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16)
SBC 일산제작센터, 『삼세번』의 촬영장은 오늘도 소란스러웠다.
“아니, 그 느낌이 아니라… 옛날 가스등 같은 느낌으로좀 해봐!”
“카메라 이대로 올려! 황분선? 얼씨구 어디서 줏어들은 건 있어가지고. 이 피디님이 너보다 모를 것 같아?”
“이설 씨가 들 빠루 어딨어요? 미술감독님도 모르시겠다는데? 아뇨, 빠따 말고요. 그건 다음 씬!”
촬영 전에는 모두가 바쁘다.
특히나 이현석은 이것저것 주문이 많은 케이스라 ‘늘 하듯이’ 같은 흔한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 매번 목표가 달라지니 스태프들은 그때마다 혼선을 겪게 마련이었다.
그래도 군말이 나오지 않는 건 이현석이 실적으로 충분 이상의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괴상하고 이해가 안 되는 지시를 내려도 결국은 모두 극에 도움이 된다 – 그런 믿음을 사기는 결코 쉽지 않다.
작가로서 김경숙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마법을 원하고 있습니다, 김 작가님!”
“…제발 사람이 알아들을 말로 좀 해주지 않을래요?”
암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을까.
김경숙은 뒷목을 꾹꾹 눌렀다. 까딱하다간 흔한 레파토리처럼 잡고 넘어가지 않올까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
머리를 붙잡고 있자니 예전 일이 떠올랐다.
아직 『삼세번』이 기획 단계에 있을 무렵, 김경숙 작가는 SBC최도정 사장과 잠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현석 피디가 어떤 사람이냐고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조금 알고 싶어서요.”
“음, 그렇군요.”
당시 최도정 사장은 드물게도 두통이 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달 모양 폭죽을 쏘고 싶다고 해서 하라고 하면 발사대 만들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느낌의 친굽니다.”
“…네?”
“그런데 또 그 우주선이 달까지 가긴 잘 간단 말이죠.”
당시의 김경숙으로서는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 없는 비유였다.
“잘 이해가 안가는데요.”
“뭐, 이건 아무래도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시면 모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김경숙은 그두루뭉술한 발언에 내심 불만을 가졌으나 최도정이 본래 그런 사람이겠거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수 있었다.
최도정은 그 누구보다도 이현석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 외에는 없습니다, 작가님 !”
이현석의 눈은 번뜩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길이 옳은 길이라는 완연한 확신이 그 안에 한가득 들어차있었다.
하지만 그런 눈과 달리 입이 내뱉고 있는 건 헛소리였다. 적어도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이런 미친 소리를 내뱉을 리 없었다.
김경숙은 간신히 두통을 참으며 애써 목소리를 냈다.
“그러 니까… 지금까지 일어 난 모든 사건을 마법 때문으로 하자는 말인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옛날에 밍키가쓰던 그 마법?”
“아뇨, 마법이라고 해도 단순하게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현석이 고개를 저으며 표정을 진지하게 했다.
“영어권에서 보자면 일반적으로 매직(Magic)이라고 통칭합니다만 언령의 이미지가 강한 스펠(Spell), 저주나 주술의 이미지가 강한 소서리(Sorcery)가 있습니다.”
“……”
“더해 동화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참(charm), 의식으로는 인칸테이션(Incantation)과 위치크래프트(Witchcraft)가 있지요. 밍키가 쓰던 건 스펠과 참의 혼합에 가까울 겁니다.”
잘 아시네, 혹시 호그와트 나왔어요?
그렇게 비꼬려는 생각보다도 황망한 심정에 말문이 막히는 게 더 컸다.
김경숙은 그간 이현석에 대해 나름 겪고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현 『삼세번』의 호평은 순전히 이현석의 배려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름대로 고마움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모든 사건을 마법으로 퉁친다니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본디 이현석의 특기는 이럴 때에야 발휘되는 법이었다.
“작가님, 본래 미스터리와 추리 장르는 비슷하게 취급됩니다만 사실 명백하게 구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요?”
이현석의 목소리가 자못 은근해졌다.
“지금까지 작중에서 네 명이 죽었습니다. 혼자서 했다고 한다면 네 개의 살인 트릭을 장치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형사 출신인 남주인공이 눈치채지 못했어야 한다는 뜻인데 과연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아픈 곳올 찔린 김경숙 작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름의 트릭은 염치불구하고 이곳저곳에서 조언을 받아 구상해 두었지만 그녀는 추리소설가가 아니다. 완성도가 썩 높다고는 말할수 없었다.
경찰은 막장드라마의 법칙대로 부패했거나 매수당했다고 쳐도 작중 뛰어난 두뇌로 회자되는 남주인공이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결국은 트릭이 기괴해지던가 남주인공이 어리석어지던가의 양자택일밖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쪽이든완성도에 악영향을끼치겠지.
“하지만 마법! 마법이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모든 살인사건은 마법으로 일어났으며 당연히 일반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남주인공은 형사로서의 타고난 감으로 그 완전범죄의 이상성을 알아채는 것이다.
“이로서 남주인공을 뛰어난 인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미지의 수법과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트릭이라면 어떤 명탐정이라도 헛다리를 짚는 게 이상하지 않지요.”
진상을 찾아가던 남주인공은 잠시 절망하지만 이내’마법’에 관한 새로운 상식과 법칙을 익혀가며 그것을 쫓는다.
