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05)
최근『삼세번』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남주인공 최대웅이 될 것이다.
그가 뛰어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온전한 스포트라이트와 연출의 지원을 받았을 때 어느 정도까지 끌고 갈수 있을지 예측한 이 역시 거의 없었다.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가 아닌 드라마이기에 할애하고 보여줄 수 있었던 모습인 셈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최대웅 ㄹㅇ 미쳤네;
-혼자서 세 명 나오는 만담을 할 수 있음 ㄷㄷ
-이설 못지 않은데? 경력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단독으로 나오는씬이 절반이 넘지만 아무도그걸 지루해하지 않는다. 최대웅의 연기에서 진정 놀라운 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더해 탐정 역의 그의 캐릭터 역시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본 인격은 홈즈 팬, 할배는 브라운 신부 팬, 양아치는 뤼팽 팬…….
-첩자가 있는데?
-괴도 팬부터 체포해야지 뭐함ㅋㅋㅋㅋ
세 인격의 사고방식과 목표점이 각기 다르다보니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각각의 인식과 추리과정이 달랐다.
탐정이란 본디 빼어난수준만큼이나고독한 존재라 홀로 사건올 추리하는 과정이 재미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쪽은 홀몸인데도 서로 부딪치고 고성이 오가는 게 예사였고, 그렇게 소란스럽게 진상을 찾아가는 모습에는 꽤나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삼세번』은 최근 화에 이르러 아예 통째로 남주인공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는데 이것이 인기를 더욱 키웠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아예 최대웅 혼자가주연인 추리극이었어도 재미있었겠다는 호평까지 나왔다.
자연히 같이 높아지는 건 이현석의 평가였다.
-이현석은 최대웅끌어들일 때부터 이렇게 써먹을 작정이었겠지?
-욕 바가지로 먹는데도 숨죽이고 있으면서 말이지ㅇㅇ
-진짜 미친놈인듯;;
-최대웅도 인터뷰에서 저런 또라이 본 적이 없댔잖어. 몇주 만에 캐릭 만들고 연습하느라 생고생 했다고.
-NG 내면 ‘엉? 못해? 왜 못 해? 내가보기엔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반응이었다더라ㅋㅋ
-20년차 갈구는 3년차 ㄷㄷ
이현석의 입장에서 변명을 해보자면 그건 잘 굴러가던 계획을 말아먹힌 입장에서 약간의 심술을 부린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대웅은 여간한 인물이 아니었고, 결국 본전도 못 건졌다.
수많은 동서양의 고전들은 사사로운 원한으로 저지른 행동이 잘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경고하곤 한다.
그리고 뭐,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청률 30퍼센트 돌파!”
“역시 최 배우님이십니다!”
“최고예요!”
쏟아지는 스태프들의 찬사 속에 최대웅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성공은그에게 있어서도 여러모로 감명 깊은 것이었다. 뭐니뭐 니해도 슬슬 쇠퇴기가 아닐까 했던 자신이 한 발 더 나아가게 된 것이니까.
자연히 목소리에도 흥이 실렸다.
“으하하, 뭐 반은 이 감독님 덕이지요! 솔직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하니까 됩디다!”
“이현석 피디님은 배우를 배우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들 하시니까요.”
“이젠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생각입니다, 흐흐.”
그 전까지의 낙폭이 있었으니만큼 분위기는 반쯤 축제에 가까웠다.
최대웅은 사고를 친 자신을 되레 도와준 이현석에게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고, 사방에 오랜 파트너인 곽태영에 비할 만한 인물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현석으로서는 실로 끔찍한 일이었지만 이제 와서는 어찌 할 도리도 없었다.
“어째서지…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그렇게 이현석이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축제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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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번』에 관련된 배우며 스태프들이 모두 사기충천해있는 와중, 또 다른 주연인 이설은 상대적으로 거기서 비껴가 있었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몇 개월째 찾고 있는 물건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있었고, 그것과는 별개의 이유도 있었다.
‘또 빼앗겼어……•’
엄지의 손톱이 다른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설의 시선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떠드는 최대웅에게 못 박혀 있었다.
특유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탓에 착각하기 쉽지만 이설은 딱히 욕구가 없는 성격이 아니다. 어느쪽이냐면 도리어 욕심쟁이에 가깝겠지.
다만 그 방향성이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이설은 홀끗 시선을 돌렸다. 이현석의 시선이 가만히 최대웅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쪽이냐면 만악의 근원을보는 것처럼 해탈한 표정. 하지만 이설은 단순히 그 시선 안에 자신이 없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건 내가 받았어야하는 건데. 내 것이었는데.
‘최대웅.’
일찍이 이도나나 강아라를 노려보던 눈이 방향을 돌려 연기계의 대선배에게로 향하고一눈치 빠른 매니저가 대경실색해 얼른 돌려세웠다.
“설아, 아무리 생각해도 40대 아저씨는 네 라이벌이 아니거든?!”
“…남녀노소에 의한 차별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언니. 세상은 평등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딴 평등은 인류 역사에 안와!”
반쯤 농담 같은 대화지만 강주연은 필사적이었다. 그녀 역시 슬슬 이 제멋대로인 배우님의 성격을 읽을 정도의 관계가 되었던 것이다.
진심이다. 이건 순도 100퍼센트 진심이다.
