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Drama King RAW novel - Chapter (217)
“오, 그래… 이번엔 그렇게 나오셨군.”
얼마 전, 『삼세번』의 새롭고 멋진 설정에 대해 들은 최도정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반쯤 체념한 어조였다.
“혹시나해서 묻겠는데 김경숙 작가는……”
“무척 의욕적입니다.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습니다.”
“…배우들은?”
“이설 양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미심쩍던 최대웅 씨도 마음이 동한 기색입니다. 양대 주연이 그러다보니 다른 배우들도 따라가고 있고요.”
오지호 CP는 굳이 조연인 경찰 4인조 – 샤이와 예능인 친구들이 가장 협조적이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최도정 사장의 얼마 남지 않는 머리카락에 큰 위험이 닥치기엔 충분했다.
“그렇군……’
최도정 사장은 한동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별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노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제발 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냐, 그놈은!”
“하하……”
“웃을 일이냐? 엉? 지호야,『얼룩 끈』에서 범인이 마법으로 뱀을 만들어서 죽였다고 생각해 봐라. 『공포의 계곡』에서 사실 모든 사건이 마법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라고! 보는 사람들이 뭐가되냐!”
둘 모두 셜록 홈즈 시리즈다.
사실 최도정 사장은 『삼세번』에서 감히 뤼팽 팬따위가 나대는 꼴이 유일한 불만이었으나 지금 같아서는 뤼팽이 아니라 루팡 3세 팬이라도 봐줄수 있을 것 같았다.
펄펄 뛰는 사장에게 오지호 CP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이현석 피디면.”
“…되겠지. 그놈이면.”
최도정 사장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끔찍한 거야. 뭐라고도 못 하잖아.”
“하하.”
“간만에 『석유해협의 게임』보다 취향인 물건이 나왔다싶더니만……•”
심히 울적한 어조였다.
“…오늘 일정 없으면 거기나가봐라. 뭔 짓을 저지르는지는 알아야지.”
“알겠습니다.”
#
「막혔군.」
백서중- 남주인공의 양아치 인격이 코웃음을 쳤다.
잔잔하고 고요한 BGM이 되레 사방이 막힌 듯한 답답함과 불안함을 불러일으켰다.
「현존하는 어떤 수사 기법을 동원해도 먼지 한 톨 나오지를 않아. 집주인 나리.」
「으음.」
「제기랄, 이쯤 되면 완전범죄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던지, 돌머리라고 써서 붙이고 다니 던지 둘 중 하나구만.」
작게 한숨을 내쉰 남주인공이 물었다.
「…영감님은 뭔가 알아낸 거 없으십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하네. 늘 하듯 범인이 되어보려고 했네만… 동기는 있어도 방법이 없더군.」
「…….」
「항복일세. 나로서는도저히 모르겠어.」
노인이 좋아하는 브라운 신부의 특기는 범인의 입장이 되어 형이상학적 사고를 통해 범인의 심리 와 그 원인을 쫓아가는 것이다.
흔히 명탐정으로 불리는 어거스트 뒤팽,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 등의 이성적인 추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되레 그렇기에 막혔을 때 돌파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마저 틀어막히자 남주인공은 가만히 눈올 감았다.
「불가능한 일을 모두 제하고 나면, 아무리 믿을수 없어도 그것이 진실이다.」
「『네개의서명』이군.」
「어쩌면… 정말로 전부 사고였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어째?」
가장 먼저 반발한 건 양아치 인격이었다.
「이봐. 장난해, 주인장? 한 집에서 네 명이나 되는 인간이 우연히 사고로 죽어나갔다고? 아예 벼락을 네 번 맞았다고 하지 그래?!」
「기네스북엔 일곱 번 맞은 사람도 있잖아.」
「이런 제기랄……! 지금 말장난이나 할 때야?」
욕설을 퍼붓는 양아치와 달리 노인은 비교적 고민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나는 아직도 미심쩍네만… 나오는 게 없어서야 도리가 없군. 자네는 이제 경찰이 아니니 포기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걸세.」
r…….」
「하지만 우선 피의자를 한 번 더 만나보는 게 어떻겠나? 뭔가 건질 게 있을지도 모르지.」
피의자는 말할 것도 없이 한 사람이다. 남주인공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응낙했다.