마법이라고 생각대로 다 될 리가 없다. 나름의 법칙이 있고 발생한 결과가 있는 한 원인을 밝혀낼 수 있다.
그리고 해낸다.
도리어 천재성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머글’에게 방심하고 있던 여주인공은 그대로 한 방 먹고 비로소 상대를 경계하게 됩니다. 이로 인 해 계속 지적되어왔던 남녀 주인공간의 관계 문제도 해결되겠지요.”
『삼세번』에서 그간 단점으로 지목되어온 몇몇 요소 중 하나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관계성이 옅다는 것이었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동정심을 느껴 사건에 뛰어들고, 약간의 호의를 표하고는 있지만 거기까지였다. 추리극이라면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이 이상 가까워질 수는 없다.
하지만 미스터리물이라면 얼마든지 드라마를 끼워 넣을 수 있다. 본래 마녀와 사냥꾼 사이의 이야기는 고대 신화로부터 전해져 내려오지 않던가.
“미지의 살인극에서 두 사람의 체스게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겁니다. 클라이막스를 만들기도,관계를 꼬기에도 이맘큼 편한 상황이 또 있겠습니까?”
“으음……”
본디 이현석의 무서운 점은 누가 봐도 헛소리인데 가만히 듣다 보면 어쩐지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점이었다.
김경숙 작가도 ‘듣고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다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녀가 반박할 말을 고르는 사이 추가 지원군이 쐐기를 박았다.
“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설이었다.
이현석이 안도한 듯 헛기침을 하고 김경숙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진심이야?”
“이현석 감독님 말씀이잖아요. 분명히 잘 될 거예요.”
“그거야 그렇겠지만……”
내심 수십 년의 경력 안에서도 최고 수준의 주연이라 생각하던 인물까지 동의하자 김경숙 작가도 진지하게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녀는 미심쩍었으나 대저 이현석의 ‘헛소리’가 나쁘게 끝난 경우는 없지 않던가.
뭐, 그게 근거로 쓰이는 건 이현석으로서는 전혀 본의가 아닌 일이었지만.
“잠시 생각해보죠.”
“부탁드립니다.”
김경숙 작가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이설은 이현석에게 웬 서류뭉치를 건넸다.
“이건?”
“이도나 선배님이 들고오셨어요. 대화가 너무 길어져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도나 씨가?”
이현석은 혹시 이야기를 들었는가 싶었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표정을 풀었다. 생각해보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유령이 음흉하게 웃었다.
[죄다 마법으로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 뭔 대책을 세울 수 있겠냐, 흐흐흐.]“맞는 말씀입니다, 하하하!”
이현석과 김철이 서로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이럴 때만큼은 사이가 좋은 둘이었다.
“……”
글쎄, 막장드라마를 만들려면 마법에 대해 그런 자세한 설정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아닐까 – 이설은 재차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막장에 대해 아직 공부중인 배우님은 계속 겸허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뭐. 조금 여러모로 지치기도 했고.
다만 그 외에 대해서는 제법 신랄했다.
“그런데 수염 감독님은 왜 매번 그렇게 잘난 척만하시는 거예요? 하시는 일도 없으시면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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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이도나에게 이야기를 들은 곽태영은 크게 감탄했다. 조금 즐거운 것처럼도 보였다.
“역시 상식적으로 가질 않는군요.”
“…솔직히 제정신인 소리로 들리진 않던데요.”
“그거야말로 이현석 감독의 장점 아니겠습니까.”
거기엔 이도나도 입올 꾹 다물 뿐 무어라 대꾸하진 않았다.
현재의 『삼세번』이라면 충분히 안주할 만한 위치에 있지만 이현석은 결코 변화와 도전을 포기 하지않는 것이다.
“『연극처럼 살다』가 지구에만 머물렀다면 그 이후 호평 받은 요소는 없었을 겁니다. 그 정도의 고만고만한 성공이었다면 이 감독의 지금 위치도 없었을 테고요.”
곽태영은 그런 끝없는 도전정신이야말로 이현석에게 진정 배울 만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뭐, 세상 만사란 본디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저희가 앞선 것 같군요.”
곽태영은 빙그레 웃으며 반쯤 완성된 CG를 바라보았다. 이도나도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거의 된 건가요?”
“예, 다행히 다다음주 방영에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24화… 아마 정면으로 맞붙게 되겠네요.”
“예.”
『삼세번』의 ‘마법’에 대해 『영원의 시대』가 꺼내든카드는 ‘우연’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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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나는 최근 기분이 좋았다.
“엄마, 지아가 오늘 방영분은 꼭 보래!”
“애초에 볼 거였잖아.”
“광고한다고 딴 채널 틀지 말라고. 처음부터 봐야 되니까!“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친구의 변화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 불안해보이던 유지아는 요즈음 여러모로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역시 그것 때문이겠지?’
얼마 전에 코디를 잘 해서 보낸 게 나름 좋은 영향을 끼친 모양이라고 최미나는 내심 짐작했다.
‘그렇지, 인간이 트리케라톱스가 아니고서야 지아가 그 정도로 꾸미고 갔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렇게 곰이 공룡으로 새로운 진화를 이루고 있던 와중 9시가 되었다.
『영원의 시대』의 인트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