까마득한 선배인 이도나조차 들이받았던 이설이다. 최대웅에게도 못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던가.
혹시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강주연은 절로 뱃속까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걸 어떻게 뜯어말린다……
궁지에 몰린 강주연의 두뇌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망할 놈의 이현석… 그래. 장본인인 이현석을 끌어들이면 되는거 아니야? 빠르게 방안을 찾아낸 강주연은 내심 박수를 쳤다.
“생각해봐, 애초에 지금 최대웅 배우님 덕에 이현석 피디도 잘 된 거잖아. 그럼 너도 고마워해야 맞는거아니니?”
그런데도 마음에 안 든다면 너는 이현석의 성공이 마음에 안 드는 이기적인 애다, 대충 그런 뉘앙스의 논리였다.
하지만 그런 강주연의 회심의 한 방에 이설은 되레 의아한듯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응?”
“제가 왜 고마워해야 돼요?”
“아니, 왜냐니……”
강주연은 말문이 막혔다. 이설이 이상하다는듯 덧붙였다.
“저런 사람 없어도 감독님은 성공하셨을 거예요. 세계 최고니까요.”
“……”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말하고 있는 내용은 그다지 제정신은 아니었다.
자기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어린 딸이라면 아직 훈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설은 이현석의 딸도 아닌데다 슬슬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설의 말에는 그 정도의 뚜렷한 신뢰와 명확하기까지 한 감정이 있었다.
강주연은 늘 그렇듯 한숨을 내쉰 후 더 말하지 않았다. 내심 하던 결심만 더 굳힐 따름이었다.
‘뭐, 이걸 제정신인 대사로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이겠지……’
배우에게 필요하다면 매니저는 준비해줄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주연이 고개를 저은 후 물었다.
“참, 전에 카페 갔다온 건은 어떻게 됐어?”
이현석 얘기에 살아났던 목소리가 금세 수그러들었다.
“…언니가 착각한모양이에요. 찾던 물건이 아니었어요.”
“그래.”
“커피도 마셨는데.”
이설은 어지간히 원한이 맺힌 듯 커피도 마셨는데, 하고 몇 번을 중얼거렸다.
카페 『헐록 숌즈』.
이설을 처음 만나고 스카웃한 곳이지만 정작 그 주인은 여태껏 만나본 적이 없다. 언젠가 한 번 인사라도 하러 가야할 것 같다고 강주연은 생각했다.
‘뭐, 아무래도 이번에는 이쪽이 빨랐던 것 같고.’
이후 강주연은 늘 그렇듯 돌출하려는 이설을 달래가며 간신히 촬영을 끝냈다.
불퉁해진 얼굴로 차에 오른 이설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뒷좌석에 뭔가 무진장 큼지막한 박스가 놓여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건 뭐예요?”
겨우 봤구나. 강주연은 애써 입꼬리를 여미고 표정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선물.”
“제 거요?”
“그래.”
“와아.”
실로 눈곱만큼도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와아’였다. 이설은 어조만큼이나 별 기대 없는표정으로 박스를 열었다.
본래 그녀는 딱히 물욕이 없는 성격이며 좋아하는 음식도 떡볶이니 국밥이니 하는 서민적인 종류 밖에 없다. 선물로 그런 이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럴 터였다.
하지만 뚜껑을 연 이설의 표정에는 곧 변화가 생겼다. 굳게 다물려 있던 입이 서서히 벌어지고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표정을 보고싶었지. 강주연은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건…….”
“고생했다니까.”
말을 잇지 못하는 배우에게 강주연이 짐짓 으스대듯 말했다.
“차라리 아예 비싼 물건이면 낫지, 벌써 쓰레기장에 가 있지 않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말해두지만 적당한 거 아무거나들고 온 거 아냐. 사람풀어서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한 진품이야.”
진품.
그렇게 말하기는 영 싸구려틱한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진위가 무척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걸 위해서 강주연은 제 아빠한테 때 아닌 애교와 엎드려 빌기를 행해야 했다.
실로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저 표정을 보면 그만한 보람은 있었다.
이설이 큼지막한 선물을 끌어안았다.
“언니.”
“응.”
“고마워요.”
“그래.”
평상시도 그렇게 솔직하면 좀 좋을까, 그런 마음을 애써 묻어둔 채 강주연은 고개를 돌리고 시동 을걸었다.
…뭐, 이제는 전부 저쪽에 달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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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발신인에 적힌 이름을 본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이설과 문자라는 상관관계는 그 정도로 생소한 것이었다.
사실 전화 쪽은 덜 생경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이설과 뭔가 사적으로 연락을 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뭐냐?]
뒤에 있던 김철 선배가 어깨 너머로 슬쩍 들여다보았다.
나와 한창 계획을 가다듬던 중 방해가 들어온 터라 언짢은 얼굴이던 선배는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조금 기묘한표정이 되었다.
[뭔 내용이냐?】“글쎄요.”
어디보자. 꽤 길고 장황한 내용이긴 한데, 한 마디로 줄이자면…….
“시간될때 한번보자는데요?”
[…왜?]“글쎄요. 늘 그렇듯 제 계획을 망쳐놓을 깜찍한 무언가라도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나는 한숨을 쉬며 달력에 쓰인 모레 저녁의 일정올 지웠다.
뭐, 별 얘기는아니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