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08)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들어선 식당은 업종 변경을 했다면서도 경양식집으로서의 고유성을 거의 유지하고 있었다. 각자 주문을 마치자 웨이터는 고개를 숙인 뒤 사라졌다.
식당에 손님은 거의 없었고, 간혹 그들을 알아보는듯한 이들도 굳이 말을 걸지는 않았다. 덕분에 이설도 간만에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연예인이란 크든 작든 관심병자라는 말이 있지만 이설은 타인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적성에 영 아닌 직업이었다.
식사가 나왔다. 이설은 햄버그 스테이크를 썰어 입 안에 넣었다.
이현석이 슬쩍 물었다.
“어떠냐?”
“맛있네요.”
“그렇지?”
확실히 맛있었다. 정확히는 어째서 사람들이 이걸 맛있다고느끼는지 이해할수 있었다.
“……”
그런 대화가 이루어지는 중에도 맞은편의 유지아는 여전히 심통이 나 있었다. 그야 한껏 꾸미고, 발돋움을 하고 온 반응이 그거 였으니 당연하겠지 .
이현석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지만 어쨌든 달래보기 위해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유지아 역시 그걸 눈치 챘으면서도 처음으로 삐친 기세를 되돌리기가
어려운지 고개를 숙인 채였다.
하지만 뭐,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현석은 아무도 없는 옆을 몇 번이고 돌아본 끝에 간신히 무언가를 깨달은 기색이 되었다.
“크흠, 지아야.”
“…왜 그러세요?”
유지아가 불퉁하게 대답하자 이현석은 재차 헛기침을 했다.
“아니, 아까부터 말하려고 했다마는… 오늘은 차림새가 꽤 어른스러워서 놀랐다.”
“……”
“잠깐 몰라볼 뻔했어.”
돌아온 말은 무언이었다.
하지만 만면에 꽃이 피듯 화색이 번져나가는 모습올 숨기지 못하는 이상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현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와중 이설은 그가 보고 있던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알수 없었다. 그런 종류의 계약이었다.
『첫째: 사용자 이설은 이현석이란 인물을 소생시키는 것을 소원합니다.』
『둘째: 사용자 이설과 이현석이란 인물의 인과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셋째 : 그 연결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용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힘이 증가합니다.』
『넷째 : 그 연결이 옅으면 옅을수록 사용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힘이 감소합니다.』
따라서 죽은 이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그와 무연(無緣)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그 물건은 말했다.
혹은.
『그 연결을 포기할 수 없다면, 사용자 자신을 바꿔 써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이설에게 주어진 빙의 능력이란 타인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종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도리어 해당 인물이 이설의 기억을 얻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쪽이었고, 끝나고 나면 당시의 기억도 대부분 소멸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무의미하기까지 한 능력.
그런 게 주어진 이유는 몇 번을 시도해본 끝에야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라면 단매에 언성을 높일 강주연 매니저가 며칠째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다.
궁금해진 이설이 캐묻자 그녀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설아……”
“말씀하세요.”
“그, 놀라지 말고들어. 설이 네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셨다고해.”
그래서 쩔쩔맸던 건가. 이설은 가볍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
“……”
“…아니, 그것뿐이야?”
심드렁한 반응에 강주연은 당황했다. 하지만 어느쪽이냐면 이설 본인의 당황스러움이 훨씬 컸다
지금 나는 어떻게 반응했지?
이설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있어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늪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그런 상대에게 품고 있던 감정도 결코 얄팍한 것이 아니었다.
공포, 불안, 초조함, 긴장, 절망, 원망, 혐오감一
아버지는 그녀에게 있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원천이었으며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소식임에도 이설은 어떤 감상도 들지 않았다.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양 그저 담담하기까지 한 기분이었다.
그제야 이설은 자신에게서 무언가가 줄곧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꿔 쓴다’는 말의 진짜의미도.
지금의 나는본래 이설의 몇 퍼센트일까, 그건 그 이후로 떠나지 않는궁금증이었다.
“오빠, 오빠. 그래서요.”
“으음, 그건 곽 감독님이 나빴군.”
“그쵸? 헤헤.”
어느새 유지아는 기분을 풀고 재잘대고 있었다. 이현석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유지아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 광경에 이설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후후”
“…설이 넌 뭐가 그렇게 재밌냐?”
“아니에요, 그냥.”
그게 궁금증으로 그칠 수 있는 건 정말 중요한 건 무엇 하나 잊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이설은 생각했다.
“두 분 모습올 보니 왠지 예전 감독님과 제가 생각나서요.”
“…예전?”
“역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요. 저 떡볶이 사주셨을 때.”
이설이란 인간의 기원.
눈을 끔벅이던 이현석은 순간 놀란 기색이 되었다.
“너, 알고 있었냐?”