남주인공은 발품올 파는 데 집중하느라 잠시 접어두었던 카페를 다시 열고 피의자를 초청했다.
류가영 – 여주인공은 늘 그렇듯 침울한 안색으로 초대에 응했다. 남주인공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조금 괜찮아지셨습니까?」
「제가 괜찮지 않을 게 뭔가요. 돌아가신 건 다른 분들인데……」
「…실례했습니다.」
분위기는 여전히 고요하다.
하지만 옛날 ‘익스페리먼트 인 테러’를 연상케 하는 OST가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남자는 위로를 이어가면서도 매서운 눈으로 안색을 살피고, 여자는 여전히 슬픈 기색을 유지하며 안색을 음영으로 가린다.
이어지는 별 내용 없는 대화들. 표정 역시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세한 몸짓과 그걸 산들바람이 불듯 줌인 줌아웃으로 일렁거리게 만든 카메라는 둘의 탐색전을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비추어내고 있었다.
「저…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합니다만.」
「예?」
「돌아가신 시어머 님이나 다른 가족 분들과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으셨더군요.」
여자가 눈을 깜박인다.
「그건……」
「물론 슬픔이 더 크실 거라는 건 압니다만, 조금 후련한 감정도 있으신 게 아닙니까? 너무 일을 나쁘게만보지 마십시오.」
주저하는 듯 하면서도 남자의 눈은 철저히 표정을 주시하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여자가 벌떡 일어선다.
「어떻게……!」
매섭게 뜬 눈에는 속눈썹마다 방울방울 눈물이 맺혀 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
사람이 죽었다고요, 그렇게 되뇌이는 얼굴에는 뚜렷할 정도의 슬픔만이 진하게 드러나 있다.
남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실례했습니다.」
잠시 후 울먹이듯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홀러 나왔다.
「저를, 의심하시는 건 이해해요. 형사님들도 그러셨고. 실제로 조금 싫올 때도 있었어요.」
「…….」
「하지만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더 이상 바뀔 수도 없어요. 그게, 안타깝지 않을수가 있나요?」
「미안합니다.」
남자는 재차눈을 내리깔며 사과했다.
「…아뇨. 저야말로 죄송해요.」
입술을 깨물던 여자도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둘의 만남은 그렇게 어중간한 분위기로 끝났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떠난후 양아치 인격이 툭 내뱉었다. 영 본의가 아니라는 투였다.
「저런 걸 봐서는 범인이 아닌 것 같고… 저 여자가 아니라면 정말 사고일지도 모르겠어.」
「음, 나도 저 슬픔은 결코 가장한 게 아니라고 느꼈네.」
노인도 동의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 짚은지도 모르겠군.」
「…제기랄, 어찌된 영문인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곧 거기에 반박한 건 다름 아닌 사고 이야기를 꺼냈던 남주인공 본인이었다.
「아뇨,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음?」
「뭐?」
남주인공은 반문에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음악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기타와 타악기가 끼어들며 분위기를 뒤집어놓는다. 그간 일어났던 사건들이 흑백으로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 이후 다시 상자에 닫혀 잠긴다.
이 사건은 결과에만 매몰해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어떤 것에도 이상한 것은 없다. 하지만 사건은 일어났다.
그렇다면.
「체스판을 뒤집어보겠습니 다.」
「체스판……?」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사건의 어떤 것에 대한 증거도 없고, 그걸 처리한 흔적조차 없다. 그렇다면 잘못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한 입에서 양아치 인격의 당황스런 신음과 노인의 고민스런 입가가 동시에 그려진다.
