근이 눈을 질끈 감았다.
“시동생이 개콘 보다 죽고 시누이는 막드 보다 죽는다고? 그리고 줄줄이 사탕으로 죽어나가?!”
“······.”
“상식적으로 생각을 좀 해봐라. 이현석이에 김철이 미치광이도 아니고 이딴 스토리를 짜겠나!”
불행히도 둘은 그 정도의 미치광이들이 맞았다.
하지만 대개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은 정말 진실이 눈앞에 있을 때는 장님이 되게 마련이었다.
측근이 우물쭈물했다.
“그것이··· 저도 믿기 어렵긴 하지만 어렵게 포섭한 촬영 스태프한테서 흘러나온 것이라······.”
“이현석이 그놈이 눈치 채고 우리 놀리는 거야. 까발리고 연 끊어!”
원광훈 사장이 씩씩댔다.
“이런 헛소리에 놀아날 시간에 곽태영이한테나 가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불행히도 측근이 갖은 회유와 달래기로 간신히 포섭한 스태프는 억울하게도 일주일 만에 실직하게 되었다.
정말 그 내용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