“왜 모를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아니, 예전에 네 태도가……
이현석은 말을 잇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던 유지아는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걸 감지했는지 불만스런 표정이 되었다. 이설은 거기에 미소를 돌려주었다.
이설이 보기에 유지아는 예전의 자신과 꽤 비슷했다.
절망적인 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구해지고, 계속해서 감정을 쌓아오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무렵에는 모든 게 끝나 있었던 것이.
아니, 설령 조금 일찍 알았더라도 별반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현석에게 있어서는 이설이든유 지아든 마찬가지로 그렇게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처음 만났을 무렵 어리고 작았다는 이유로.
하지만 지금의 이설은그런 이유로 납득하고 물러서기에는 너무 많이 와 있었다.
“그러면 혹시 누나도……”
무어라 말하려던 이현석은 문득 잠깐만, 하고 양해를 구한 뒤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도착한 문자를 읽고는 기묘한 표정이 되어 시선을 돌린다.
이설이 빙그레 웃었다.
#
“…저 갈게요, 오빠”
“그래. 조심하고.”
무언가 미련이 남은 얼굴로 망설이던 유지아는 결국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떠났다.
이설의 예상대로 그녀는 끝내 자신이 온 용건을 밝히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같이 있던 탓이 컸겠지.
하지만 이설은 설령 단 둘이었더라도 방금 전의 불쾌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른다면 요원한 일 이라고생각했다. 뭐니뭐니해도 예전의 이설 역시 그랬으니까.
유지아가 보이지 않게 되자 이현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넌 정말 오늘도 강매니저 없이 혼자 온 거냐?”
“네.”
“도대체가……•”
이현석이 머리를 꾹꾹눌렀다. 이 녀석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반대로 익숙한 표정에 이설은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더 신경써줬으면 좋겠다. 예전에 그랬듯이.
“괜찮아요. 언니한테 허락은 받았어요.”
전화를 꺼내 연락하려는 걸 제지하자 이현석은 더욱 괴상한 얼굴이 되었다.
“…그 강주연 매니저가 너 혼자오는 걸 허락했다고? 심지어 나 만나는데?”
“네.”
“정말로?”
“정말로요.”
한동안 진위를 살피던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너무 말도 안되는소리라 도리어 거짓말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 었다.
이현석은 이내 뭔 수를 쓴 건지, 하고 혀를 찬 뒤 차문을 열었다.
“가자. 소속사로 데려다주면 되지?”
“집으로요.”
“뭐?”
“어차피 가봤자 다시 집에 갈텐데요. 주연이 언니도 없고.”
이현석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누구씨는 사람 자는 중에 집에도 쳐들어왔는데 상관없겠지.”
“……”
이설은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도나 선배님?’
“어디 가서 말하진 마라. 안좋은 얘기 나올 테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당부하는 말에는 짙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이설이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유지아였다면 아마 감동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건 상대를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어린애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서예린에게라면 이런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설의 기분은 더욱싸늘하게 변했다.
“안해요.’
“그래, 착하다.”
“착하지도 않고요.”
“……?”
이현석이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이설은 생각을 고쳤다.
역시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이래서야 얼마가 지나더라도도 저 사람의 안에서 나는 새파란 어린 애에 불과하다.
하지만 본디 이현석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한 번 정한 걸 쉬이 풀어주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방법은…….
“설아?”
“……”
유지아에 이어 다른 딸내미마저 삐친 기색에 이현석은 재차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늘 일진은 왜 이러나하는 표정이 서글펐다.
어떤 유령이 열심히 위로하는 사이 차는 대화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집에 도착할 무렵, 이설은 비로소 어떤 결정을 내렸다.
이설이 눈을 감추는 사이 이현석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자, 도착했다. 닷새 뒤까진 일정 없으니까 푹 쉬고……”
“여긴 집 아니에요.”
“…뭐?”
“백 미터 떨어져 있어요.”
“……”
그야말로 억지에 강짜였다. 이현석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얘가 오늘따라 대체 왜 이러나 하는 황망한 심정이었지만 이설의 억지는 완강했다.
“집에까지 데려다준다고 하셨잖아요.”
“…말장난하냐, 지금?”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세요. 저 언니보다 잘 타요.”
그야 믹스커피만 탈 줄 알아도 그 누나보다야 낫겠지.
이현석은 재차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뭔진 몰라도 그걸로 화해하는 거지?’
“…네.”
“그럼 됐다.”
만약 이런 제안을 한 상대가 이도나였다면, 한유미였다면, 하다못해 강아라였다면 이현석은 당연히 거절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설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유지아와 마찬가지로 까마득한 꼬맹이인.
방심했다고 해도 좋올 것이다.
이현석이 현관문 안에 들어서자 이설은 뒤이어 돌아서며 문을 닫았다.
철컥, 하고 삼중 보조키가 잠겼다.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설은 자연스레 신발을 벗으며 빼낸 건전지를 숨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