「음, 현장에 존재하는 흔적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추리를 병신같이 해서 진상 근처에도 못갔다는 뜻이겠지.」
남주인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체스판의 앞면이라고 합시다.」
그렇게 정의한다면 뒷면은 보다 간단해진다.
「사건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건 어떻습니까?」
「…뭐?」
표정변화가 격렬한 양아치가 입을 떡 벌리고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 드물게도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야, 너 괜찮냐? 좀 쉴래?」
「미안하지만 제정신이다.」
「셜록키언은 커녕 트레키도 안 할 소리를 하고 자빠져서는 뭐?」
하지만 남주인공의 태도는 단호했다.
「무릇 사람은 슬픔과 분노를 죽일 수는 있어도 기쁨을 죽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방금 전의 표정에는 일말의 안도감조차 없었습니다.」
안타까움과 기쁨은 동치가 아니다. 하나의 기세가 강하다고 다른 하나가 눌려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의 표정이 하나로밖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대개 연기를 할 때다.
「범인은 류가영, 그 여자입니다. 그 외에는 그 누구도 동기가 없으며, 관련성조차 옅습니다.」
「…….」
심증에 불과한 엉망진창의 단정짓기. 평소라면 미친 짓으로 치부했을 만한 짓거리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단정짓자 사건의 이상성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그간 피해자들이 사망하던 순간을 비춰준 뒤,공간을 두고 빙그르르 돌았다. 입체 인형극을 연상케 하는 연출이 불쾌한 골짜기를 더욱 키웠다.
마치 어딘가보이지 않는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모습.
「불가능한 일을모두 제하고 나면, 아무리 믿을수 없어도 그것이 진실이다.」
불과 방금 전에 했던 말이 전혀 다른 의미를 지 니고 발해졌다.
「상식선에서 사건의 전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면, 사건은 비상식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남주인공은 조용히 선언했다.
「정확한규칙을 파악하기 전까지 이 사건은 일단… 그렇군요. ‘마법’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가정 해보겠습니다.」
측면으로 향한 카메라에 비친 드리운 그림자와 튀어나와 보이는 코는 마치 코페르니쿠스를 연상케 했다.
#
“컷.”
나는 마법이란 단어가 발해진 순간주먹을 불끈 쥐었다. 옆을 보니 김철 선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
시청자들의 기대와 작가와 배우들이 자아내는 분위기 속에 드라마에 마법을 집어넣고야 말았다.
『영원의 시대』가 무슨 짓을 하던 승부는 이미 결정되고 만 것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관리하며 헛기침을 했다.
“최대웅 씨. 고생하셨습니다. 이설 씨도.”
“어이구, 겨우 오케이가 나왔구만.”
최대웅이 철퍼덕 주저앉았다. 내용 자체를 지적할 기운도 없는지 한껏 지친 표정이었다. 이 역시 계획대로였다.
흐뭇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점검차 온 오지호 CP를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음… 그것이……”
오 CP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도 답이 없는 내용에 무어라 할 말을 잊은 기색이었다.
“음, 그러니까… 정말 놀랐습니다.”
그렇고말고. 여기에 놀라지 않으면 사람일 리가 없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니까.
일단 주인공의 논리부터가 그렇다. 누가 봐도 또라이아닌가.
나는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죄송하지만 재촬영을 하기엔 시간이 없어서, 이대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걸 재촬영까지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아뇨… 그러니까 못 한다는 얘깁니다만.”
“맙소사……”
오지호 CP가 마치 우주 대왕오징어를 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어쩐지 대화가 어딘가 어긋나 있는 것 같은느낌이 드는데.
오지호는 최도정 사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다.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있을까 싶은데.
내가 미심쩍은 기분을 떨치고 김철 선배와 자축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설이였다.
“저기, 감독님.”
“응? 아, 너도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덕분…이 아니라!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건가요?”
설이로서는 드물게도 톤이 높은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안 괜찮은데?”
“……아니에요.”
설이는 어째선지 우주 대왕조개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영 불안한 모양이라 나는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뭐, 일단 방영이 나가면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방영일이 되었다.
끝